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 러브송 < 21 >

나비200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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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 문희야, 화내지 마. 너무 나쁘게만 생각할 거 아니잖아. 용준씨는 다 너 좋아서······.

“좋아서 거짓말 하는 사람이라면 필요 없어. 미안해. 채련아, 나 이만 끊을게. 너한테 화난 것도 아닌데 괜히 실수하게 될 것 같아. 그런데 혹시 말 안한 거 더 있니?”

- 아니. 이젠 없어.

“저 말이야, 혹시 윤섭씨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 그야 모르지. 나야 윤섭씨를 만날 일은 없으니까.

“알았어. 오늘은 이만 끊자. 잘 자, 채련아.”


전화를 끊고는 당장 용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용준씨!”


내 목소리에는 상대를 경멸하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


- 문희야. 무슨 일이야? 목소리가 화가 난 거 같아.

“예. 화 난 일이 있었어요. 그리고 이제 제게 반말 하지 마세요.”

- 무슨 일인데? 누가 또 우릴 문희를 괴롭혔어? 내가 혼내줄······.

“이제 그만 좀 해요! 그런 말도 모두 거짓 같다고요. 당신의 말 어떤 것이 진실인지 구분을 할 수가 없어졌어요.”

- 너 나에게 화가 난 거니? 말해 봐. 난 사과를 할 준비가 되어있어.

“어떤 사정인지도 모르고 사과를 할 준비라. 그래서 당신이 진실 되지 않게 느껴지는 거라고요. 당신이 바람둥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어야 했는데. 바람둥이는 여러 마음을 가진 것처럼 여러 진실을 가지는 거죠?”

- 아니야. 이젠. 내 마음은 다 너에게 모아졌다고 했잖아.

“더는 듣기도 싫어요. 이젠 당신을 만나지 않겠어요.”

- 왜? 대관절 왜 그러는지 말해봐.

“정말 분해요. 당신에게 굉장히 화가 많이 나 있다구요.”

- 정말 답답하다. 빨리 말해줘. 무슨 일 때문에 이러는지 알아야 하잖아.

“답답해요? 그거 좋겠네요. 내가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지만 불가능할 일일 테니 당신이 답답해하는 것으로 만족하겠어요. 그것도 꽤 화나는 일일 테니까. 바람둥이라면 가는 여자는 잡지 않겠죠? 다시는 연락도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소리를 치면 개운해질 거라 생각했던 마음은 더 무거워지기만 했다. 


‘윤섭씨······.’


그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 졌던 것이었다.


‘그는 내게 용준을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충고를 했었는데. 그 충고를 믿고 조금 신중히 지켜봤어야 했었어. 결국 그를 믿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야. 이젠 그에게 돌아갈 수도 없잖아. 난 정말 바보 같은 일을 벌이고 만 거라고.’


그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버스는 이미 떠난 후라는 것을 난 알고 있었다. 다시 돌아올 버스가 아니라는 것도.


***


“정말 화 나셨겠어요?”

“응. 사람에게 그렇게 소리 질러 본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어. 회사 일도 화 날 때는 많지만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되더라고.”


점심식사 후 운동도 가지 않고는 혜림이가 건네준 보리차 음료수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렇겠죠. 남자 문제는 엄마랑 싸우거나 친구랑 싸운 거랑은 틀리니까요.”

“혜림씨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근데 이 음료수 너무 닝닝한 것 같아.”

“화나실 땐 자극적인 것보다 가벼운 차가 좋은 거예요, 저도 화날 때면 엄마가 따뜻한 보리차를 끓여주시곤 하셨죠.”

“이건 따뜻하지 않은데?”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나요? 따뜻한 보리차를 마시고 싶지만 이렇게 캔음료수로 대신해야 하는 것이 세상일이잖아요. 대리님도 잘 아시면서.”

“맞아.”


이제 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 세 남자 모두 떠나 버린 것이었다. 내 이상형이라고 했던 윤태씨는 마음에서 떠나버렸고, 용준씨도 보내버렸고, 또 윤섭씨는 내가 몰라본 덕에 놓쳐버렸고. 이 다음에 오는 남자는 또 어떤 남자일까? 따뜻한 보리차를 대신한 캔 음료수처럼 내 이상형과 비슷한 나름대로 만족할만한 남자겠지. 그렇기만 하다면 다행이지, 하며 스스로를 위안해보았다.


‘내게 따뜻한 보리차 같은 남자는 누구였을까? 윤섭씨? 장난기는 있었지만 네게 잘 해주려고 했었는데.’


놓쳐버린 것에 대한 흔한 미련이 날 괴롭혔다.


“대리님이 차버린 거면서 왜 슬픈 표정이에요? 용준씨에게 미련이 남으신 거예요?”

“아니. 아니야. 미련 따위는 없어.”

“이제 슬슬 올라가요. 점심시간이 거의 다 끝났네요.”  


조금은 쓸쓸한 기분으로 사무실로 올라왔다.


***


사무실에서 날 맞이한 것은 책상에 놓인 빨간 장미 꽃다발이었다.


‘윤섭씨가 보낸 건가?’


기대에 들떠 달려가 카드를 확인해 보았지만 용준씨가 보낸 것이었다.


[화나니 무섭던데요. 화 푸세요. 이따 회사 앞으로 갈게요.]


‘칫! 누가 만나준대? 당신 같이 남을 속여 마음 얻는 남자 열 트럭 와도 싫다고.’


그날은 용준씨를 피하기 위해 아프다는 핑계로 남들보다 일찍 퇴근을 해버렸다. 그리고 용준씨가 또 오겠다는 그 다음날도 매장에 나가봐야겠다는 핑계를 만들어 매장에서 바로 퇴근을 했다. 그렇게 며칠동안 용준씨의 전화와 회사 앞으로 와 있는 용준씨를 피해 다녔다. 다시 만나면 바보같이 용서를 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필사적으로 도망을 다녔던 것이었다.


***


“대리님! 또 꽃이 왔어요.”

“뭐야? 또? 이젠 공짜 꽃도 싫다. 그냥 버릴래.”


며칠째 어김없이 출근길을 반겨준 것은 용준씨의 꽃다발이었다.


“그러면 안 돼죠. 사람들이 흉봐요. 과시한다고 생각할 걸요.”

“그렇기도 하겠네. 에이. 몰라. 정말 왜 사람을 귀찮게 하는 거래?”

“진심으로 대리님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 용준이라는 사람.”

“진심? 그 사람 진심이라는 것 없는 사람이야. 매일 꽃을 보내면 내가 이런 식으로 곤란해져 자길 만나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보내는 걸걸. 그 수에 또다시 말리면 그 땐 정말 바보가 되는 거지.”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바람둥이라도 진심이 있을 수는 있는데.”

“아니라니까.”

“만약 진심이라면 마음을 돌려볼 생각은 있으세요?”

“음. 글쎄. 용준씨가 정말 나를 사랑하는 거라면 내게 실수를 한 것도 용서해 줄 수 도 있겠지. 그런데 이젠 그 남자를 믿을 수가 없어. 모든 말이 다 거짓처럼 들리거든.”

“그럼 이건 어때요? 용준씨의 진심을 확인해 보는 거요.”

“진심을 확인한다? 어떻게?”

“좀 힘들지도 모르지만요······.”


썩 마음에 드는 방법은 아니었지만 날 정말 사랑하는 건지 확인을 하는 것도 손해 볼 것은 없을 것 같았고, 반대로 용준씨의 진심이 사랑이 아닌 것이 증명이 된다면 헤어지기 더 쉬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혜림씨, 정말 날 도와 줄 거야?”

“괜찮아요? 제 방법이?”

“도와준다고만 하면 한 번 해보고도 싶은데. 용준씨를 테스트하는 것이긴 하지만 전에 날 속였으니 죄책감도 안 들고 말이야.”

“저도 좋아요. 예전에 영화를 보며 꼭 한 번 해보고 싶었거든요.”

“좋아. 그럼 내일 만나자고 한다.”

“그래요. 내일. 정말 재미있겠어요.”


***


용준씨는 내가 만나자는 말에 흔쾌히 나오겠다고 했다. 하긴 자신이 튕길 처지도 못되니까. 그리고 나는 혜림이와 함께 약속 장소로 나갔다.


‘혜림이의 노골적인 유혹에 버티면 날 향한 마음만은 인정해주지!’


“용준씨, 왜 이리 겁먹은 표정이에요? 이리 앉으세요.”


용준씨는 며칠째 연락을 피해버린 여자의 지나친 친절에 겁을 먹은 표정이었다.


“응. 친구랑 같이 나온 거야?”

“아이, 우리 존댓말 하기로 했잖아요. 인사해요. 우리 회사에서 제일 예쁜 회사 동생 혜림이에요.”

“안녕하세요? 강혜림입니다.”


혜림이는 특유의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그 야들야들함 때문에  한동안 싫어했던 적도 있었는데 오늘은 그녀의 목소리가 듣기 좋기만 했다.


“예. 반갑습니다. 황보용준입니다.”

“황보용준? 이름이 너무 매력적인데요. 이름에 점수를 많이 얻으시겠어요. 특히 여자들에게요.”


혜림이는 거만하게 손을 턱에 괸 채로 말했다. 도도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내 조언에 따른 행동이리라.


“그렇지도 않아요. 예전에 놀림도 많이 받았죠.”

“하긴 오빠 이름이 만식이라해도 멋져 보였을 거예요. 그렇지만 이름만 멋져서는 더 살기 곤란하겠죠. 이름은 용준인데 용모는 만식이. 하하하. 우습죠? 오빠는 이름과 매력적인 외모 너무 잘 어울리는 데요.”

“하하하. 사람이 편하게 해주시는 분이네요. 칭찬 감사히 듣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띄워주셔서는 곤란해요. 저는 칭찬에 약하답니다.”


용준씨는 혜림이의 코멘 오빠라는 소리가 기분이 좋은지 연신 실실댔다.


‘네게 사과를 해야 할 사람이 여자랑 실실대는군.’


“언니! 남자친구가 너무 멋있네요. 부러워요. 참, 아쉽다. 용준씨가 임자 있는 몸이라는 거.”


혜림이는 용준씨에게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 내 상상이상으로 유혹하는 연기를 잘 소화하고 있었다. 용준씨 진심에 관한 테스트는 잘 진행되어 가고 있는 듯 보였다.


‘당신의 진심 알아내고 말겠어! 증명해 줄 거야. 당신은 어쩔 수 없는 바람둥이라는 걸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