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벗어 던진 묘령은 이름을 운향(雲香)이라 바꾸고는 중림부(中林部)의 운산(雲山)에 기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구해준 음식점 주인과의 인연으로 그곳에서 점원을 하면서 운명을 벗어난 평범한 촌부의 평화로운 일상에 젖어 들고 있었다.
중림부(中林部)는 목진국(木眞國)과 접한 운산(雲山)을 제외하면 사방이 강과 바다로 뒤덮인 반도의 섬인 동시에 중앙대륙의 무역의 중심지였다. 이곳은 자치구로서 중림부의 도독 허백(許柏)은 중립을 선언했으며, 자신과 중림의 백성은 통일국가에 편입 될 것임을 선언했다. 중림부는 제국의 거의 모든 경제를 담당하는 무역의 중심지였으므로 중앙대륙의 모든 국가는 암묵적으로 중림부를 침범하지 않는 것에 합의하고 있었다. 그것은 선대의 라(喇)제국 이전의 전국시대에도 마찬가지 였다. 그곳은 피가 물들지 않아야 할 외국과의 중요한 교역지로서 중림부는 전 중앙대륙의 산업의 8할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한 상업도시이며 동시에 도시국가 였다.
중림부는 각 국 장수들의 휴양지 이기도 했다. 전란으로 피폐해진 장수들의 심신을 달래기 위해 이곳 중림부에는 기생집이 성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각국의 장수들이 그러한 기생집에 모여 들었다. 그렇게 모여든 장수들은 적장이라도 이곳 중림부에서는 절대로 싸우는 일을 금하고 있었다. 때로는 적장끼리 서로 호기를 겨루며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중림부는 그런 곳 이었다.
운향은 어느 날 자신이 일하는 가게 앞에서 초췌한 차림으로 사슬로 봉인된 칼에 몸을 기댄 채 담벽의 그늘에 앉아 있는 한 병사를 목격했다. 그는 누가 보아도 탈영병처럼 보였다. 전란으로 탈영한 병사들이 이곳 중림부로 모여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농사를 짓지 않아도 경제력으로 그 힘이 강대한 이곳에서는 전쟁으로 부족한 노동력을 이렇게 탈영한 병사로 메우고 있었다. 물론, 탈영병은 자신이 국가에서는 참수이지만, 이곳 중림부에서는 귀한 노동력 이므로, 중림부의 도독 허백은 각 국가로부터 어쩌면 탈영병을 지키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 일이었다. 어찌 되었든 일단 중림부로 숨어 든 탈영병에게 아홉 나라는 모두 특별한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었다.
운향은 보름이 넘도록 한 곳에 목석처럼 앉아 있는 병사를 바라 보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그 남자를 바라보는 운향에게 주인이 말 했다.
“운향… 남자라면 많아… 너 정도의 미모라면, 이곳 중림부의 재력가 들이 몰려든다고…”
“아저씨도… 참…”
밤이 되자 운향은 그날의 일과를 마치고 자신이 집이 있는 운산으로 향하려 하고 있었다.
‘저 사람 언제까지 저리고 있을 요량이지…?’
돌연 운향은 음식을 조금 챙겨서 탈영한 병사에게로 갔다. 그리고 그에게 음식을 내어 주었다.
“좀 들어요. 스스로 굶어서 죽을 생각이 없다면… 말이에요.”
“…”
“어서요.”
그러나 그 병사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운향은 그 남자를 자세히 살펴 보았다. 그는 지금 잠들어 있었다.
“…”
그렇게 잠들어 있는 그를 한참 바라보던 운향은 마침내 그를 멀리하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일개 사병 같지는 않은데…’
다음날.
그녀는 산을 내려와 가장 먼저 병사를 살펴 보았다. 그녀가 보기에 버리거나 도둑맞지 않았다면 음식은 모두 먹은 모양이었다.
‘역시, 죽을 생각은 아닌 것 같군…’
그날 저녁 일과를 마친 그녀는 다시 병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일도 안하고 음식을 축 내다니…?”
그때, 보름 동안 땅만 바라보던 병사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 보았다. 병사는 곧 죽을 것처럼 초췌했지만, 눈에는 무언가 모를 큰 악의를 품고 있는 듯 보였다.
“…아하~ 장난 이에요. 아무래도 죽을 생각은 정말 없나 보군요… 난 이곳에 온지 6개월 정도 됐어요. 뭐하면 일자리를 알아봐 줄 수 있어요. 그리고… 싫지 않다면, 일자리를 구하기 전까지 내가 먹여는 주죠. ”
“…”
병사는 아무 말 없이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그 후 며칠 동안 운향은 그 병사에게 음식을 날라 주었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매일 음식을 날라주던 운향이 어느 날 다시 말을 걸었다.
“어떻게 20일 동안 볼일도 보지 않고 그렇게 목석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있을 수 있죠?”
그러나 그녀의 이 장난스러운 말에 병사는 숨이 막힐 정도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당신이라면 잘 알 텐데…”
“…”
병사의 그 물음에 운향은 순식간에 다른 사람으로 변모하려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숨이 막힐 정도의 거대한 살기를 드러냈다.
“당신… 뭐야?”
갑작스럽게 살기를 드러내는 운향에게 병사는 그 기를 못 느낀 것인지 아니면 그 살기마저 제압하는 것인지… 침착하게 대답했다.
“6개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은 손의 굳은살… 잘 발달 된 근육으로 덮인 균형 잡힌 몸매. 장수의 기개. 귀족의 기품 있는 걸음걸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숨길 수 없는 몸 전체에 흐르는 피에 물든 살기…”
“…”
운향은 금방이라도 다시 묘령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병사의 다음 말이 이러한 모든 불안감을 일소해 버렸다.
“…어디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운명을 거부하고 촌부로 살기로 한 모양이군…”
“…!”
그의 이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말 문을 닫은 채… 한 시간 여를 침묵한 채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운향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물음에 다시 긴 침묵이 흐른 뒤에야 병사가 대답했다.
“나도 이제 그래야 할 것 같군요.”
“한가지 묻죠.”
“뭐죠?”
“철근으로 봉인한 당신의 검…”
“…”
“영원히 봉인할 수 있나요?”
“…”
“대답해요.”
“…네”
그녀는 그의 대답을 듣고는 일어났다.
“가죠…”
“…”
“제… 집으로…”
그 병사는 운명에 이끌리듯 조용히 운향을 따라 나섰다.
“그런데 이름이 뭐죠?”
“이젠… 무(誣)라 해야 할 것 같소…”
“무(誣)… 라…”
운향은 깊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미소는 심연 깊은 곳에서 배어 나오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몇 개월 후.
운향과 무는 중림부에서 혼인을 했다. 그렇게 해서 둘은 한 아들을 둔 부모가 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제 아들 비(飛)가 10살이 되는 해가 되었고, 두 사람은 운명을 거부하고, 과거를 봉인한 채 완전한 평민이 되었다.
영웅 (1부 1막 : 묘령(昴靈)의 추억 #11)
제국력(帝國曆) 1316년
운명을 벗어 던진 묘령은 이름을 운향(雲香)이라 바꾸고는 중림부(中林部)의 운산(雲山)에 기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구해준 음식점 주인과의 인연으로 그곳에서 점원을 하면서 운명을 벗어난 평범한 촌부의 평화로운 일상에 젖어 들고 있었다.
중림부(中林部)는 목진국(木眞國)과 접한 운산(雲山)을 제외하면 사방이 강과 바다로 뒤덮인 반도의 섬인 동시에 중앙대륙의 무역의 중심지였다. 이곳은 자치구로서 중림부의 도독 허백(許柏)은 중립을 선언했으며, 자신과 중림의 백성은 통일국가에 편입 될 것임을 선언했다. 중림부는 제국의 거의 모든 경제를 담당하는 무역의 중심지였으므로 중앙대륙의 모든 국가는 암묵적으로 중림부를 침범하지 않는 것에 합의하고 있었다. 그것은 선대의 라(喇)제국 이전의 전국시대에도 마찬가지 였다. 그곳은 피가 물들지 않아야 할 외국과의 중요한 교역지로서 중림부는 전 중앙대륙의 산업의 8할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한 상업도시이며 동시에 도시국가 였다.
중림부는 각 국 장수들의 휴양지 이기도 했다. 전란으로 피폐해진 장수들의 심신을 달래기 위해 이곳 중림부에는 기생집이 성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각국의 장수들이 그러한 기생집에 모여 들었다. 그렇게 모여든 장수들은 적장이라도 이곳 중림부에서는 절대로 싸우는 일을 금하고 있었다. 때로는 적장끼리 서로 호기를 겨루며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중림부는 그런 곳 이었다.
운향은 어느 날 자신이 일하는 가게 앞에서 초췌한 차림으로 사슬로 봉인된 칼에 몸을 기댄 채 담벽의 그늘에 앉아 있는 한 병사를 목격했다. 그는 누가 보아도 탈영병처럼 보였다. 전란으로 탈영한 병사들이 이곳 중림부로 모여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농사를 짓지 않아도 경제력으로 그 힘이 강대한 이곳에서는 전쟁으로 부족한 노동력을 이렇게 탈영한 병사로 메우고 있었다. 물론, 탈영병은 자신이 국가에서는 참수이지만, 이곳 중림부에서는 귀한 노동력 이므로, 중림부의 도독 허백은 각 국가로부터 어쩌면 탈영병을 지키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 일이었다. 어찌 되었든 일단 중림부로 숨어 든 탈영병에게 아홉 나라는 모두 특별한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었다.
운향은 보름이 넘도록 한 곳에 목석처럼 앉아 있는 병사를 바라 보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그 남자를 바라보는 운향에게 주인이 말 했다.
“운향… 남자라면 많아… 너 정도의 미모라면, 이곳 중림부의 재력가 들이 몰려든다고…”
“아저씨도… 참…”
밤이 되자 운향은 그날의 일과를 마치고 자신이 집이 있는 운산으로 향하려 하고 있었다.
‘저 사람 언제까지 저리고 있을 요량이지…?’
돌연 운향은 음식을 조금 챙겨서 탈영한 병사에게로 갔다. 그리고 그에게 음식을 내어 주었다.
“좀 들어요. 스스로 굶어서 죽을 생각이 없다면… 말이에요.”
“…”
“어서요.”
그러나 그 병사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운향은 그 남자를 자세히 살펴 보았다. 그는 지금 잠들어 있었다.
“…”
그렇게 잠들어 있는 그를 한참 바라보던 운향은 마침내 그를 멀리하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일개 사병 같지는 않은데…’
다음날.
그녀는 산을 내려와 가장 먼저 병사를 살펴 보았다. 그녀가 보기에 버리거나 도둑맞지 않았다면 음식은 모두 먹은 모양이었다.
‘역시, 죽을 생각은 아닌 것 같군…’
그날 저녁 일과를 마친 그녀는 다시 병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일도 안하고 음식을 축 내다니…?”
그때, 보름 동안 땅만 바라보던 병사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 보았다. 병사는 곧 죽을 것처럼 초췌했지만, 눈에는 무언가 모를 큰 악의를 품고 있는 듯 보였다.
“…아하~ 장난 이에요. 아무래도 죽을 생각은 정말 없나 보군요… 난 이곳에 온지 6개월 정도 됐어요. 뭐하면 일자리를 알아봐 줄 수 있어요. 그리고… 싫지 않다면, 일자리를 구하기 전까지 내가 먹여는 주죠. ”
“…”
병사는 아무 말 없이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그 후 며칠 동안 운향은 그 병사에게 음식을 날라 주었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매일 음식을 날라주던 운향이 어느 날 다시 말을 걸었다.
“어떻게 20일 동안 볼일도 보지 않고 그렇게 목석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있을 수 있죠?”
그러나 그녀의 이 장난스러운 말에 병사는 숨이 막힐 정도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당신이라면 잘 알 텐데…”
“…”
병사의 그 물음에 운향은 순식간에 다른 사람으로 변모하려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숨이 막힐 정도의 거대한 살기를 드러냈다.
“당신… 뭐야?”
갑작스럽게 살기를 드러내는 운향에게 병사는 그 기를 못 느낀 것인지 아니면 그 살기마저 제압하는 것인지… 침착하게 대답했다.
“6개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은 손의 굳은살… 잘 발달 된 근육으로 덮인 균형 잡힌 몸매. 장수의 기개. 귀족의 기품 있는 걸음걸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숨길 수 없는 몸 전체에 흐르는 피에 물든 살기…”
“…”
운향은 금방이라도 다시 묘령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병사의 다음 말이 이러한 모든 불안감을 일소해 버렸다.
“…어디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운명을 거부하고 촌부로 살기로 한 모양이군…”
“…!”
그의 이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말 문을 닫은 채… 한 시간 여를 침묵한 채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운향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물음에 다시 긴 침묵이 흐른 뒤에야 병사가 대답했다.
“나도 이제 그래야 할 것 같군요.”
“한가지 묻죠.”
“뭐죠?”
“철근으로 봉인한 당신의 검…”
“…”
“영원히 봉인할 수 있나요?”
“…”
“대답해요.”
“…네”
그녀는 그의 대답을 듣고는 일어났다.
“가죠…”
“…”
“제… 집으로…”
그 병사는 운명에 이끌리듯 조용히 운향을 따라 나섰다.
“그런데 이름이 뭐죠?”
“이젠… 무(誣)라 해야 할 것 같소…”
“무(誣)… 라…”
운향은 깊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미소는 심연 깊은 곳에서 배어 나오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몇 개월 후.
운향과 무는 중림부에서 혼인을 했다. 그렇게 해서 둘은 한 아들을 둔 부모가 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제 아들 비(飛)가 10살이 되는 해가 되었고, 두 사람은 운명을 거부하고, 과거를 봉인한 채 완전한 평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