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죽을 아시나요?(펌)

고수2004.02.23
조회2,220




<MARQUEE scrollAmount=2 direction=up>





여러분은 민영환의 혈죽(血竹)을 아십니까..




민영환이 자결하고 8개월이 지나자




피묻은 옷을 간직한 방에서


청죽이 솟아올랐습니다. 허거 '0'



이에 민심이 술렁이자 당황한일제는


사실이 아니라며 날조 하기에 이릅니다.





김은호 화백, 김우현 목사 등


당시 청죽을 목격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민영환의 피를 먹고 대나무가 솟아났다는


이른바 혈죽 사건은



당시 언론에도 보도되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1906년 7월 5일자 대한 매일신보(현 대한매일)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공의 집에 푸른 대나무가 자라났다.


생시에 입고 있었던 옷을 걸어두었던 협방 아래서


푸른 대나무가 홀연히 자라난 것이라 한다.


이 대나무는 선죽과 같은 것이니 기이하다" 0,0;





신문 보도대로 민영환이 순국한 지 8개월 후,


피묻은 옷을 간직했던 방에서 청죽이 솟아 올랐습니다.



대나무의 45개의 입사귀는


순국할 때의 나이와 같은 숫자여서
더욱 신기하게 여겨졌습니다.





혈죽으로 인해 조선 사회는 술렁이기 시작 했습니다.



당황한 일제는


혈죽이 조작된 것처럼 만들고자


잔머리를 굴립니다.
(씨방새들..-,-;)



그들은 대나무가 뿌리를 통해 번식한다는 점을 주목,


집주변에 대나무가 있는지



면밀히 조사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대나무는 찾지 못했습니다.






마루를 뜯어 내고 주위를 파내며


다른 대나무가 뿌리를 뻗어서


솟아난 것은 아닌가


확인했지만 역시 실패하고 맙니다.







민영환의 손자 민병진씨는





"일제는 혈죽의 조작 증거를 잡지 못하자


대나무를 뽑았는데 쑥 뽑혔다고 한다.




만약 뿌리를 통해 번식했다면


대나무가 뽑혀 나올 리 없다"고 말합니다.





잊혀졌던 혈죽이




다시 세상에 얼굴을 내민것은



광복 이후,


일제가 뽑아버린 대나무를
고이 수습한


충정공의 부인 박수영 씨에 의해서 입니다.







박씨는 자줏빛 보자기로 대나무를 싸고


폭 8센티 길이 50 센티 정도의


나무 상자 속에 넣어 보관 합니다.
고이 간직해온 혈죽은


유족들이 1962년 고려대 박물관에 기증,


옮겨지게 돼어


이 시대를 사는많은 이 들의


가슴을 치게 만듭니다.








김모 우원장 ! 감동좀 머거라.씨바...-,- 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