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배운점

김수재200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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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배운 점 1.

그러면서 엄마는 ‘난 널 사랑해!’라고 했다고 하자. 그런 엄마를 아이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사랑이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사회는 변화하고 있고 요즘 젊은 엄마들은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는 것 같다. 우리 올케 언니는 언제나 우리의 사랑스런 조카들에게 ‘I love you! 아이고 사랑스런 우리 아들!’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꼭 껴안아 주는 것을 보면 참 부럽다. 그래서 한때 내가 영국에서 돌아와서는 엄마를 꼭 껴안으며 ‘엄마! 사랑해!’라고 하기도 했었다. 그럼 우리 엄마는 무척 쑥스러워하셨다. 내가 English Mom이라고 부르는 영국 할머니가 있다. 내가 영국에서 일한 돈으로 엄마를 초청해서 함께 영국 할머니와 생활을 한 적도 있다. 그 때 할머니는 한국어를 전혀 모르시고 엄마는 영어를 전혀 모르기에 내가 통역을 해야 했던 적이 있다. 그 때 영국의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할머니께서 콧물이 나셨는데 식사 도중에 코를 푼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우리 엄마는 많이 놀라셨을 것이다. 어디서 감히 식탁에서 코를 푸느냐고.,, 나도 처음에 런던 지하철에서 말끔한 양복을 입은 신사가 코를 푸는 것을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에서 생활하면서 영국의 변덕스런 날씨 속에는 그렇게 코를 풀 수밖에 없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 엄마가 갑자기 트림을 하신 것이다. 원래 우리나라가 국물을 많이 먹는 문화이다 보니 가끔 트림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영국 할머니에게 많이 놀랄 일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난 중간에서 통역을 했어야 했다. 두 가지 문화적 차이를 말이다. 그런데 한 번도 한국에 온 적이 없는 영국 할머니께서 이해하실 수 있을까? 또한 영국에 살아본 적이 없는 우리 엄마가 영국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을까? 언제나 나를 사랑으로 친딸처럼 보살펴 주셨던 영국 할머니를 위해서 식사 대접을 하기 위해 런던 외곽에 있는 한인 타운 뉴몰든에 있는 한식당에 간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언제나 개인접시에 가운데에 있는 음식을 자신이 먹을 만큼만 먹는 영국 문화에 익숙하신 분이라 밥만 놓고 여러 가지 반찬을 젓가락을 사용해 가며 먹는 한국문화는 처음 경험하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른 쪽에서 한국남자직장인들이 식사를 하는 것을 보며 하시는 말씀이 저 중에 한 사람이라도 욕심을 내서 다 먹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영국에서 배운 점 2.

우리는 어린 시절 만약에 맛난 조기가 있을 때 언니가 다 먹으려 하면, 엄마가 말씀하시길 ‘동생도 줘야지’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생각났다. 즉 우리는 어릴 때부터 다른 이를 배려하는 것에 대해서 먹는 문화 속에서도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서양 문물의 유입으로 패스트푸드 점을 가보거나 일 식당에 가보면 개인 접시가 따로 나온다. 서로 나누어 먹을 반찬이 아니라 자기만의 음식이 나오는 것이다. 즉 서양에서 중시하는 개성이 이러한 개인주의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영국에서 읽었던 어느 분의 글이 있는데 그 때 내가 그것이 너무 자랑스러워 함께 생활했던 영국 친구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부엌에 걸려 놓았던 글이 생각난다. 우리는 숟가락과 젓가락이라는 것을 사용하고 서양 사람들은 주로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한다. 숟가락이라는 것을 포용을 반영하는 것이고 젓가락이라는 것은 협동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했던 것 같고 포크라는 것은 찍어서 정복하는 것을 의미하며 나이프는 잘라서 분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서양 사람들은 정복정신이나 개척정신이 무척 강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어쩌면 괴변처럼 들리는 생각도 해 보았다.

대학 다니던 시절 배운 점

대학 때 일반 사설 학원이 하는 영어 학원이 아니라 조금 비쌌지만 대학에서 하는 어학 당을 다닌 적이 있었다. 그 곳에는 외국어 학당과 한국어 학당이 있는데 그 때 한국어 학당에 다니는 교포 친구가 한 말이 있었다.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미국에서 자라면서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친구가 한국의 역사를 배우고 우리나라 조상은 바보라는 말을 했었다. 난 학교 다닐 때 우리 민족은 5천년의 역사 속에서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해 본 적이 없으며 백의민족으로서 언제나 외세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현재까지 자주성을 가지고 이어져 오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고 배운 기억이 났다. 왜 영국이나 미국처럼 외국에 진출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고구려라는 시대에 반도에서 대륙으로 뻗어 나가려 했었다. 그러나 현재 중국에서 왜곡하려는 것처럼 고구려는 중국의 한 역사이지 한국의 한 역사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한 것은 어학당에서 배우지 않았나 보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문물을 일본에도 전해 주려 했었지만 일본을 침략하려고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나라에 살면서 나름대로 행복해 했던 것이 아닐까? 영국처럼 자신의 나라에서 벗어나서 좀 더 많은 것을 뺏으려 했던 것과는 달리 말이다. 섬나라 정신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영국이 섬나라이고 일본이 섬나라 인데 그래서 영국과 일본은 섬이라는 고립된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대륙이라는 곳을 진출하려고 하는 의식이 있다는 말이다. 아마도 내가 외딴 섬에 오래 살다보면 답답해서 그 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영국에 있을 때 일본 친구들이 하는 말이 일본 사람과 영국 사람은 좀 비슷한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무관심을 극복하기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도 무관심보다는 좋은 것 같다. 이 무관심이라는 것은 나와 남을 별개로 생각하는데서 출발하는데 즉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데 뭐.. 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특수교육을 하면서 장애인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을 할 때 가장 힘이 들었던 것은 그런 바보 같은 아이들이 왜 교육을 받아야 해 보다는 도대체 장애아동과 내 인생이 무슨 상관이 있냐는 무관심이 더 힘이들었다. 바보 같은 아이들도 왜 교육을 받아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은, 무관심한 사람을 강제로 관심 같게 하는 것보다 쉬워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통사고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내가 운전을 해 보니 왜 영국이나 미국에 비해서 한국에서 사고가 많이 나는지 알 것 같다. 그런데 정상인으로 살다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사람들은 무척 많은 방황을 하게 된다. 이제는 그 전처럼 했던 일을 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무척이나 유명했던 가수 강 원래의 얘기를 들어 보아도 알 수 있다. ‘장애인이면 집에나 있지 왜 돌아다니느냐?’고 일반 사람들이 말하는 것에서도 드러나듯이.... 비가 오는 날 우산을 받쳐 주는 사람보다도 자기와 함께 비를 맞으며 옆에 휠체어를 타는 친구가 더 그립다는 말처럼.... 장애인이 된다는 것은 이 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비주류가 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 어디를 가나 서러움을 겪어야 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장애를 입게 되는 것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고 그래서 먹고 살기도 바쁜데 남의 인생까지 걱정할 시간이 어디 있냐?’는 것이다. 그런데 강 원래가 옷을 사기 위해 쇼핑을 갔을 때 사람들이 집에나 있으라고 했을 때 받았을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영어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미워하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럼 그 이유를 분석해 보고 어떻게 하면 사랑하게 될 수 있을가를 고민하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