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죽었다고 하니 그저 멀리 사는 친구의 안부를 물어야했고,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약국에서 줄을 섰고, 마스크 관련 법안이 제정되는 등 이제는 마스크 없는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막연히 코로나가 두렵다는 것을 알았지만 촌 동네에선 차로 5분 거리의 옆 동네의 한 가게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자 2달간 온라인 클래스를 시작했다.
처음 시작하는 온라인 수업은 말 그대로 개판이였고, 다들 소환사의 협곡에서 우정을 느끼고 학원에서 공부하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다시 학교에 가자 고3은 매주 등교, 1학년 2학년이 교대하며 매주 등교와 온라인을 병행하며 학교의 소음은 사그라들었다.
꼰머들이 많은 동네 답게 야자를 하지 않으면 욕받이 무당이 되어버리는 신세에 어쩔 수 없이 했던 야자도 취소되고 모의고사도 집에서 치는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지자 지금은 없어져버린 네이버의 실검엔 한동안 원주율 구하는 법이 떠 있기도 하며 웃픈 일들이 다양했다.
선생님마다 다양하게 직접 촬영하시는 분, ebs강의를 이용하시는 분으로 나뉘며 꼼수의 끝판왕들이 쫌쫌따리 나왔고, 과제 폭탄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다들 체계적으로 강의를 분산해 들으며 소환사의 협곡 정모, 꿈나라 여행을 시전했다.
고3은 학교에 나가야한다는 말에 교복을 챙겨입고 책을 챙겨 학교에 가자 마스크를 배분하고 온도를 재는 등 방역활동이 이루어졌고 급식실에서도 급식도우미라는 이름으로 대신 식판과 수저를 나눠주는 봉사도 생기며 철처할 줄 알았지만 마스크 벗고 대화하기, 2m거리 유지는 무슨 0.2mm의 틈도 보이지 않는 커퀴들의 향연에 선생님들은 머리를 싸맸고, 애들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왜냐고? 시위하러 나가고 하지말라는 거 다하는 어른들 보다 더 철처히 코로나를 예방했기 때문인데 거리유지도 안하고 마스크도 벗는 애들이 안전수칙을 지킨다고 보기엔 어렵지만 그들은 상도를 지켰기 때문이다.
물론 열이 있거나 감기 증상이 있으면 격리되어 있다가 구급차 타고 보건소가는 일은 흔했고, 이를 악용해 종종 학교에서 핫팩을 머리에 두다가 걸린 이상한 놈들이 종종 있긴 했지만 서로서로 조심해 나갔다.
문제라면 자고 일어나면 따뜻해지는 이마의 상태에 체온계는 열이 있다고 판단하는 바람에 밥 먹기 전 반에서 체온측정을 위해 남자 여자 할 것없이 이마를 까야했다는 것 정도 아닐까?
3학년 1학기 수시를 위한 마지막 시험이라 다들 노는 척하면서도 피를 봤던 기적의 시험
매 달 치는 모의고사에 정신줄을 놓은 학생과 반수를 벌써 부터 준비하겠다는 학생
영어를 버리고 과학을 택해 생명과학 석차1등을 얻어낸 학생과 정시를 노리며 시험을 치는 학생, 지금이라도 기술을 배우겠다는 학생들로 시끌 벅적했고 생기부 작성에 열을 올렸다.
우리는 그렇게 코로나와 함께 여름 방학을 맞았고, 덕분에 여름에 학교를 나가지 않으며 생각없이 행복했었다. 그렇다 나는 바보였다. 내가 고3인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살았고 당시 측근의 말에 따르면 '넌 학교다니는 동안 지금이 제일 편해보이냐?' 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 잘 놀았다. 난 뭘까....?
2학기가 되자 우리는 자소서와 면접, 수능 준비로 바빴다. 난 크게 안 그랬지만....
2학기가 시작되며 '노는 게 제일 좋아'의 주인공 뽀로로들이 점점 많아졌고
수시원서 제출 후 뽀로로를 뒤이어 숙면의 끝판왕 신생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태블릿으로 영화시청을 선택했고 월 3500원으로 즐기는 넷플릭스의 애청자가 되었다.
아 사실 수능 칠 생각이 있는 친구들을 위해 준비한 모의고사는 수능 3주전에 학교에서 구입한 사설모의고사라 중간에 영화보다가 들켜서 뒤지게 혼났다는 건 비밀이당.ㅎ
수능 2주전 교육부의 방침에 따라 우리는 학교를 비우며 수능 고사장 대형을 만들어야했고, 반을 치우며 우리의 흔적들을 지워나갔다.
2주간은 아무 생각 없이 허허실실이였고, 친구들과 톡으로 꺄르륵 거렸다.
수능 전날 갑자기 기분이 이상했다. 괜히 책 한번 더 뒤적거리고 뭐 여튼간
수능날 '1도 모르겠다'를 시전하고 나는 집으로 왔고 이불로 똘똘 싸매며 눈을 감았다.
정신이 없었다. 그냥 멍했다. 그냥 그랬다.
다음날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게 확실하다.
학교를 나가 수능 안치고 염색한 친구의 후기를 들으며 대학이야기, 애인이야기 등을 말하며 꺄르륵 거렸고, 나는 잘 놀았다. 정말 너무 잘 놀아서 나 자신이 순간 걱정되는 기적을 보았다.
학교에서 수능성적을 받고 좀 지나서 대학에 최초합하고
좀 더 지나자 학교를 졸업했다.
이럴 빠에야 졸업식도 옆 학교처럼 드라이브스루를 진행하자고 의견을 냈지만 칼 같이 짤 당하며 졸업식이 진행되었다.
2020 고3을 보내며
코로나로 많은 것들이 바꼈다.
사람들도 주위 환경도 내 생활도
사람들이 죽었다고 하니 그저 멀리 사는 친구의 안부를 물어야했고,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약국에서 줄을 섰고, 마스크 관련 법안이 제정되는 등 이제는 마스크 없는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막연히 코로나가 두렵다는 것을 알았지만 촌 동네에선 차로 5분 거리의 옆 동네의 한 가게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자 2달간 온라인 클래스를 시작했다.
처음 시작하는 온라인 수업은 말 그대로 개판이였고, 다들 소환사의 협곡에서 우정을 느끼고 학원에서 공부하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다시 학교에 가자 고3은 매주 등교, 1학년 2학년이 교대하며 매주 등교와 온라인을 병행하며 학교의 소음은 사그라들었다.
꼰머들이 많은 동네 답게 야자를 하지 않으면 욕받이 무당이 되어버리는 신세에 어쩔 수 없이 했던 야자도 취소되고 모의고사도 집에서 치는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지자 지금은 없어져버린 네이버의 실검엔 한동안 원주율 구하는 법이 떠 있기도 하며 웃픈 일들이 다양했다.
선생님마다 다양하게 직접 촬영하시는 분, ebs강의를 이용하시는 분으로 나뉘며 꼼수의 끝판왕들이 쫌쫌따리 나왔고, 과제 폭탄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다들 체계적으로 강의를 분산해 들으며 소환사의 협곡 정모, 꿈나라 여행을 시전했다.
고3은 학교에 나가야한다는 말에 교복을 챙겨입고 책을 챙겨 학교에 가자 마스크를 배분하고 온도를 재는 등 방역활동이 이루어졌고 급식실에서도 급식도우미라는 이름으로 대신 식판과 수저를 나눠주는 봉사도 생기며 철처할 줄 알았지만 마스크 벗고 대화하기, 2m거리 유지는 무슨 0.2mm의 틈도 보이지 않는 커퀴들의 향연에 선생님들은 머리를 싸맸고, 애들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왜냐고? 시위하러 나가고 하지말라는 거 다하는 어른들 보다 더 철처히 코로나를 예방했기 때문인데 거리유지도 안하고 마스크도 벗는 애들이 안전수칙을 지킨다고 보기엔 어렵지만 그들은 상도를 지켰기 때문이다.
물론 열이 있거나 감기 증상이 있으면 격리되어 있다가 구급차 타고 보건소가는 일은 흔했고, 이를 악용해 종종 학교에서 핫팩을 머리에 두다가 걸린 이상한 놈들이 종종 있긴 했지만 서로서로 조심해 나갔다.
문제라면 자고 일어나면 따뜻해지는 이마의 상태에 체온계는 열이 있다고 판단하는 바람에 밥 먹기 전 반에서 체온측정을 위해 남자 여자 할 것없이 이마를 까야했다는 것 정도 아닐까?
3학년 1학기 수시를 위한 마지막 시험이라 다들 노는 척하면서도 피를 봤던 기적의 시험
매 달 치는 모의고사에 정신줄을 놓은 학생과 반수를 벌써 부터 준비하겠다는 학생
영어를 버리고 과학을 택해 생명과학 석차1등을 얻어낸 학생과 정시를 노리며 시험을 치는 학생, 지금이라도 기술을 배우겠다는 학생들로 시끌 벅적했고 생기부 작성에 열을 올렸다.
우리는 그렇게 코로나와 함께 여름 방학을 맞았고, 덕분에 여름에 학교를 나가지 않으며 생각없이 행복했었다. 그렇다 나는 바보였다. 내가 고3인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살았고 당시 측근의 말에 따르면 '넌 학교다니는 동안 지금이 제일 편해보이냐?' 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 잘 놀았다. 난 뭘까....?
2학기가 되자 우리는 자소서와 면접, 수능 준비로 바빴다. 난 크게 안 그랬지만....
2학기가 시작되며 '노는 게 제일 좋아'의 주인공 뽀로로들이 점점 많아졌고
수시원서 제출 후 뽀로로를 뒤이어 숙면의 끝판왕 신생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태블릿으로 영화시청을 선택했고 월 3500원으로 즐기는 넷플릭스의 애청자가 되었다.
아 사실 수능 칠 생각이 있는 친구들을 위해 준비한 모의고사는 수능 3주전에 학교에서 구입한 사설모의고사라 중간에 영화보다가 들켜서 뒤지게 혼났다는 건 비밀이당.ㅎ
수능 2주전 교육부의 방침에 따라 우리는 학교를 비우며 수능 고사장 대형을 만들어야했고, 반을 치우며 우리의 흔적들을 지워나갔다.
2주간은 아무 생각 없이 허허실실이였고, 친구들과 톡으로 꺄르륵 거렸다.
수능 전날 갑자기 기분이 이상했다. 괜히 책 한번 더 뒤적거리고 뭐 여튼간
수능날 '1도 모르겠다'를 시전하고 나는 집으로 왔고 이불로 똘똘 싸매며 눈을 감았다.
정신이 없었다. 그냥 멍했다. 그냥 그랬다.
다음날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게 확실하다.
학교를 나가 수능 안치고 염색한 친구의 후기를 들으며 대학이야기, 애인이야기 등을 말하며 꺄르륵 거렸고, 나는 잘 놀았다. 정말 너무 잘 놀아서 나 자신이 순간 걱정되는 기적을 보았다.
학교에서 수능성적을 받고 좀 지나서 대학에 최초합하고
좀 더 지나자 학교를 졸업했다.
이럴 빠에야 졸업식도 옆 학교처럼 드라이브스루를 진행하자고 의견을 냈지만 칼 같이 짤 당하며 졸업식이 진행되었다.
친구들과 사진 찍고 그렇게 끝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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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학교에서도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우리는 대학진학을 위해 피눈물을 흘렸고, 분리수거에 나오는 다양한 종류의 에너지 음료와 커피와 함께 입시전쟁을 치뤘다.
1월 1일이 되자 줌으로 친구들과 만났고, 우리의 20살을 축하했다.
이걸 왜 4월이 다 됐는데 올리냐 싶겠지만 쓸 엄두가 안났다. 그때의 감정을 이렇게 웃으면서 요약하긴 힘들 것 같아서 말이다.
참고로 이 이야기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말 그대로 내가 생각하고 본 것만 쓴 거다... (우리학교 이야기만 서술된 것임)
얜 뭔가 싶어도 이상하다 생각하지 말아주세용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