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찾아가리라 / 94

김명수2004.09.29
조회369

나는 다시 찾아가리라 / 94

 

 

 

                                  나는 다시 찾아가리라



시골장 어디나 다 구수한 맛과 지역의 멋이 있다마는 나는 특별히 강원도 시골 장들을 즐겨 찾았다. 장 초입 아무 곳이나 차를 주차하고 넓거나 좁거나 골목길이거나 장터에 들어서면 순댓국집 앞마당 돌화덕에서 매캐한 장작 연기가 파르스름하게 피어올라 눈을 맵게 한다. 어릴 적 사촌 누나가 시집가던 날 가마솥 화덕의 장작 연기가 생각나 정겹기만 하다.


점심을 먹기엔 조금 이른 시간인지라 장터부터 한바퀴 돌아본다. 생각했던 대로 규모가 매우 작은 장이긴 하지만 산중에서 벗겨온 계피나무 껍질이며 간경화에 특효라는 엄지손가락 같이 굵은 굼벵이, 한 뼘도 넘는 지네와 비단개구리, 싸릿가지로 엮은 지게소쿠리 그리고 버드나무로 만든 키, 시루떡 할 때 쓰는 얼개미가 잔뜩 쌓여 있는가 하면 탕건 쓰고 사주관상 보는 할아버지 앞에 까만 고무신 눌러 신고 쭈그려 앉아 점괘를 살피는 할머니도 너무나 인상적이다.


상인들이 골목을 건너질러 쳐놓은 포장 그늘 옆 두서너 평 남짓하게 스며든 햇볕 아래에는 동네 노인들이 열 분도 넘게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고 있어 반갑고 오밀조밀한  정이 스며든다. 하나밖에 없는 딸한테 얹혀살고 있다는 할머니 한분은 매 장날마다 나와서 담배라도 한 갑씩 사서 피우는 게 낙이라며 인생항로의 쓸쓸하고 외로운 마무리 푸념을 늘어놓으신다.


나는 포목장수 곁에 펴놓은 멍석에 앉아 강원도 별식인 올챙이국수(옥수수 국수)와 수수전병 한 접시 그리고 담배 한 갑을 사다가 이 할머니와 같이 식사를 한다. 샛노란 올챙이국수 위에 끼얹은 양념간장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오를 때 한 대접씩의 국수를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니 아줌마가 덤이라면서 한 대접을 더 퍼준다. 올챙이처럼 매끄러운 맛에 심심산골 갖은 양념을 곁들였으니 산해진미가 따로 없는 것 같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일어서려니까 장터 맨 아래쪽에서 강냉이 튀기는 소리가 요란하게 난다. 방금 튀긴 강냉이 한 움큼을 먹어보라고 내 주면서 인심 좋게 생긴 할아버지는 "아마 이 고을 사람 치고 내가 튀긴 강냉이 못 먹어 본 사람은 없을 거래요"하며 웃는 얼굴이 풍구바람에 피어오르는 쏘시개 불빛에 반사되어 더욱 행복해 뵌다. 장터 한 가운데서 100원 짜리 붕어빵을 구워 파는 아주머니는 "하나 더 얹어줘요"하며 웃으며 말하는 나를 보고 덤을 얹어 담아준다.


오랜만에 훈훈한 인심에 묻혀 시간을 보내고 나니 장마당도 서서히 파장기세다 나름대로 짐을 꾸리기 시작하는 상인들 어깨너머로 한 나절 비추이던 햇살이 기울어 간다. 점심 먹던 멍석자리에 다시앉아 주변 산중에서 캤다는 더덕을 구워놓고 옥수수 막걸리 왕대포 잔이 돌아간다.


인심 좋고 정겨운 사람들 때문인지 포근하기 만한 오후이다. 이토록 사람 사는 맛나고 짙은 색깔의 정이 풍기는 곳에서 어찌 맨입으로 입맛만 다시고 앉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제기랄! 술껜 다음에 운전하지 뭐…….

별 수 없이 황금빛 옥수수 막걸리 대폿잔에 지조를 빼앗긴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세상을 사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고 있으며 참삶은 어떻게 살고 있으며 참삶은 어떠한 것을 논하는 것일까? 천 원짜리 두서너 장이면 모르는 사람끼리도 함께 어울려 대화하고 술잔을 나누며 세상사는 맛을 나누는 이곳 시골장터 사람들이 이 세상을 과연 소극적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 아! 인심 좋고 정겨운 곳 이 살맛나는 장마당에 나는 다시 찾아오리라…….


자리를 일어서 파장 마당을 돌아보니 순댓국집 돌화덕에 타다 남은 장작연기가  나를 붙잡기라도 하는 듯 바지자락 밑을 맴돈다.



                                                                김 명 수

 



시끌벅적 5일장 풍경 - 情터가 사라진다



"짝짝! 홀애비 바지 핫바지, 아줌씨 바지 몸뻬바지, 애들바지 …."

옷장수의 걸쭉한 호객소리가 사람을 모은다. "뻥이오" 소리에 귀를 막은 아이들 사이로 하얀 수증기가 퍼져나간다. 우리에 갇힌 가축들이 울어 대고, 싸움에 가까운 흥정소리가 장터를 달군다. 막걸리 한 사발에 절로 나오는 할아버지의 육자배기와 어깨춤이 흥겹다. 시골 5일장의 풍경들이다.

나는 다시 찾아가리라 / 94
▲ 장터 가는 길
▷ 새벽 공기가 차다. 오전 7시30분까지는 장터에 도착해야 목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다. 희뿌연 새벽 안개를 헤치고 마른 고추를 내다 팔러 가는 부부의 빠른 걸음에 섶다리도 따라 들썩거린다. [강원도 영월군 주천장]

장(場)의 역사는 15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남 나주.무안 지방에서 흉년을 맞아 물물거래 형식으로 시작된 장은 17세기 말에 이르러 5일장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18세기 말 농업.수공업의 발전과 보부상의 등장으로 5일장은 전국적인 유통망으로 거듭난다. 장은 경제활동은 물론 지역주민 간의 만남의 장 역할도 했다. 장꾼들을 통해 바깥 소식을 듣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사당패를 비롯한 다양한 공연문화의 장도 제공했다

5일장은 경제 발전에 따른 급속한 도시화와 이농현상으로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1960년대 말 전국적으로 1200여개에 달하던 것이 현재는 650여개만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대형할인점이 등장하면서 5일장은 고사 위기를 맞고 있다.

나는 다시 찾아가리라 / 94
▲ "요즘 도통 입맛이 없어…."
▷ 할아버지 쌈짓돈이 굴비 앞에서 맥을 못추고 풀려나온다. [전남 곡성군 옥과장]

늦은 감이 있지만 2002년 발족한 전국민속5일장연합회(회장 이호영)가 전통 5일장 살리기에 발 벗고 나섰다. 이회장은 "지역 실정에 맞게 시장을 특화하고 연희패 공연 등 볼거리를 늘려 사라져 가는 장을 다시 부활시키겠다" 고 다짐한다. 지방자치단체도 5일장을 관광상품화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나는 다시 찾아가리라 / 94
▲ 강아지가 장에서 팔릴땐.....
▷ 팔려가는 강아지가 망사 주머니 속에 앉아 있다. [전남 곡성군 옥과장]

그 수와 규모는 줄었지만 장터는 여전히 훈훈하다. 백화점과는 차원이 다르다. 쇼윈도도 없고 바코드와 전자음도 없다. 투박한 농촌 인심이 숨김 없이 진열돼 있고 장꾼들의 호객소리가 사람 냄새를 풍기는 곳이다. 장터에는 수백년 이어져 온 우리의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휴일에는 아이들 손을 잡고 5일장에 가보자

나는 다시 찾아가리라 / 94
▲ 장터에는 탈의실이 없다
▷ 대신 통큰 치마로 아래를 가리고 바지크기를 맞춰 본다. 이것 저것 입어 보던 아줌마가 주인을 향해 소리친다. “이봐! 안 들어가. 한 치수 더 큰걸로 줘봐.“ [전남 해남장]


나는 다시 찾아가리라 / 94
▲ 마늘을 까는 할머니의 투박한 손
▷ 좌판을 차리고 앉아 손님을 기다리며 마늘을 까는 할머니의 투박한 손. [전북 남원장]


나는 다시 찾아가리라 / 94
▲ 내기 장기
▷ ’장이야!“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내기 장기판은 장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강원도 영월군 덕포장]


나는 다시 찾아가리라 / 94
▲ 버스정류장 풍경
▷ 장에서 산 짐들을 순서대로 놓아두고 그늘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전남 장흥장>


나는 다시 찾아가리라 / 94
▲ 생선과 조개와....
▷ 동글동글 바구니에 담은 싱싱한 생선이며 조개들이 장터에 나온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전남 구례장>


나는 다시 찾아가리라 / 94
▲ 장날 버스안 풍경
▷ 이른 아침 첫차를 타고 장으로 향하는 버스 안. <전남 곡성군 옥과장>


나는 다시 찾아가리라 / 94
▲ 좋아진 세상, "새로운 장날 풍속도"
▷ 미니 자동차 앞뒤로 한가득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할아버지. 새로운 장날 풍속도다. <전남 곡성군 옥과장>


나는 다시 찾아가리라 / 94
▲ 나무수레
▷ "오늘 장은 일찌감치 파장이여~’ 장에서 팔고 남은 물건들을 나무수레에 싣고 가는 아주머니. <전북 남원장>


나는 다시 찾아가리라 / 94
▲ 장터 구경나온 유치원 어린이들
▷ 장터 구경나온 유치원 어린이들. <강원도 영월군 덕포장>


나는 다시 찾아가리라 / 94
▲ 영낙없는 우리들의 어머니 뒷모습
▷ 양 손 가득히 장을 보고 돌아가는 할머니의 뒷모습. <전남 곡성장>


나는 다시 찾아가리라 / 94
▲ 섹시 스타킹의 유혹?
▷ 양말가게 앞에 놓인 스타킹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전남 곡성장>


나는 다시 찾아가리라 / 94
▲ 전대를 채우는 손
▷ 손님에게 줄 잔돈을 꺼내고 전대를 채우는 손. <전남 장흥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