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준에 대한 한필중의 눈치가 예전과 다름을 느끼고 있던 김종두가 말없이 술잔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동준에게 그것을 털어놓았다.
“요즘 사장님 좀 이상한 것 같다.”
“뭐가...?”
“사실 이번일도 굳이 너 아니라도 할 놈이 없지 않은데...전 같으며 너 부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두 번 생각지도 않고 너한테 믿기라고 하셨다. 너 혹시 무슨.....”
“형 쓸 때 없이 예민한 거 여전하네.”
“그런가..?”
동준이 사람 좋은 얼굴로 종두를 응시했다. 할 수만 있다면 예전처럼 그렇게 모여서 뒹굴며 살아보고 싶었다. 이미 거친 세월을 살아내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 순간 종두를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리고 그 시절이 그리웠다.
“너 마음 내키지 않으면 내가 할게.”
“쓸 때 없는 짓 하지마 형. 어차피 오물에 손 담궈야 하는 일인데 뭐 하러 둘씩이나 그래. 그냥 신경 끊어.”
“형...나 갈게.”
“그래......내일 저녁에 술 한 잔 하자.”
“응..”
동준이 오후에 클럽으로 돌아와 녹초가 되도록 땀을 흘리고 있었다. 한 시간 동안 런닝을 해 물에서 금방 빠져나온 사람처럼 땀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쉬지 않고 회원들과 연달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무런 감정도 묻어 있지 않은 그를 지켜보던 진서의 가슴이 불안해지고 있었다. 세게임을 연달아 뛰고 나와 거친 숨을 몰아쉬는 동준의 곁으로 다가선 진서가 보다 못해 입을 열었다.
“그만 해요. 일주일도 넘게 운동 쉬었어요. 갑자기 이르면 근육통 와요.”
동준이 축축이 젖은 얼굴로 진서를 올려다보았다. 큰 표현을 내 보이지 않던 그 얼굴에 걱정스런 빛이 묻어 있었다. 말하지 않는 그 마음이 동준에게 느껴져 문득 숨 막이는 그것을 토해내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을 들었다.
“.....이것도.....투정인 모양이다...니가 받아줄래.”
동준의 눈을 깊숙이 바라보고 있는 그 검은 바다가 출렁이고 있었다. 몸이 다 자라버린 어린 남자의 가슴이 두려움에 한껏 몸을 사려 웃고 있는 얼굴 뒤로 손을 내미는 간절함이 보이고 있었다.
동준이 샤워를 하고 전신이 노근한 몸으로 사무실에 들어왔다. 소파에 기대 눈을 감아버린 그를 온 신경으로 보라보고 있던 진서가 자꾸 생겨나고 있는 두려움을 밀어내려는 듯 밝은 얼굴로 장난을 걸었다.
“동준아!......심심하다.”
눈을 뜨지 않은 채 그 말을 들은 동준이 멈칫하며 짓누르든 생각들의 중간에서 고개를 돌렸다.
“동준아!.....놀자.”
또 다시 내 뱉는 진서의 말에 동준이 천천히 눈을 떠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미소가 입가에 걸려 동준이 거짓말처럼 다른 생각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동준에게 눈을 때고 있지 않던 진서가 다시 시원한 웃음을 내 보이며 말을 했다.
“동준아!....심심하다........놀자.”
어느 순간 진서의 얼굴에 번져있던 미소가 동준에게 옮겨져 있었다. 애쓰지 않아도 그 한번의 웃음으로 동준이 품었던 짐들을 내려놓았다.
“놀자...그래.”
“왜 이러는 건데요?”
“내가 어떤데..?”
“저녁 먹어요. 먹으면 기분이 좀 풀릴지도 모르는데.”
“무식한 놈 배부르고 등 따시면 편하다는 말이니?”
동준의 말에 진서가 새치름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정리하던 회원카드를 파일에 담아 덮은 후 동준에게로 다가갔다. 허리를 굽혀 그 얼굴 가까이로 자신의 얼굴을 가져갔다.
“이건 무슨 시윈데요....무조건 무게 잡고 사람 말 물어뜯는 거 유치하지 않나.”
갑작스러운 진서의 행동에 동준이 놀라 도리어 몸을 뒤로 빼며 눈을 크게 떴다. 그런 동준의 행동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든 듯 진서가 더 가까이 다가서며 얼굴빛까지 심각하게 변해 말을 했다.
“어떻게 할까요. 뭐하구 놀까.....키스 할까요?”
동준이 크게 뜬 눈에 당혹스러움이 몰려 와 말까지 더듬거렸다.
“뭐...뭐야.....너......너 변태야.”
코끝까지 맡 닿은 그 눈이 동준의 눈 속에 비치고 있었다. 뜨거운 호흡까지 그대로 느껴져 장난을 걸었던 동준이 도리어 놀라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그만해라.....사람들 본다.”
진서가 그 입 꼬리를 크게 올리며 소리 없이 승리의 미소를 담고 있었다.
“그러니까......함부로 태클 걸지 말아요. 확....덥쳐 버릴지도 모르니까.”
“넌.....너 도대체 날 뭘로 보는 건데.......뭐로 보여서 이렇게 하는 건데?”
진서가 몸을 돌려 데스크로 오자 유리 박으로 지켜보고 있던 김주현이 겸연쩍어 하며 진서에게 라켓을 흔들어 보였다. 클럽에 들어서면서부터 계속 진서에게 신경을 쓰고 있던 그였다. 사무실안에서 연출된 장면에 마음이 불편했던지 그 얼굴이 경직돼 있어 늘 보였던 미소가 사라지고 없었다.
진서가 라켓을 들고 사무실을 나가 그에게로 다가가자 그 불편함을 숨기지 못하던 김주현이 딱딱한 말을 흘려냈다.
“진서씨....동준이하고 벌써 그렇게 가까워 졌어요?”
“그냥 한번 놀려줬어요. 자꾸 장난을 걸어요......”
김주현이 그 제서야 굳었던 얼굴을 풀고 작게 웃어보였다.
“저녁에 술 한자.....게임 어때요?”
“오늘 나 별로 컨디션 안 좋은데....며칠 잠을 설쳐서 몸이 좀 무거운데...다음에 해도 괜찮죠?”
“.......그럼.....그냥 내가 한잔 살게요. 전번에 점심 얻어먹은 것도 있고..”
진서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동준이 라켓을 들고 두 사람에게도 다가왔다. 진서와 몇 번 게임을 한 후 유별나게 친근함을 표하는 김주현의 행동이 계속 마음에 걸리고 있었다.
“왜......선수 없냐? 그럼 나하고 한 게임 하자. 그냥 하면 재미없잖아. 뭐라도 한번 걸어봐라.”
“임마....나한테 얻어먹는 술 지겹지도 않냐.”
김주현이 동준과의 게임에서 늘 술을 사고 있었다. 클럽에서 몇 안 되는 맞수라 술을 사도 그렇게 아까울 것을 없었다. 하지만 진서가 보고 있다는 것이 부담스러워 동준과의 게임에 선뜻 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 좀 전에 진서한테 데이트 신청했지?”
“아니....뭐....데이트라도 보다 전번에 점심 얻어먹은 것도 있고 해서 저녁에 시원하게 맥주한잔 하자고...”
“너 이기면 지금 바로 퇴근시켜준다. 그거면 할만 하냐?”
동준이 진서의 의향은 묻지도 않고 내기의 약속을 정했다. 아주 잠시 진서의 얼굴에 불편한 빛이 스쳤지만 동준이 코트로 들어가 버려 그것을 보지 못했다. 코트로 들어간 두 사람이 가볍게 몸을 풀고 있다 진서가 포인트 좌석에 앉자 김주현이 눈짓으로 플레이를 알렸다.
김주현이 처음부터 강한 써브로 동준의 기세를 제압하려 하고 있었다. 김주현을 맞은 동준이 조급하지 않은 강한 스윙이 오랜 구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고 길게 내뻗는 여유로운 스탭에 상대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진서가 클럽에 온 날 이후 제대로 운동을 하고 있지 않은 그였다. 그런데다가 오후에 나갔다 온 후 녹초가 되도록 몸을 괴롭혀 힘의 거의모두 소진된 상태였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두 세 시간을 몸을 풀며 게임을 해오든 김주현의 비해 움직임이 무거운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먼저 두 포인트 잃은 동준의 어깨에 힘이 들고 있었고 반면 자신감이 오른 김주현의 몸이 한층 더 가볍고 강하게 공을 쳐대고 있었다. 두 점차로 첫 세트를 내주고 나온 동준의 셔츠가 축축이 젖어 있었다. 한번도 김주현을 자신의 상대라 여기지 않았던 탓으로 내심 별 뜻 없던 게임에 기분이 상하고 있었다.
코트를 나오던 동준이 괜히 겸연쩍어 진서를 보며 한마디를 던졌다.
“진서야...어쩌냐...아무래도 오늘 게임...밀리는데...”
“스포츠는 신력만 믿는 오만한 인간을 그냥 두지 않죠.”
옆에서 듣고 있던 김주현이 싱글거리며 진서를 한번 보고는 다시 코트로 들어갔다. 동준이 그 말을 내 뱉는 진서의 표정에서 싸늘한 바람을 느꼈다. 전날 밤의 폭주와 그동안의 소홀한 체력관리에 진서의 편치 않은 표정까지 합해져 동준이 결국 두 번째 세트도 김주현에게 내주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코트를 나와 진서를 보지 않은 채 샤워실로 온 동준이 생각지 못했던 패전에 신경이 곤두서고 있었다. 뒤 따라 들어온 김주현이 연신 웃음을 자아내며 동준의 그 감정에 하나를 보탰다.
“우리 바로 나가도 돼지?”
“.....진서는 뭐라고 했는데?”
“근사한데 가서 사주고 싶었는데...여기 앞에 포장마차 가자고 하네. 첨에 얘기했을 때도 컨디션 별로 안 좋다고 했거든..”
“.....그랬었어?”
“그래서 오늘 게임도 안했잖아. 오늘은 그냥 간단하게 해야겠다.”
동준이 샤워실에서 나와 사무실로 들어왔다. 진서가 옷을 갈아입고 작은 얼굴에 창이 큰 모자를 눌러 쓰고 있었다. 눈치를 살피던 동준이 눈을 가려버린 진서를 힐끔거리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묻지도 않고 그런 약속해서 화났냐?”
“팔.....괜찮아요? 벽에 심하게 부딪힌 거 같은데.”
자신에게 화가 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동준이 진서의 그 말에 마음이 놓이면서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싸늘한 느낌을 읽었는데도 자신에게 내 보이지 않으려는 듯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 자식...오늘 무슨 신들린 듯이 날뛰고 그러내.”
아무런 감정도 내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이상했던 동준이 괜시리 미안한 마음을 그렇게 둘러대고 있었다.
또 다시 빙긋이 웃는 그 얼굴 -
눈이 보이지 않았으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 그것으로 진서가 웃고 있음을 알았다. 동준이 처음으로 웃고 있는 진서를 보면서 쓰라린 느낌 하나를 가졌다. 무엇인지 알 수 없으면서도 자신을 향해 웃는 그것이 보이는 그대로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란히 나가는 두 사람을 보면서 동준이 게임을 후회하고 있었다. 거의 모든 약속들을 깨버리면서까지 클럽을 지키고 있는 자신이 무색해 지고 있었다. 덩그러니 남아 하릴없이 신문을 펼치고 있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TV를 켰다. 혼자였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 11년 전 부산
술김이라 해도 자신이 한일이 아님을 뻔히 알면서도 김홍필이 빠져나길 길이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다시 들어가면 남은 생의 반을 그대로 감방에서 썩어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누구 한사람 그를 구명해줄 한마디를 내뱉는 이가 없었다. 자식에게 평생 짐을 지우고 살다 결국 살인혐의의 오명까지 지우게 된 김홍필이 자신이 받을 억울함보다 그것이 더 쓰라리고 아팠다.
“내가 이래 들어가도 내가 한 일이 아이다. 세상이 더러바서...내가 지금꺼지 잘몬살아서 억울한거 하소연도 몬하지만 동준아.....내가 아이다.”
“안다. 알고 있다. 아버지가 아닌 거 알고 있다.”
“미안하다. 동준아! 평생 니한테 짐만 대다가...”
그 눈에 퍼런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이미 어린 그 가슴에 더러운 세상의 오물이 그대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 밤 동준이 김조환 찾아갔다. 김조환이 어린 동준의 눈빛에서 섬뜩한 한기를 느꼈다.
“애비 닮아서 눈은 살아있네. 자석!”
“아버지가 아인 거 압니더. 합의하게 도와주이소.”
“뭘로 합의 할낀데......너거 집에 팔아 묵을 숟가락 몽댕이라도 있나?”
“우짜모 되겠슴니꺼...”
“니 학교 쉬어야 되것다.”
“.....무슨 말씀 입니꺼?”
“뒷일은 내가 알아서 봐줄끼다. 니 애비 일꺼지. 교무실에 가서 니가 했다 캐라. 술 마시고 실수로 그랬다카고....”
동준의 주먹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깁니꺼?...아버지한테 못할 짓 한기 이거 때문이었습니꺼?
“오늘 뿌이 없다. 너거 아버지 이대로 두모 바로 넘어간다. 이번에 들어가모 남은 반평생은 몬 나온다. 간도 안 좋은데 늙어서 그래 들어가 있으며 되것나.”
“........”
“니 잠시 고생하모 알아서 빼줄끼다. 그라고 니 애비 걱정 없이 등 따시게 사는 것도 책임 질끼다.”
“할깁니다. 하지예.”
동준이 시퍼렇게 굳어가는 가슴을 내려 앉히며 김조환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래도 이거 하나는 알아 두이소. 아무것도 아닌 기 제일 무섭다는 거. 사장님 지금 가진 거 늘 지킬 수 있을 거라 장담하지 마이소. 지금 지는 아무것도 아입니더. 그래서 한번 무릎 꿇습니더. 근데.....아무것도 아인 제가 뭣이 데서 사장님 앞에 다시 나타날지 언젠가는 다시 보게 될 깁니다. 무엇으로라도 다시......보게 될 깁니더.”
어린 동준이 내 뱉는 말에 김조환이 가슴이 서늘했다. 자신의 핏줄이라 전전긍긍하며 뒤처리를 하고 다녔지만 태수와는 그 떡잎부터가 다른 것임을 느끼고 있었다.
- 이홍필이.....니 자석 하나는 똑 뿌르지게 키웠났네.
결국 이것도 니가 이긴기가.
개차반 술주정뱅이로 평생을 나뒹굴던 니가 이것조차도 나를 이긴기가.
그래도 한번 꺼꾸러지면 못일어 나는기 인생이다. 니를 보모 알제. 니 아들도 그리 될끼다.
동준이 교무실로 가기 전 김혁규를 찾아왔다. 박봉인 월급으로도 동준의 모자란 회비를 내주고 있던 그에게 아무 말 없이 일을 터트릴 수는 없었다.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 동준을 보아 김혁규가 불안한 짐작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고?”
“죄송합니더.”
“말해봐라.”
“제가 그랬슴니더.”
김혁규가 말없이 동준의 얼굴을 응시했다. 자신을 보지 못하고 있는 그 눈을 한참동안 보고 있다 무거운 입을 열었다.
“내 보고 말해라. 내 눈 똑바로 보고 말해봐라.”
동준이 차마 김혁규를 보지 못하고 그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북받쳐 오르는 서러움을 참아내고 있었다.
“제가 그랬슴니더.”
“누군지 내가 알고 있다. 밝힐 참이다.”
동준이 놀라 젖은 눈을 들어올려 김혁규를 보았다.
“안됩니더....안됩니더...선생님....아버지가....”
“결국......그거가.....아버지 때문이가?”
“죄송합니더..선생님....죄송합니더.”
김혁규가 그 가슴으로 동준을 끌어 앉았다. 아까운 아이였다. 밑바닥의 환경에서도 곧게 자라난 줄기가 끝없이 빛을 향해 뻗어갈 가지였다.
“안된다....그래 하몬 안 된다. 니 이세상이 한번 낙오되몬 얼마나 혹독한지 아나. 아무리 일어설라꼬 죽을힘을 다해도 끝없이 짓밟히고 망게지는 대다. 니 지금 이래 추락하모....”
“아버지....이대로 보낼 수 없습니더. 이리 살아온 것도 억울한 사람입니더. 엄마 그렇게 보내고 술로라도 버티고 사는 거 나는 한번도 원망해본 적 없슴니더. 다시 이래 억울하게 들어가게 둘 수 없슴니더. 선생님 걱정 압니더. 다시 일어날 깁니더. 꼭 일어나서 선생님께 보여줄 깁니더.”
“동준아!”
“선생님...저한테 하신 거 꼭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절대로 이대로 주저앉아 낙오되지 않을 깁니더.”
동준이 그 일로 이년동안 소년원 신세를 졌다. 동준의 퇴소를 일주일 앞두고 이홍필이 서럽던 생을 부두에서 마감했다. 한겨울 시린 바람에 수주 병을 쥔 채 얼어있던 그를 김혁규가 거두었다. 김조환이 손을 써 소년원 신세를 면하게 해준다던 약속도 이홍필의 뒤를 봐주겠다던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소년원을 나온 동준이 제일 먼저 김조환을 찾아갔다. 사무실을 들어서다 김태수와 마주한 동준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니가....여갠 무슨 일이고?”
“김사장 만나러 왔다.”
“이새끼가...니 누한테 김사장 이라카노.”
“비키라.”
“니 출소해서 용돈 필요해서 왔나...그기모 아버지까지 안가도 내가 줄 수도 있다.”
김태수가 비아냥거리듯 그 말을 내놓자 동준이 그 멱살을 잡아 이글거리는 눈을 태수의 코 앞에 들이댔다.
“필요하다. 근데....내가 필요한 만큼 니나 김사장이 줄 수 있을지 모르것내.”
바깥의 소란에 문을 열고 나오던 김조환이 동준을 보고 놀라 머뭇거렸다.
“니....벌서....나왔더나.”
“더 썩어야 하는데..벌써 나와서 아쉽습니꺼?”
“아버지 일은 안됐다.”
“내 일은 묻지 않을기라 다짐하고 그 안에서 버텼는데....아버지를 그리 두건 용서안합니더.”
“그건 유감이다. 나도...”
순간 김조환의 얼굴 옆으로 동준의 주먹이 날아들어 뒤에 있던 거울이 괭음을 내며 쏟아져 내렸다.
“아버지....생명 값으로...당신 가진 거 전부다 내가 깨 부셔버릴끼다. 그 말 해주러 왔다. 편하게 지내지 마라. 당신 뒤에 언제라도 칼을 꽂을 내가 있을 끼다. 그러이 편하게 살지 마라.”
“저 놈이..미친 거 아이가.”
이홍필을 잃고 덩그러니 남은 동준을 김혁규가 집으로 데려갔다. 한동안 마음을 잡지 못하고 불량배들과 사고를 치고 다녔으나 그것 또한 넘어서야 할 관문이라 생각해 크게 상관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일년을 그렇게 끓어오르는 용암처럼 자신을 식히지 못하고 꿈틀대던 동준이 어느 순간 다른 방향으로 그 불길을 돌려 잡았다.
검정고시로 마치지 못한 졸업장 따고 다시 일년을 책속에 파묻혀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때 김종두가 군대를 제대하고 나와 동준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 한 지붕 아래서 그렇게 뒹굴며 살아낸 세월만큼 붉은 정이 쌓였다. 피붙이 하나 없이 세상에 던져진 동준이 김혁규와 종두에게 사람의 정을 배웠고 지켜야 할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달아 갔다.
동준이 졸업을 일년 앞두고 종두의 일에 휘말려 한필중을 만났다. 하나를 얻고 전부를 잃어야 하는 위험한 게임이었음을 동준이 세월이 흐르면서 뼈 속까지 새겨 가고 있었다. 김혁규 또한 자신들의 일로 동준이 그 길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 가슴에 한으로 자리해 동준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가슴을 보듬어 않고 있었어도 서로를 보는 것이 괴로운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진서가 김주현과 그렇게 나가 열한시가 넘어 회원들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의식하지 않으려 클럽 안을 청소하고 기구들을 정리하던 동준의 눈이 자꾸 벽시계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열두시가 가까워지면서 부터는 포장마차로 가야할지를 두고 계속 갈등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더 흘러 기다리던 감정에 화기가 섞여 동준의 얼굴이 싸늘하고 굳어가고 있었다. 자신이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 우스운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계에 다 달은 인내가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얼굴에 불그스름한 홍조가 드리워진 진서가 클럽으로 들어섰다. 문이 잠기지 않은 것으로 동준이 있는 것을 알았던지 곧바로 사무실 쪽으로 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직 안 갔어요.”
“너......지금 몇 시야.”
모자 아래로 보이는 진서의 입술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들어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보았다.
“두시네요.”
아무렇지 않게 말해버리는 진서의 대답에 동준의 감정이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내가.....시계 볼 줄 몰라서 지금 묻고 있어?”
잠시 아무 말을 하지 않던 진서가 청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쑥 밀어 넣으며 술기운이 담긴 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 모자에 가린 눈을 들어올려 동준을 똑바로 응시했다.
- 휴~!!
“오늘도 새벽 미팅인가.”
동준이 진서의 말에 갑자기 할말을 잃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을 것 같은 그 태도가 이상하면서도 더 이상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격하게 치솟던 감정이 한순간 제자리를 찾아 싸늘했던 동준의 눈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몸 안 좋다면서.....지금까지 같이 마시고 싶을 만큼 좋았어?”
“그냥.....걱정했다고.....그렇게 말하면 안 되나...늦어서 걱정 됐다고....몸 안 좋은데 많이 마시는 거 신경 쓰였다고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건가?”
흔들리는 눈동자가 동준을 붙잡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서러움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그 눈이 동준의 심장을 서늘하게 했다.
“얼굴 안 좋아 보인다. 들어가서 자라.”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동준이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 얼굴을 보고 있었다. 이미 자신을 다 알고 있는 듯한 그 눈이 자꾸 동준을 흔들고 있었다.
해새복 많이 받으세요.
비나이다 비나이다. 모든 님들께 복..터져라 주시와요...사은품으로 사랑하나 덤으로 주시구요..
환생....<10> 너에게 다가가고 싶다.
동준에 대한 한필중의 눈치가 예전과 다름을 느끼고 있던 김종두가 말없이 술잔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동준에게 그것을 털어놓았다.
“요즘 사장님 좀 이상한 것 같다.”
“뭐가...?”
“사실 이번일도 굳이 너 아니라도 할 놈이 없지 않은데...전 같으며 너 부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두 번 생각지도 않고 너한테 믿기라고 하셨다. 너 혹시 무슨.....”
“형 쓸 때 없이 예민한 거 여전하네.”
“그런가..?”
동준이 사람 좋은 얼굴로 종두를 응시했다. 할 수만 있다면 예전처럼 그렇게 모여서 뒹굴며 살아보고 싶었다. 이미 거친 세월을 살아내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 순간 종두를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리고 그 시절이 그리웠다.
“너 마음 내키지 않으면 내가 할게.”
“쓸 때 없는 짓 하지마 형. 어차피 오물에 손 담궈야 하는 일인데 뭐 하러 둘씩이나 그래. 그냥 신경 끊어.”
“형...나 갈게.”
“그래......내일 저녁에 술 한 잔 하자.”
“응..”
동준이 오후에 클럽으로 돌아와 녹초가 되도록 땀을 흘리고 있었다. 한 시간 동안 런닝을 해 물에서 금방 빠져나온 사람처럼 땀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쉬지 않고 회원들과 연달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무런 감정도 묻어 있지 않은 그를 지켜보던 진서의 가슴이 불안해지고 있었다. 세게임을 연달아 뛰고 나와 거친 숨을 몰아쉬는 동준의 곁으로 다가선 진서가 보다 못해 입을 열었다.
“그만 해요. 일주일도 넘게 운동 쉬었어요. 갑자기 이르면 근육통 와요.”
동준이 축축이 젖은 얼굴로 진서를 올려다보았다. 큰 표현을 내 보이지 않던 그 얼굴에 걱정스런 빛이 묻어 있었다. 말하지 않는 그 마음이 동준에게 느껴져 문득 숨 막이는 그것을 토해내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을 들었다.
“.....이것도.....투정인 모양이다...니가 받아줄래.”
동준의 눈을 깊숙이 바라보고 있는 그 검은 바다가 출렁이고 있었다. 몸이 다 자라버린 어린 남자의 가슴이 두려움에 한껏 몸을 사려 웃고 있는 얼굴 뒤로 손을 내미는 간절함이 보이고 있었다.
동준이 샤워를 하고 전신이 노근한 몸으로 사무실에 들어왔다. 소파에 기대 눈을 감아버린 그를 온 신경으로 보라보고 있던 진서가 자꾸 생겨나고 있는 두려움을 밀어내려는 듯 밝은 얼굴로 장난을 걸었다.
“동준아!......심심하다.”
눈을 뜨지 않은 채 그 말을 들은 동준이 멈칫하며 짓누르든 생각들의 중간에서 고개를 돌렸다.
“동준아!.....놀자.”
또 다시 내 뱉는 진서의 말에 동준이 천천히 눈을 떠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미소가 입가에 걸려 동준이 거짓말처럼 다른 생각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동준에게 눈을 때고 있지 않던 진서가 다시 시원한 웃음을 내 보이며 말을 했다.
“동준아!....심심하다........놀자.”
어느 순간 진서의 얼굴에 번져있던 미소가 동준에게 옮겨져 있었다. 애쓰지 않아도 그 한번의 웃음으로 동준이 품었던 짐들을 내려놓았다.
“놀자...그래.”
“왜 이러는 건데요?”
“내가 어떤데..?”
“저녁 먹어요. 먹으면 기분이 좀 풀릴지도 모르는데.”
“무식한 놈 배부르고 등 따시면 편하다는 말이니?”
동준의 말에 진서가 새치름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정리하던 회원카드를 파일에 담아 덮은 후 동준에게로 다가갔다. 허리를 굽혀 그 얼굴 가까이로 자신의 얼굴을 가져갔다.
“이건 무슨 시윈데요....무조건 무게 잡고 사람 말 물어뜯는 거 유치하지 않나.”
갑작스러운 진서의 행동에 동준이 놀라 도리어 몸을 뒤로 빼며 눈을 크게 떴다. 그런 동준의 행동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든 듯 진서가 더 가까이 다가서며 얼굴빛까지 심각하게 변해 말을 했다.
“어떻게 할까요. 뭐하구 놀까.....키스 할까요?”
동준이 크게 뜬 눈에 당혹스러움이 몰려 와 말까지 더듬거렸다.
“뭐...뭐야.....너......너 변태야.”
코끝까지 맡 닿은 그 눈이 동준의 눈 속에 비치고 있었다. 뜨거운 호흡까지 그대로 느껴져 장난을 걸었던 동준이 도리어 놀라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그만해라.....사람들 본다.”
진서가 그 입 꼬리를 크게 올리며 소리 없이 승리의 미소를 담고 있었다.
“그러니까......함부로 태클 걸지 말아요. 확....덥쳐 버릴지도 모르니까.”
“넌.....너 도대체 날 뭘로 보는 건데.......뭐로 보여서 이렇게 하는 건데?”
진서가 몸을 돌려 데스크로 오자 유리 박으로 지켜보고 있던 김주현이 겸연쩍어 하며 진서에게 라켓을 흔들어 보였다. 클럽에 들어서면서부터 계속 진서에게 신경을 쓰고 있던 그였다. 사무실안에서 연출된 장면에 마음이 불편했던지 그 얼굴이 경직돼 있어 늘 보였던 미소가 사라지고 없었다.
진서가 라켓을 들고 사무실을 나가 그에게로 다가가자 그 불편함을 숨기지 못하던 김주현이 딱딱한 말을 흘려냈다.
“진서씨....동준이하고 벌써 그렇게 가까워 졌어요?”
“그냥 한번 놀려줬어요. 자꾸 장난을 걸어요......”
김주현이 그 제서야 굳었던 얼굴을 풀고 작게 웃어보였다.
“저녁에 술 한자.....게임 어때요?”
“오늘 나 별로 컨디션 안 좋은데....며칠 잠을 설쳐서 몸이 좀 무거운데...다음에 해도 괜찮죠?”
“.......그럼.....그냥 내가 한잔 살게요. 전번에 점심 얻어먹은 것도 있고..”
진서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동준이 라켓을 들고 두 사람에게도 다가왔다. 진서와 몇 번 게임을 한 후 유별나게 친근함을 표하는 김주현의 행동이 계속 마음에 걸리고 있었다.
“왜......선수 없냐? 그럼 나하고 한 게임 하자. 그냥 하면 재미없잖아. 뭐라도 한번 걸어봐라.”
“임마....나한테 얻어먹는 술 지겹지도 않냐.”
김주현이 동준과의 게임에서 늘 술을 사고 있었다. 클럽에서 몇 안 되는 맞수라 술을 사도 그렇게 아까울 것을 없었다. 하지만 진서가 보고 있다는 것이 부담스러워 동준과의 게임에 선뜻 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 좀 전에 진서한테 데이트 신청했지?”
“아니....뭐....데이트라도 보다 전번에 점심 얻어먹은 것도 있고 해서 저녁에 시원하게 맥주한잔 하자고...”
“너 이기면 지금 바로 퇴근시켜준다. 그거면 할만 하냐?”
동준이 진서의 의향은 묻지도 않고 내기의 약속을 정했다. 아주 잠시 진서의 얼굴에 불편한 빛이 스쳤지만 동준이 코트로 들어가 버려 그것을 보지 못했다. 코트로 들어간 두 사람이 가볍게 몸을 풀고 있다 진서가 포인트 좌석에 앉자 김주현이 눈짓으로 플레이를 알렸다.
김주현이 처음부터 강한 써브로 동준의 기세를 제압하려 하고 있었다. 김주현을 맞은 동준이 조급하지 않은 강한 스윙이 오랜 구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고 길게 내뻗는 여유로운 스탭에 상대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진서가 클럽에 온 날 이후 제대로 운동을 하고 있지 않은 그였다. 그런데다가 오후에 나갔다 온 후 녹초가 되도록 몸을 괴롭혀 힘의 거의모두 소진된 상태였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두 세 시간을 몸을 풀며 게임을 해오든 김주현의 비해 움직임이 무거운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먼저 두 포인트 잃은 동준의 어깨에 힘이 들고 있었고 반면 자신감이 오른 김주현의 몸이 한층 더 가볍고 강하게 공을 쳐대고 있었다. 두 점차로 첫 세트를 내주고 나온 동준의 셔츠가 축축이 젖어 있었다. 한번도 김주현을 자신의 상대라 여기지 않았던 탓으로 내심 별 뜻 없던 게임에 기분이 상하고 있었다.
코트를 나오던 동준이 괜히 겸연쩍어 진서를 보며 한마디를 던졌다.
“진서야...어쩌냐...아무래도 오늘 게임...밀리는데...”
“스포츠는 신력만 믿는 오만한 인간을 그냥 두지 않죠.”
옆에서 듣고 있던 김주현이 싱글거리며 진서를 한번 보고는 다시 코트로 들어갔다. 동준이 그 말을 내 뱉는 진서의 표정에서 싸늘한 바람을 느꼈다. 전날 밤의 폭주와 그동안의 소홀한 체력관리에 진서의 편치 않은 표정까지 합해져 동준이 결국 두 번째 세트도 김주현에게 내주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코트를 나와 진서를 보지 않은 채 샤워실로 온 동준이 생각지 못했던 패전에 신경이 곤두서고 있었다. 뒤 따라 들어온 김주현이 연신 웃음을 자아내며 동준의 그 감정에 하나를 보탰다.
“우리 바로 나가도 돼지?”
“.....진서는 뭐라고 했는데?”
“근사한데 가서 사주고 싶었는데...여기 앞에 포장마차 가자고 하네. 첨에 얘기했을 때도 컨디션 별로 안 좋다고 했거든..”
“.....그랬었어?”
“그래서 오늘 게임도 안했잖아. 오늘은 그냥 간단하게 해야겠다.”
동준이 샤워실에서 나와 사무실로 들어왔다. 진서가 옷을 갈아입고 작은 얼굴에 창이 큰 모자를 눌러 쓰고 있었다. 눈치를 살피던 동준이 눈을 가려버린 진서를 힐끔거리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묻지도 않고 그런 약속해서 화났냐?”
“팔.....괜찮아요? 벽에 심하게 부딪힌 거 같은데.”
자신에게 화가 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동준이 진서의 그 말에 마음이 놓이면서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싸늘한 느낌을 읽었는데도 자신에게 내 보이지 않으려는 듯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 자식...오늘 무슨 신들린 듯이 날뛰고 그러내.”
아무런 감정도 내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이상했던 동준이 괜시리 미안한 마음을 그렇게 둘러대고 있었다.
또 다시 빙긋이 웃는 그 얼굴 -
눈이 보이지 않았으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 그것으로 진서가 웃고 있음을 알았다. 동준이 처음으로 웃고 있는 진서를 보면서 쓰라린 느낌 하나를 가졌다. 무엇인지 알 수 없으면서도 자신을 향해 웃는 그것이 보이는 그대로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란히 나가는 두 사람을 보면서 동준이 게임을 후회하고 있었다. 거의 모든 약속들을 깨버리면서까지 클럽을 지키고 있는 자신이 무색해 지고 있었다. 덩그러니 남아 하릴없이 신문을 펼치고 있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TV를 켰다. 혼자였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 11년 전 부산
술김이라 해도 자신이 한일이 아님을 뻔히 알면서도 김홍필이 빠져나길 길이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다시 들어가면 남은 생의 반을 그대로 감방에서 썩어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누구 한사람 그를 구명해줄 한마디를 내뱉는 이가 없었다. 자식에게 평생 짐을 지우고 살다 결국 살인혐의의 오명까지 지우게 된 김홍필이 자신이 받을 억울함보다 그것이 더 쓰라리고 아팠다.
“내가 이래 들어가도 내가 한 일이 아이다. 세상이 더러바서...내가 지금꺼지 잘몬살아서 억울한거 하소연도 몬하지만 동준아.....내가 아이다.”
“안다. 알고 있다. 아버지가 아닌 거 알고 있다.”
“미안하다. 동준아! 평생 니한테 짐만 대다가...”
그 눈에 퍼런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이미 어린 그 가슴에 더러운 세상의 오물이 그대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 밤 동준이 김조환 찾아갔다. 김조환이 어린 동준의 눈빛에서 섬뜩한 한기를 느꼈다.
“애비 닮아서 눈은 살아있네. 자석!”
“아버지가 아인 거 압니더. 합의하게 도와주이소.”
“뭘로 합의 할낀데......너거 집에 팔아 묵을 숟가락 몽댕이라도 있나?”
“우짜모 되겠슴니꺼...”
“니 학교 쉬어야 되것다.”
“.....무슨 말씀 입니꺼?”
“뒷일은 내가 알아서 봐줄끼다. 니 애비 일꺼지. 교무실에 가서 니가 했다 캐라. 술 마시고 실수로 그랬다카고....”
동준의 주먹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깁니꺼?...아버지한테 못할 짓 한기 이거 때문이었습니꺼?
“오늘 뿌이 없다. 너거 아버지 이대로 두모 바로 넘어간다. 이번에 들어가모 남은 반평생은 몬 나온다. 간도 안 좋은데 늙어서 그래 들어가 있으며 되것나.”
“........”
“니 잠시 고생하모 알아서 빼줄끼다. 그라고 니 애비 걱정 없이 등 따시게 사는 것도 책임 질끼다.”
“할깁니다. 하지예.”
동준이 시퍼렇게 굳어가는 가슴을 내려 앉히며 김조환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래도 이거 하나는 알아 두이소. 아무것도 아닌 기 제일 무섭다는 거. 사장님 지금 가진 거 늘 지킬 수 있을 거라 장담하지 마이소. 지금 지는 아무것도 아입니더. 그래서 한번 무릎 꿇습니더. 근데.....아무것도 아인 제가 뭣이 데서 사장님 앞에 다시 나타날지 언젠가는 다시 보게 될 깁니다. 무엇으로라도 다시......보게 될 깁니더.”
어린 동준이 내 뱉는 말에 김조환이 가슴이 서늘했다. 자신의 핏줄이라 전전긍긍하며 뒤처리를 하고 다녔지만 태수와는 그 떡잎부터가 다른 것임을 느끼고 있었다.
- 이홍필이.....니 자석 하나는 똑 뿌르지게 키웠났네.
결국 이것도 니가 이긴기가.
개차반 술주정뱅이로 평생을 나뒹굴던 니가 이것조차도 나를 이긴기가.
그래도 한번 꺼꾸러지면 못일어 나는기 인생이다. 니를 보모 알제. 니 아들도 그리 될끼다.
동준이 교무실로 가기 전 김혁규를 찾아왔다. 박봉인 월급으로도 동준의 모자란 회비를 내주고 있던 그에게 아무 말 없이 일을 터트릴 수는 없었다.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 동준을 보아 김혁규가 불안한 짐작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고?”
“죄송합니더.”
“말해봐라.”
“제가 그랬슴니더.”
김혁규가 말없이 동준의 얼굴을 응시했다. 자신을 보지 못하고 있는 그 눈을 한참동안 보고 있다 무거운 입을 열었다.
“내 보고 말해라. 내 눈 똑바로 보고 말해봐라.”
동준이 차마 김혁규를 보지 못하고 그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북받쳐 오르는 서러움을 참아내고 있었다.
“제가 그랬슴니더.”
“누군지 내가 알고 있다. 밝힐 참이다.”
동준이 놀라 젖은 눈을 들어올려 김혁규를 보았다.
“안됩니더....안됩니더...선생님....아버지가....”
“결국......그거가.....아버지 때문이가?”
“죄송합니더..선생님....죄송합니더.”
김혁규가 그 가슴으로 동준을 끌어 앉았다. 아까운 아이였다. 밑바닥의 환경에서도 곧게 자라난 줄기가 끝없이 빛을 향해 뻗어갈 가지였다.
“안된다....그래 하몬 안 된다. 니 이세상이 한번 낙오되몬 얼마나 혹독한지 아나. 아무리 일어설라꼬 죽을힘을 다해도 끝없이 짓밟히고 망게지는 대다. 니 지금 이래 추락하모....”
“아버지....이대로 보낼 수 없습니더. 이리 살아온 것도 억울한 사람입니더. 엄마 그렇게 보내고 술로라도 버티고 사는 거 나는 한번도 원망해본 적 없슴니더. 다시 이래 억울하게 들어가게 둘 수 없슴니더. 선생님 걱정 압니더. 다시 일어날 깁니더. 꼭 일어나서 선생님께 보여줄 깁니더.”
“동준아!”
“선생님...저한테 하신 거 꼭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절대로 이대로 주저앉아 낙오되지 않을 깁니더.”
동준이 그 일로 이년동안 소년원 신세를 졌다. 동준의 퇴소를 일주일 앞두고 이홍필이 서럽던 생을 부두에서 마감했다. 한겨울 시린 바람에 수주 병을 쥔 채 얼어있던 그를 김혁규가 거두었다. 김조환이 손을 써 소년원 신세를 면하게 해준다던 약속도 이홍필의 뒤를 봐주겠다던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소년원을 나온 동준이 제일 먼저 김조환을 찾아갔다. 사무실을 들어서다 김태수와 마주한 동준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니가....여갠 무슨 일이고?”
“김사장 만나러 왔다.”
“이새끼가...니 누한테 김사장 이라카노.”
“비키라.”
“니 출소해서 용돈 필요해서 왔나...그기모 아버지까지 안가도 내가 줄 수도 있다.”
김태수가 비아냥거리듯 그 말을 내놓자 동준이 그 멱살을 잡아 이글거리는 눈을 태수의 코 앞에 들이댔다.
“필요하다. 근데....내가 필요한 만큼 니나 김사장이 줄 수 있을지 모르것내.”
바깥의 소란에 문을 열고 나오던 김조환이 동준을 보고 놀라 머뭇거렸다.
“니....벌서....나왔더나.”
“더 썩어야 하는데..벌써 나와서 아쉽습니꺼?”
“아버지 일은 안됐다.”
“내 일은 묻지 않을기라 다짐하고 그 안에서 버텼는데....아버지를 그리 두건 용서안합니더.”
“그건 유감이다. 나도...”
순간 김조환의 얼굴 옆으로 동준의 주먹이 날아들어 뒤에 있던 거울이 괭음을 내며 쏟아져 내렸다.
“아버지....생명 값으로...당신 가진 거 전부다 내가 깨 부셔버릴끼다. 그 말 해주러 왔다. 편하게 지내지 마라. 당신 뒤에 언제라도 칼을 꽂을 내가 있을 끼다. 그러이 편하게 살지 마라.”
“저 놈이..미친 거 아이가.”
이홍필을 잃고 덩그러니 남은 동준을 김혁규가 집으로 데려갔다. 한동안 마음을 잡지 못하고 불량배들과 사고를 치고 다녔으나 그것 또한 넘어서야 할 관문이라 생각해 크게 상관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일년을 그렇게 끓어오르는 용암처럼 자신을 식히지 못하고 꿈틀대던 동준이 어느 순간 다른 방향으로 그 불길을 돌려 잡았다.
검정고시로 마치지 못한 졸업장 따고 다시 일년을 책속에 파묻혀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때 김종두가 군대를 제대하고 나와 동준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 한 지붕 아래서 그렇게 뒹굴며 살아낸 세월만큼 붉은 정이 쌓였다. 피붙이 하나 없이 세상에 던져진 동준이 김혁규와 종두에게 사람의 정을 배웠고 지켜야 할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달아 갔다.
동준이 졸업을 일년 앞두고 종두의 일에 휘말려 한필중을 만났다. 하나를 얻고 전부를 잃어야 하는 위험한 게임이었음을 동준이 세월이 흐르면서 뼈 속까지 새겨 가고 있었다. 김혁규 또한 자신들의 일로 동준이 그 길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 가슴에 한으로 자리해 동준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가슴을 보듬어 않고 있었어도 서로를 보는 것이 괴로운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진서가 김주현과 그렇게 나가 열한시가 넘어 회원들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의식하지 않으려 클럽 안을 청소하고 기구들을 정리하던 동준의 눈이 자꾸 벽시계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열두시가 가까워지면서 부터는 포장마차로 가야할지를 두고 계속 갈등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더 흘러 기다리던 감정에 화기가 섞여 동준의 얼굴이 싸늘하고 굳어가고 있었다. 자신이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 우스운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계에 다 달은 인내가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얼굴에 불그스름한 홍조가 드리워진 진서가 클럽으로 들어섰다. 문이 잠기지 않은 것으로 동준이 있는 것을 알았던지 곧바로 사무실 쪽으로 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직 안 갔어요.”
“너......지금 몇 시야.”
모자 아래로 보이는 진서의 입술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들어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보았다.
“두시네요.”
아무렇지 않게 말해버리는 진서의 대답에 동준의 감정이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내가.....시계 볼 줄 몰라서 지금 묻고 있어?”
잠시 아무 말을 하지 않던 진서가 청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쑥 밀어 넣으며 술기운이 담긴 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 모자에 가린 눈을 들어올려 동준을 똑바로 응시했다.
- 휴~!!
“오늘도 새벽 미팅인가.”
동준이 진서의 말에 갑자기 할말을 잃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을 것 같은 그 태도가 이상하면서도 더 이상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격하게 치솟던 감정이 한순간 제자리를 찾아 싸늘했던 동준의 눈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몸 안 좋다면서.....지금까지 같이 마시고 싶을 만큼 좋았어?”
“그냥.....걱정했다고.....그렇게 말하면 안 되나...늦어서 걱정 됐다고....몸 안 좋은데 많이 마시는 거 신경 쓰였다고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건가?”
흔들리는 눈동자가 동준을 붙잡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서러움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그 눈이 동준의 심장을 서늘하게 했다.
“얼굴 안 좋아 보인다. 들어가서 자라.”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동준이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 얼굴을 보고 있었다. 이미 자신을 다 알고 있는 듯한 그 눈이 자꾸 동준을 흔들고 있었다.
해새복 많이 받으세요.
먼길 가시는 님들 조심히 잘 다녀오시구여..
오실때 바리바리 싸오시는 님들은 연유끝나고 좀 나눠주실라나..
국가 경제가 비상시국이라 참으로 걱정이요..
허...사랑도 해야하고 글도 쓰야 하고...이 비상시국의 국가 경제도 돌봐야 하니..
해도 해도 끝이 없닌 이놈의 근심들...
걍..사랑만 하고 살 수는 없는지...
사랑하는 가족들 만나 양껏 정 나누시고 무탈이 상경하시와요...
그럼 설 연유 끝나고...그때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