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청각장애를 가진 어머니그리고 늦둥이로 태어나, 형과 누나의 보살핌조차 받지 못하며늘 또래 놀림거리가 되었던 아빠.5남매 중 가장 예쁘고 영특했지만, 가난한 살림살이로 인해대입 진학을 포기하고 술집에서 일했던 엄마. 저는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조산아에요. 가정을 이루고자 약속하지도성실한 배우자가 되자 준비하지도스스로 어떤 어른이고자 생각해본 적도 없는스무살 엄마와 스물넷 아빠이 둘의 가정에서 분란은 끊이지 않았어요. 엄마의 이야기에서 네 살까지도 아빠한테 많이 맞았다고 했는데다행이도 기억에는 없어요. 간혹 할머니 등 뒤로 숨었던 기억정도..제 밑으로는 세 살 어린 남동생이 태어났는데유전이었는지 귀가 들리지 않았어요. 연탄으로 난방하고쪼그려 앉아서 싸던 화장실그 오래된 아파트를 벗어나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어요. 어린 부모님이추운 겨울에도 중고물품 바지런히 닦아팔며겨우 이룩한 자산이 27평 아파트였어요. 그 행복도 잠시바람난 고모부때문에 이혼하고 방황하던 고모는사촌 둘을 데리고 우리집에서 같이 살게 됐어요.어렸을 때라 그게 너무 좋았네요.4남매가 되었으니 동네에서 무적이었거든요. 친할머니,아빠,엄마,고모,사촌오빠,사촌동생 그리고 저와 동생8명이 모여 살던 그 아파트에서 여섯살 되던 해부모님은 이혼하게 되었고청각장애였던 할머니 품에서 엄마가 많이 울고선큰 짐을 들고 나간 뒷모습을 바라봤어요.엄마의 뒷모습이 익숙했던지라 매달리지도 않았어요.그게 후회됐는 지 아직 안잊혀지네요. 고모가 소개시켜준 여자와 새 삶을 시작하려 했던 아빠.친엄마를 기억하고 있는 큰 딸과 청각장애를 가진 어린 아들이짐이 되어서 삐그덕 거리다결국 저는 큰집으로 동생은 고모집으로 보내졌어요.그렇게 2년쯤 살았고, 그 여자는 우리를 거두고 싶다고 했어요.한 가정으로 살고싶다면서 가기 싫다는 저와 만류하는 큰 엄마를 설득했어요.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던 거 같아요.내 동생은 이 여자를 친엄마인 줄 알았고,엄마를 기억하는 저와엄마를 지우고싶은 아빠엄마를 대신하고 싶은 새엄마그렇게 살았으니까요. 이성적이었던 새엄마는냉철하고 합리적으로 키워주셨고그래서 저는 현실적인 사고를 하며 자라게 되었어요.친엄마로 알고 자란 동생에게애정어린 사랑과 관심을 많이 쏟아주었어요.처녀로 시집와서 10여년 간 고생 많이 했어요.청각장애학교가 흔하지도 않았고,그 시절 수화 대신 구화로 가르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어요.동생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신경써주셨어요.발음교정과 통학 그 모든게 새엄마의 노력으로 이루어졌어요. 제 곁에서 떠나는 사람은 친엄마 하나일 줄 알았어요.도박에 발 들인 아빠는 경제권을 더이상 나누기 싫어졌고,부동산을 하나씩 처분해 현금화하며 키워주신 엄마와 정리했어요.그 사실을 몰랐던 저는 이혼했다는 사실만 아빠에게 듣고 배신감을 가졌어요.친권은 아빠에게 있으니 당연히 저와 남동생은 아빠에게 갈 수 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옮긴 집에는 또 다른 새엄마가 있었지만,말 한마디 하지않았고 무시하고 살았어요.이사하고서 학교에 내야하는 등본에는 엄마가 없어서제출하지도 않았고, 공부도 하기 싫었고옷 사입고 술 마시고 집에 최대한 늦게 들어가고 그랬어요.세 살 어린 동생은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였는데도저는 그 빈 자리를 채워주지 못했어요. 제게 왔어야 할 미움과 화살이,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동생에게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성을 잃었어요.아빠는 처음으로 제 뺨을 내리쳤고저는 막말을 쏟아냈어요. 그렇게 두번째 새엄마는 위자료를 챙겨 나갔고,저 때문에 아빠는 혼자가 되었어요. 스무살이 되던 해친엄마가 찾아왔고,그렇게 해피엔딩이 되는 줄 알았어요. 이미 따로 산 지 오래 된 두 분은재결합하기 어려웠고..아빠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서아예 끝났네요. 위자료도 가져갔고,저와 동생의 양육비 한번 보내지 않았던친엄마가 기울어져 가던 아빠의 손을한번이라도 잡아줬으면 이렇게 망하진 않았을텐데 원망도 했어요.대학등록금 때문에 대출알아보던 때니까.. 휴학하고 돈벌어보니 전공살려 사는 사람도 주변에 없었고학교 다니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어요.그대로 2학년에 자퇴했네요.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싶더라고요.그러면아빠가 만든 가정에서 참고 살지 않아도 되니까 콜센터에서 혼자산다는 이유로연장근무에 쑤셔넣어져도 악착같이 버텨전세금도 모을 수 있었고, 동생과 같이 살 수 있게 됐어요.그 와중에도이런 가정상황을 덤덤하고 아무렇지 않게생각하는 남자를 만났어요. 청각장애였던 제 동생이 주는 사이다 한 잔에천사를 보는 것 같았다며 경탄하던 그 표정결혼을 한다면 꼭 저와 하겠다던 그 확신 부모 지원없이 둘이 가진 돈 모아 결혼했고티격태격 살다보니 5년이 지났네요.결혼 이후에도 동생은 같이 살다가재작년에 자립했어요. 이런 가정 상황이면 누구라도 저와 결혼하려고 하지 않겠죠.스스로 현실적이라 생각하면서도 실상 그러지는 못했나봐요.부모님의 이혼이, 동생의 장애가곧 결혼 못할 이유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서두에 첨부한 글의 댓글을 보면서제가 다 눈물나더라고요. 따뜻한 마음, 성실한 태도, 합리적인 사고..글쓴이의 빛나는 장점들이 분명히 있어요.제발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섣불리 포기하지 말아요.늦은 밤..눈물짓지 않기를 바라며 그 삶을 응원해요. 행복해질 수 있어요.
장애가진 동생을 둔 장녀의 이야기를 보고
안녕하세요, 제목 그대로...서두에 첨부해둔 글을 읽고나서 고민이 많이 됐어요.어디서부터 어떻게 적어야 할 지..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제 전 생애를 써보려고 해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청각장애를 가진 어머니그리고 늦둥이로 태어나, 형과 누나의 보살핌조차 받지 못하며늘 또래 놀림거리가 되었던 아빠.5남매 중 가장 예쁘고 영특했지만, 가난한 살림살이로 인해대입 진학을 포기하고 술집에서 일했던 엄마.
저는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조산아에요.
가정을 이루고자 약속하지도성실한 배우자가 되자 준비하지도스스로 어떤 어른이고자 생각해본 적도 없는스무살 엄마와 스물넷 아빠이 둘의 가정에서 분란은 끊이지 않았어요.
엄마의 이야기에서 네 살까지도 아빠한테 많이 맞았다고 했는데다행이도 기억에는 없어요. 간혹 할머니 등 뒤로 숨었던 기억정도..제 밑으로는 세 살 어린 남동생이 태어났는데유전이었는지 귀가 들리지 않았어요.
연탄으로 난방하고쪼그려 앉아서 싸던 화장실그 오래된 아파트를 벗어나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어요.
어린 부모님이추운 겨울에도 중고물품 바지런히 닦아팔며겨우 이룩한 자산이 27평 아파트였어요.
그 행복도 잠시바람난 고모부때문에 이혼하고 방황하던 고모는사촌 둘을 데리고 우리집에서 같이 살게 됐어요.어렸을 때라 그게 너무 좋았네요.4남매가 되었으니 동네에서 무적이었거든요.
친할머니,아빠,엄마,고모,사촌오빠,사촌동생 그리고 저와 동생8명이 모여 살던 그 아파트에서 여섯살 되던 해부모님은 이혼하게 되었고청각장애였던 할머니 품에서 엄마가 많이 울고선큰 짐을 들고 나간 뒷모습을 바라봤어요.엄마의 뒷모습이 익숙했던지라 매달리지도 않았어요.그게 후회됐는 지 아직 안잊혀지네요.
고모가 소개시켜준 여자와 새 삶을 시작하려 했던 아빠.친엄마를 기억하고 있는 큰 딸과 청각장애를 가진 어린 아들이짐이 되어서 삐그덕 거리다결국 저는 큰집으로 동생은 고모집으로 보내졌어요.그렇게 2년쯤 살았고, 그 여자는 우리를 거두고 싶다고 했어요.한 가정으로 살고싶다면서 가기 싫다는 저와 만류하는 큰 엄마를 설득했어요.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던 거 같아요.내 동생은 이 여자를 친엄마인 줄 알았고,엄마를 기억하는 저와엄마를 지우고싶은 아빠엄마를 대신하고 싶은 새엄마그렇게 살았으니까요.
이성적이었던 새엄마는냉철하고 합리적으로 키워주셨고그래서 저는 현실적인 사고를 하며 자라게 되었어요.친엄마로 알고 자란 동생에게애정어린 사랑과 관심을 많이 쏟아주었어요.처녀로 시집와서 10여년 간 고생 많이 했어요.청각장애학교가 흔하지도 않았고,그 시절 수화 대신 구화로 가르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어요.동생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신경써주셨어요.발음교정과 통학 그 모든게 새엄마의 노력으로 이루어졌어요.
제 곁에서 떠나는 사람은 친엄마 하나일 줄 알았어요.도박에 발 들인 아빠는 경제권을 더이상 나누기 싫어졌고,부동산을 하나씩 처분해 현금화하며 키워주신 엄마와 정리했어요.그 사실을 몰랐던 저는 이혼했다는 사실만 아빠에게 듣고 배신감을 가졌어요.친권은 아빠에게 있으니 당연히 저와 남동생은 아빠에게 갈 수 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옮긴 집에는 또 다른 새엄마가 있었지만,말 한마디 하지않았고 무시하고 살았어요.이사하고서 학교에 내야하는 등본에는 엄마가 없어서제출하지도 않았고, 공부도 하기 싫었고옷 사입고 술 마시고 집에 최대한 늦게 들어가고 그랬어요.세 살 어린 동생은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였는데도저는 그 빈 자리를 채워주지 못했어요.
제게 왔어야 할 미움과 화살이,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동생에게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성을 잃었어요.아빠는 처음으로 제 뺨을 내리쳤고저는 막말을 쏟아냈어요.
그렇게 두번째 새엄마는 위자료를 챙겨 나갔고,저 때문에 아빠는 혼자가 되었어요.
스무살이 되던 해친엄마가 찾아왔고,그렇게 해피엔딩이 되는 줄 알았어요.
이미 따로 산 지 오래 된 두 분은재결합하기 어려웠고..아빠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서아예 끝났네요.
위자료도 가져갔고,저와 동생의 양육비 한번 보내지 않았던친엄마가 기울어져 가던 아빠의 손을한번이라도 잡아줬으면 이렇게 망하진 않았을텐데 원망도 했어요.대학등록금 때문에 대출알아보던 때니까..
휴학하고 돈벌어보니 전공살려 사는 사람도 주변에 없었고학교 다니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어요.그대로 2학년에 자퇴했네요.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싶더라고요.그러면아빠가 만든 가정에서 참고 살지 않아도 되니까
콜센터에서 혼자산다는 이유로연장근무에 쑤셔넣어져도 악착같이 버텨전세금도 모을 수 있었고, 동생과 같이 살 수 있게 됐어요.그 와중에도이런 가정상황을 덤덤하고 아무렇지 않게생각하는 남자를 만났어요.
청각장애였던 제 동생이 주는 사이다 한 잔에천사를 보는 것 같았다며 경탄하던 그 표정결혼을 한다면 꼭 저와 하겠다던 그 확신
부모 지원없이 둘이 가진 돈 모아 결혼했고티격태격 살다보니 5년이 지났네요.결혼 이후에도 동생은 같이 살다가재작년에 자립했어요.
이런 가정 상황이면 누구라도 저와 결혼하려고 하지 않겠죠.스스로 현실적이라 생각하면서도 실상 그러지는 못했나봐요.부모님의 이혼이, 동생의 장애가곧 결혼 못할 이유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서두에 첨부한 글의 댓글을 보면서제가 다 눈물나더라고요.
따뜻한 마음, 성실한 태도, 합리적인 사고..글쓴이의 빛나는 장점들이 분명히 있어요.제발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섣불리 포기하지 말아요.늦은 밤..눈물짓지 않기를 바라며 그 삶을 응원해요.
행복해질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