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제가 생기면 해결방안을 강구한다며 많은 해결책을 놓고 무수한 언어로 卓上空論을 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 문제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각계의 전문가들을 모셔놓고 甲論乙駁 토론을 벌이며 해결책이라고 내놓는 것들을 보면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妙手로 보여질 때가 많다.
그러나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실행에 옮겨 성공하는 사례는 드물었던 것으로 본다. 그만큼 이론과 실제 사이에는 두터운 벽이 견고하게 쌓여져 있는 것이다.
“왕따”
사전에 의미조차 올려져 있지 않은 말로 사회적 문제 거리가 된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또한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닌 것이다.어떠한 집단에서든 왕따는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요즘처럼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아 문제가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었던 것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리더가 있는가 하면 따돌림 받는 사람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요즘의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교수를 왕따 시키는 경우도 있다. 강의를 빡빡하게 하고, 숙제 많고 학점이 짜면 학생들에게 왕따를 당한다고 한다. 학생이 듣지 않는 강의는 아무리 실력이 있는 교수님일지라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어른들이 모인 단체사회에도 마찬가지지만 어린아이들 사이에도 두 명이 놀다 다른 아이가 합류되면 한 아이는 틀림없이 배척을 당하기 마련인데, 사춘기 청소년기 아이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우리 최대의 목표인 것이다.
왕따 피해의 유형으로는 무시하며 소외시키기 놀리기, 신체적 모욕주기 말 걸지 않기 전학 와서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우등생이기 때문에... (말도 안되는 다양한 종류의 배척현상으로 이어지는) 또래 집단에서 소외되기도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
물론 나와 다르기 때문에, 우월하기 때문에 못났기 때문이라면서 여러 가지 유형으로 또래 집단에서 배척당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심술궂게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많이 대해왔다. 흥부 놀부 전 에 나오는 놀부의 심술 맞은 행동을 비추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지금의 왕따 현상과 경우는 다르지만 남이 잘되는 것을 싫어하고, 남의 불행한 모습에서 자신에 대한 보상심리와 정신적인 카타르시스 현상을 느끼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왕따 현상이 오죽 심했으면 검찰까지 나서서 ‘자녀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운동 추진본부’까지 설립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아이들의 왕따 현상에 대해 얼마만큼 깊은 관심을 가졌었는가 의문을 가져본다.
사건이 터져 문제화되었을 때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하면서 성급함을 나타내곤 하는 우리의 현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대해 과연 얼마만큼 아는가하고 내 자신과 학부모들에게 묻고 싶다.
아이들이 학교생활과 친구들과 관계에 대해 부모 품을 떠나는 시기는 대부분 중학교에 입학하고부터 사춘기에 접어드는 시기이고 그 때에는 부모의 간섭을 귀찮아한다.
부모가 학교생활에 대해 묻기라도 하면 짜증 부리고 아무 말 없이 자기 방으로 쑥 들어 가버린다. 그렇기에 우리 부모들은 아이들 학교생활에 대해 무지할 정도로 모르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거리가 무엇인지 모르다가 일이 터지고 나면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문제가 깊은 경우가 非一非再하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 해답의 주인은 바로 교육 현장의 일선에서 뛰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선생님이다.
가장 가까이 아이들과 호흡을 하고 계신 선생님이 왕따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장본인이라 본다.
사람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선생님이라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학창시절과 선생님이 그만큼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고 자신의 進路를 결정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雜務에 시달리는 선생님을 볼 때면 안타까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지식과 人性敎育은 어떠한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선생님의 교육은 그만큼 중요하다고 본다. 또한 선생님이 아이들을 좀더 관심 있게 보아주고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가져본다면 틀림없이 좋은 해결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본다.
주제를 정해 아이들과 대화를 한다든가, 요즈음 아이들의 고민거리와 사회적인 문제 등을 밀도 있게 토론하고 해결방안을 스스로 찾게 하는 방법 등을 써 보는 것도 좋은 해결법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특히 왕따 피해를 받고 있는 아이의 주동자 역할을 하는 가해자가 누구인가를 알아내고, 피해자를 돌보아 주어야하는 책임 있는 숙제를 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물론 그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선생님께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특성 등을 고려해 아이들을 이해하고 반발심이 생기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는 전제되어야 한다.
또한 더욱 중요한 것은 선생님께서 끈기 어린 인내심과 애정 어린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그러한 것이 쉽지만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이론과 실제의 차이는 현저한 것이기에....
그러나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사람만이 피부로 직접 체감온도를 느끼며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는 것이지 학교 밖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목청 높인들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우리의 학창시절, 공부 잘하는 아이가 의례히 반장은 맡아서 해왔지만, 가끔씩 문제아에게 반장을 시켰던 기억이 있다. 책임을 맡은 아이는 학급의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면서 차츰 모범생의 길을 걷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분위기도 더욱 좋아졌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렇듯 때로는 발상의 전환이 해결책이 되기도 한다.
무조건 어른의 시각에서 보지만 말고 아이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선생님께서 맨투맨 작전으로 아이들을 돌보아 주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무조건 큰 주제만 갖고 해결하려들지 말고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라 말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의 교실에서 먼저 해결하고,더욱 큰 문제는 교실 밖에서 해결방안을 찾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라고 본다.
어찌 바다 속에는 상어와 고래만 살고 있겠는가.먹이사슬 관계를 생각하면 미세한 플랑크톤이 더욱 중요한 것으로 대두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우리는 가끔씩 분위기 좋은 학교를 선정해 성공사례로 매스컴을 통해 접하곤 한다. 그 결과가 있기까지는 학생들의 몫도 큰 역할이었지만 선생님의 숨은 공로가 크나큰 경우가 많다.
어떠한 무리를 이끌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 증명되는 경우인 것이다. 무수한 언어로 卓上空論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집단 이지메 현상도 어른들의 그릇된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끊임없는 노력으로 우리어른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인 것이다.
교육의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고 있는 선생님은 知識의 傳達者일뿐만 아니라 미래를 짊어질 어린 싹을 가꾸는 農軍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돌보면, 사회적인 문제라 일컫는 “왕따” 현상은 충분히 해결되리라는 작은 믿음을 가져본다.
영원한 해결사 우리 선생님(왕따 동영상이 돌고 있다기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해결방안을 강구한다며
많은 해결책을 놓고 무수한 언어로 卓上空論을 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
문제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각계의 전문가들을 모셔놓고 甲論乙駁 토론을 벌이며
해결책이라고 내놓는 것들을 보면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妙手로 보여질 때가 많다.
그러나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실행에 옮겨 성공하는 사례는 드물었던 것으로 본다.
그만큼 이론과 실제 사이에는 두터운 벽이 견고하게 쌓여져 있는 것이다.
“왕따”
사전에 의미조차 올려져 있지 않은 말로 사회적 문제 거리가 된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또한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닌 것이다.어떠한 집단에서든 왕따는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요즘처럼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아 문제가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었던 것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리더가 있는가 하면 따돌림 받는 사람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요즘의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교수를 왕따 시키는 경우도 있다.
강의를 빡빡하게 하고, 숙제 많고 학점이 짜면 학생들에게 왕따를 당한다고 한다.
학생이 듣지 않는 강의는 아무리 실력이 있는 교수님일지라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어른들이 모인 단체사회에도 마찬가지지만 어린아이들 사이에도 두 명이 놀다
다른 아이가 합류되면 한 아이는 틀림없이 배척을 당하기 마련인데,
사춘기 청소년기 아이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우리 최대의 목표인 것이다.
왕따 피해의 유형으로는 무시하며 소외시키기 놀리기, 신체적 모욕주기 말 걸지 않기
전학 와서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우등생이기 때문에...
(말도 안되는 다양한 종류의 배척현상으로 이어지는)
또래 집단에서 소외되기도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
물론 나와 다르기 때문에, 우월하기 때문에 못났기 때문이라면서 여러 가지 유형으로
또래 집단에서 배척당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심술궂게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많이 대해왔다.
흥부 놀부 전 에 나오는 놀부의 심술 맞은 행동을 비추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지금의 왕따 현상과 경우는 다르지만 남이 잘되는 것을 싫어하고, 남의 불행한 모습에서
자신에 대한 보상심리와 정신적인 카타르시스 현상을 느끼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왕따 현상이 오죽 심했으면 검찰까지 나서서
‘자녀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운동 추진본부’까지 설립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아이들의 왕따 현상에 대해 얼마만큼 깊은 관심을 가졌었는가 의문을 가져본다.
사건이 터져 문제화되었을 때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하면서 성급함을 나타내곤 하는 우리의 현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대해 과연 얼마만큼 아는가하고 내 자신과 학부모들에게
묻고 싶다.
아이들이 학교생활과 친구들과 관계에 대해 부모 품을 떠나는 시기는 대부분 중학교에
입학하고부터 사춘기에 접어드는 시기이고 그 때에는 부모의 간섭을 귀찮아한다.
부모가 학교생활에 대해 묻기라도 하면 짜증 부리고 아무 말 없이 자기 방으로
쑥 들어 가버린다.
그렇기에 우리 부모들은 아이들 학교생활에 대해 무지할 정도로 모르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거리가 무엇인지 모르다가 일이 터지고 나면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문제가 깊은 경우가 非一非再하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 해답의 주인은 바로 교육 현장의 일선에서 뛰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선생님이다.
가장 가까이 아이들과 호흡을 하고 계신 선생님이 왕따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장본인이라 본다.
사람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선생님이라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학창시절과 선생님이 그만큼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고 자신의 進路를 결정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雜務에 시달리는 선생님을 볼 때면 안타까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지식과 人性敎育은 어떠한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선생님의 교육은 그만큼 중요하다고 본다.
또한 선생님이 아이들을 좀더 관심 있게 보아주고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가져본다면
틀림없이 좋은 해결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본다.
주제를 정해 아이들과 대화를 한다든가, 요즈음 아이들의 고민거리와 사회적인 문제 등을
밀도 있게 토론하고 해결방안을 스스로 찾게 하는 방법 등을 써 보는 것도 좋은 해결법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특히 왕따 피해를 받고 있는 아이의 주동자 역할을 하는 가해자가 누구인가를 알아내고,
피해자를 돌보아 주어야하는 책임 있는 숙제를 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물론 그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선생님께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특성 등을 고려해
아이들을 이해하고 반발심이 생기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는 전제되어야 한다.
또한 더욱 중요한 것은 선생님께서 끈기 어린 인내심과 애정 어린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그러한 것이 쉽지만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이론과 실제의 차이는 현저한 것이기에....
그러나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사람만이 피부로 직접 체감온도를 느끼며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는 것이지 학교 밖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목청 높인들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우리의 학창시절,
공부 잘하는 아이가 의례히 반장은 맡아서 해왔지만, 가끔씩 문제아에게 반장을 시켰던
기억이 있다.
책임을 맡은 아이는 학급의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면서 차츰 모범생의 길을
걷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분위기도 더욱 좋아졌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렇듯 때로는 발상의 전환이 해결책이 되기도 한다.
무조건 어른의 시각에서 보지만 말고 아이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선생님께서 맨투맨 작전으로 아이들을 돌보아 주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무조건 큰 주제만 갖고 해결하려들지 말고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라 말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의 교실에서 먼저 해결하고,더욱 큰 문제는 교실 밖에서 해결방안을
찾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라고 본다.
어찌 바다 속에는 상어와 고래만 살고 있겠는가.먹이사슬 관계를 생각하면
미세한 플랑크톤이 더욱 중요한 것으로 대두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우리는 가끔씩 분위기 좋은 학교를 선정해 성공사례로 매스컴을 통해 접하곤 한다.
그 결과가 있기까지는 학생들의 몫도 큰 역할이었지만
선생님의 숨은 공로가 크나큰 경우가 많다.
어떠한 무리를 이끌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 증명되는 경우인 것이다.
무수한 언어로 卓上空論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집단 이지메 현상도 어른들의 그릇된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끊임없는 노력으로
우리어른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인 것이다.
교육의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고 있는 선생님은 知識의 傳達者일뿐만 아니라
미래를 짊어질 어린 싹을 가꾸는 農軍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돌보면,
사회적인 문제라 일컫는 “왕따” 현상은 충분히 해결되리라는 작은 믿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