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교가 없다. 아니 사실 없었고 지금은 있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그 경계 어디 즈음이다. 2017년 부모님이 두분 다 돌아가시고 일부 가족들과 소송도 해야했던 나는 이루 말할수 없는 슬픔에 허우적거리며 6개월을 폐인처럼 지내야했다. 매일 밤을 유서를 쓰며 보냈던 것 겉다. 그러나 드라마 어느 대사처럼 사람은 살민 살아진다. 겨우 털어내고 사람도 만나고 이사도 하고 살아보려 해봤더니 또 살 수 있을것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잠은 못잤다. 아무도 없는 적막감이 너무 슬프고 무서워서 잠이 오지 않았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도 밤을 꼴딱 새우고 내 스스로의 연민에 빠져 매일을 지내던 중 새벽 네시즈음에 어디서 희미한 목탁소리가 들렸다. 어디에서 들리는 소리인지 창문을 열고 찾아보니 집 바로 앞 절에서 스님이 탑을 돌며 목탁을 치고 계셨다. 원래 종교는 없었지만 부모님 두분을 보내드리며 절에서 49제도 지내면서 아 어쩌면 내가 불교인가 싶을정도로 부처님께 내 부모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뭘 어떻게 빌어야할지도 모르고 절도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어쩌겠나 누군가한테 뭐라도 빌고 용서도 구해보고 애원도 해봐야 내 부모가 편해질것같은것을. 새벽 네시의 기도는 매일 계속됐다. 네시만 되면 창문을 열고 작게 들려오는 목탁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러더니 잠이 왔다. 네시에 기도를 하고 새벽 어스름한 시간에 잠을 자는 생활을 반복하다보니 점점 마음도 정리가 되는것 같았다. 그렇게 또 6개월을 보내니 다시 직장도 구하고 일상생활을 찾을 수 있었다. 직장을 다니다보니 새벽 네시의 기도는 자연스럽게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번씩 슬픔이 밀려올때는 그냥 가만히 창문을 열고 절을 내려다봤다. 나는 원래 술을 잘먹지만 아픔을 겪고나서 술을 먹으면 슬픔이 네배 다섯배가 되길래 술도 멀리했다. 그러나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한두번 친구나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술을 많이 먹고 집에 들어오면 또 형용할수없는 슬픔에 빠져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울었다. 한번은 술을 먹고 집에 들어오니 딱 새벽 네시였고 갑자기 그 절이 가고싶었다. 가서 또 기도하며 울었다. 내 부모를 찾아달라고. 찾아서 아프지않게 도와달라고. 그렇게 빌면 도와주실것같았다. 술을먹으면 절에 찾아가는것이 내 술버릇이 됐다. 코로나때는 절도 문을 닫아놓아서 그냥 절 대문을 붙잡고 울었던 적도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술주정뱅이 진상이겠지만 1년에 한두번 정도였다. 원래는 입구 앞에 작은 불상만 모셔놓은 방이 있었는데 그 앞에서 불상을 보며 울다가 스님이 오시면 놀라 도망을 가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날은 새벽 네시에 스님의 불경 소리를 가까이서 듣고싶었다. 예불을 드리는 법당 바깥에서 가만히 앉아 울고있었더니 스님이 나오셔서 여기서 이러시면 안된단다. 스님 눈에는 그저 술주정하는 진상으로나 보였겠지. 그리고 또 한참지나 어제 술한잔을 하고 집에 와보니 또 새벽 네시 언저리었다. 점점 진화하는 술주정처럼 어제는 처음으로 법당에 들어가 구석에 쪼그려앉아 절을하며 울고있었다. 그랬더니 뒤에서 같이 절을 하시던분이 오셔서 스님이 시끄럽다고 나가라고 했단다. 정말 스님이 그랬던걸까 그냥 그분의 생각인걸까. 나와서도 한참을 울다가 예불이 끝나고 집으로 도망치듯이 왔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난 그냥 울기만했는데...왠지 절이라면 누구라도 품어주고 누구라도 같이 빌어줄거라는 내 오만한 착각이었나보다. 시주라도 하고 울껄 그랬나. 그래 뭐 남이보면 술주정뱅이 진상인것을. 근데 7년동안 열번도 안갔다구요. 아 근데 진상인건 맞지. 그럼. 어제 그렇게 쫒겨나오고 술을 깨 일어나보니 그냥 또 서러움이 밀려오고있다. 그래서 이렇게 주절주절. 다음에 또 술을 먹으면 염치 불구하고 그 절을 갈지 모를일이지만 나는 어제부로 다시 종교를 잃은것같다. 아 난 이제 어디가서 우나. 1
나는 종교가 없다
아니 사실 없었고 지금은 있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그 경계 어디 즈음이다.
2017년 부모님이 두분 다 돌아가시고 일부 가족들과 소송도 해야했던 나는 이루 말할수 없는 슬픔에 허우적거리며 6개월을 폐인처럼 지내야했다.
매일 밤을 유서를 쓰며 보냈던 것 겉다.
그러나 드라마 어느 대사처럼 사람은 살민 살아진다.
겨우 털어내고 사람도 만나고 이사도 하고 살아보려 해봤더니 또 살 수 있을것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잠은 못잤다. 아무도 없는 적막감이 너무 슬프고 무서워서 잠이 오지 않았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도 밤을 꼴딱 새우고 내 스스로의 연민에 빠져 매일을 지내던 중 새벽 네시즈음에 어디서 희미한 목탁소리가 들렸다.
어디에서 들리는 소리인지 창문을 열고 찾아보니 집 바로 앞 절에서 스님이 탑을 돌며 목탁을 치고 계셨다.
원래 종교는 없었지만 부모님 두분을 보내드리며 절에서 49제도 지내면서 아 어쩌면 내가 불교인가 싶을정도로 부처님께 내 부모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뭘 어떻게 빌어야할지도 모르고 절도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어쩌겠나 누군가한테 뭐라도 빌고 용서도 구해보고 애원도 해봐야 내 부모가 편해질것같은것을.
새벽 네시의 기도는 매일 계속됐다. 네시만 되면 창문을 열고 작게 들려오는 목탁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러더니 잠이 왔다. 네시에 기도를 하고 새벽 어스름한 시간에 잠을 자는 생활을 반복하다보니 점점 마음도 정리가 되는것 같았다.
그렇게 또 6개월을 보내니 다시 직장도 구하고 일상생활을 찾을 수 있었다.
직장을 다니다보니 새벽 네시의 기도는 자연스럽게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번씩 슬픔이 밀려올때는 그냥 가만히 창문을 열고 절을 내려다봤다.
나는 원래 술을 잘먹지만 아픔을 겪고나서 술을 먹으면 슬픔이 네배 다섯배가 되길래 술도 멀리했다.
그러나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한두번 친구나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술을 많이 먹고 집에 들어오면 또 형용할수없는 슬픔에 빠져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울었다.
한번은 술을 먹고 집에 들어오니 딱 새벽 네시였고 갑자기 그 절이 가고싶었다.
가서 또 기도하며 울었다. 내 부모를 찾아달라고. 찾아서 아프지않게 도와달라고. 그렇게 빌면 도와주실것같았다.
술을먹으면 절에 찾아가는것이 내 술버릇이 됐다. 코로나때는 절도 문을 닫아놓아서 그냥 절 대문을 붙잡고 울었던 적도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술주정뱅이 진상이겠지만 1년에 한두번 정도였다.
원래는 입구 앞에 작은 불상만 모셔놓은 방이 있었는데 그 앞에서 불상을 보며 울다가 스님이 오시면 놀라 도망을 가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날은 새벽 네시에 스님의 불경 소리를 가까이서 듣고싶었다.
예불을 드리는 법당 바깥에서 가만히 앉아 울고있었더니 스님이 나오셔서 여기서 이러시면 안된단다. 스님 눈에는 그저 술주정하는 진상으로나 보였겠지.
그리고 또 한참지나 어제 술한잔을 하고 집에 와보니 또 새벽 네시 언저리었다. 점점 진화하는 술주정처럼 어제는 처음으로 법당에 들어가 구석에 쪼그려앉아 절을하며 울고있었다.
그랬더니 뒤에서 같이 절을 하시던분이 오셔서 스님이 시끄럽다고 나가라고 했단다. 정말 스님이 그랬던걸까 그냥 그분의 생각인걸까.
나와서도 한참을 울다가 예불이 끝나고 집으로 도망치듯이 왔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난 그냥 울기만했는데...왠지 절이라면 누구라도 품어주고 누구라도 같이 빌어줄거라는 내 오만한 착각이었나보다. 시주라도 하고 울껄 그랬나.
그래 뭐 남이보면 술주정뱅이 진상인것을. 근데 7년동안 열번도 안갔다구요. 아 근데 진상인건 맞지. 그럼.
어제 그렇게 쫒겨나오고 술을 깨 일어나보니 그냥 또 서러움이 밀려오고있다. 그래서 이렇게 주절주절.
다음에 또 술을 먹으면 염치 불구하고 그 절을 갈지 모를일이지만 나는 어제부로 다시 종교를 잃은것같다.
아 난 이제 어디가서 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