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쾌쾌한 책냄새가 나의 오후를 더욱 나른하게 만든다. 만화방.. 결코 내가 이런곳과 어울린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난 직업상 하루에 한번이상은 이렇게 아무 만화방이나 불쑥 들어가보곤 한다.
오후 4시.
책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린 아이들이 한창 만화 삼매경에 빠져있을 시간이다. 이쪽이 판타지.. 이쪽이 무협... 그렇다면, 이쯤에....
ㅎㅎ 있다!! 코믹멜로가 순서대로 가지런히 놓여진 책장 한귀퉁이에.. '정시우'.. 내이름 석자가 박힌, 내 만화가 있다^^
아직 다른것들에 비해 깨끗한 내만화.. 1권부터 가지런히 쓰다듬어보는데... 어라?? 7권 다음에 13권으로 건너뛰었다. 그렇다면..? ㅎㅎ 난 7권을 뽑아 카운터로 간다.
"아저씨~ 이 만화 8권부터 12권까지가 없네요?"
"(흘끗 보고는) 저~쪽에 앉은 분이 좀전에 빌려갔네요... 딴거부터 읽어요, 학생"
"(ㅋㅋㅋ기분좋다) 아저씨 이거 반응 좋아요?"
"(대수롭지 않은 표정) 에이~ 그거 별루야~ 잘 나가지두 않는건데.. 오늘따라 찾네들.."
ㅡㅡ; 괜히 물어봤다..
"더 재밌는거 많아, 학생.. 딴거부터 읽어요~"
"저 학생 아니거덩여??!!!!"
괜히 빽 소리치곤 돌아선다. 별꼴이야.. 빌려간 사람 무색해지게... 손에 들린 7권을 내려다보며 다시 책꽂이로 가던나.. 문득 궁금해진다^^ 내 만화를 읽어주는 착한나라 사람이 누군지..
빼곡한 책꽂이들을 지나 테이블, 혹은 소파에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는 만화들에 눈을 돌리는데.. 아!! 찾았다^^ 내만화.. 테이블 한켠에 8,9,10권이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다. 그렇다면.. 앞에앉아있는 이 꼬마녀석이..? 내 만화가 그렇게 유아틱 했던가..?
"얘~ 너 이거 다 읽었니?"
"네??!!"
"누나가~ 이거 8권을 읽을 차례거덩~ 이거 재밌니..?"
"제꺼 아니에여~!! 저 그딴거 안봐여!!!"
ㅡㅡ; 쬐끄만게 확~!!! 꿀밤이라도 놓고 싶지만.. 그래.. 니 수준은 아닐것이다... 그렇담...? 꼬마 옆에 거의 눕디시피 쓰러져있는 한 남자에게로 시선이 갔다. 헉~!! 이남자가..? 내소설은 무협이나 판타지가 아닌데... 하지만 그가 얼굴을 덮을 듯 코앞에 들고있는 만화는 분명 나.. 정시우의 것이었다^^; 꼬마에게처럼 말을 걸어야 하는데.. 왠지 내또래 남자에게 말을 건더는건 좀.. 그렇다.. 정시우 내 성격이 원래 좀.. 그렇다^^
그남자는 한창 내 만화의 11권을 보며 끼낄대고 있는 중이다. ㅎㅎ 내만화가 저리 재밌었던가..? 난 한동안 말도 못붙인채 그의 키득거림을 즐기고 서 있었다.. 그러다..
"8권부터 10권까지 가져가세요."
그남자.. 얼굴도 안보고 던진말이다.
"예?" (허걱ㅡㅡ; 갑자기 놀랬자나~)
"8권부터 10권까지는 읽었으니까 가져가라구요~"
아.. 내가 꼬맹이한테 하는 말을 들은게다..
"네..고맙슴다...(모기소리만하게 말해놓고는..) 근데.. 이거 재밌으세요?" (물으면서도 왠지 자신이 없다..)
그제야 그.. 얼굴을 가렸던 만화를 내리고는 날 쳐다본다.. 흠미~.. 이런.. 저런눈으로 날 똑바로 보면 눈을 어디다 둬야 하는거야...
"7권까지 봤댔죠? .. 8권부턴 기차게 웃기니까 걱정말고 가져가요~"
그는 다시 책을 들어 얼굴을 가린다.. ㅎㅎ 고마우셔라~ 난 그의 말에 괜스레 으쓱해졌다. 어느새 또다시 키득대며 읽어대는 그의 반응이 재밌어서 갈 생각도 않고 그러고 섰는데..
"나한테 관심있어요~?"
"!! .... 네?"
"책이 목적이면 얼렁 가져가서 읽으시구..책이 아니라 내가 목적이면.. 뭐.. 자판기 커피라두 사야하는건가..?"
문을 닫고야 제정신이 돌아왔다.. 식은담까지 흘리는 나.. 나이가 몇살인데 그정도 받아칠 넉살도 없는건지..그제야 한숨을 돌리며 작은 유리쪽문으로 다시 안을 들여다본다.. 저멀리.. 금새 나의 존재는 잊어버린채 키득대는 그가 보인다. 기분좋아진 나.. 엘리베이터도 잊은채 가뿐히 층계를 내려온다.
s# 2 거리
작업실까지는 가볍게 걷기로 했다. 족히 40분은 걸릴테지만 상관없다. 참.. 선영 선배의 신간을 꼭 빌려보기로 했었지.. 잠시 잊어버린 나와의 약속을 되뇌이며 그래도 기분좋게 걸음을 재촉한다.
'여자들이나 읽는 로맨스를 그렇게 재밌게 읽다니..성격 이상한거 아냐..? 생긴건 봐줄만 하던데.. 키도 크구... 하~ 나참.. 암만 생각해도 덩치에 안맞게.. 그 키득거림이란.. 가만가만.. 지금이 몇신데 저런곳에서 시간을 죽때리고 있는거야? 겉만 멀쩡했지.. 별볼일 없는 백수건달..?'
어느새 머릿속에 그남자 얼굴이 꽉차있다. 이 바보... 정작 말한마디 제대로 붙일줄도 모르면서 속으로는 이렇게 남자가 좋을까...^^; 그새 잠깐 본 저 남자를...? ㅎㅎㅎ
s# 3 작업실 앞 복도
간만에 느끼는 설렘에 혼자 히죽대며 작업실 문의 비밀번호를 차례대로 누른다. 말만 그럴듯한 작가지 백수나 다름 없다며 구박하던 엄마의 잔소리가 싫어 큰맘먹고 구한 내 작업실..^^ 우리집에서 유일한 내편인 아빠의 도움으로 지은지 얼마안된 새 건물에 자리를 잡게 됐다.
'삑삑삑삑삑~ 띠리릭~'
경쾌한 소리와 함께 가볍게 문이 열린다. 아무 생각없이 벌써부터 신발벗을 채비를 하며 불쑥 들어가는데..
s# 5 작업실 안
'쿵-!!'
내뒤로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다. 그대로 현관 앞에 얼어붙은 나... 지금 내눈앞에 보이는건..
"잘지냈어-?"
조금은 억지로인 듯한 웃음을 머금고 마치 자기가 주인이고 내가 손님인 양 소파에서 일어나는 저사람... 내.. 헤어진 ... 남자친구다ㅡㅡ;
아무말도 나오질 않는다. 도로 나가야 할지,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도무지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좋아..보이네? 나.. 안반가워??"
어울리지 않게 웬 자상한 말투..?? 젠장.. 밥맛이다.
"내가도로 나갈까요..? 아님.. 나가줄래요.."
기어이 목구멍 밖으로 내뱉은 말이...나도모르게 존댓말. 그래.. 이렇게 냉정하게 나가야 해..
"많이 화났구나.. 아직도 풀리지 않았나보네.. 난있지, 시우야.."
"아니.. 듣고싶지 않어. 화도 안났구, 더이상 화낼 필요도 없다구 생각해요..나가줘."
"...시우야~"
"듣기 싫어. 더이상 말하지 마세요. 내이름도 부르지 마세요. 싫으니까."
"... 다시 깍뜻한 존대구나. 그거 고칠려구 나 참 많이 노력했는데. 난 니 반말이 넘 귀엽더라.."
더이상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대로 문을 박차고 나가려는데.. 그남자.. 뛰어와 날 잡는다.
"알았어.. 내가 갈께..."
그러고는 저벅저벅 복도 저만치로 사라져간다. 잠시동안이지만 그 뒷모습에 울컥 눈물이 나는 내 자신이 짜증난다. 모질게 문을 쿵 닫고는 들어가버린다.
이창현... 정확히 1년 8일만에 나타났구나... 석달만.. 아니, 두달만 더 일찍 날 찾아왔어도 난 모든걸 잊어버리고 너와 다시 사랑할 수 있었을텐데... 그래.. 너를 잊는데 건 10개월이 걸렷다. 그것으로도 가치있었다. 넌 내게.. 기억할 만 한 슬픔을 남겼으니까...
멍하니 앉아서 얼마나 있었던건지.. 어느새 창밖이 어수룩해졌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정신을 차려야지.. 벌덕 일어나 다시 밖으로 나간다.
s# 6 거리( 저녁 )
우선은.. 문고리부터 바꿔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자물쇠를 채워버릴까..? 그래.. 아까 걸어오던 그 거리에서 열쇠집을 본곳 같아.. 무작정 걸어간다.
길가에 가판을 치고 자리잡은 작은 열쇠집이 보인다. 샷시로 만든 벽에는 수백, 수만개의 열쇠들이 걸려있다. 저것들이 모두.. 다른 모양이라니... 잠시 멍하니 서서 열쇠들을 훑어본다. 머리가 아팠다. 이창현..그의 느닷없는 출현이 아직도 내게 이렇게 큰 파장을 불러오다니.. 씁쓸하다..
누군가 어깨를 바짝 디밀고 옆에선다. 한발짝 옆으로 비켜서 주었다. 그러자 또 한발짝 따라오며 어깨를 디밀어댄다. 우씨ㅡㅡ; 기분도 않좋은데 한판해..?? 그러다 다시 한발 물러준다. 그러자.. 어쭈?? 이게 노골적으로 디미는데..? 누군지 오늘 잘 걸렸...어라??
"우리 구면이죠?"
아까 만화방의 그남자다. 순간 쪽팔렸다.
"네..? 아..글쎄요, 저는 누군지 잘..."
"에이, 왜이래요~ 아까 만화방에서 나한테 치근덕 댔으면서..."
"뭐, 뭐요? 아니 이것보세요? 누가 누굴 치근덕 댔다구.."
"봐요~ 기억 하면서..."
".....ㅡㅡ; 그게 아니라.."
"작가시죠?"
" ?? "
"아까 그 만화집.. 직접 그리고 쓰신거 맞죠?"
"......"
"우와~ 영광이네~ 유명인사를 다 만나고.."
"(무안하다) 어떻게..아셨어요?"
"마지막권에.. 작가후기와 함께 촌스런 사진한장이 박혀있던데요? 깜짝 놀랐죠~ 나한테 찝쩍대던 여자랑 똑같이 생겨서.."
빨갛게 윤이나는 낙지들이 한눈에도 맛있어 보인다. 정말 배가고팠는지 열심히 먹고있는 남자.. 반면 나는 아직 이렇게 마주있는것 자체가 좀 부담스럽다.
"배 안고파요?"
"아, 네.. 별루.."
"아~ 그럼 내가 넘 미안해지는데..? 혼자 먹기 싫다구 싫은 사람 억지루 끌고온거네.. 혹시 낙지 못먹는거에요?"
"아뇨, 아니에요.. 먹어요. 먹을께요.."
까짓.. 이렇게 된거.. 밥한끼 마주먹는게 뭐 그리 이상한 일이라고... 어느덧 수저를 들고 먹기 시작한다. 음~ 매콤한 양념이 금새 입맛을 돋운다^^
"근데요.."
내가 먹는 모습을 조금 흐뭇한 듯 바라보던 그가 조신스레 묻는다.
"누구..에요?"
"네? 뭐가요??
"열쇠말이에요.. 바꿔야 하는 이유를 제공한 사람.."
"아.."
금새 다시 말문이 막혀버렸다. 다시금 입안이 깔깔해 지는게.. 수저를 놓는다.
"남자친구..?"
잠시 어찌 대답할까 하다가 씩씩해지기로 했다. 그냥 다시 수저를 들어 매운 낙지를 한술 뜬다.
"맞구나~ 싸웠어요? 갑자기 번호는 왜.."
"남자친구 아니에요."
"?? ... 아니..에요??"
"아니죠... 이제는..."
정말이지 아무렇지 않으려 했는데.. 최대한 쿨~하게.. 멋있게 날리려 한 대사였는데 갑자기 목구멍이 뜨거워 지면서 밥알들이 곤두선다.. 내 이런 심정이 얼굴에도 나타났는지.. 이남자 괜스레 미안해진 듯.. 고개 쳐박고 밥을 먹는다.
"아~!! 이집 낙지 정말 맵다!!!"
기어이 뻘게지는 눈가를 낙지탓으로 돌리며 괜히한번 너스레를 떨어본다. 그남자.. 슬그머니 고개들다 나와 딱.. 눈이 마주쳐버린다. 괜찮다고.. 한번 씩 웃어주는 고마운 사람..
s# 8 거리 (밤)
입안에 박하사탕을 두개나 물고는 거리를 걷고있다. 밤이되자 적당히 쌀쌀해진 날씨가 맘에들었다. 말이 많던 그남자는 이제는 아무말 없이 내 옆에 조금 떨어진채 걷고있다. 그가 꺼내문 담배연기가 나에게 미치지 못하고 흩날리는게 보였다. 저만치 열쇠가판이 보인다. 아저씨가 날 알아본듯 장비를 챙기고 있다. 이럴땐 어떻게 인사하고 헤어져야 하는건지.. 딱히 할말이 없어 천천히 천천히 걷고만 있는데..
"저기요-"
"..?"
"열쇠말인데... 그냥 바꾸지 말고 스세요~"
"..??"
"그런식으로 말구.. 정말 못들어오게 해야죠-"
"그게.. 무슨말이에요?"
"남자들은 웃겨요~ 아마 열쇠를 바꿔 달면 더 들어가고 싶어질껄요? 흠~ 그러니까.. 그런식으로 피하는거 말고.. 정말, 정말루 근처에 얼씬두 못하게 만들면 되잖아요."
"......"
"오바였나-? ㅎㅎ 미안해요, 사정두 잘 모르면서... 전 이만 갑니다^^ 덕분에 저녁 맛있었어요"
내가 쭈뼛거리는 사이 그남자는 벌써 저만큼 가버렸다. 오늘은 남자의 뒷모습만 보게 되는군... 저사람의 뒷모습은 웬지 따뜻하다... 그나저나 같이 밥까지 먹어놓구 이름도 안물어봤네.. 내가 이렇다. 사회생활엔 쑥맥..ㅡㅡ; 더이상 바라보고있음 오바인것 같아서 이내 돌아서 버렸다.
s# 9 작업실 앞 복도
"겁나게 겁이 많아버린 아가씨네~ 이렇게 비싼 노므걸 달아놓고 이런 구닥다리는 왜또 붙인다요?"
디지털 도어락 밑으로 구식 열쇠를 다는것이 영 껄쩍지근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해야.. 그가 문앞에 왔을때 한눈에 봐도.. 이젠 내맘이 닫혀버린걸 알테니까..
"고맙습니다,아저씨-"
반짝거리는 열쇠 두개를 받아들고는 그제야 안심이 된다. 열쇠를 꽂아 돌려보았다. '딸깍' 둔탁한 소리를 내며 꼭맞게 돌아간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다... 다시 문을 닫아버린다. 오늘은 엄마집에가서 자야겠다. 괜히 맘이 쓸쓸해서...
긴복도를 따라 쓸쓸히 걷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선영선배다. 내 만화를 재밌게 읽었다고.. 고맙게도 너스레를 떨어준다.
"고마워요, 선배.. 나도 오늘 만화방에 가봤었어요. 고맙게두 읽어주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머릿속에 잠깐 다시 그남자가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졌다. 선배는 이제 입문했으니 내일 있는 만화가 협회 모임에 꼭 참석하라고 호들갑이다.
"아이~ 난.. 알잖아요.. 말도 잘 할줄 모르고.."
저번부터 오라는걸 아직 데뷔작도 없이 쪽팔려서 못간다고 거절해 오던 터였다. 이젠 변명이 궁색했다.
결국 가겠단 대답을 하고 전활 끊었다. 통화가 길었는지 어느새 버스정류장이다. 숫기없는 난 벌써부터 내일 저녁 뭘 입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s# 10 작업실 앞 (낮)
다음날 오후. 선영 선배가 작업실 앞까지 날 픽업하러 오기로 했다. 모르는 사람들 투성이인 그곳에 혼자 버적버적 들어갈 엄두가 안났던거다^^
"선배~"
"오래기다렸니?"
"아뇨~.. 저땜에 넘 돌아가는거 아녜요?"
미안함에 얼른 차에 탄다. 사실 방향상 선배는 지금 모임 반대방향으로 날 태우러 온거다.
"걱정말어.. 말 잘통하는 사람들끼리 모아놓은 모임이니까.. 다들 우리같은 만화가야. 늘 시간에 쫒기구, 생활고에 시달려두 보구.. 세상앞에 무릎꿇어본.."
선배말에 배시시 웃어주긴 했지만, 동창회도 안나가는 나에겐.. 별루 내키지 않는 자리다.
s# 11 까페 안
넓찍한 까페를 통으로 빌렸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많이 붐비지는 않았다. 저마다 안면이 있는지 서로 반가워하고, 금새 친해져 얘기를 나누는 모습들이었다. 선배에게 이끌려 무작정 안쪽으로 향하는데... 어??? 저사람...???!!! 무리들에게 둘러쌓여 한창 이야기중인 한남자... 바로 어제 그 만화방이다!! 너무 놀라 걸음이 저절로 멈춰져 버렸다. 선영 선배는 어느새 무리에게 다가가 저만치 떨어진 날 소개하고 있다. 무리들이 날 돌아본다.. 그사람도.. 날.. 본다..
"...??"
내 표정이 인사가 됐을리 만무하지만, 무리들은 이내 날 반겨주었다. 뭐라뭐라 인사를 해대는데 난 하나도 들리질 않는다. 오직 한 목소리..
"또 뵙네요~^^"
"...?? "
'어떻게 된거에요?' 소리가 입안에서만 맴돌뿐 난 머저리 처럼 표정으로만 묻고이다.
"반가워요. 민지후에요."
민지후... 그 이름 석자가 내 뇌를 건드린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냥.. 그를 다시봐서 좋다..!!
사랑... 그 거짓말 . 제 1 부 - 그를 만나다
제 1부... 그를 만나다
s#1 만화방
적당히 쾌쾌한 책냄새가 나의 오후를 더욱 나른하게 만든다. 만화방.. 결코 내가 이런곳과 어울린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난 직업상 하루에 한번이상은 이렇게 아무 만화방이나 불쑥 들어가보곤 한다.
오후 4시.
책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린 아이들이 한창 만화 삼매경에 빠져있을 시간이다. 이쪽이 판타지.. 이쪽이 무협... 그렇다면, 이쯤에....
ㅎㅎ 있다!! 코믹멜로가 순서대로 가지런히 놓여진 책장 한귀퉁이에.. '정시우'.. 내이름 석자가 박힌, 내 만화가 있다^^
아직 다른것들에 비해 깨끗한 내만화.. 1권부터 가지런히 쓰다듬어보는데... 어라?? 7권 다음에 13권으로 건너뛰었다. 그렇다면..? ㅎㅎ 난 7권을 뽑아 카운터로 간다.
"아저씨~ 이 만화 8권부터 12권까지가 없네요?"
"(흘끗 보고는) 저~쪽에 앉은 분이 좀전에 빌려갔네요... 딴거부터 읽어요, 학생"
"(ㅋㅋㅋ기분좋다) 아저씨 이거 반응 좋아요?"
"(대수롭지 않은 표정) 에이~ 그거 별루야~ 잘 나가지두 않는건데.. 오늘따라 찾네들.."
ㅡㅡ; 괜히 물어봤다..
"더 재밌는거 많아, 학생.. 딴거부터 읽어요~"
"저 학생 아니거덩여??!!!!"
괜히 빽 소리치곤 돌아선다. 별꼴이야.. 빌려간 사람 무색해지게... 손에 들린 7권을 내려다보며 다시 책꽂이로 가던나.. 문득 궁금해진다^^ 내 만화를 읽어주는 착한나라 사람이 누군지..
빼곡한 책꽂이들을 지나 테이블, 혹은 소파에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는 만화들에 눈을 돌리는데.. 아!! 찾았다^^ 내만화.. 테이블 한켠에 8,9,10권이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다. 그렇다면.. 앞에앉아있는 이 꼬마녀석이..? 내 만화가 그렇게 유아틱 했던가..?
"얘~ 너 이거 다 읽었니?"
"네??!!"
"누나가~ 이거 8권을 읽을 차례거덩~ 이거 재밌니..?"
"제꺼 아니에여~!! 저 그딴거 안봐여!!!"
ㅡㅡ; 쬐끄만게 확~!!! 꿀밤이라도 놓고 싶지만.. 그래.. 니 수준은 아닐것이다... 그렇담...? 꼬마 옆에 거의 눕디시피 쓰러져있는 한 남자에게로 시선이 갔다. 헉~!! 이남자가..? 내소설은 무협이나 판타지가 아닌데... 하지만 그가 얼굴을 덮을 듯 코앞에 들고있는 만화는 분명 나.. 정시우의 것이었다^^; 꼬마에게처럼 말을 걸어야 하는데.. 왠지 내또래 남자에게 말을 건더는건 좀.. 그렇다.. 정시우 내 성격이 원래 좀.. 그렇다^^
그남자는 한창 내 만화의 11권을 보며 끼낄대고 있는 중이다. ㅎㅎ 내만화가 저리 재밌었던가..? 난 한동안 말도 못붙인채 그의 키득거림을 즐기고 서 있었다.. 그러다..
"8권부터 10권까지 가져가세요."
그남자.. 얼굴도 안보고 던진말이다.
"예?" (허걱ㅡㅡ; 갑자기 놀랬자나~)
"8권부터 10권까지는 읽었으니까 가져가라구요~"
아.. 내가 꼬맹이한테 하는 말을 들은게다..
"네..고맙슴다...(모기소리만하게 말해놓고는..) 근데.. 이거 재밌으세요?" (물으면서도 왠지 자신이 없다..)
그제야 그.. 얼굴을 가렸던 만화를 내리고는 날 쳐다본다.. 흠미~.. 이런.. 저런눈으로 날 똑바로 보면 눈을 어디다 둬야 하는거야...
"7권까지 봤댔죠? .. 8권부턴 기차게 웃기니까 걱정말고 가져가요~"
그는 다시 책을 들어 얼굴을 가린다.. ㅎㅎ 고마우셔라~ 난 그의 말에 괜스레 으쓱해졌다. 어느새 또다시 키득대며 읽어대는 그의 반응이 재밌어서 갈 생각도 않고 그러고 섰는데..
"나한테 관심있어요~?"
"!! .... 네?"
"책이 목적이면 얼렁 가져가서 읽으시구..책이 아니라 내가 목적이면.. 뭐.. 자판기 커피라두 사야하는건가..?"
"아, 아니에요~.."
놀라 허둥대며 그자리를 피하는데..
"어~ 책 안가져가?? 정말 딴맘이었나보네??"
젠장.. 살짝 잘생겼다 했더니 왕싸가지 바람둥인가부다ㅡㅡ; 책이고 뭐고 쪽팔려서 서둘러 만화방을 나와버렸다.
"휴~..."
문을 닫고야 제정신이 돌아왔다.. 식은담까지 흘리는 나.. 나이가 몇살인데 그정도 받아칠 넉살도 없는건지..그제야 한숨을 돌리며 작은 유리쪽문으로 다시 안을 들여다본다.. 저멀리.. 금새 나의 존재는 잊어버린채 키득대는 그가 보인다. 기분좋아진 나.. 엘리베이터도 잊은채 가뿐히 층계를 내려온다.
s# 2 거리
작업실까지는 가볍게 걷기로 했다. 족히 40분은 걸릴테지만 상관없다. 참.. 선영 선배의 신간을 꼭 빌려보기로 했었지.. 잠시 잊어버린 나와의 약속을 되뇌이며 그래도 기분좋게 걸음을 재촉한다.
'여자들이나 읽는 로맨스를 그렇게 재밌게 읽다니..성격 이상한거 아냐..? 생긴건 봐줄만 하던데.. 키도 크구... 하~ 나참.. 암만 생각해도 덩치에 안맞게.. 그 키득거림이란.. 가만가만.. 지금이 몇신데 저런곳에서 시간을 죽때리고 있는거야? 겉만 멀쩡했지.. 별볼일 없는 백수건달..?'
어느새 머릿속에 그남자 얼굴이 꽉차있다. 이 바보... 정작 말한마디 제대로 붙일줄도 모르면서 속으로는 이렇게 남자가 좋을까...^^; 그새 잠깐 본 저 남자를...? ㅎㅎㅎ
s# 3 작업실 앞 복도
간만에 느끼는 설렘에 혼자 히죽대며 작업실 문의 비밀번호를 차례대로 누른다. 말만 그럴듯한 작가지 백수나 다름 없다며 구박하던 엄마의 잔소리가 싫어 큰맘먹고 구한 내 작업실..^^ 우리집에서 유일한 내편인 아빠의 도움으로 지은지 얼마안된 새 건물에 자리를 잡게 됐다.
'삑삑삑삑삑~ 띠리릭~'
경쾌한 소리와 함께 가볍게 문이 열린다. 아무 생각없이 벌써부터 신발벗을 채비를 하며 불쑥 들어가는데..
s# 5 작업실 안
'쿵-!!'
내뒤로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다. 그대로 현관 앞에 얼어붙은 나... 지금 내눈앞에 보이는건..
"잘지냈어-?"
조금은 억지로인 듯한 웃음을 머금고 마치 자기가 주인이고 내가 손님인 양 소파에서 일어나는 저사람... 내.. 헤어진 ... 남자친구다ㅡㅡ;
아무말도 나오질 않는다. 도로 나가야 할지,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도무지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좋아..보이네? 나.. 안반가워??"
어울리지 않게 웬 자상한 말투..?? 젠장.. 밥맛이다.
"내가도로 나갈까요..? 아님.. 나가줄래요.."
기어이 목구멍 밖으로 내뱉은 말이...나도모르게 존댓말. 그래.. 이렇게 냉정하게 나가야 해..
"많이 화났구나.. 아직도 풀리지 않았나보네.. 난있지, 시우야.."
"아니.. 듣고싶지 않어. 화도 안났구, 더이상 화낼 필요도 없다구 생각해요..나가줘."
"...시우야~"
"듣기 싫어. 더이상 말하지 마세요. 내이름도 부르지 마세요. 싫으니까."
"... 다시 깍뜻한 존대구나. 그거 고칠려구 나 참 많이 노력했는데. 난 니 반말이 넘 귀엽더라.."
더이상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대로 문을 박차고 나가려는데.. 그남자.. 뛰어와 날 잡는다.
"알았어.. 내가 갈께..."
그러고는 저벅저벅 복도 저만치로 사라져간다. 잠시동안이지만 그 뒷모습에 울컥 눈물이 나는 내 자신이 짜증난다. 모질게 문을 쿵 닫고는 들어가버린다.
이창현... 정확히 1년 8일만에 나타났구나... 석달만.. 아니, 두달만 더 일찍 날 찾아왔어도 난 모든걸 잊어버리고 너와 다시 사랑할 수 있었을텐데... 그래.. 너를 잊는데 건 10개월이 걸렷다. 그것으로도 가치있었다. 넌 내게.. 기억할 만 한 슬픔을 남겼으니까...
멍하니 앉아서 얼마나 있었던건지.. 어느새 창밖이 어수룩해졌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정신을 차려야지.. 벌덕 일어나 다시 밖으로 나간다.
s# 6 거리( 저녁 )
우선은.. 문고리부터 바꿔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자물쇠를 채워버릴까..? 그래.. 아까 걸어오던 그 거리에서 열쇠집을 본곳 같아.. 무작정 걸어간다.
길가에 가판을 치고 자리잡은 작은 열쇠집이 보인다. 샷시로 만든 벽에는 수백, 수만개의 열쇠들이 걸려있다. 저것들이 모두.. 다른 모양이라니... 잠시 멍하니 서서 열쇠들을 훑어본다. 머리가 아팠다. 이창현..그의 느닷없는 출현이 아직도 내게 이렇게 큰 파장을 불러오다니.. 씁쓸하다..
누군가 어깨를 바짝 디밀고 옆에선다. 한발짝 옆으로 비켜서 주었다. 그러자 또 한발짝 따라오며 어깨를 디밀어댄다. 우씨ㅡㅡ; 기분도 않좋은데 한판해..?? 그러다 다시 한발 물러준다. 그러자.. 어쭈?? 이게 노골적으로 디미는데..? 누군지 오늘 잘 걸렸...어라??
"우리 구면이죠?"
아까 만화방의 그남자다. 순간 쪽팔렸다.
"네..? 아..글쎄요, 저는 누군지 잘..."
"에이, 왜이래요~ 아까 만화방에서 나한테 치근덕 댔으면서..."
"뭐, 뭐요? 아니 이것보세요? 누가 누굴 치근덕 댔다구.."
"봐요~ 기억 하면서..."
".....ㅡㅡ; 그게 아니라.."
"작가시죠?"
" ?? "
"아까 그 만화집.. 직접 그리고 쓰신거 맞죠?"
"......"
"우와~ 영광이네~ 유명인사를 다 만나고.."
"(무안하다) 어떻게..아셨어요?"
"마지막권에.. 작가후기와 함께 촌스런 사진한장이 박혀있던데요? 깜짝 놀랐죠~ 나한테 찝쩍대던 여자랑 똑같이 생겨서.."
훗~ 그제야 웃음이 났다.
"낮엔 죄송했어요.." 사과를 해야겠단 정신도 들고...
"뭐가요?"
"뭐..그냥.. 읽는데 방해한것두 같고.. 쓸데없이 오해살 짓 한것두 .. 뭐.."
"ㅎㅎ 근데 여기서 뭐하세요?"
그렇지.. 우리가 서있는 곳은 쌩뚱맞기 그지없는 열쇠 가판대 앞이다.
"보다시피.. 열쇠를 맞추려구요.."
"열쇠요? 에이~ 저런건 허술할텐데.. 문이 고장났나요?"
"아니.. 그냥.. 지금있는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군가 알고있어서.."
"??"
"이젠 못들어오게 해야 하거든요.."
나도모르게 슬퍼져 버렸다. 쪽팔리지만 슬퍼진 눈을 보이기 싫어서 고갤 돌려버렸다.
"비밀번홀 바꾸면 되죠~.. 바꾸는 법 모르세요?"
"알아요.. 하자만... 뭘까요? 그사람이 모르는 번호가...? 내어떤 숫자도... 알아낼것 같아요, 그사람은..."
멍하니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나.. 그남자는 대충 알만 하다는 듯 고갤 두어번 끄덕인다.
"아.. 그냥.. 그저그런.. 사정이 좀 있어요. 뭐.. 대수롭지 않은.."
뭐라고 횡설수설 하는건지.. 첨본 사람에게 넘 많은 정보를 준것 같아 쪽팔린다.
"아저씨, 같이 가셔서 바꿔 달아주실 수 있죠?"
괜시리 멋적어져 아저씨를 닥달한다.
" 금방은 안되것네요~ 우리 수리공이 짐 저녁먹으러 갔구먼..."
"언제 오는데요? 얼마나 기다려야.."
"밥 먹었어요?"
내말을 자르고 그남자가 끼어들었다.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온 나.. 그제야 다시 고갤돌려 쳐다본다. 나..밥 먹었냐고..?
"난 아직 전인데.. 안드셨음 우리도 어디가서 밥먹고 오죠. 그래두 되죠 아저씨?"
아저씨는 잘됐다며 갔다오라신다. 그안에 문 안닫을 것을 약속하며..난 좀 당황.. 내가 이사람과 어쩌다 '저녁먹죠' 사이가 된거지? 기다, 아니다, 얼른 대답 못하고 머뭇대는데..
"좀 봐줘요. 사실 이동네 첨이라 친구도 없구.. 저 밥 혼자 먹을 자신 없어요~"
"저.. 전..."
"이미 먹었어요? 그래두 좀더 먹어봐요~ 객지에서 밥굶는 불쌍한 놈 구제해준다 생각하구.."
넉살도 좋지.. 어쩔까 망설이고 있는 날 피식 웃게 만드는 이남자.
s# 7 낙지볶음 집 (밤)
빨갛게 윤이나는 낙지들이 한눈에도 맛있어 보인다. 정말 배가고팠는지 열심히 먹고있는 남자.. 반면 나는 아직 이렇게 마주있는것 자체가 좀 부담스럽다.
"배 안고파요?"
"아, 네.. 별루.."
"아~ 그럼 내가 넘 미안해지는데..? 혼자 먹기 싫다구 싫은 사람 억지루 끌고온거네.. 혹시 낙지 못먹는거에요?"
"아뇨, 아니에요.. 먹어요. 먹을께요.."
까짓.. 이렇게 된거.. 밥한끼 마주먹는게 뭐 그리 이상한 일이라고... 어느덧 수저를 들고 먹기 시작한다. 음~ 매콤한 양념이 금새 입맛을 돋운다^^
"근데요.."
내가 먹는 모습을 조금 흐뭇한 듯 바라보던 그가 조신스레 묻는다.
"누구..에요?"
"네? 뭐가요??
"열쇠말이에요.. 바꿔야 하는 이유를 제공한 사람.."
"아.."
금새 다시 말문이 막혀버렸다. 다시금 입안이 깔깔해 지는게.. 수저를 놓는다.
"남자친구..?"
잠시 어찌 대답할까 하다가 씩씩해지기로 했다. 그냥 다시 수저를 들어 매운 낙지를 한술 뜬다.
"맞구나~ 싸웠어요? 갑자기 번호는 왜.."
"남자친구 아니에요."
"?? ... 아니..에요??"
"아니죠... 이제는..."
정말이지 아무렇지 않으려 했는데.. 최대한 쿨~하게.. 멋있게 날리려 한 대사였는데 갑자기 목구멍이 뜨거워 지면서 밥알들이 곤두선다.. 내 이런 심정이 얼굴에도 나타났는지.. 이남자 괜스레 미안해진 듯.. 고개 쳐박고 밥을 먹는다.
"아~!! 이집 낙지 정말 맵다!!!"
기어이 뻘게지는 눈가를 낙지탓으로 돌리며 괜히한번 너스레를 떨어본다. 그남자.. 슬그머니 고개들다 나와 딱.. 눈이 마주쳐버린다. 괜찮다고.. 한번 씩 웃어주는 고마운 사람..
s# 8 거리 (밤)
입안에 박하사탕을 두개나 물고는 거리를 걷고있다. 밤이되자 적당히 쌀쌀해진 날씨가 맘에들었다. 말이 많던 그남자는 이제는 아무말 없이 내 옆에 조금 떨어진채 걷고있다. 그가 꺼내문 담배연기가 나에게 미치지 못하고 흩날리는게 보였다. 저만치 열쇠가판이 보인다. 아저씨가 날 알아본듯 장비를 챙기고 있다. 이럴땐 어떻게 인사하고 헤어져야 하는건지.. 딱히 할말이 없어 천천히 천천히 걷고만 있는데..
"저기요-"
"..?"
"열쇠말인데... 그냥 바꾸지 말고 스세요~"
"..??"
"그런식으로 말구.. 정말 못들어오게 해야죠-"
"그게.. 무슨말이에요?"
"남자들은 웃겨요~ 아마 열쇠를 바꿔 달면 더 들어가고 싶어질껄요? 흠~ 그러니까.. 그런식으로 피하는거 말고.. 정말, 정말루 근처에 얼씬두 못하게 만들면 되잖아요."
"......"
"오바였나-? ㅎㅎ 미안해요, 사정두 잘 모르면서... 전 이만 갑니다^^ 덕분에 저녁 맛있었어요"
내가 쭈뼛거리는 사이 그남자는 벌써 저만큼 가버렸다. 오늘은 남자의 뒷모습만 보게 되는군... 저사람의 뒷모습은 웬지 따뜻하다... 그나저나 같이 밥까지 먹어놓구 이름도 안물어봤네.. 내가 이렇다. 사회생활엔 쑥맥..ㅡㅡ; 더이상 바라보고있음 오바인것 같아서 이내 돌아서 버렸다.
s# 9 작업실 앞 복도
"겁나게 겁이 많아버린 아가씨네~ 이렇게 비싼 노므걸 달아놓고 이런 구닥다리는 왜또 붙인다요?"
디지털 도어락 밑으로 구식 열쇠를 다는것이 영 껄쩍지근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해야.. 그가 문앞에 왔을때 한눈에 봐도.. 이젠 내맘이 닫혀버린걸 알테니까..
"고맙습니다,아저씨-"
반짝거리는 열쇠 두개를 받아들고는 그제야 안심이 된다. 열쇠를 꽂아 돌려보았다. '딸깍' 둔탁한 소리를 내며 꼭맞게 돌아간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다... 다시 문을 닫아버린다. 오늘은 엄마집에가서 자야겠다. 괜히 맘이 쓸쓸해서...
긴복도를 따라 쓸쓸히 걷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선영선배다. 내 만화를 재밌게 읽었다고.. 고맙게도 너스레를 떨어준다.
"고마워요, 선배.. 나도 오늘 만화방에 가봤었어요. 고맙게두 읽어주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머릿속에 잠깐 다시 그남자가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졌다. 선배는 이제 입문했으니 내일 있는 만화가 협회 모임에 꼭 참석하라고 호들갑이다.
"아이~ 난.. 알잖아요.. 말도 잘 할줄 모르고.."
저번부터 오라는걸 아직 데뷔작도 없이 쪽팔려서 못간다고 거절해 오던 터였다. 이젠 변명이 궁색했다.
"네, 알았어요, 선배.. 대신 내옆에 꼭붙어 앉아있어야 되~ 알았죠? 뻘쭘하게 냅두면 다신 안갈꺼야~"
결국 가겠단 대답을 하고 전활 끊었다. 통화가 길었는지 어느새 버스정류장이다. 숫기없는 난 벌써부터 내일 저녁 뭘 입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s# 10 작업실 앞 (낮)
다음날 오후. 선영 선배가 작업실 앞까지 날 픽업하러 오기로 했다. 모르는 사람들 투성이인 그곳에 혼자 버적버적 들어갈 엄두가 안났던거다^^
"선배~"
"오래기다렸니?"
"아뇨~.. 저땜에 넘 돌아가는거 아녜요?"
미안함에 얼른 차에 탄다. 사실 방향상 선배는 지금 모임 반대방향으로 날 태우러 온거다.
"걱정말어.. 말 잘통하는 사람들끼리 모아놓은 모임이니까.. 다들 우리같은 만화가야. 늘 시간에 쫒기구, 생활고에 시달려두 보구.. 세상앞에 무릎꿇어본.."
선배말에 배시시 웃어주긴 했지만, 동창회도 안나가는 나에겐.. 별루 내키지 않는 자리다.
s# 11 까페 안
넓찍한 까페를 통으로 빌렸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많이 붐비지는 않았다. 저마다 안면이 있는지 서로 반가워하고, 금새 친해져 얘기를 나누는 모습들이었다. 선배에게 이끌려 무작정 안쪽으로 향하는데... 어??? 저사람...???!!! 무리들에게 둘러쌓여 한창 이야기중인 한남자... 바로 어제 그 만화방이다!! 너무 놀라 걸음이 저절로 멈춰져 버렸다. 선영 선배는 어느새 무리에게 다가가 저만치 떨어진 날 소개하고 있다. 무리들이 날 돌아본다.. 그사람도.. 날.. 본다..
"...??"
내 표정이 인사가 됐을리 만무하지만, 무리들은 이내 날 반겨주었다. 뭐라뭐라 인사를 해대는데 난 하나도 들리질 않는다. 오직 한 목소리..
"또 뵙네요~^^"
"...?? "
'어떻게 된거에요?' 소리가 입안에서만 맴돌뿐 난 머저리 처럼 표정으로만 묻고이다.
"반가워요. 민지후에요."
민지후... 그 이름 석자가 내 뇌를 건드린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냥.. 그를 다시봐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