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들 중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요새 심심치 않게 이야기 되는 부분은 아마도 우리들이 쉽게 접하는 오락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컬투가 아닌가 싶다. 그들이 나오는 프로그램 중 그때 그때 달라요 라는 코너에 왜 우리들이 열광하고 웃음을 연발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 가 있다. 그들의 웃음은 영어를 억지로 해석하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아마도 그것은 고정관념 이겠지만) 부분을 거꾸로 뒤집어 보는 그들의 용기에 감탄하고 있는 것들은 아닐까. 그들의 엉터리 강의에 우리들은 어떠한 것들에 카타르시스를 얻는 것 일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세상이 날로 경제가 심각해 지고 취업난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기 보다 힘든 세상이 되었다. 젊은이들은 취업난을 걱정안할 수가 없어 졌으며 그 취업난 중에 제일 큰 난관은 바로 토익 즉 영어인 것이다. 영어를 못하면 사회에서 무능아가 되고 낙오자가 되는 이런 숨막히는 현실속에 싫든 좋던 간에 우리는 영어를 안할 수가 없기 때문 인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강요 당하는 영어. 우리는 영어에 편안할 날이 없다. 즉 사회에 나가려면 그 어마어마한 괴물을 물리치지 못하면 안된 다는 것이다. 이런한 우리들 삶속에서 컬투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칼을 내밀었다. 그들에겐 HAPPY는 우리들이 영어를 처음 배웠을 때 행복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그저 집에서 키우는 애완용 동물 이름인 셈이다. 요새 유치원 아이들도 배운다는 영어. 우리는 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 고통을 견뎌 가며 끝도 보이지 않는 경주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컬투의 사회적 반향은 상당히 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들의 네멋대로식의 영어는 아이나 어른이나 열광하게 되었고 그들의 개그를 보며 우리들은 우리마음속에 내재된 그 무엇인가를 꺼내주었다는 것이다. 영어를 못하면 뒤쳐지는 사회 아니 사회 군중에 끼여 들어 가지도 못하게 되는 보이지 않는 그 영역을 컬투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회에 칼을 들이댔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들이 말하는 그때 그때 달라요는 우연히 그들에게서 나온 말일까. 나는 그들이 엉터리 영어를 하다 갑자기 말문이 막혀버릴 때 내뱉는 그 말은 사실 우리 현실사회의 고위 리더층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지는 않는 것일까. 컬투는 개그를 통해서 우리 나라 현실을 제대로 꼬집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썡뚱맞는 상황은 우리 현실의 본 모습이 아닐까. 억지로 된 그들의 영어는 사실 우리들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이다. 통괘를 안겨주며 희망을 가져다 주는 그들은 어찌 보면 참으로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겠고 우리들의 대화에서 그들의 이름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이젠 자연스러워 진 것이다. 그들이 이번에 책을 펴냈다. 그것도 그들이 즐겨 사용하는 영어를 가지고 말이다. 사회는 변화를 요구 한다. 그리고 슈퍼맨 보다 돈키호테를 바라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책은 지금 또 하나의 화자 거리이다. 획일화 되는 우리들의 삶과 현실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쩜 사회는 그런 것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컬투 처럼 썡뚱 맞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 줬음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영어 말고도 많은 공통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그런것들을 하나씩 뜨거운 감자가 되어 신랄하게 통쾌하게 우리들 마음을 채워주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적막한 사회에 단비가 내어 주리라는 것은 비단 나의 생각만은 아니기 떄문이다.
뜨거운 감자 컬투에 대하여.
요새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들 중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요새 심심치 않게 이야기 되는 부분은 아마도 우리들이 쉽게 접하는 오락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컬투가 아닌가 싶다. 그들이 나오는 프로그램 중 그때 그때 달라요 라는 코너에 왜 우리들이 열광하고 웃음을 연발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 가 있다. 그들의 웃음은 영어를 억지로 해석하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아마도 그것은 고정관념 이겠지만) 부분을 거꾸로 뒤집어 보는 그들의 용기에 감탄하고 있는 것들은 아닐까. 그들의 엉터리 강의에 우리들은 어떠한 것들에 카타르시스를 얻는 것 일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세상이 날로 경제가 심각해 지고 취업난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기 보다 힘든 세상이 되었다. 젊은이들은 취업난을 걱정안할 수가 없어 졌으며 그 취업난 중에 제일 큰 난관은 바로 토익 즉 영어인 것이다. 영어를 못하면 사회에서 무능아가 되고 낙오자가 되는 이런 숨막히는 현실속에 싫든 좋던 간에 우리는 영어를 안할 수가 없기 때문 인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강요 당하는 영어. 우리는 영어에 편안할 날이 없다. 즉 사회에 나가려면 그 어마어마한 괴물을 물리치지 못하면 안된 다는 것이다. 이런한 우리들 삶속에서 컬투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칼을 내밀었다. 그들에겐 HAPPY는 우리들이 영어를 처음 배웠을 때 행복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그저 집에서 키우는 애완용 동물 이름인 셈이다. 요새 유치원 아이들도 배운다는 영어. 우리는 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 고통을 견뎌 가며 끝도 보이지 않는 경주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컬투의 사회적 반향은 상당히 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들의 네멋대로식의 영어는 아이나 어른이나 열광하게 되었고 그들의 개그를 보며 우리들은 우리마음속에 내재된 그 무엇인가를 꺼내주었다는 것이다. 영어를 못하면 뒤쳐지는 사회 아니 사회 군중에 끼여 들어 가지도 못하게 되는 보이지 않는 그 영역을 컬투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회에 칼을 들이댔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들이 말하는 그때 그때 달라요는 우연히 그들에게서 나온 말일까. 나는 그들이 엉터리 영어를 하다 갑자기 말문이 막혀버릴 때 내뱉는 그 말은 사실 우리 현실사회의 고위 리더층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지는 않는 것일까. 컬투는 개그를 통해서 우리 나라 현실을 제대로 꼬집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썡뚱맞는 상황은 우리 현실의 본 모습이 아닐까. 억지로 된 그들의 영어는 사실 우리들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이다. 통괘를 안겨주며 희망을 가져다 주는 그들은 어찌 보면 참으로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겠고 우리들의 대화에서 그들의 이름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이젠 자연스러워 진 것이다. 그들이 이번에 책을 펴냈다. 그것도 그들이 즐겨 사용하는 영어를 가지고 말이다. 사회는 변화를 요구 한다. 그리고 슈퍼맨 보다 돈키호테를 바라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책은 지금 또 하나의 화자 거리이다. 획일화 되는 우리들의 삶과 현실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쩜 사회는 그런 것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컬투 처럼 썡뚱 맞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 줬음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영어 말고도 많은 공통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그런것들을 하나씩 뜨거운 감자가 되어 신랄하게 통쾌하게 우리들 마음을 채워주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적막한 사회에 단비가 내어 주리라는 것은 비단 나의 생각만은 아니기 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