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뒤에 허씨네 제각(祭閣)이 있다. 잘 구운 붉은빛 감도는 기와는 버짐 같은 마른 이끼가 끼어 고색이 창연한 자태로 소박하고 단아한 건물이다. 그 앞에 한 사오십 평 됨직한 못이 있고 그 못 둑에 수백 년은 수월한 아름드리로 잘생긴 소나무가 품세도 좋게 우람히 서 있었다.
햇살 가득한 날이면 짧은 낚싯대 하나 챙겨 가볍게 붕어와 희롱하기도 하고 세월의 비늘 덕지덕지 앉은 청솔 그늘아래 앉아 푸른 솔잎 사이사이마다 바람을 타고 흘러내리는 솔바람 노래를 들으며 서정주와 천상병의 싯귀를 읊조리기도 하다가 싫증날세라 하염없이 유쾌하고 명랑한 공상에 빠지기도 했던 나만의 상큼한 마음의 정원이기도 했다.
미끈하고 늘씬한 허리에 훌쩍 키도 크고, 그늘 오지게도 넓은 소나무에 생기(生氣)가 바람을 타다가 흩어지면 산속에서 돌아 나오는 물을 얻어 한가득 품은 못에 생기가 잠시 머물다가 작은 무넘기를 넘어 실개천을 타고 마을로 흘러 나가는 풍수에서 말하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허씨네 제각 온화한 생김새였다.
작년인가보다. 솔 그늘아래 터 잡은 아랫집 아낙이 저놈의 솔 그늘 때문에 마당에 햇살 한 줌 내리지 않는다고 투덜대자 힘 좋은 그 집 남정네가 갑옷 같은 소나무 비늘을 모질게도 벗겨내어 버렸다. 수백 년 북풍한설 막아주며 마을의 다사다난을 내려다보던 소나무는 한해를 고스란히 알몸으로 지내다가 시름시름 푸른 기운을 잃어 가더니 기어이 말라 죽었다.
내 몸속의 진골을 빼내가듯 소나무의 정기를 그렇게 핥아 낸 그 집 힘 좋은 남정네는 내가 한 보름 출장길 돌아와 보니 쓰르릉 소리 좋은 전기톱으로 서리서리 잘라서 처참한 토막을 내고 말았다. 나는 햇살 피해 아늑히 쉴 수 있었던 마음의 정원을 잃어버렸고 못 속의 자태 좋았던 붕어들 역시 어머니의 품 같았던 그들의 안식처인 그늘을 잃어버렸다.
허씨네 조상들의 영혼은 바람 모아줄 소나무가 베어져 바람에 날려 흩어지므로 하늘로 통하는 신수(神樹), 영혼의 길잡이가 없어졌으려니 후손들 찾아오는 길목이 아득하기만 할 것이고, 하늘한 솔바람이 산자락타고 못에 내려앉아 서로를 씻겨 주어서 더 없이 맑고 청아한 귀를 간질거리던 소리도 이제는 더 들을 수가 없어졌다, 소나무에 걸린 영롱한 달빛도, 달빛 아래 소나무의 은은한 그림자도, 영창에 비치던 소나무의 은근한 유혹의 손짓도, 내밀하고 은밀한 바람의 속살거림도, 이제는 모두가 가슴 아린 이별이자 쓸쓸한 추억인가 보다.
하마 좋은날 받아 섬진강 아랫마을 하동 백사청송(白砂靑松) 그리움 찾아서 청솔 향긋한 송엽주나 한 잔 하며 사명당 스님의 청송사(靑松辭)나 밤새 노래하였으면 하는 허전한 마음이다.
신귀거래사 (新歸去來辭) 56 솔잎 사이사이로 들려오던 그노래는
신귀거래사 (新歸去來辭)
56
솔잎 사이사이로 들려오던 그 노래는
집 뒤에 허씨네 제각(祭閣)이 있다. 잘 구운 붉은빛 감도는 기와는 버짐 같은 마른 이끼가 끼어 고색이 창연한 자태로 소박하고 단아한 건물이다. 그 앞에 한 사오십 평 됨직한 못이 있고 그 못 둑에 수백 년은 수월한 아름드리로 잘생긴 소나무가 품세도 좋게 우람히 서 있었다.
햇살 가득한 날이면 짧은 낚싯대 하나 챙겨 가볍게 붕어와 희롱하기도 하고 세월의 비늘 덕지덕지 앉은 청솔 그늘아래 앉아 푸른 솔잎 사이사이마다 바람을 타고 흘러내리는 솔바람 노래를 들으며 서정주와 천상병의 싯귀를 읊조리기도 하다가 싫증날세라 하염없이 유쾌하고 명랑한 공상에 빠지기도 했던 나만의 상큼한 마음의 정원이기도 했다.
미끈하고 늘씬한 허리에 훌쩍 키도 크고, 그늘 오지게도 넓은 소나무에 생기(生氣)가 바람을 타다가 흩어지면 산속에서 돌아 나오는 물을 얻어 한가득 품은 못에 생기가 잠시 머물다가 작은 무넘기를 넘어 실개천을 타고 마을로 흘러 나가는 풍수에서 말하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허씨네 제각 온화한 생김새였다.
작년인가보다. 솔 그늘아래 터 잡은 아랫집 아낙이 저놈의 솔 그늘 때문에 마당에 햇살 한 줌 내리지 않는다고 투덜대자 힘 좋은 그 집 남정네가 갑옷 같은 소나무 비늘을 모질게도 벗겨내어 버렸다. 수백 년 북풍한설 막아주며 마을의 다사다난을 내려다보던 소나무는 한해를 고스란히 알몸으로 지내다가 시름시름 푸른 기운을 잃어 가더니 기어이 말라 죽었다.
내 몸속의 진골을 빼내가듯 소나무의 정기를 그렇게 핥아 낸 그 집 힘 좋은 남정네는 내가 한 보름 출장길 돌아와 보니 쓰르릉 소리 좋은 전기톱으로 서리서리 잘라서 처참한 토막을 내고 말았다. 나는 햇살 피해 아늑히 쉴 수 있었던 마음의 정원을 잃어버렸고 못 속의 자태 좋았던 붕어들 역시 어머니의 품 같았던 그들의 안식처인 그늘을 잃어버렸다.
허씨네 조상들의 영혼은 바람 모아줄 소나무가 베어져 바람에 날려 흩어지므로 하늘로 통하는 신수(神樹), 영혼의 길잡이가 없어졌으려니 후손들 찾아오는 길목이 아득하기만 할 것이고, 하늘한 솔바람이 산자락타고 못에 내려앉아 서로를 씻겨 주어서 더 없이 맑고 청아한 귀를 간질거리던 소리도 이제는 더 들을 수가 없어졌다, 소나무에 걸린 영롱한 달빛도, 달빛 아래 소나무의 은은한 그림자도, 영창에 비치던 소나무의 은근한 유혹의 손짓도, 내밀하고 은밀한 바람의 속살거림도, 이제는 모두가 가슴 아린 이별이자 쓸쓸한 추억인가 보다.
하마 좋은날 받아 섬진강 아랫마을 하동 백사청송(白砂靑松) 그리움 찾아서 청솔 향긋한 송엽주나 한 잔 하며 사명당 스님의 청송사(靑松辭)나 밤새 노래하였으면 하는 허전한 마음이다.
소나무 푸르구나
초목의 군자로다
눈 서리 이겨 내고
비 오고 이슬 내린다 해도
웃음을 숨긴다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변함이 없구나
겨울 여름 항상 푸르구나
소나무에 달이 오르면
잎 사이로 금모래를 체질하고
바람 불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2004, 03, 22
김 명 수
베빈다-Bevinda - Prece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