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님과의 로맨스 [18] 너무 깊은 사랑은

미니미니200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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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윤은 미친듯이 엑셀을 밟으며 병원으로 왔다. 데자뷰 현상. 다급함도 초조함도 병원 입구의 풍경도 하연의 아버지가 쓰러졌을 때와 너무도 비슷했다.

 

 

 

"형!!"

 

 

 

눈물로 얼룩진 태민의 얼굴을 보자 태윤은 가슴이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 치는 것만 같았다.

 

 

 

"들어가보렴."

 

 

 

거의 쓰러질 듯 멍한 표정으로 앉은 두 어머니와 통곡의 소리가 들릴 듯한 표정의 두 아버지. 태윤은 떨리는 걸음으로 병실 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하연아!!!"

 

 

 

 

창백한 표정의 하연이 새하얀 시트 위에 누워있었다. 링겔과 피를 동시에 받고 있는 하연의 가냘픈 팔이나 미세한 가슴의 움직임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아서 태윤은 온힘을 다해서 침대 모서리를 붙들었다.

 

 

 

침대 아래에 구겨진 하연의 옷이 있었다. 임부복을 사러 갔던 날, 하연이 너무도 마음에 들어했던 흰 원피스였다. 바쁜 회사일 때문에 내가 하연의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걸까. 태윤은 자신을 갈갈이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하연이는? 기쁨이는, 아이는요?"

 

 

 

태윤의 등 뒤로 따라들어온 의사가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위세척을 한 결과 자궁수축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이 나왔습니다. 보통 출산을 돕기 위해 사용하는 것인데 임신기간 중에 사용하면 유산을 유발합니다."

 

 

 

".!!!!!!!!!."

 

 

 

"예리한 물건 - 아마도 구두굽인것 같습니다 -과 주먹 등으로 배를 심하게 맞았습니다. 말씀드리기 대단히 죄송하지만, 언제 유산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모체의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지만, 24시간 내에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산모도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이는 포기하시는 쪽으로 빨리 결단으로 내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하연이는 괜찮은 겁니까? 하연이는요?"

 

 

 

의사는 어두운 표정으로 바닥을 응시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아이와 산모 중 선택하셔서 빠른 조치를 내리셔야 합니다. 지금 의식을 회복하고 있지 못한 것은 넘어지면서 머리를 박아 뇌진탕의 징후가 보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수술에 들어가기엔 조금 위험하지만 어찌되었든 조치를 빨리 내리시는게 좋겠습니다."

 

 

 

 

 

1시간여 후, 태윤은 굳은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며 병실 앞에 서있었다.

 

 

 

"....아직도 결정하지 못하셨습니까?"

 

 

 

너무도 잔인한 문서였다. 수술의 위험성을 인정하고 수술 중 일어나는 사망을 포함한 사고나 그 휴유증에 대해 병원의 책임을 묻지 않고 수술에 동의한다.

 

 

 

"이 문서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것입니다. 서둘러 결정하셔야 합니다."

 

 

 

태윤은 입술을 더욱더 세게 깨물며 떨리는 손으로 서명했다. 아이를 포기하고 하연을 살리는 길. 태윤은 눈물을 참았다. 아직 울 때가 아니었다.

 

 

 

 

"산모의 의식이 잠시 돌아왔습니다. 수술 전 잠시 만나보겠습니까?"

 

 

 

하연의 의식이 돌아왔다는 말에 가족들은 모두 병실로 뛰어들어갔다.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하연이 불안한 표정과 눈동자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태...태윤아...."

 

 

 

태윤은 눈물을 삼키며 침대 가까이 다가갔다. 태윤은 한손으로 하연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무서웠지? 미안해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조금만 더 참아줘. 내가 기다리고 있을게."

 

 

 

하연은 불안한 표정으로 태윤의 손을 잡으며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곤주를 만났어. 우리 아기... 기쁨이는 괜찮은 거지?"

 

 

 

 

태윤은 참고 또 참았지만 눈물이 얼굴 위로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태윤은 하연에게 또박또박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기쁨이는 우리 나중에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우리 나중에 함께 기쁨이 만나자. 지금은 잠시만.... 잠시만......보내줘야할 것 같아."

 

 

 

 

"안돼...안돼!!! 안돼!!!!"

 

 

 

놀랄 만큼 버둥대며 일어서려는 하연을 태윤이 온몸으로 막았다. 간호사들이 놀라 하연에게 마취제를 주사하는 동안 태윤은 하연의 귓가에 속삭였다.

 

 

 

"하연아... 제발... 제발 부탁이야.... 기쁨이는 엄마를 지키기 위해서 잠시 떠나있는 거라고 생각해줘... 네가 제일 소중하니까.....제발.....부탁이야..."

 

 

 

몸을 부르르 떨던 하연은 점차 기운을 잃어가며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태윤을 바라보다 스스르 잠이 들었다. 하연의 뺨에 태윤의 눈물이 몇방울 더 떨어졌다.

 

 

 

"제 목숨보다 더 소중한 사람입니다.....제발.....잘 부탁드립니다."

 

 

 

 

 

8시간이 걸리는 대수술이었다. 수술실 문이 굳게 닫힌 후에 무거운 목소리로 태윤이 태민을 불렀다.

 

 

 

".........어떻게 연락 받은 거야?"

 

 

 

"......공중전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어."

 

 

 

 

 

 

유학 수속을 밟느라고 대사관에 다녀오던 태민은 낯선 전화를 받았다. 소름끼치도록 낮고 섬뜩한 목소리.

 

 

 

"D대교 아래 첫번째 공중전화. 형수님이 기다리고 계실꺼야."

 

 

 

"여보세요?"

 

 

 

"뚜..........."

 

 

 

태민은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이상한 기분이 들어 바로 D대교로 향했다. 초라한 강변의 공중전화 부스 안에 하연이 구겨지듯 쓰러져있었다.

 

 

 

"누나!!!!!!!"

 

 

 

태민이 안아올리자 하연의 다리쪽에서 주르륵 하고 붉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하연의 흰 원피스는 이미 피로 물들어 다리에 감겨있었다.

 

 

 

 

 

 

"..............너는 여기서 하연이를 기다려줘.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주고."

 

 

 

 

"형!! 지금 어디 가려는 거야?"

 

 

 

 

"하연이를 저렇게 만든 사람 용서할 수 없어."

 

 

 

굳은 표정, 빠른 걸음으로 태윤은 병실 복도를 스쳐지나갔다. 주차되어 있는 차를 바로 거칠게 뺀 태윤은 어디론가 차를 몰아갔다.

 

 

 

 

"빨리 왔네요. 난 더 늦을 줄 알았는데...."

 

 

 

어두운 바에 앉아 붉은색 칵테일잔을 기울이며 담배를 피우고 있던 곤주가 굳은 표정으로 들어서는 태윤을 향해 말을 건냈다. 그 옆에는 G 그룹 후계자도 함께 앉아있었다. 그는 곤주의 허리에 손을 감으며 말했다.

 

 

 

"사랑스러운 아내는 어쩌고 혼자 오셨나? 아주 사랑스럽던데...듣던대로..."

 

 

 

그가 말을 채 잇기도 전에 태윤의 주먹이 그를 향해 날아갔다. 분노로 이성을 잃어버린 태윤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며 몸을 가격했다. 몇차례 태윤도 얻어맞긴 했지만 태윤은 아픔도 느낄 수가 없었다.

 

 

 

엉망으로 뻗어버린 그의 위에 피 섞인 침을 뱉으며 태윤은 거칠게 의자에 앉아서 즐기듯 구경하고 있던 곤주를 끌어내렸다. 태윤의 손바닥이 정확하게 곤주의 뺨을 세차게 후려갈겼다.

 

 

 

"오빠.........."

 

 

 

곤주가 채 말을 잇기도 전에 몇차례 더 태윤의 손바닥이 곤주의 뺨을 떄렸고 곤주도 바닥에 쓰러졌다.

 

 

 

"증거따윈 이미 없을거라는 거 알고 있어. 하지만 너네가 한 행동은 살인이야.

 

 

 

사랑하는 내 아이를 죽였고, 사랑하는 내 아내와 가족들을 상처받게 만들었어.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같은 방식으로 갚아주지. 세상 끝까지 쫒아가서 살려달라고 빌 때까지 괴롭힐꺼야. 각오해라, 이제."

 

 

 

 

 

 

하연은 어두운 터널 속을 헤매고 있었다. 어린 시절 시골에 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그 깜깜한 밤처럼 빛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하연은 엄마와 태윤을 번갈아 부르며 한참을 걸었다.다리가 너무나 무거웠다. 철근이 달린 것 처럼 마음대로 움직여주지를 않았다.

 

 

하연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보기위해 몸을 굽혔다. 자신의 발목 근처에 무언가가 있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하연은 눈을 더욱 부릅떴다.

 

 

"아악!!!!!!"

 

 

하연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초음파 촬영으로 보았던 기쁨이가 시커먼 핏덩어리가 되어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하연은 손을 허우적대며 이 악몽이 끝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하연아!!! 하연아!!! 정신이 드니?"

 

 

 

하연은 솜뭉치처럼 젖어든 듯한 몸을 느끼며 서서히 눈을 떴다. 배에 느껴지는 묵직한 통증. 욱씬한 팔다리와 무거운 머리.

 

 

 

"하연아........"

 

 

 

태윤이 왜 울고 있을까. 하연은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을 움직이려 애썼다.

 

 

 

"하연아....이제 괜찮을꺼야. 이제 괜찮아."

 

 

 

태윤이 하연의 몸을 끌어안았다. 태윤의 따뜻한 온기가 체중이 느껴지자 하연은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까까지 힘이 없던 것이 거짓말처럼 황급히 시트를 걷었다.

 

 

 

환자복 위로 배를 아무리 쓸어봐도 기쁨이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들과 말없이 방문을 나서는 아버지들. 울고 있는 태윤과 태민.

 

 

 

수술 전에 몽롱하게 떠오르던 태윤의 말이 머릿 속을 꽉 채웠다.

 

 

 

"으아아악!!!!!!!"

 

 

 

하연은 태윤을 밀어내고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이 하연을 완전히 집어삼켜버렸다. 하연은 자신의 슬픔을 말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목소리를 빼앗긴 인어공주처럼 불분명한 비명소리만이 목에서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심리적인 것입니다. 심리적 고통에 의해서 말을 할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하연의 담당의사 앞에 앉은 태윤의 모습은 1주일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초췌해져 있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장기전이 될 겁니다. 가족들의 관심과 시간 외에는 확실한 치료를 장담드릴 수가 없군요."

 

 

 

 

 

태윤은 병실문을 열었다. 무표정한 하연의 텅빈 눈동자가 태윤이 서 있는 자리를 훑고 다시 창으로 향했다.

 

 

먹으려고도 하지않고, 잠들었다가도 다시 일어나 비명을 지르고, 태윤이나 가족들에게도 반응하지 않고, 말도 할 수 없는 빈껍데기 하연이 거기 있었다.  

 

 

 

 

 

 

"퇴원하면.... 우리가 당분간 강원도 집에 데려가 있으려 하네."

 

 

 

하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10년은 늙어보였다. 태윤은 몇번이고 마음으로 질문했던 것을 떠올렸다.

 

 

내가 하연을 사랑한 것이, 그녀를 소유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하연의 아버지와 하연을 이렇게 다치게 할 정도로 잘못한 것일까.

 

 

 

"저는..........."

 

 

 

태윤의 말을 자르며 하연의 아버지가 손으로 어깨를 꽉 움켜잡았다.

 

 

 

"자네의 마음 잘 알아. 지금은 무기력하게 느껴지겠지만 자네에게도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나? 둘다 지금은 너무 힘들 뿐이야."

 

 

 

 

 

 

 

"하연아 춥지 않니?"

 

 

 

따뜻한 5월이었다. 하연은 자신의 뒤로 다가와 어깨에 숄을 둘러주는 어머니의 손을 살짝 잡았다.

 

 

 

하연의 몸도 마음도 모두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되었던 지난 3월로부터 벌써 2달 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오늘 태윤이 올라온대."

 

 

 

하연의 쓸쓸하지만 고요했던 표정이 흔들렸다.

 

 

 

[오지 말라고 하세요. 안볼꺼야.]

 

 

 

아직 하연의 목소리는 주인에게로 돌아오지 못했다. 하연은 늘 작은 수첩과 연필을 들고 다녔다.

 

 

 

"하지만...벌써 저기 오고 있는걸."

 

 

 

살이 빠져서 좀 날카로워진 태윤이 회사에서 바로 왔는지 타이만 푼 채 백합을 들고 하연에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지난 두달 동안 태윤은 맹렬한 기세로 G그룹에 대항해 일을 했다. 아직은 버겁지만 조금씩 틀을 잡아가는 그 비참할 정도로 바쁜 시간 속에서도 태윤은 이틀에 한번씩 하연을 찾았다.

 

 

 

태윤을 보는 것도 태윤이 자신을 만지는 것도 싫어하는, 발작증세를 보이는 하연 때문에 그녀가 잠든 침대를 지키다 돌아가는 일도 많았지만 태윤은 한번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기분 어때? 내가 와서 또 화난거야?"

 

 

 

말없이 집 쪽으로 걸어가려는 하연에게 태윤이 말을 건냈다. 하연은 말없이 걸음을 빨리하며 집쪽으로 향하다 걸음이 꼬여서 넘어져버렸다.

 

 

 

"이제 그만 거부하면 안될까?"

 

 

아픈 미소를 지으며 태윤이 하연을 들어 집안으로 들어섰다. 잠시 동안 내려놓으라는 듯 버둥대던 하연은 지쳤는지 태윤에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나 지금 다시 내려가봐야돼."

 

 

 

식사 후 방으로 올라간 하연에게 태윤이 찾아와 말했다. 하연은 그런 그를 잠시 보고 다시 몸을 돌렸다.

 

 

 

"잠시만 얘기하자."

 

 

 

작은 한숨을 쉬던 태윤이 방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왔다. 하연은 유리창에 비친 태윤이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것을 보며 떨림을 숨기기 위해 애써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나 언제까지 더 기다려야 하니? 너 없이는 더이상 힘들어."

 

 

 

애원하는 듯한 태윤의 목소리. 하연은 귀를 막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와 만나는 거 싫어. 고통스러워. 보고 싶지 않아.]

 

 

 

하연은 재빨리 수첩에 휘갈겨썼다. 태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하연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글을 읽고 드는 태윤의 눈동자는 상처투성이였다.

 

 

 

그 눈이 보기 고통스러워서 하연은 몸을 다시 돌리려했지만 태윤이 자신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웠다.

 

 

 

"제발......마음에 없는 말하며 너를, 나를 괴롭히지마."

 

 

 

고개를 돌리는 하연을 얼굴을 잡은 태윤이 하연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온몸이 으스러질 듯 껴안은 태윤의 강한 팔, 뜨거운 입술에 하연의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고통스러우면서도 달콤한 느낌. 온몸의 세포가 다시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도톰하게 부풀어오른 입술을 살짝 깨물며 태윤이 말했다.

 

 

 

"하연아......제발..사랑해.......돌아와줘.........."

 

 

 

[돌아가줘, 제발.. 나도 너무 힘들어.]

 

 

 

하연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하연의 큰 눈동자에 눈물이 가득 차올라 이윽고 떨어지는 것을 보며 태윤은 가슴 한쪽이 떨어져 나가는 듯했다. 말없이 태윤은 방문을 열고 나갔다.

 

 

 

 

 

"누나..............형 아직 사랑하면서 왜 그렇게 바보같이 굴어......"

 

 

 

태윤의 차소리가 사라지는가 싶더니 태민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하연은 말없이 눈물을 닦으며 어떻게 왔는지 눈인사를 했다.

 

 

 

"나........다음주 화요일에 영국으로 가. 입학 허가증이 나와서 이번에 정식으로 가는거야."

 

 

 

사고 후 잦은 태민의 방문에 하연은 잠시동안 만이라도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런 태민의 갑작스러운 말에 하연은 잠시 멍하게 있다가 수첩에 글을 적었다.

 

 

 

[축하해. 이제 태민이도 자주 못보겠네.]

 

 

 

태민이 한숨을 쉬며 하연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태민이 눈을 아래로 향하며 하연에게 말했다.

 

 

 

"두 사람 더 시간이 필요하다면, 누나가 영영 형을 포기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잠시 떨어져있어볼래?"

 

 

 

하연은 의아한 표정으로 태민을 바라보았다. 태민이 하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와 함께 영국으로 가자."

 

 

 

 

태민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양가 부모님도 권하신 일이라 막상 하연이 결심하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태윤을 제외한 모든 이는 하연의 출발을 알고 있었다.

 

 

 

월요일 다시 태윤이 찾아왔다. 시선을 피하며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하는 하연을 말없이 바라보던 태윤은 늦은 밤 서울로 향했다. 하연은 태윤의 눈동자를 그의 뜨거운 손과 강한 팔을, 단단한 몸을, 쓸쓸한 뒷모습을 모두 눈에 담았다.

 

 

 

 

 

"태민아 잘 다녀와라. 나는 일이 있어서 오늘 공항에는 못나갈 것 같다." 

 

 

 

집을 나서며 태윤은 동생에게 인사를 건냈다. 태민은 무언가를 말할까 망설이다 이내 눈을 아래로 내렸다.

 

 

 

"형, 건강해야해.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집을 나서던 태윤은 다시 태민을 돌아보았다. 먼길을 떠날 동생이라서 그런 걸까 평상시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자식!! 가서도 잘 할 수 있을거야. 여기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고 와."

 

 

 

태윤은 태민의 옷을 만져주고 어깨를 한번 안아주며 웃어보였다. 태민은 보일듯 말듯한 웃음을 지으며 태윤의 윗도리 주머니에 작은 편지봉투를 넣었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태윤에게 태민이 말했다.

 

 

 

"러브레터야. 회사 도착하면 읽어봐. 내가 잘 할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태윤은 회사에 도착해 커피를 마시며 아침일과를 시작했다. 빡빡한 일정에 따라 일을 소화해내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지만 책상 위에 놓인 사진 속의 하연의 웃음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것을 빼앗은 자들에게 복수할 수만 있다면 그런 일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길에 옷을 다시 입은 태윤은 바스라대는 소리에 문득 생각이 나 편지봉투를 꺼내보았다. 단단히 봉해진 편지는 내용물이 많은지 두툼했다.

 

 

 

딸그락 거리는 소리가 나는 걸 들으며 태윤은 자리에 다시 앉아 천천히 편지봉투를 뜯었고 안에 든 내용물을 꺼냈다. 태윤은 손바닥에 떨어진 것을 보고 몸을 곧추세웠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신혼여행 때 루쩨른에서 산 하연의 시계가 태윤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태윤은 황급히 종이를 펴보았다. 또박또박 적어내려간 하연의 글이 눈물얼룩과 함께 가득 채워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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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윤아, 네 이름 목소리로 부를 수는 없지만 그 일 이후에도 수없이 많이 불렀다는 거 알고있지?

 

 

잠이 오지 않는 날 밤이면 네 이름을 천번씩, 만번씩 마음으로도 부르고, 종이에도 쓰고 그러다보면 거짓말처럼 네가 왔어.

 

 

먼길을 왔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보고 싶었는데도 한번도 네 품에 안겨보지 못했고 따뜻한 말도 건내지를 못했어.

 

 

내 첫번째 잘못은 너를 완전히 믿지 못한 것이었고, 내 두번째 잘못은 기쁨이를 지키지 못한 것이었어.

 

 

그래서 나는 너를 이렇게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여전히 사랑하면서도 너를 만나면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면 숨이 막힐 거처럼 괴로워져.

 

 

수없이 질문하고 생각해보지. 너를 사랑하는 것이 너를 갖고 싶다고 원한 것이 아버지의 다리나 기쁨이의 생명보다 더 값어치있는 소망이었을까. 대답은 맞다 일때도 있고 아니다 일때도 있어.

 

 

그런 마음으로 널 사랑하고 지킬 수 없다는 걸 느낄 떄마다, 네가 나를 기다리지 못해 곤주를 만나지만 않았다면, 네가 나를 영영 떠나지만 않았다면 하고 너를 원망하게 되고 또 그런 내가 싫어져서 슬퍼지곤 해.

 

 

사랑하지만 함께 있는 것이 고통스럽다면 그건 사랑이 맞을까. 너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생각을 하면 숨도 쉴 수 없을만큼 괴로워져.

 

 

우리 예전에 함께 들었던 노래 중에 그런 노래가 있었지. 클래식이었나 그 영화를 보며 나를 울게 만들었던 노래가 있었잖아.

 

 

너무 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란 가사의....

 

 

태윤아... 사랑해. 너무나 사랑해....

 

 

하지만 나의 사랑은, 너의 사랑은 너무 깊은 사랑이었나봐.

 

 

나 너에게 받는 사랑에만 취해서 흔들리고 고통스러워하고 휘둘리고 싶지 않아.

 

 

나 떠날꺼야. 몇년이 될지 나도 잘 모르겠어.

 

 

나 혼자 힘으로 뚜벅뚜벅 걸어서 너에게 갈 수 있을 때까지, 어떤 일이 생겨도 너의 반쪽으로 책임질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너에게 돌아가지 않을꺼야.

 

 

사랑하니까.. 더욱 강해지고 싶고 혼자서 똑바로 서고 싶어.

 

 

나 이해할 수 있니?

 

 

나 기다려 줄 수 있니?

 

 

사랑해, 태윤아.

 

 

미안해, 태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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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님과의 로맨스 [18] 너무 깊은 사랑은 두사람 결국은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기쁨이도 하늘로 갔구요.

 

 슬픈 내용 저도 쓰기 싫지만 이 이야기 처음 쓸 떄부터 생각했던 거라 그대로 써나가려구요.

 

 가을 타는 분 많으신데 슬픈 이야기라 죄송해요.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니까 또 기다려주실꺼죠?

 

태윤과 하연의 남은 이야기 계속 사랑해주세요. 오늘도 추천과 답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왕자님과의 로맨스 [18] 너무 깊은 사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