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도 살아가는 이유

푸른하늘200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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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글을 씁니다.

지난 주말의 일들이 자꾸 생각나고 집사람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다른분들이 팔불출이라고 욕할지 몰라도 함께하고 싶네요.

 

우리 집사람은 금년에 40이 되었습니다. 소위 남들이 말하는 아줌마가 되어가고 있지요.

최근 2년 동안 우리 집사람이 우는것을 네번 보았습니다. 물론 자상한 남편은 내가 아니지만 나로인해 우는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역류하고자합니다.

 

2002년 월드컵이 막바지로 치닫던 토요일 오후 우리나라는 스페인과 4강진출을 다투는 날이었습니다. 온천지에 울리던 대~한민국은 서로를 애국자로 만들었고 마치 우리가 큰일을 이룬듯한 감격을 매일 안겨주던 그때입니다.

우리 집사람은 운동은 전혀 모르는 주부입니다. 사실 축구선수는 차범근만 알고 지낸다고해도 과언이 아닌사람입니다. 최근에야 홍명보와 안정환도 얘기할 수준이지요. 축구가 한팀에 몇명이 뛰는지도 모르는 그런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축구가 16강 진출 하면서 부터 중계를 보기 시작하더라구요. 같이 소리지르고 흥분하고 '그래그래'를 찾고요.

그날 토요일 오후는 나라전체가 적막하였다는 표현이 맞을듯합니다. 아파트 거실에서 내려다본 거리에는 차도 한대 다니지 아닐정도였습니다. 피가 말리는 전후반과 연장이 끝나고 승부차기를 할때 집사람이 눈을 감고 기도를 하더군요. 뭐라구 중얼거리며... 우리 집사람은 종교가 없는 사람입니다. 홍명보가 성공하여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을 다시 외치며 주변이 만세의 환호로 들썩일때 나도 기쁨에 소리지르다 조용한 집사람을 보니 소파에 앉아서 울고 있었습니다. "왜그래?"하고 물어보니 집사람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당신 기쁘지 않아!?라고.... 우리 집사람이 축구를 보다 울줄이야. 생각도하지 못한 정말 사건이었습니다. 아 축구가 우리 마누라를 감동시키다니. 온국민을 하나로 묶었는데 뭘 못하겟습니까?

그런데 그축구가 지금은 어떤가요? 답답한 마음만 앞섭니다. 우리 집사람의 눈네 눈물이 다시 흐를 그날이 반드시 다시 올것을 기대합니다. 다시금 대~한민국을 외치면서요.

 

두번째는 작년 2월 중순경이었습니다. 외아들인 아들놈의 초등학교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나는 학교와는 거리를 두는것이 아버지라는 생각으로 졸업식에는 가지도 아니햇지요. 출근하며 집사람한테 못가서 미안하니 당신이 알아서해하고요.

저녘에 집에 가보니 영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애 엄마 눈은 충혈되어있고 애는 조용했습니다. 왜그러냐구 애한테 물었더니 '엄마 학교에서 많이 울었어."하더라구요. 잉 이건 무슨일인가하여 집사람한테 다가가 물었지요. 왜그러느냐구... "분하고 억울해서 그런다"구 말하면서 부연하기를 , 우리애가 초등학교 6년 내내 학교의 모든평가와 교외평가에서 전교 1등을 놓친일이 없었습니다. 6학년이 되어 학교에서 전교회장을 출마하라고 하더라구요. 내가 반대했습니다. 초등하교 전교회장과 그 부모들이 하여야하는 일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던터라. 돈으로 바르고 임기를 시작하는 초등하교 전교회장 절대 출마 반대였습니다.  1년에 500만원정도 들어간다구하더라구요.

물론 상이라는것이 학교에 기여한 바가 있는 사람에게만 주는것이라고 하여도 초등학교 졸업식날 우리 마누라가 자기 목숨같이 여기는 아들놈이 엄마들의 치맛바람에 눌려 상하나 받지 못하자 졸업식을 하던도중 화장실로가 소리내어 울었다구하더라구요. 부모가 반대하여 애의 기를 죽인것도 후회스럽다구 하면서요. 저는 아직도 내 선택을 믿습니다. 부모의 후원 정도에 따라 정해지는 초등학교 상은 의미 없고 받아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구요. 결국은 이러한 평가와 시상이 초등학교부터 불신을 만들고 교육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것아닐까요? 그런 마누라를 나는 꼭 안아주었습니다. "당신 6년간 고생했어. 그리고 우리아들 착하고 바르게 컷잖아. 그게 상이야"하며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나고 사무실에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집이더군요. 받아보니 집사람이 울면서 말을 못했습니다. 무슨 큰일이 난것같은 느낌. 놀라서 물었죠. 왜 그러느냐구... 우리 애가 중학교 입학생 배치고사에서 전교 1등하여 선서하게 되었다고 입학한 중학교 교무주임한테서 연락받고 나니 초등학교 졸업식날의 서러움이 더 생각난다구 하면서요. 중학교는 근처 초등학교 6개교에서 모이구요. 참 할말이 없어서.

 

지난 토요일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집사람은 할인매장으로 물건을 사러가고 1시간후 내가 데리러 갔습니다. 그런데 차에 오르는 집사람이 울면서 탔습니다. 또 놀라게 되지요. 쇼핑하다가 울면서나오니 . 집사람의 설명은 이러했습니다. 나를 기다리려고 현관에 서있는데 연로하신 할머니께서 좌판에서 몸에다 비닐을 거치고 나물을 파시다가 겨울비에 몸이 젖으니 추워서 벌벌 떨고 계시고 손님도 하나도 없더라나요. 집사람은 돌아가신 자기의 할머니가 생각나더래요. 그래서 할머니한테 가서 주머니에 남은 돈 2만 3천원을 쥐어 드리며 "오늘 비와서 손님없을것이니 그만 들어가세요"했답니다. 할머님 왈 "새댁 (?)마음 쓰는것은 고마운데 나는 이거 받을수 없어. 그래도 팔아봐야지..."하며 돈을 돌려 주시더래요. 그리 말슴하시는데 우길수도 없고 해서 나물을 만원어치 한가득 사왔더라구요. 그리고 돌아설려니까 그냥 눈물이 나더래요.돌아오는 차안에서 40살된 집사람의 마음이 왜이리 이쁜지.

 

이러한 눈물로 살아가는 의미를 느낍니다.

 

우리 모두 마음속 깊이 남아있는 진정한 그리움과 간절함이 눈물로 표현된다면 정말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