{펌}위안부 할머니의 편지..

딸기2004.02.16
조회309

정옥순(鄭玉順)씨의 기억은 매우 또렷했다. 그는 함경남도 풍산군 파발리(豊山郡 把撥里)에서 1920년 12월28일 태어났다. 1933년 6월3일 우물에서 물을 긷다가 제복을 입은 남자 3명에게 연행됐고, 끌려간 파발리 주재소에서 강간당했다. 저항하다가 눈을 세게 얻어맞아 이때부터 왼쪽눈이 차츰 안 보이게 됐다.

그뒤 10일이 지나 7∼8명의 군인에 의해 트럭에 실려 혜산(惠山)에 있던 일본군 수비대에 연행됐다. 그곳에는 각지에서 끌려온 여성들이 많이 있었다. 정씨는 하루에 약 40명이나 되는 군인을 상대한 일도 있어 자궁출혈이 심했다.

그해 8월27일, 칼을 찬 군인이 ‘군인 100명을 상대할 수 있는 자가 누군가’하고 물었다. 그때 손을 들지 않은 15명의 여성은 다른 여성에 대한 본보기로 죽였다. 발가벗긴 여성을 군인이 머리와 발을 잡아 못박은 판자 위에 굴렸다. 분수처럼 피가 솟고 살덩이가 못판에 너덜거렸다. 그때의 기분을 “하늘과 땅이 온통 뒤집어진 것 같았다”고 정씨는 표현했다. 그 다음 군인들은 못판 위에서 죽은 한 여성의 목을 쳐 떨어뜨렸다. 정씨와 다른 여성들이 울고 있는 것을 본 중대장은 “위안부들이 고기를 먹고 싶어 운다”고 했다. 군인들은 죽은 여성의 머리를 가마에 넣어 삶았다. 그리고 나무칼을 휘두르며 그들에게 억지로 마시도록 했다.

정씨는 그때 피살된 여성들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꼽으며 한사람씩 짚어나갔다. 중도에서 헛갈리면 다시 처음부터 세어나갔는데 아무리 해도 한사람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자 몹시 서운해 했다. 그 수비대의 대대장은 ‘니시하라’, 중대장은 ‘야마모토’, 소대장은 ‘가네야마’였으며, 위안소 감독은 조선인 ‘박’이었다고 했다.

 

 

 

 

 

강제위안부를 다녀오신 할머님의 말이다.

이승연을 비롯한 이사건 관계자들 잘 읽어라,

니들이 어떤 사람을 죽이고 있는지 잘 읽어라.

저 할머니는 13살때 강제위안부에 끌려갔다.

니네들이 자식을 나았어도 13살이라는 나이가 있겠지.

지금 나이로 초등학교 6학년이였음을 명심하라.

 

니깟것들이 위로할만한 분이 아니다.

니깟것들이 함부로 상처를 들쑤셔 낼수 있는 분이 아니다.

저분들이 있어, 우리가 있는것이도

저분들이 있어, 당신네도 존재한다는걸 알아라.

그걸 알고서도 이런 만행을 저질를수 있다면

너희들은 살아서도 안되고 쉽게 죽어서도 안될 년놈들이다.

 

잘 읽어보고

잘 들어보고

잘 보아라..

너희들 그 돈에 먼 눈과

너희들 그 생각없는 머리와

너희들 그 가치없는 생각이 만들어낸 이 나라의 파단을 잘 보란 말이다.

저 할머니가 지금 마음속으로 무얼 외치고 있는지 니들 달려있는 귀로 잘 들으란 말이다.

국민이 지금 니들한테 무얼 바라고 있는지 생각 하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