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강-30 세월이 빠름을 느끼는건 이곳 사람들 뿐만은 아니었다. 세상의 어느 곳에 어떤 모습으로 있던지 시간은 멈추거나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지영도 알고있었다. 어쩌면 누구에게나 공평한것 한두가지를 꼽으라면 그중 하나가 시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벌써 8개월이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늦가을의 뒷자락에서 밀려들어온 시간이 무더위와 더불어 여름으로 향하고 있었다. 주마등처럼 떠오르던 여인에 대한 그리움도.. 숨을 쉬기 힘들만큼 주위를 감싸고 있는 답답함이나 갑갑함마저 느낄수 없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었다. 고등법원으로 사건이 이송된 이후 3번째 재판이 열리는 날이다. 처음 지방법원에서 처럼 인적사항만을 묻는 첫번째 재판이나, 증인 신청을 하고 간단히 지나가 두번째 재판....수인들은 재판이 있기 일주일전부터 몸과 맘을 정결히하고, 재판이 있는 바로 전날은 뜬눈으로 밤을 새기 일쑤였다. 칭칭 감아맨 포승줄이나 그것도 모질라 두 손의 자유로움을 앗아가버린 수갑따위마저도 아무렇게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5분이든 10분인든 길지않은 시간동안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버릴 수 있다는 희망이 존재하는 이유에서 였다. 지영은 아침일찍부터 분주하게 서둘렀다. 오늘의 증언이 그를 살리고 죽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재판 날들과 달리 나름대로 준비도 철저하게 했다. 허리춤에서 몇장의 메모지를 빼어들었다. 어제 미리 작성해둔 메모가 혹시 하나라도 빠지지 않았는지 쭉 훓어본 후에야 비로서 다시 허리춤에 메모지를 꼿아 넣었다. 둔탁한 쇠소리와 함께 열린 문사이로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충고하였지만 지영의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난 가야해..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 지영은 뒤돌아 보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교도관을 따라나선 운동장 한가운덴 이미 몇몇 사람이 모여있었다. 보안과 직원과 경교대원이 길게 늘어서기 시작한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몸 수색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 모를 탈옥이나 불의의 사고를 대비키 위함이었다. 지영의 차례가 되었다. 경교대의 손이 목과 가슴과 팔을 따라 허리춤으로 향했다. 이윽고 가랭이 사이로 내려가다가 다시 허리춤에 멈추어섰다. [뭐야. 꺼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메모지 인데요] 교도관들이 몰려들었다. 벌써 주위가 어수선해졌다. 지영이 순간 겁을 먹었다. [뭔데? 어떤거야?] 몰려드는 교도관이나 경교대원의 소리가 제법 크고 험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거기 뭔데 그래?] 분위기가 심상치 안은듯 뒷짐을 지고 묵묵하게 바라보고 있던 보안과 계장이 제지하고 나섰다. [이놈이 이런걸 들고있네요?] [줘바.] 경교대원으로 부터 메모지를 넘겨받은 계장이 지영을 바라보았다. [이거 당신꺼야?] [네] 지영은 자신도 들릴듯 말듯한 작은 목소리로 대답 했다. [뭐라고 쓴거야?] [사실은 변호사를 선임할 돈이 없어서....제가 증인한테 뭐좀 물어보고 싶어서...] [.....] 계장은 대답대신 메모지를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강도상해죄로 1심에서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은 피고 김지영입니다. 너무 억울해서 숨을 쉴수가 없어서 이렇게 무례함을 무릅쓰고 글을 올립니다. 이런 사연의 글들이 수십 수백통 올려지겠지만 부디 체념치 마시고 끝까지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가정의 형편이 어려워 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하였습니다. 1심에서는 동거녀가 자신의 방 보증금을 빼고 여기 저기 손을 내밀어 변호인을 선임하였으나 지금은 오직 저 혼자서 모든 일들을 처리하여야 하기에, 적법한 절차가 아닌줄 알면서도 이 방법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국가에서 선임해준 변호인이 있기는 하지만 그 변호인과 한번의 대화도 없던 까닭에 스스로 도움을 구할 수 밖에 없어서 저를 변호하지 않으면 안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기 지난번에 신청한 증인심문서를 함께 올리고저 합니다. 가능하다면 제가 증인에게 직접 질문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상황이 어떤 상황인지..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방법이 맞는거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게 알고있지만 이제 20초반의 인생이 걸린 문제입니 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가야 할 날들이 더 많이 남은 철부지 입니다. 마지막 기회를 주십시요...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계장은 지영을 힐끗 쳐다보았다. 핏기 하나 없는 하얀 얼굴이다. 남자라고 이야기하기에 어딘지 부족해보일만큼 곱상한 얼굴이라고 생각되었다. 계장의 손에 들려진 메모지가 아무런 제지없이 지영의 손에 내밀어졌다. 경교대나 교도관들보다 오히려 당황한건 지영이었다. [잘 해보세요. 나도 지켜볼테니...] 지영은 돌려받은 메모지를 허리춤에 구겨 넣으며 허리굽혀 인사를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는 금방 가라앉았다. 다른때 같으면 창밖의 풍경이나 지나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을 지영이었지만 오늘은 아무것도 보려하지 않았다. 지긋이 눈을 감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듯 흔들림조차 없는 몸은 차가 멈추고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하도를 따라 피고인 대기석에 들어서서도 가만히 눈만 감고 있을 뿐이었다. 이따금 계장과 눈이 마주치곤 했지만 계장은 가벼운 미소로 지영의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앞서 서너 사람이 많게는 20-30분씩 재판을 받는 동안도 지영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어이 김지영] 계장이 종일 눈을 감고 앉아있는 지영을 불렀다. [네?] [느낌이 어때?]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판사가 그거 할 수 있게 해줄까?] [어떤거요?] [증인심문말이야.] [아~네. 모르겠어요. 그냥 운에 맡겨봐야죠] [교도관생활 20년을 했지만 그런 경우를 한번도 본적이 없어서...] [저도 기대는 하지 않지만 저에겐 방법이 없다보니....] [....] 계장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혹시 판사가 거부하게 되면 날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내심 불안하기도 했었다. 그의 말처럼 20여년간 교도관 생활을 하면서 피고가 증인을 소환하고 피고가 직접 변호사인양 증인을 심문하는 경우를 보아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혹시 거부된다면 어찌될지 몰라 이미 경교대에게 몇마디를 해둔 후였다. [9X 고 합 사건번호 XXXXX 피고 김지영] 안에서 지영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지영이 몸을 일으켜세웠다. 긴장하기는 계장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피고들과 달리 3명의 교도관과 계장이 뒤를 따라 들어섰다. 판사의 눈이 지영과 마주쳤다. 지영은 허리춤에서 갱지에 쓰여진 꼬깃한 메모를 펼쳐들었다. 그리고 변호인 쪽으로 걸어갔다. 변호인과 지영이 뭔가 이야기를 나눈후에야 비로소 지영이 판사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판사님 여기..] 판사는 지영을 말없이 바라만 볼 뿐이었다. [지금 드린 메모와 동일한 메모가 제 손에도 있습니다.] 판사는 그제서야 지영으로부터 건네받은 메모를 살피기 시작했다. 지영은 침을 꼴깍였다. 이윽고, [판사님 제가 직접 증인에게 질문할 수 잇도록 해주십시요.] 주심판사가 지영을 빤히 쳐다보았다. 판사는 한동안 그렇게 말이없었다.
애증의강-30
애증의강-30
세월이 빠름을 느끼는건 이곳 사람들 뿐만은 아니었다.
세상의 어느 곳에 어떤 모습으로 있던지 시간은 멈추거나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지영도 알고있었다.
어쩌면 누구에게나 공평한것 한두가지를 꼽으라면 그중 하나가 시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벌써 8개월이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늦가을의 뒷자락에서 밀려들어온 시간이 무더위와 더불어 여름으로 향하고 있었다.
주마등처럼 떠오르던 여인에 대한 그리움도..
숨을 쉬기 힘들만큼 주위를 감싸고 있는 답답함이나 갑갑함마저 느낄수 없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었다.
고등법원으로 사건이 이송된 이후 3번째 재판이 열리는 날이다.
처음 지방법원에서 처럼 인적사항만을 묻는 첫번째 재판이나, 증인 신청을 하고 간단히 지나가 두번째 재판....수인들은 재판이 있기 일주일전부터 몸과 맘을 정결히하고, 재판이 있는 바로 전날은 뜬눈으로 밤을 새기 일쑤였다.
칭칭 감아맨 포승줄이나 그것도 모질라 두 손의 자유로움을 앗아가버린 수갑따위마저도 아무렇게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5분이든 10분인든 길지않은 시간동안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버릴 수 있다는 희망이 존재하는 이유에서 였다.
지영은 아침일찍부터 분주하게 서둘렀다.
오늘의 증언이 그를 살리고 죽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재판 날들과 달리 나름대로 준비도 철저하게 했다.
허리춤에서 몇장의 메모지를 빼어들었다.
어제 미리 작성해둔 메모가 혹시 하나라도 빠지지 않았는지 쭉 훓어본 후에야 비로서 다시 허리춤에 메모지를 꼿아 넣었다.
둔탁한 쇠소리와 함께 열린 문사이로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충고하였지만 지영의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난 가야해..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
지영은 뒤돌아 보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교도관을 따라나선 운동장 한가운덴 이미 몇몇 사람이 모여있었다.
보안과 직원과 경교대원이 길게 늘어서기 시작한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몸 수색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 모를 탈옥이나 불의의 사고를 대비키 위함이었다.
지영의 차례가 되었다.
경교대의 손이 목과 가슴과 팔을 따라 허리춤으로 향했다.
이윽고 가랭이 사이로 내려가다가 다시 허리춤에 멈추어섰다.
[뭐야. 꺼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메모지 인데요]
교도관들이 몰려들었다.
벌써 주위가 어수선해졌다.
지영이 순간 겁을 먹었다.
[뭔데? 어떤거야?]
몰려드는 교도관이나 경교대원의 소리가 제법 크고 험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거기 뭔데 그래?]
분위기가 심상치 안은듯 뒷짐을 지고 묵묵하게 바라보고 있던 보안과 계장이 제지하고 나섰다.
[이놈이 이런걸 들고있네요?]
[줘바.]
경교대원으로 부터 메모지를 넘겨받은 계장이 지영을 바라보았다.
[이거 당신꺼야?]
[네]
지영은 자신도 들릴듯 말듯한 작은 목소리로 대답 했다.
[뭐라고 쓴거야?]
[사실은 변호사를 선임할 돈이 없어서....제가 증인한테 뭐좀 물어보고 싶어서...]
[.....]
계장은 대답대신 메모지를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강도상해죄로 1심에서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은 피고 김지영입니다.
너무 억울해서 숨을 쉴수가 없어서 이렇게 무례함을 무릅쓰고 글을 올립니다.
이런 사연의 글들이 수십 수백통 올려지겠지만 부디 체념치 마시고 끝까지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가정의 형편이 어려워 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하였습니다.
1심에서는 동거녀가 자신의 방 보증금을 빼고 여기 저기 손을 내밀어 변호인을 선임하였으나 지금은
오직 저 혼자서 모든 일들을 처리하여야 하기에, 적법한 절차가 아닌줄 알면서도 이 방법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국가에서 선임해준 변호인이 있기는 하지만 그 변호인과 한번의 대화도 없던 까닭에 스스로 도움을
구할 수 밖에 없어서 저를 변호하지 않으면 안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기 지난번에 신청한 증인심문서를 함께 올리고저 합니다.
가능하다면 제가 증인에게 직접 질문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상황이 어떤 상황인지..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방법이 맞는거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게 알고있지만 이제 20초반의 인생이 걸린 문제입니
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가야 할 날들이 더 많이 남은 철부지 입니다.
마지막 기회를 주십시요...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계장은 지영을 힐끗 쳐다보았다.
핏기 하나 없는 하얀 얼굴이다.
남자라고 이야기하기에 어딘지 부족해보일만큼 곱상한 얼굴이라고 생각되었다.
계장의 손에 들려진 메모지가 아무런 제지없이 지영의 손에 내밀어졌다.
경교대나 교도관들보다 오히려 당황한건 지영이었다.
[잘 해보세요. 나도 지켜볼테니...]
지영은 돌려받은 메모지를 허리춤에 구겨 넣으며 허리굽혀 인사를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는 금방 가라앉았다.
다른때 같으면 창밖의 풍경이나 지나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을 지영이었지만 오늘은 아무것도 보려하지 않았다. 지긋이 눈을 감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듯 흔들림조차 없는 몸은 차가 멈추고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하도를 따라 피고인 대기석에 들어서서도 가만히 눈만 감고 있을 뿐이었다.
이따금 계장과 눈이 마주치곤 했지만 계장은 가벼운 미소로 지영의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앞서 서너 사람이 많게는 20-30분씩 재판을 받는 동안도 지영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어이 김지영]
계장이 종일 눈을 감고 앉아있는 지영을 불렀다.
[네?]
[느낌이 어때?]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판사가 그거 할 수 있게 해줄까?]
[어떤거요?]
[증인심문말이야.]
[아~네. 모르겠어요. 그냥 운에 맡겨봐야죠]
[교도관생활 20년을 했지만 그런 경우를 한번도 본적이 없어서...]
[저도 기대는 하지 않지만 저에겐 방법이 없다보니....]
[....]
계장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혹시 판사가 거부하게 되면 날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내심 불안하기도 했었다.
그의 말처럼 20여년간 교도관 생활을 하면서 피고가 증인을 소환하고 피고가 직접 변호사인양 증인을 심문하는 경우를 보아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혹시 거부된다면 어찌될지 몰라 이미 경교대에게 몇마디를 해둔 후였다.
[9X 고 합 사건번호 XXXXX 피고 김지영]
안에서 지영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지영이 몸을 일으켜세웠다.
긴장하기는 계장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피고들과 달리 3명의 교도관과 계장이 뒤를 따라 들어섰다.
판사의 눈이 지영과 마주쳤다.
지영은 허리춤에서 갱지에 쓰여진 꼬깃한 메모를 펼쳐들었다.
그리고 변호인 쪽으로 걸어갔다.
변호인과 지영이 뭔가 이야기를 나눈후에야 비로소 지영이 판사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판사님 여기..]
판사는 지영을 말없이 바라만 볼 뿐이었다.
[지금 드린 메모와 동일한 메모가 제 손에도 있습니다.]
판사는 그제서야 지영으로부터 건네받은 메모를 살피기 시작했다.
지영은 침을 꼴깍였다.
이윽고,
[판사님 제가 직접 증인에게 질문할 수 잇도록 해주십시요.]
주심판사가 지영을 빤히 쳐다보았다.
판사는 한동안 그렇게 말이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