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의 버선발 이야기

해내리202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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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 이길은~~~ 꽃가마 타고~~~ 

 말탄님 타고서 시집가던길~~~ 여기던가 저기던가~~~ ’ 

 어렴풋 언젠가 꿈결에서라도 

 들었을법한 그 노래 

 꼭 그런 엇비슷한 사연은 아닐지라도 

 저도 그 시절 겪은 가슴아프고 파란많은 이야기 하나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그것은 1950년대 후반 

 그래도 그때쯤이면 어느정도는 

 파란만장하고 곡절많은 우리 현대사 

 어느덧 끝자락쯤 와있지 않았겠냐 싶다만은 

 전쟁의 상흔 아직 적잖이 곳곳에 남아있고 

 아직은 헐벗고 굶주리는 신세 면치못한 이들 많던 시절 

 ‘뿌리깊은 양반가’ 이런거 따지는건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 받을만한 시절 아닐까 싶다만 

 하지만 1960-70년대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소설을 봐도 

 극중에서 나이많은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은 

 아씨니...마님이니 하는 신분제 사회때 쓰던 표현을 

 여전히 쓰고있는걸 봐도 

 50년대 후반 정도면 그래도 아직 

 신분제 잔재 아직은 그래도 남이있던 

 시절 아닌가 싶네요 

 

 하지만 

 뿌리깊은 양반가... 

 이런거 내세우기엔 이미 한참 그런 시절은 지나버렸고 

 아마 듣기로 아버지는 돌아가신 할아버님으로부터 

 ‘왜정때 빼앗긴 우리땅 꼭 되찾아야한다’ 

 그 유언...귀에 못이 박히듯 듣다 가신 듯 합니다만 

 그래도 이미 그런거 챙기기엔 이미 늦어버린 시절이라 생각하셨는지 

 이미 그런거 다 체념하시고 

 아들넷은 그저 서울 올라가 괜찮은 직장에라도 취직해 살면 

 그것만으로 만족하시려는 

 그런 심정이셨나봅니다. 

 문제는 

 아들 넷 낳은뒤에 마지막 낳은 저 

 그러고보니 위로 오빠만 넷인 제가 세상에 태어날때는 

 부모님 연세 모두 40대 중반 

 당연히 제가 어느덧 스무살 남짓 이를때는 

 부모님 모두 60대 중반이시고 

 무엇보다 이때쯤엔 아직 평균수명 60-70 그 정도일때니 

 그쯤되면 다들 살만큼 살았다...갈때가 되었다 

 이렇게 생각할 나이죠 

 문제는 그렇게...어느덧 세상 떠나실 때 다 되신 부모님이 

 마지막 남은 늦둥이 막내딸 

 어찌 처분해야 하는지...그 고민이 한참 시작되실 무렵입니다 

 

 몰락한 양반가...어찌보면 그야말로 

 옛날...사농공상 어쩌구 하며 장사치 제일 천하게 보던때는 

 사람취급도 안하던 그런 돈많은 장사치에게라도 시집보내면 

 그런대로 늦둥이 막내딸 굶지는 않겠지 그거 하나 생각하고 

 시집보내던 그런 시절입니다 

 무엇보다 50년대 후반이면 아직은 

 연애보다는 중매가 대세고 젊은 남녀 아직 대놓고 연애하기엔 

 쉽지 않던 시절 

 읍내에서 과수원 하고 정미소 한다는 그런대로 잘사는 부잣집에 

 시집을 보내기로... 

 그러고보면 이때 이미 아버진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몸져 누우신지 

 얼마 안되는 무렵 

 오라버니 네분과 올케언니 네분이 긴급히 모여 

 막내인 저...어머니 눈감으시기 전에는 보내야한다 

 그렇게 합의롤 보낸 모양입니다. 

 

 시집을 가게 되어있는집안은 

 일단 아들은 다른 형제는 없는 무녀독남 외아들이고 

 다만 시아버지 되실분은 5남매중 셋째로  

 위로 형님 두분 밑으로 누이동생 두분 

 그렇게 계신분이라 

 무슨 2대독자...3대독자 그렇게까지 내려가는 집안은 아니기 때문에 

 ‘대 이을 아들 하나는 있어야한다’ 그런 압박이 

 상대적으로 그리 심하지는 않을 

 그런 집안이라 하더군요 

 - 하지만 신랑이 외동아들이라니 적어도 그 짐이 

 제게 지워지는 사실만큼은 달라지는게 없네요 

 

 그렇게 

 50년대 후반이면 그리 이르지도 늦지도 않다고 할만한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저보다 한 살어린 신랑한테 

 시집을 갔습니다 

 

 시집가기전 

 아버지로부터 미리 들은 시댁식구에 대한 정보는 

 시아버지가 5남매중 셋째...위로 형님이 둘인 3형제중 셋째 아들이란 점 

 그리고 신랑은 다른 형제가 없는 외동이고 

 나이가 저보다 한 살아래라는게 

 전부였는데... 

 그 참... 

 시아버지한테 재혼한 젊은 후처가 있다는 말씀은 

 왜 안 하신건지 

 굳이 그런 이야기까지 제게 할필요는 없다고 생각한것일수도 있지만 

 막상 시댁을 들어가보니 

 저보다 겨우 다섯 살 위인 

 새파랗게 젊은 시어머니가 있더이다 

 요즘애들 말로 굳이 타임라인(?)을 설명하자면 

 제가 시집을 간게 그해 봄이고 

 시아버님이 재취로 젊은 부인들 들인건 

 그보다 두달 앞선 겨울의 일이라네요 

 그러고보면 시아버님은 

 그렇게 자기가 먼저 젊은 부인 들이고 

 아들 장가보낼 궁리를 하셨다는 말씀이신건지 

 - 아니면 자기는 나이 오십에 젊은 여자랑 재혼하면서 

 혼기가 거의 차가는 아들을 그냥 두는게 

 미안해서인지 

 여하튼 이 집안에 저보다 두달 앞서 젊은 새 시어머니가 들어온거고 

 그보다 두달뒤인 봄에 

 전 이 집 유일한 자녀인 열여덟살 신랑의 

 새댁이 된것입니다 

 

 사실 시아버님은... 

 언뜻 보기에도...속된말로 돌을 삼켜도 멀쩡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가 시집을 간 그 당시까지만 해도 

 나이 50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 평균 수명을 따져봐도  

 그 시절 50대랑 요즘 50대는 또 하늘과 땅 차이니까요 

 무척이나 정정하고 목소리도 우렁우렁 하셨는데 

 하지만... 

 사람 나이 오십 넘어가면 내일,모래 어찌될지 모른다는 이야기 

 새삼 실감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게 제가 시집을 가고 석달도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그 정정하신 시아버님이 

 그대로 쓰러지셔서 

 영원히 깨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젊은 시어머님은 처음엔 시아버지를 어떻게든 부축해 보려다 

 어쩔줄 모르며...무섭고 두려운 듯 울며불며 난리가 아니었고 

 이렇게 상을 당한 저희 세식구(새 시어머니, 신랑 그리고 저) 

 정중하게 상을 치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어색한 동거 

 사실 시아버지 상을 치르고 석주도 채 지나지 않은 무렵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임신중이라는것을요 

 그러니...시어머니는 시아버지가 쓰러지시기 

 거의 직전에 회임이 되신건데 

 그리고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아 남편인 시아버지가 

 나이 50...아무리 그래도 그 시절 기준으로도 

 한 십수년 더 사실수 있는 나인데 

 - 당정 저희 아버지,어머니 모두 60대 중반 넘길때까지 

 사신걸 생각해봐도요 

 그렇게 갑자기 쓰러지고 저 세상으로 가버리셨으니 

 황망하고 허망함에...그저 서럽게 우는 것 외엔 

 달리 방도가 없었습니다 

 

 저와 남편은 단둘이 시어머니 문제를 

 함께 의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한 10-20년전만 같았어도 집에 하인이나 하녀 한둘쭘은 

 있었을법도 한데 이미 50년대 후반이면 그 정도까지 하는 

 시절은 아니고요 

 가정부나 식모를 잘사는 집에서 들이기 시작한건 

 그보다 좀 뒤의 일이고 

 운전기사니 뭐니 이런것도 잘사는 사장님들이나 

 고위공무원쯤 되는 분들이 하는거니까 

 굳이 있다면 시아버지 운영하시는 정미소와 과수원일 보는 직원 

 - 이때만 해도 이미 그런분들은 더 이상 

 하인개념이 아니죠 

 젊은 시어머니 문제를 해결하려고 머리를 맞댈만한 사람은 

 저와 신랑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임신중인것도 그렇거니와 시어머니가 

 오갈데 없는 처지란 몸입니다 

 대충 시어머니 사정을 들어보니 오래전 이미 부모님 잃고  

 다른 친척도 없이 여기저기 떠돌며 

 기방도 출입해보고 식당에서도 일해보고 

 한때 별의별걸 다해보던분 같은데 

 그러다 어쩌다 나이많은 저희 시아버님 만나서 

 시아버님이 불쌍한 어린여자 하나 거두는 셈 치고 

 그렇게 후처로 들이신 것 같은데 

 그렇게...시아버지 쓰러지시고 

 임신 초창기인 오갈데 없는 시어머니 

 그리고 열여덟 신랑과 열아홉의 저 

 세상물정 모르긴 피차 마찬가지니 

 딱히 뾰족한 방도가 나올만한 나이나 위치는 

 이미 아니었습니다 

 

 일단 신랑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새어머니 처지도 불쌍하니...일단 당분간 같이 사는걸로 하자 

 그리고 뱃속의 아이도 어쨌든 아버지 아이면 

 내 동생이기도 한데 아주 외면할수야 

 앖는 것 아니냐...그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 신랑 마음씀이 원래 그렇게 착하거나 자상한건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그래도 어느덧 결혼한지 석달 되지만 

 신랑이 제게 그렇게 자상하거나 세심하게 마음쓰는면 본 기억은 

 전혀 없었으니까요 

 뭐 한번은 그래도 어울리는 친구 몇몇을 데리고와 

 자기네들끼리 술 한잔 하며 하는 이야기로는 

 저더러 ‘못생기고 뚱뚱해 싫다’ 그런식으로 떠드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거 같은데 

 그건 뭐 제 입장에선 그냥 신랑이 친구들과 

 술한잔 하면서 하는 실없는 농담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다만 오해를 없이하기 위해 굳이 말씀드리자면 

 솔직히...저 그렇게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 아닙니다 

 - 옛날같으면...딱 달덩이 같다느니 복스럽다느니 

 부잣집 맏며느리 상이라느니...그런 소리 듣는 

 분위기와 외모인데 

 무슨 미스코리아나 슈퍼탤런트 뺨치는 미인은 아니라 할지라도 

 최소한 어디가서 ‘뚱뚱하고 못생겼다’는 소리 들을만한 

 그런 외모는 아니거든요 

 가령 어릴적 어울리던 고향친구들도 저 보고는 

 화사한 복사꽃 같다느니...거울처럼 둥글게 생겼다느니 

 그런말들로 놀린것만 봐도 

 최소한 ‘못생겼다’는 쪽과는 거리가 있다는걸 

 객관적으로 증명할수 있을듯합니다. 

 

 신랑의 천성이 

 착한건지...아니면 원래 여자한텐 자상하게 잘해주는 성격인지 

 아니면 효성(?)이 남달리 지극한건지는 

 어쨌거나 어느덧 남편과 한방 쓴지 석달이 조금 넘은 제 입장에선 

 잘 모르겠습니다 

 뭐...어쨌거나 오갈데 없는 처지인 젊은 새어머니 

 남편잃고 졸지에 젊은 미망인이 된데다 

 게다가 따지고보면 이집안 핏줄이기까지 한 아이도 가진 

 임신 초창기인 불쌍한 여인 

 어색할지언정 한동안 같이 살도록 하는것까진 

 그런대로 이해해주자면 이해 못할일은 결코 아닙니다 

 게다가...뭐 어쨌든 임신 초창기인 젊은 여인 

 먹는데 불편한건 없는지...잠자리가 불편한건 없는지... 

 그러고보면...이 집안에 여자는 저랑 시어머니 둘뿐인건데 

 처음엔 그래도 젊은 시어머니 입장에서 

 나름 미안하기도 하고 민망해서인지 가사일에 자기가 먼저 

 손걷어 붙이고 나서는 모습들이 있는데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초심이 나태해 지는건지 

 아니면 이제 슬슬 ‘자신이 시어머니’다라는 권위를 

 그래도 조금은 내세우고 싶었던건지 

 아니면 아이까지 가진몸이 핑계가 되는건지 

 밥짓고 빨래하고 청소하고...하는 것 

 슬슬 제게 미루는 모습들이 보이더이다 

 헌데 그게 언제부터인가는 교묘히 

 남편이 사실상 그걸 전담하는 모습으로 바꿔어갔습니다 

 솔직히 남자가 여자들 하는 가사일을 대신한다는 것은  

 50년대 후반은커녕 그 시절부터 10-20여년이 지난 

 70-80년대까지만 해도 그리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었는데 말이죠 

 

 뿐만 아니라...임신중임을 핑계로 새어머니가 

 뭐가 먹고싶다...뭐가 필요하다면 손수 장에까지 나가 사오고 하는모습 

 - 이런식으로라면 정말 어느 전설이나 설화에서 마냥 

 젊은 새어머니가 한밤중에 산딸기나 멧돼지 바비큐가 해먹고 싶다고 하면 

 그거라도 그 밤늦은 시간에 구해올것만 같은 

 기세더군요 

 솔직히... 

 제가 아무리 열아홉살 어린나이에 시집온 

 철없고 세상물정 모르는...몰락한 양반집 막내딸이라 해두 

 이쯤되면 더 이상...그저 효성지극한 아들도 아니고 

 여자에게 평소에 잘해주는 자상하고 착한 남자도 아니라는걸 

 슬슬 느껴가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남편에게 졸랐어요 

 그러지말고 나하고도 어디 가까운 교외나 경치좋은데 

 놀러가주면 안되냐고 

 남편은 다소 귀찮고 성가시다는 듯 예하 그 무뚝뚝한 표정으로 

 ‘내가 노는 사람이 아니지 않나. 바쁜 사람일세’ 

 마치 놀러가자고 아빠나 삼촌 조르는 철없는 막내딸이나 조카 

 타이르는듯한 말투로 

 그와같이 나오더군요 

 물론 그때 남편도 아주 백수는 아니고...여하튼 아버지 돌이가시고 난뒤 

 그 운영하시던 정미소와 과수원 그대로 물려받아 하고 있으니 

 사업가라면 사업가라 할 수 있고...놀기만 하는 사람은 

 분명 아닙니다 

 

 하지만...가끔씩 젊은 새어머니를 대리고는 

 가까운 야산이나 냇가도 놀러가고 저자나 읍내에도 다녀오는 모습 

 여러번 목격한 저는... 

 이제 더 이상 이 집 분위기가... 

 효성지극한(?) 아들과 젊은 새어머니 그리고 남자의 아내 

 그렇게 세식구가 사는 정상적인 가족관계는 

 이미 아니다라는걸...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었죠  

 무엇보다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밤늦은 시간에 새어머니와 

 남편이 함께 지낸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일 핑계로...또는 귀찮거나 신경쓰인다는 핑계로 

 다른 방에서 혼자 자겠다는 남편 

 근데...혼자 잔다던 남편이 

 젊은 새어머니...그것도 어느덧 임신한지 시간이 좀 지나 

 슬슬 배불러오는게 표가 나기 시작하는 그 새어머니와 

 밤중에 여러시간...대로는 시시덕거리며 하하호호 들리는 소리 

 도대체 열여덟살 의붓아들과 스물네살 장성한 새어머니가 

 한밤중에 매일같이 뭐 그리 시시덕거리며 노닥거릴게 많은지 

 슬슬... 

 제 인내심은 한계에 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뭔가 더 이상 정상이 아니다...분명히 뭔가 있다 

 작심하고... 

 남편과 새어머니가 함께 지내는 그 방을 

 몰래 엿보기 시작했습니다 

 

 ...... 

 그 광경... 

 어디서부터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딱히 답이 나오지 않네요. 

 자기가 쓰고싶은대로...그리고 군더더기 없이 

 웬만하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라는  

 세상의 모둔 문창과 교수, 문예대학 선생님들 1호 지론대로 

 저도 그냥 바로 본 그대로만 표현하겠습니다 

 그 밤늦은 시간... 

 젊은 새어머니는 버선신은 양발을 

 남편의 양 어깨에 올려놓고 

 남편은 새어머니 양발을 막 만지고 핥아보고 뽀뽀하고... 

 아아... 

 더 이상은 차마 뭐라 표현을 못하겠군요 

 차마... 

 진짜 그 두 연놈들이 그런 관계라도 맺는걸 

 제 눈으로 직접 보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충격받진 않았을것입니다 

 차라리 요즘 2020년대 중반의 젊은이들이라면 

 혹시 어느정도 이해(?)가 갈 수 있는 장면일지 몰라도 

 그 시절엔 정말...꿈에도 상상 못하고 이해도 안가는 

 그런 장면이거든요 

 

 기겁한 저는 그대로 제 방으로 뛰쳐들어가 

 살떨리고...치떨리고...심장떨리는 그 심정을 

 한참동안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그때까지 나이 열아홉까지 산 

 1950년대 후반의 어린신부 

 그 몰락한 양반가 막내딸 사고방식과 가치관 그리고 

 그 나이까지 교육받아온 방식과 내용대로는 

 도저히 이해도 안가고 상상도 안가는 그 장면 

 정말 더 이상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밤새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생전처음 

 그야말로 살떨리고 치떨리고 심장떨린다는게 

 어떤 감정인지를 

 실제로 처음 맛본 그날밤 

 차라리 진짜 그 두 사람이 

 이상한 관계라도 맺는 그런 장면이라도 목격했다면 

 이렇게까지 살떨리고 심장떨리는 기분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짐을 싸들고 바로 집을 나왔습니다 

 다른건 생각할 심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간밤에 본 그 충격적인 장면이 

 계속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아 

 구역질이 나서...밥은커녕 물 한모금 넘어갈 기분이 되지 못했고 

 무엇보다 이런 이상한 집에 제가 계속 머물러 있었다간 

 맨정신으로 이 집에서 버티지 못할것만 같다는 생각에 

 열아홉살 어린 신부는 혼례를 치른지 이제 겨우 4-5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집을 나온것입니다 

 그것이 시련의 예고편이 되리라곤 생각조차 못하고 말이죠 

 

 출가외인... 

 적어도 1950년 정도의 사회인식이나 가치관으로도 

 소박을 맞았거나 짐싸갖고 시댁에서 나온 여자 

 좋은 대접 못받는다는건 모를 사람은 아닌데 

 글쎄...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다른 무엇을 생각할수 있는 

 기분과 심정이 아니었다니까요 

 뼈대있는...뿌리깊은 양반집안... 

 몰락했을지언정 양반가 법도와 체통은 잊지 않으려하는 저희 집안에서 

 출가외인이 이런짓을 하면 어떤 대접을 받으리라는거 

 충분히 예상할만했는데도 말이죠 

 

 우려했던 사태는 친정으로 돌아온 다음부터였습니다 

 네분의 오라버니...그래도 나름 요즘 세상에 

 더 이상 양반가 체통이나...혹은 왜정때 빼앗긴 땅 되찾아야 한다느니 

 이런 인식에선 거리가 먼 사람들임에도 

 시집간 막내누이가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돌아온 것은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이라며  

 아무리 몰락한 양반가고 삼강오륜이 땅에 떨어져가는 시절이라도 그렇지 

 이런 말도 안되는 짓거리가 어디있냐며 

 당장 시댁으로 돌아가라며 

 제 얼굴은 보지도 않으려하며 꾸짖었습니다 

 차라리 진짜... 

 제 신랑이...매일밤마다 여자를 갈아치우는 천하 난봉꾼이거나 

 아니면 어디서 기생첩이라도 열댓명 데리고 들어와서 

 명색이 조강지처인 날 내쫏고 살고 있다던가 

 매일같이 술이나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다던가 

 아니면 무슨 김두한,이정재 뒤꽁무니라도 쫏아다니는 

 말단 조폭이라던가 

 이런 상황이었더라도 

 제가 이렇게까지 억울하고 속터질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차마 제 눈으로 직접 목격한 

 그 기가막힌 장면을 

 네분 오라버니 앞에서 사실대로 고할수 없다는게 

 절 더 기가막히게 만들었습니다 

 솔직히 명색이 양반가 막내딸로 나름 양반가 기품은 

 지켜야한다 교육받아온 열아홉 제게도 

 그렇게 살떨리고 가슴떨리는 장면이었던 그 충격적인 모습을 

 최소한 저보다는 열배이상 양반가 체통과 법도를 중시 여기는 

 최소한 저보다 적게는 일곱 살에서 많게는 열다섯살이나 많은 

 네분 오라버니들에게 

 그걸 어떻게 다 말로 설명할수 있단 말입니까 

 제가 차라리 어느 시장바닥 아줌마 마냥 말주변이라도 좋다면 모를까 

 원래 말주변도 적고 표현력도 부족한 제가 

 어찌 그 기가막힌 장면의 목격담을 

 오라버니들한테 있는 그대로 다 말할수 있단말입니까 

 이미 몸져 누워계신 친정어머니... 

 아셔서 충격받기 전에 당장 돌아가라고 거듭 다그치는 오라버니들의 

 한숨과 꾸짖음을 들으며 

 난 이런 기가막힌 일을 겪고도 친정으로 돌아갈수도 

 없는 처지로구나 

 하는 생각에 

 서러운 눈물 겨우겨우 닦아내 진정시키며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순간... 

 생각할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더군요 

 제가 그래도...최소한의 배알과 자존심이 있는한 

 그 기가막히고 살떨리는 꼴을 본 시댁으로는 

 돌아갈 생각이 추호도 없고 

 친정에선 이미 ‘출가외인 못받아준다’며 선을 그은 마당에 

 무엇을 더 할수 있단 말입니까. 

 태어나서 나이 열아홉 될 때까진 그저 그래도 몰락한 양반가에서 

 요조숙녀 교육 받으며 그 나이 될 때까지 살다 

 시집간지 반년도 못되어 그 못볼꼴을 보고 집을 나온 

 제가 말입니다 

 다른 선택할수 있는 방도나 길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삼면이 바다로 둘러싼 나라라 

 여기저기 강과 하천,실개천 많은 나라 

 - 나중에 알게된거지만 멀리 중앙아시아나 아프리카 같은덴 

 수백리를 걸어가도 작은우물 하나 만들기 쉽지 않은 

 그런곳 투성이라는데... 

 그래서 제가 사는 고장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곳까지 가면 

 아주 큰 폭의 강은 아니지만 

 사람 혼자 그냥은 못 건너가고 작은 나룻배라도 써야하고 

 중앙에 깊은곳은 사람키보다 깊기 때문에 

 여하튼 배는 이용해야 건널수 있는 

 작은 하천이 하나 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빠져 죽기로 했습니다 

 차마...시댁으론 못 돌아가겠고 

 - 그 꼴을 보고 나왔는데 내가 어찌 거길 다시 갑니까 

 50년대 후반 새색시라고 자존심도 없이 살았다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그렇다고 친정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몸 

 죽음밖에 길이 없구나 생각했습니다 

 

 버선과 신을 내려놓고 한발자국 한발자국 

 작은 강물안으로 걸어들어갔습니다 

 전 그때까지만 해도 순진하게 

 사람이 물에 빠지면 그냥 숨못쉬고 허우적거리다 

 그냥 죽는건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건 아니더군요... 

 저 역시 어느덧 깊은곳까지 와서 

 숨쉴수 없는 지경...정신잃게 되어... 

 ‘이대로 죽는거구나’ 막연히 생각했지요 

 

 ...... 

 

  눈을 떴을 때... 

  처음엔 순간 저승에 왔으려니 

  생각했습니다 

  천국이든...지옥이든...내생이든... 

  - 헌데 어쩐지 다음생에 환생한 애기몸 치고는 

  너무 크지 않나 싶은 생각 정도는 

  순간 들더군요 ^^;;;; 

  ‘아주머니...아주머니...정신 좀 드세요 !!!’ 

  들리는 말소리에 

  ‘아...!!!’ 

  죽은 것이 아니로구나 

  그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대충 나중에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이렇더군요 

  일단 제가 물에 바로 빠져죽지는 않고 

  정신을 잃은채로 흘러흘러 

  바다로 흘러가거나 그러진 않고 

  아마 삼각주...옆으로 트는 폭좁은 어느곳으로 가 

  적당히 모래톱 같은데 얹혀져...겨우 죽다 살아났고 

  그 마을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어 

  이곳으로 옮겨진것이랍니다 

  순간... 

  너무 분하고 화가나 한바탕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날 내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게 하냐고 !!!’ 

  되려 절 구해준 사람들 한바탕 원망이라도 하고팠지만 

  그땐 여하튼 심적으로 너무 지쳐있을때라서인지 

  그런 원망도 하소연도...아니 무슨 말 자체가 나오지 못한채 

  그저 하염없이 울기만 하였습니다... 

 

  ‘부분 기억상실’이라 하던가요 ? 

  확실히 기억을 아주 잃은 것은 아니고 

  눈을 떴을 때...아니면 상황파악이 안돼서 그런건지 

  짧게는 한두시간 좀 길게 잡으면 서너시간... 

  ‘내가 왜 여기있나...자살을 시도한것만은 확실한데 

  그 이전의 기억과 생각이 잘 나지 않더라구요’ 

  내가 뭔가 아주 분하고 억울한 사연이 있어 

  자살을 시도하려고 한것만은 분명한데 

  그 이전의 경위가 잘 생각이 안 나더이다 

  그래서...몸도 이미 지쳐있고 게다가 기억도 잘 안나고 

  그래서 한참을 말없이 혼자 서럽게 흐느낀것입니다 

  적어도 배고프지 않냐며 그곳 사람들이 

  밥을 차려줄때까지는 말이죠...  

 

 그러고보니 대충 이 집 

 아마 이 마을에서 이장이나 유지급은 되어 보이는 듯 했고 

 아마 저를 발견해서 이 집으로 긴급히 

 데려다준 마을 청년이나 의원들은 이미 귀가한 듯 하고 

 대충 보니 이 집은 이장(내지 유지급 ?)과 부인내외 

 그리고 밑에 서너명 정도의 자녀 

 일하는 인부나 가정부 역할의 여성 두어명 정도가 더 있는 

 그런 구성원인 듯 했습니다.  

 여하튼 자기네들끼리 하는 이야기 대충 들어보니 

 뭐...처음 냇가에서 발견되었을때부터 뭔가 이상해보였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듯하고...계속 울기만 하는게 

 아무래도 실성한 여인같다... 

 그런식으로 자기네들끼리 

 결론(?) 내리는듯한 분위기더군요 

 

 그래서 졸지에 힌트를 얻었습니다 

 어차피 이미 집에도 못돌아가고 오갈데 없는 처지 

 한번 실성한 여인 행세를 해보자 

 그럼...아직 드라마나 뭐 이런건 잘 없을때고 

 소설도 뭐 저같은 여인이 그리 쉽게 접해볼 수 있는 시절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충 이야기 들은 전설이나 설화,괴담 같은것들이 있어 

 뭐 대충 그런 이야기 있잖아요 

 어느어느 집...정신성치 못해 장가도 취직도 못시키는 아들이 있거나 

 아니면 오래전 상처하고 혼자사는 홀아비가 

 정신성치 못한 여성이라도 하나 거둬 

 같이사는 그런 이야기... 

 한번 그래서...어차피 이렇게 된거 

 실성한 여인 행세라도 하고 돌아다니다보면 

 아무래도 정신 성치 못해보이는 여자 

 딱해보여 거둬주는... 

 정신성치 못한 아이 있는 집이나 나이많은 홀아비 

 하나쯤 있을줄 알고 

 ‘한번...미친년 흉내라도 내보자’ 

 그 생각을 했던거죠 

 

 일단 이날밤은 어느덧 밤도 깊고 

 아직 지쳐있는 심신도 좀 달랠필요 있으니 

 슬쩍 잠이든척 그 집에서 하룻밤 보내고 

 다음날 집주인이 내어준 아침상을 반도 다 들기전에 

 갑자기 실성한양 헤헤거리다... 

 느닷없이 전쟁때 죽은 친구나 친지이름을 부르거나 

 지금이 아직 왜정때인양 착각하고 사는 여인마냥 

 헛소리를 계속하다...그대로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그리고나서 동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용번도 보거나 땅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먹거나 

 역시 무슨 전쟁때나 왜정때 있었을법한 일을 

 지금 당장 겪고 있는것마냥...앞뒤 안 맞는 이야기들을 

 헛소리처럼 마구 읊어대거나 

 구걸행각을 하기도 하고...지나가는 사람을 느닷없이 붙잡고 

 엉뚱한 소리를 하기도 하는등 

 그야말로...오만...누가봐도 실성한 여인처럼 보이게 

 그러고 돌아다녔습니다 

 

 한 며칠 그러고나니 동네사람들 모두 

 ‘그...뭐 며칠전 냇가에서 죽을뻔한 여자를 살려주었다더니만 

 실성한 여자였나보구먼...어쩌면 좋나...’ 

 그렇게 결론내리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실성한 여자 행세하고 돌아다니니 

 잔치집 기웃거리면 그래도 불쌍해보여 먹을거리 한두점 

 나눠주긴 할 지언정 

 절 거둬줄만한 실성한 아들 있는 집이나 혼자사는 나이많은 홀아비 

 그런건 나타나주지 않더군요 

 - 이런게 소설과 현실의 결정적인 차이인 듯 합니다 

 실제 대충 이집저집을 기웃거리며... 

 실제로 그런 환경...집에 정신성치 못한 아들이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집이나 

 오래전 아내 잃고 혼자사는 나이많은 남자 

 그런 사람 없나 기웃거리기도 해봤는데 

 이미 실성한 여자로 낙인찍힌 저라서인지 

 그런집에서도 저한테...돈 몇푼이나 먹을거리 좀 얹어서 

 내보낼뿐... 

 절 거둬주는 사람은 없더이다 

 그렇게 어느덧 일주일...열흘...보름... 

 그렇게 마냥 시간이 흐르니... 

 계속 이러고 다니는것도 한계가 있고 

 이러다 진짜로 제가 훼까닥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되어... 

 

 안되겠다 싶어 동네를 몰래 빠져나와 

 다른곳으로 도움을 청해보기로 했습니다 

 일단 대충 시외버스라도 다닐법한 

 큰길 있는데까지 나와... 

 대충 근처에 작은 구멍가게로 가서 

 ‘전화를 좀 쓰려하니 빌려달라’고 했지요 

 그래도 저도 서울로 이사가 사는 친구도 두어명 있고 

 오빠나 오빠 친구 주변 지인이나 이런 사람들도 

 아주 없긴 않기에 

 그중 연락처 기억나는 사람 몇 명이라도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해보자하고 

 시외버스 정류장 근처 구멍가게에서 

 전화를 껄어보기로 했습니다. 

 

 ‘가는날이 장날’이라는 경우가 맞는 것 같네요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과는 상황이 좀 안 맞는 것 같고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다’나 ‘밭에서 신발끈 고쳐신지 말라’는 것과도 

 결이 좀 다르니 

 하필 딱 그 순간...그것도 정말 하필 딱 그순간 

 서울에 사는 지인들에게라도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시외버스 정류장 옆 구멍가게에서 

 전화를 거는 딱 그 순간 

 아마 읍내에 장이라도 보다 돌아오는듯한 

 동네 아주머니와 청년 몇 명 

 그 사람들과 딱 마주친거지 뭡니까. 

 ‘뭐야...정신만 멀쩡한 여자였잖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전화를 걸고있는 저를 쳐다보는 그들 

 전 순간 어찌 대처해야할지 몰라... 

 이번엔 진짜 정신이라도 나간 듯 멍한 정신으로 있다 

 ‘일단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로 가게에서 빠져나가려 했지만 

 구멍가게 앞에서 여전히 어이없다는 듯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던 

 동네 아주머니랑 청년들에게 바로 

 붙잡힐수밖에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냐 ? 뭐하는 사람인데 멀쩡한 처자가 

 지금까지 실성한 여자인양 우릴 속였냐 ?’ 

 그리고는 이대로 안되겠다는 듯 

 아마 지금까지 기만당한 동네사람들 모두 앞에서 

 절 정죄라도 할것같은 기세로 

 바로 붙잡아서 마을로 데리고 갔습니다 

 

 전 뭐...죽을죄를 지었다 비는수밖에 없었죠 

 실은 오갈데 없는 처지라...혹시 실성한 여자인양 보이면 

 불쌍해서 거둬줄 사람이라도 있을줄 알고 

 일부러 그랬다는 저의 해명에 

 그저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들 

 ‘이 자리에서 우리한테 맞아죽지 않은것만 다행인줄 알아라’ 

 그리고는 그래도 인생이 불쌍해 보이는지 자기네들끼리 

 상의를 좀 해보는 듯 하다 

 차비 몇푼을 얹어주며 

 ‘다시는 이곳에 나타나지 말고 다른곳에 가서 살아라’ 

 엄포를 놓더군요 

 

 그래도 약간의 자비심이 있어 얹어준 

 몇푼의 차비 

 그걸 갖고 시외버스를 탔습니다 

 사실 저도 제가 사는 지역 주변 이의의 지리는 잘 모르지만 

 가급적 여기서 아주 먼곳까지 갈 수 있는 

 버스편을 탔어요 

 - 어쩌면 제게 차비 몇푼 얹어준 동네사람들도 

 그렇게 멀리 사라져서 다시는 우리동네 나타나지 말라는 의도도 

 담겨있는 듯 하니 

 어쨌든 죄짓고 쫏겨나는 몸으로  

 원대로 들어주기로 한거죠 

 어디로 가는 버스편인지도 모른채 

 그래도 막상 ‘내 좌석’이 정해져 있는 버스에 타니 

 그간의 긴장감과 피곤이 한꺼번에 풀리는지 

 일단 한바탕 설움의 눈물이 쏟아지고나서 

 그대로 스르르 잠이 들게 되더이다 

 

 그렇게 

 확실히 제가 나고자란 고장이든 시댁이든 

 그런곳에선 멀리 떨어진 그리고 제가 아는 사람이나 연고 

 하나 없는 그것만은 확실한 상황에서 

 이번엔 한번... 

 종교시설을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교회든...성당이든...절간이든... 

 어차피 이렇게까지 이야기 나온거 좀 더 덧붙여야겠는데 

 사실 저나 저희집안이 평상시 그렇게 

 종교문제에 별다른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용 

 그래도 이 시절은 교회나 성당이 주로 전쟁때 부모잃은 고아나 

 이런 애들 거둬주고 하는곳...그런식으로 

 대체로 교회나 성당에 대한 대중적 호감도는 좋은편이었는데 

 다만 저희집은 말씀드렸듯 몰락했을지언정 뿌리깊은 양반가고 

 그래서인지 나름 억불숭유란 선대의 정신이라도 이어받기 위함인지 

 절에는 잘 안 가는 그런 집안이었습니다 

 다만 언뜻...어머니는 이따금 가족들 미래가 걱정이 되는지 

 무당이나 점보는 곳은 찾아가곤 했나보네요 

 그렇다고 무슨 완전히 신들린년마냥 때되면 무당찾아가고 

 점보러 가고 그러는 정도는 아니지만 

 자녀들 미래나 혼사문제 이런거 걱정될땐 

 무당이든 점쟁이든 그렇게 이따금 찾아가고 부적도 써오고 하는 

 그런분이었나봅니다 

 - 아니 도대체 억불숭유 지켜야 한다는 집안에서 

 중은 멀리하면서 무당은 찾아가는 경우는 또 뭔 심뽀래 그래 !!! -.-;;;; 

 

 전 그때만해도 교회에 가면 

 가서 오갈데 없는 처지라하면...하다못해 거기서  

 허드렛일이라도 할수있게 해주고 그러는덴줄 알았어요 

 뭐 대충...그 시절은 여하튼 교회에서 부모잃은 고아들 

 거둬 먹여도 살려주고 그러던 시절이니... 

 그런쪽으로 하다못해 고아원 허드렛일이나 식모같은거라도 

 시켜주는줄 알았죠 

 헌데 막상 찾아가 하소연하니 

 하나마나한...솔직히 당최 뭔소린지 알아먹기도 힘든 

 이상한 설교나 한바탕 늘어놓은뒤 ‘헌금내쇼 !!!’ 하더이다 

 ‘아니 도대체 돈한푼 없는 빈털터리,알거지한테 취직을 시켜줘도 

 시원찮을판에 헌금내쇼 하는건 대체 뭔 씸뽀래 !!!’ 

 

 뭐 교회에 그때까진 저도 말만 들었지 잘 모르던 시절이라 

 그런식의 오류를 범했다치고 

 절에선...물론 저희 부모님 모두 불가는 가급적 피하는 그런분들이었지만 

 (* 아무리 그렇기로 아들 낳게 해달라고 100일 불공도 안 드린다냐 !!! 

  - 아, 참 우리집안은 이미 아들을 넷(오빠가 넷)이나 낳았으니... 

 아들낳아달라는 백일불공 굳이 드릴일이 없지 참...-.- 

 참고로 저희 아버님은 5남3녀중 다섯째고...어머니 형제관계는 

 그러고보니 들어본일이 잘 없는데 딸만 여섯...6자매지만 

 어머니의 사촌으로 오빠나 남동생이 여럿 있으니... 

 역시 뭐 아들 낳으려고 백일치성 굳이 드려야할만큼 

 절박한 집안은 아닌 듯 하더군요...) 

 여하튼 아무리 그래도...큰 절 같은 경우엔 무슨 불목하니니 공양사니 

 그런 허드렛일 하는 직책 있다는 귀동냥 정도는 

 들어본일 있기에 – 1959년 기준 만 19세 쑥맥같은 새색시가 

 귀동냥 들은게 참 많네요 그러고보니 ^^;; 

 최소한 절에선 공양사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그런식으로라도 혹시 거둬주려나 하고 

 막연히 찾아가 보았습니다. 

 하지만 결과는...교회 갔을때와 마찬가지였습니다 

 교회에썬 쓸데없는 소리만 장황하게 늘어놓다 헌금내쇼 

 절에서는...역시 하나마나한 이야기...뭔 붓다의 메이리가 어쩌구 

 전생업보가 어쩌구...하면서 시주해라 !!! 

- 아니 전생 업보가 그리 많아 속세인연 끊어야할 팔자면 

하다못해 절간 부엌데기로라도 거둬줘야 하는 것 아니여라 !!! 

대체 그리 전생업 많은 여편네가 뭔 떼부자가 되어있을거라고 

나같은 여자한테까지 시주해라 불사해라 그런 

X소리니 하고 자빠졌다냐 !!! 

 

 마지막으로 성당...성당에도 뭐 성당지기니 뭐니 그런게 있다하니 

 하다못해 수위나 청소부 같은 역할로라도 

 취직이 될까해서...성당 고해실 찾아가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종교의 역할을 열아홉살 그때까지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돈한푼 없고 오갈데도 없는 처지고 취직하기도 힘든 그런 처지인 처자에게 

 (* 취직을 시켜줘도 시원찮을판에...) 

 교회든 절이든 성당이든...엉뚱한 소리만 장황하게 늘어놓은뒤 

 돈내놔라(헌금,시주 등) 하는건 어쩜 그리들 똑같은지... 

 - 콕콕 찌르는 설교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여태까지 들어본 이야기 

 기억나는건 결국 헌금내라 소리밖어 엢더라 !!! -.-;;;; 

 

 - 도대체 어떻게 된 나라가 취직은 전부 이단,사이비들이 시켜주고 

 정통 종교단체들은 하나같이 씰데없는 소리만 장황하게 늘어놓은뒤 

 헌금내라 불사해라 그딴 소리만 하고 자빠졌냐 !!! 

 

 결국 교회든 성당이든 절간이든 

 불목하니든 공양사나 부엌데기든 아니면 성당지기든 교회 수위나 청소부든 

 그런걸로 취직하는건 전부 실패하고 

 그리고도 한참을 여기저기 정처없이 돌아다니면서 

 들은 이야기 결론은 한결같이 그거었습니다 

 ‘집에가 !!!’ 

 기승전결...집에가 였습니다 

 집에가... 

 뭐 말이야 원론적으로 틀린말 아니지만 

 만약 집으로도 돌아갈수 없는 처지인 그런 사람은 

 그럼 어쩌란 말인가요 !!! 

 집에가...하는 사람은 말이니까 참 쉽게 하지만 

 그런말이 더 억장 무너지고 복장 터지게 생긴 사람 심정은 

 어찌하란말인가요... 

 절더러 대체 어디로 가란 말인가요 

 한번 시집간 여인은 출가외인이라며 안 받아주는 친정으로 가란 말인가요 

 아니면 남편과 새어머니가 새어머니는 남편 어깨에 양발 올려놓고 

 남편은 젊은 새어머니 발을 하염없이 탐닉하는 그 해괴한 꼴을 봐야하는 

 그 시댁으로 가라는 말인가요 

 - 아무리 시집가면 장님 3년,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이란 법도가 있는 

 나라라도 그렇지...이건 진짜 너무 한거 아니냐 !!! 이 18X들아 !!! 

 

 집에가... 

 어쨌거나...교회든 절이든 성당이든 

 또는 경찰이나 관공서든 

 혹은 이런저런 상담센터나 사회복지시설이든... 

 (* 뭐 1959년 기준으로 그런 시설이 있어야 뭐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아무리 제 처지를 하소연하고 울며불며해도 

 제게 주는 결론은 그거더군요 

 ‘집에가...’ 

 뭐 말하는 사람이야 쉽게 하는 말이지만 

 그 말을 들을 때 겪는 당사자의 복장터지는 심정은 어떤건지 

 헤아리기는 해본건지 

 - 전원일기의 김회장 아저씨나 일용이,용식이 아저씨 같은분들은 

 이런 제 심정 천분지 일이나 혹 이해해주실지 모르곘네요 

 여하튼... 

 그 많은 사람들의 한결같은 충고가 ‘집에가’ 였으니 

 가라면 가야지... 

 뭐 어쩌겠네요 

 결국 그렇게... 

 3년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미 시집간 출가외인 받아줄수 없다는 

 엄격한 오라버니 네분 여전히 지키고 계신 친정집이 아닌 

 시댁으로 말이죠 

 

 그러고보니 그날 그렇게 충격받아 짐싸갖고 나가선 

 3년만에 돌아온 시댁... 

 돌아와보니... 

 집수리를 조금 했는지...구조나 색채 이런건 다소 변하긴 했는데 

 3년전 분위기와 전체적으로 

 크게 달라진건 없더이다 

 그리고...남편은 그렇다치고...남편의 새어머니인 시어머니도 

 함께 있더이다...역시 3년전 그대로... 

 남편은 마치 절보더니...잠시 어디 여행이라도 갔다온 사람 보듯 

 ‘당신 왔어 ?’ 이렇게 묻더군요 

 별다른 반가움도 놀라움도 없는 

 시큰둥한 태도로요 

 

 그리고 

 ‘뭔가 이상하다’는걸 느낀게 그때부터 였습니다 

 아이가...있었습니다 

 만약 그때 그...임신중인 새어머니가 낳은아이 

 온전히 태어났다면 지금쯤 세 살이어야 할텐데 

 그 아이 말고도 그보다 어린 아이 또 하나 

 그보다 더 놀란건...또다시 임신을 해 또다시 배가 불러와있는  

 시어머니...그 여자...였습니다 

 그럼 이건 대체 뭘 말하는걸까요 ? 

 아아...더 이상 뭘 물어보고 확인할 것도 없이 

 그러고보니...그래도 3년만에 자기 마누라가 돌아왔는데 

 ‘발이 불편하다’는 새어머니 말을 듣더니 

 바로 어디서 대야에 물을 하나가득 받아와서 

 친절히 그 여자 발을 씻겨주는...그 사람의 모습이 

 바로 눈에 들어오더이다 

 그야말로...3년만에 돌아온 저를 남편이나 시어머니나 

 전혀 의식하거나 눈치보거나 미안해하는 마음이 아니더이다 

 저는 현기증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 

 

 눈을 떴을땐 

 진심 여기가 저승이길 바랬는데 

 방이더군요... 

 그것도 3년전 남편과 신방으로 쓰던 그 방... 

 깨어난 저를 보고는 남편...아니 그 사람이 묻더이다 

 (* 이런자를 두고 남편이라 부룰수 있을만한 강심장은 

  2020년대에도 없겠지만 1950년대 후반에도 

  아마 없을겁니다) 

 ‘이제 어쩔것이냐 ?’ 

 어떻게보면 마치 이 귀찮은 물건 빨리 치워야하는데 

 어쩌나...뭔가 난감해하는 눈치였습니다 

 저는 어차피 체념한투로 말했습니다 

 ‘출가외인이 가긴 어딜가겄소...그냥 여기서 살아야제’ 

 ‘ 아 다들 그랬잖아요 !!! 집에 가라고 !!! 교회서도 절에서도 성당에서도 

  경찰이나 공무원 심지어 사회복지시설이나 교육기관 선생님들도 

  심지어 전원일기 아저씨들도...제 사연을 들은 결룬은 결국... 

 집에 가... 

 집에 가랬으니 집에서 살아야지 뭐 어쩌겠나요 

 한번 시집간 그 시댁으로... 

 

 그렇게...남편과 새어머니는 이미 3년사이 사실상의 부부라도 된양 

 당당하게...그것도 아버지의 아이에 이어 자신의 아이까지 둘을 더 낳은 새어머니와 함께 

 이제 사실상 부부인 듯 당당하게 살아가는 상태에서 

 그냥 저는 남편의 부인도 뭣도 아닌...그냥 이 집에서 가정부나 식모 비슷한 

 그런 위치로 살았고... 

 남편이야 젊은 새어머니와 사이에 이미 아이까지 생겼으니 

 그렇게 이제 진짜 부부인양 누구 눈치 볼 것도 숨길 것도 없다는 듯 

 당당하게 살아가더이다 

 저요 ? ... 그러고보니 지금 이 집의 세 아이와 전 

 어떤 혈연관계로도 연결되어 있지 않네요 

 첫 번째 아이는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사이에서 나온 아이 

 그 뒤 이은 두 아이는...남편과 젊은 새어머니 사이에서 나온 아이 

 그러니 그 아이들이 자라서 절 그냥 

 이 집의 식모나 가정부...아니 하녀 취급을 해도 

 전 할말없는 처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남편과의 호적정리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이들에게 전 형수나 제수도 그렇다고 아버지의 본부인이나 큰어머니도 아닌 

 그렇다고 새어머니나 내연녀는 더더욱 아닌 

 그런 애매한 처지...그야말로 그냥 한집에 사는 식구 

 그냥 가정부 아니면 식모나 하녀 

 그야말로 뚱뚱하고 못생긴 가정부 아줌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게 되겠네요 

 하지만 뭐... 

 어쩌겠나요 오갈데 없는 처지...저같이 팔자 사나운년 

 받아주는데 하나 없다는거 뼈저리게 느낀 지난 3년 시간이었으니 

 체념... 

 모든 것을 확실하게 해결할수 있는 방법은 

 그저 체념이었습니다. 

 그나마 남편과 시어머니가 일말의 양심은 있는지 

 절 야멸차게 내쫏지는 않고 이렇게 

 가정부나 식모처럼 살게는 해줄 모양인께... 

 그저 모든걸 체념하고 이대로 사는수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