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1호 '숭례문'완전 전소가 주는 교훈

갈꽃섬지기200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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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1호 ‘숭례문’ 완전 전소가 주는 교훈

여주의 ‘세종문’ 화재는 발빠른 대처로 다행

2008년 02월 18일 [여주신문]

 

지난 10일 오후 8시45분경 서울 중구에 위치한 우리나라 국보1호인 숭례문에 끔찍한 화재가 발생, 화재발생 5시간만에 완전 전소라는 엄청난 피해를 냈다.

숭례문은 우리나라 국보1호라는 점에 국민들은 안타까워하며 심지어는 분노까지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그날 밤 언론에서는 앞다퉈 숭례문의 화재진화현장을 화면으로 내보내며, 소방차 40여대가 출동하여 진화에 나서 큰 불길은 없고 곧바로 진화할 것처럼 보도를 하였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전국민에게 들려온 소식은 숭례문 완전 전소라는 청천벽력의 소리였다.

지난해 11월14일 오후 8시경 여주군 신륵사관광지에 세워진 ‘세종문’에서도 화재가 발생했다. 세종문의 단청작업을 하던 인부의 부주의로 일어난 화재였다.

그러나 숭례문과 비교할 국보급은 아니고 또 상황이 다를 수도 있지만, 여주군에서 상당한 예산으로 신륵사관광지 입구에다 세종문이라는 솟을삼문을 세우고 단청공사를 하다 불이 난 것도 숭례문과 유사한 점이 많고, 또한 어떻게 대처하였느냐에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숭례문의 화재발생도 오후 8시45분경이라 오후 8시대라는 시간대가 비슷하고, 세종문이 국보급은 아니더라도 숭례문과 세종문은 모두 목조로 만들어진 문이라는 것이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여주의 세종문은 화재가 발생하자마자 목조로 된 솟을삼문의 구조를 너무도 잘 알고 있던 종단대순진리회 관계자가 곧바로 상부의 기와를 뜯어내고 진압에 들어가 30여분만에 완전진화를 하여 큰 피해를 막았다.

숭례문 화재에 따른 막대한 피해는 미흡한 초동 대처가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소방당국과 문화재청은 엇박자를 냈고,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진화에 적극 나서야 할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최초 발화 지점은 숭례문 지붕의 가운데 위치한 ‘적심’ 부분, 이 때문에 기와를 드러내지 않는 한 밖에서 아무리 거센 물살을 보내도 불을 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기와를 드러내는 지붕 철거작업은 발화 시점으로부터 3시간여가 지난 밤 11시 50쯤에야 시도됐다.

문화재 훼손을 감수하면서까지 화재 진압에 나서는 문제를 두고 소방방재청과 문화재청의 손발이 제대로 맞지 않았기 때문으로 지적됨에도,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공방전만 펼치고 있다.

결국 ‘숭례문’ 화재 사건은 수 십대의 소방차와 수많은 소방인력들이 동원되고도 문화재관리규정을 운운하며 안일한 대처 능력을 보여 ‘숭례문’ 완전전소라는 비극적 결과를 맞게 했다.

국보 1호인 ‘숭례문’의 전소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위기대처 능력과 사전점검의 필요성, 그리고 만일에 대한 철저한 준비이다. 우리나라는 유네스코에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등재한 나라이다. 그러나 국보 1호도 지켜내지 못하는 우리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우리나라가 아무리 문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다 해도 국보급 문화재 하나 지켜낼 위기대처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다.

‘숭례문’을 복구하는 데에만 3년, 그리고 거기에 투입될 예산만해도 몇 백억이란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임진왜란ㆍ병자호란ㆍ6.25 때에도 지켜왔던 우리의 600년의 자존심이 안일한 대처로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는 데에 있다.

이번 ‘숭례문’ 화재 사건과 관련해, 문화재청 관계자와 소방방재청 관계자의 답답하고 안일한 대처는 국민의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지방의 일개 자치단체나 종교단체만큼보다도 위기 대처능력이 떨어졌다는 것은 이번 숭례문의 전소에서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주 ‘세종문’ 화재 시, 이들과 대비된 위기대처 능력을 보여주었던 관계자와 종단대순진리회 관계자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