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신의 딸이었다. (9. 10. 11.)

은하철도 2005.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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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신의 딸이었다.



9.


낮선 남자의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리면서 전화가 끊어지는 순간에 내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벌떡 일어나서 동네의 여관마다 다 뒤지고 다녔지만 그녀가 어디에 쳐 박혔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한참 발광하듯 돌아다니다가 문득 그녀와 곧잘 어울려서 술을 마시며 돌아다니던 선미라는 여자가 떠올랐다. 선미는 그녀가 하는 가게 윗골목에서 똑같은 술장사를 하는 여자였다. 문을 박차고 들어가서 대뜸 선미의 멱살을 움켜잡고는 벽에 밀어붙였다.

“영이가 어디 있어? 너하고 오늘 저녁부터 술 쳐 먹고 돌아다녔지? 말 안 하면 죽여.”

시퍼런 서슬에 눌린 선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더듬더듬 거렸다.

“저,저, 아까 구리시에 있는 나이트클럽에서 헤어졌어요?”

“이 쌍년이 다 말하지 않을 거야? 어떤 놈팽이하고 어느 여관에 쳐 박혔냐고?”

카운터 위에 놓여있던 과도를 들어서 번쩍 선미에 목에 대고 캐물었다.

“살...... 살려주세요. 로미오 나이트클럽 옆에 있는 핑크모텔 204호에요.”

나는 과도를 더욱 날카롭게 선미의 목에 들이대며 말했다.

“내가 지금 가서 그 년이 없으면 곧바로 돌아와서 네 모가지를 잘라버릴 거야.”


차를 몰고 사정없이 구리시로 달렸다.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이차선 도로 양쪽으로 쭉 늘어진 네온사인을 훑으며 핑크모텔을 찾았다. 좁은 도로를 끼고 모퉁이를 살짝 돌아선  오층 건물에 핑크모텔이라는 돌출간판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후다닥 차에서 내려 모텔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어두컴컴한 이층 복도를 쭉 훑다가 204호라고 쓰여 있는 방문 앞에 우뚝 섰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목이 콱 메었다.

“야, 문 열어. 안 열면 다 부셔버리고 쳐들어간다.”

내 목소리는 쩌렁쩌렁하게 복도를 울렸다.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보이지 않았다.

“이 쌍년이 문 안 열거야?”

냅다 내지르는 발길질에 나무로 된 문짝 한 가운데가 뻥 뚫렸다. 나는 손을 그 안으로 들이밀어 문고리를 안쪽으로부터 땄다. 활짝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안쪽에 달린 또 하나의 문을 힘껏 걷어찼다. 문고리가 쨍그렁 떨어져 나가면서 활짝 문이 열렸다. 남자 한 명이 사색이 된 얼굴로 구석에 서 있었고 그녀는 방 가운데에서 멍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빙긋 웃었다.

“자기 왔어?”

그녀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와 뿌연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이 년이 완전히 화냥년 아냐? 오늘 너와 내가 아주 돼지는 날로 잡자.”

웅성대는 여관종업원 틈을 헤지고 그녀의 멱살을 잡아끌며 밖으로 나왔다. 조수석에 그녀를 팽겨 치듯 쳐 넣고는 양수리쪽을 향하여 질주했다.


그녀는 심연에 떨어진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있었다. 거칠게 모는 차에 좌우로 몸을 흔들흔들 거리며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차는 양수리 다리를 건너서 왼쪽으로 꺾어 들었다. 인적이 전혀 없는 시골길을 달리다가 샛길로 뻗은 오른쪽으로 들어선 차는 비포장도로를 털털거리며 달렸다. 초겨울의 찬바람이 마른 가지를 흔들었고 군데군데 물이 고인 자리에는 살얼음이 하얗게 깔려 있었다. 환하게 밝힌 전조등 안으로 조각난 큰 바위가 듬성듬성 비쳤고 언덕을 윙윙대고 오르던 차는 별안간 앞이 툭 터인 넓은 터로 들어섰다. 주변을 살폈다. 죽은 자들만 모여 있는 공원묘지였다. 입술을 꽉 깨물고 내린 나는 차의 트렁크에서 미리 준비한 삽을 꺼내들고 조수석으로 돌아와 문을 확 열어 제켰다. 멍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멱살을 움켜잡고 앞으로 확 끌어내 밖으로 패대기쳤다.

“자기야, 왜 그래? 자기야, 내가 잘못했어.”

그녀는 꾸물꾸물 몸을 뒤집어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오늘 말이야, 여기 묻혀있는 어떤 새끼 묘지에 너를 같이 파묻고 나도 목숨 끊어버릴게.”

날카로운 삽을 들어 그녀의 목을 노렸다. 그녀와 나의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에 별안간 파란 달빛을 삼키던 그녀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왔다. 나는 별안간 돌변하는 그녀의 표정에 섬뜩했다.


도저히 해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수렁 깊숙이 빠져서 허우적거리듯 무표정하던 그녀의 얼굴이 별안간 확 피어오르며, 마치 아침에 출근하는 남편의 넥타이를 매어주는 가정주부의 얼굴처럼, 아이를 껴안고 화사하게 웃는 여인처럼, 비 오는 날에 정류장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리다가 버스에서 내리는 남편을 보고 쫓아오는 뽀얀 얼굴처럼, 그녀의 얼굴이 크게 크게 웃음을 띠며 눈앞으로 확 다가왔다.

“자기야 진정해. 내가 다 잘못했어.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거야. 제발 화를 풀어.”

치켜든 삽으로 내려치려는 순간에 꽉 잡은 손아귀에서 힘이 풀려나갔다. 무릎에서 힘이 쭉 빠지며 그 자리에 푹 주저앉고 말았다. 히뜩히뜩 비석이 서 있는 공원묘지 한 가운데서 나는 오열했다.

“이 씨팔 년이......”

나는 허물어지고 있었다. 도저히 저항 할 수 없는 사랑이란 절벽을 맨주먹으로 치고받으며 피투성이가 된 느낌이었다. 그녀를 피하여 여기저기 보이는 무덤 속으로 숨고 싶었다. 두 무릎 사이로 얼굴을 파묻고 있는 내 등 뒤로 그녀가 다가와서는 살며시 끌어안았다. 목을 꼭 끌어안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자기 속상하게 안 할 거야. 앞으로는 정말 자기 속을 썩이지 않을 거야. 자기야, 울지 마.”

허탈한 몸을 차에 싣고 서울로 향했다. 나는 왜 그녀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눈빛이 별안간 초롱초롱 해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화석처럼 굳어진 채 나의 오른손을 두 손으로 꼭 덮어 쥐고 있었다. 한참의 침묵이 흐른 후에 그녀는 잡은 내 손을 살며시 올려서 가슴에 꼭 안더니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뺨을 타고 흘러내려와 턱에 아롱진 눈물이 떨어지는 내 손등 위로 손가락 하나를 대더니 뭐라고 쓰기 시작했다.

“정말 미안 해. 여보, 당신만 사랑해.”


새벽에 도착한 방에서 나는 기진맥진 늘어져 있었다.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가 진저리를 치면서 빠져나가려 애쓰지만 낚싯바늘은 더욱 살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옆에 누운 그녀의 표정은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리 눌렀다. 한참 잠을 자다가 기척소리에 깨었다. 꼼짝도 안하고 실눈을 떠서 벌떡 일어난 그녀를 살폈다. 주춤주춤 사방을 둘러보던 그녀는 살며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에 입맛을 다시며 들어왔다. 24시간 마케트에 가서 소주 한 병을 사서 훌쩍 마시고 들어온 것이 분명했다. 잠시 바닥에 멍하니 앉아있던 그녀는 내 곁에 다시 눕더니 돌아누운 내 등을 꼭 끌어안고 잠에 떨어졌다. 나는 그녀의 차가운 팔을 끌어안고 혼자 중얼거렸다.

“너와 나의 체온이 다 식어가는 날을 기다리자. 사랑도 운명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10.


다음날 혼미한 채 늘어져 있는 그녀를 태우고 수원으로 달렸다. 그녀의 집안사람들은 의외로 담담했다. 형부라고 인사하는 내 또래의 남자가 그녀를 들쳐 업고 들어가 방에 뉘였다. 나와 그녀의 형부는 밖으로 나와서 다방에 마주앉았다.

“형씨, 잘 부탁합니다. 내 재주로는 도저히 영이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 일단 집에서 푹 쉬게 하던지, 아니면 요양원에 입원시켜서 몸을 좀 돌보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내뿜는 담배연기처럼 허허롭게 말을 던졌다. 전자회사에 다니는 그녀의 형부는 한참 허공을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십여 년간 처제를 봐 와서 잘 압니다. 참 알 수 없는 것은......”

형부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스물다섯 살부터 시작된 이런 증상에 시달리다가 이혼 당했다고 했다. 그 후로 집안에 붙어있지 못하고 각지를 전전하며 술장사를 했는데, 뛰어난 외모 때문에 남자들이 주변에 들끓었지만 진정 그녀를 받아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서너 번만 만나면 단박에 그녀를 또라이 취급하고 남자가 떨어져 나갔다고 말하며 그녀의 형부는 나를 보고 정말 끈질긴 사람이라고 했다.


“저것을 자를 수도 없고...... 쯧,”

사무실에 들어온 나를 보고 사장은 혀를 찼다. 겉돌며 미친놈처럼 우왕좌왕하는 나를 지켜보며 사장도 몸살을 앓았다. 서류에 파묻히고 거래처와의 전화로 며칠을 보냈다. 가슴 밑바닥은 무거운 추를 단 것처럼 항상 묵직했고,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면 탁상 위에 있는 그녀와 동해안에서 찍은 사진으로만 눈이 갔다. 그녀가 베었던 베개를 끌어안고 잠들면 꿈속에서 훨훨 나는 그녀가 보였다. 저녁 일곱 시쯤에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무척 상큼한 목소리였다.

“자기야, 나야 나. 아직도 퇴근 안 했어?”

“이 새끼가 이제 정신이 좀 들었나? 목소리가 쌩쌩 한데.”

전화를 끊자마자 퇴근하여 수원으로 달렸다. 수원역 맞은편에 있는 약속장소에 들어서자 허리 아래로 내려오는 검은 가죽코트를 걸치고 안에는 하얀 폴라티를 받혀 입은 그녀가 일어서며 손짓했다. 긴 머리를 찰랑찰랑 대며 뽀얗게 웃었다. 가슴을 질질 끌고 다니던 묵직한 무게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가까이 다가가며 생글생글 거리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손가락으로 허리를 쿡 찔렀다.

“이 애물단지 같은 새끼, 죽일 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고 어쩐다?”

그녀는 무척 들떠 있었다. 넓은 통유리로 된 창가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줄줄이 걸리고 빨강, 파랑, 초록, 노랑색 꼬마등이 번갈아가면서 반짝반짝 거렸다. 그녀는 손을 잡아끌며 내가 좋아하는 갈비찜 잘 하는 집을 들렸다가 백화점에서 회색 목도리를 사서 내 목에 감아주었다.

“아유, 우리 서방님, 춥지 않게 겨울을 나야지. 벌써 사 주어야 하는 건데.”

올려다보는 그녀를 보며 나는 픽 웃었다.


그녀는 내가 불편해 할까봐 집에 가서 자지 말자고 하면서 모텔에 들어섰다. 어린아이를 다루듯 목욕탕에 데리고 들어가더니 머리를 감기고 비누를 온 몸에 칠하다가 엉덩이를 찰싹 손바닥으로 때렸다.

“어서 뒤 돌아서세요.”

“그러면 주전자꼭지가 다 보이는데.”

그녀는 까르르 웃더니 덥석 내 허리를 두 팔로 감아 안고 얼굴을 비볐다.

“자기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내가 그렇게 속을 썩였는데도 도망가지 않고.”

나는 바닥에 앉으면서 그녀를 무릎 위에 앉혔다. 물기에 뽀얀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아직은 썩을 창자가 더 남아있어. 내 속이 다 썩으려면 한참 가야 돼.”

그녀의 눈빛이 아롱다롱 여울지다가 이내 눈물을 확 쏟고 말았다.

“자기야. 정말 미안해. 나 때문에 몸도 삐쩍 마르고...... 자기가 너무 불쌍해 죽겠어. 흑흑.”

나는 씩 웃으며 그녀의 가슴을 더듬다가 팔을 등 뒤로 돌려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그러자 마치 봇물 터지듯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이 순간 왜 내 눈에서도 눈물이 나왔는지 모른다. 뭔가 저항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에 의하여 그녀와 나는 엇갈리고 애태우는 것인지 모른다. 미신이라고 하는 정체불명의 그림자에게 농락당하다가 길바닥에 패대기쳐지는 운명일 수도 있다. 처연한 기분이 들었다. 한참 눈을 감고 있던 나는 어느 정도 그녀의 감정이 진정된 후에 활짝 웃으며 일어섰다.

“에이, 좆대바위가 그냥 쓰러지려 하네.”

그녀는 퉁퉁 부은 눈을 위로 치켜뜨더니 마구 웃었다.

“안돼요. 바위님. 이대로 쓰러지시면 안 되어요. 호호호,”


나는 뜨거운 그녀의 숨결 속에서 무엇인가 자꾸 잡으려 애쓰는 느낌을 받았다. 수렁에 안 빠지려고 몸부림치면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늘어지려 했다. 황홀함에 번뜩이는 눈빛을 던지며 내 목을 꽉 끌어안고 몸을 밀착 시켜 올 때에는 마치 내 몸속으로 자기의 몸을 숨기려는 듯 했고, 절정의 순간에는 포수에게 쫓기다가 날아든 참새모양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고독한 유희였다. 전신으로 우울하고 외로운 쾌감이 번져 나가는 순간에 그녀의 눈에 맺힌 이슬이 귓전으로 흘러내렸다.

“자기야, 자기가 나 없으면 어떻게 살아?”

나지막하게 슬쩍 던지는 말이었지만 그 속에 깃든 그녀의 어떤 비장함을 엿볼 수 있었다. 나는 담배를 물면서 고개를 돌린 그녀의 표정을 슬쩍 훔쳐보았다. 그녀는 입술을 꼭 다물고 있었다.

“흥, 세상은 딱 두 가지 길 뿐이 없어서 편해. 죽기 아니면 살기지.”

“가끔 나는 자기가 나를 만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별의 직감이었다. 내 시선을 슬쩍슬쩍 피하며 던지는 가벼운 말투에 단단한 뼈가 들어있었다. 그녀는 지긋지긋한 신끼에 굴복하려고 어떤 결심을 한 것이 분명했다. 심장이 퍽 내려앉은 기분이었지만 아무렇지도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도 다 팔자겠지. 내가 뭔 힘이 있다고 마음대로 하겠어.”

사실 이것이 정답이었다. 남들은 그저 평범하게 만나서 평범하게 살지만 세상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풀밭이 펼쳐진 뜰에 유독 혼자서만 우뚝 솟아 사방에서 부는 바람을 맞는 나무도 있게 마련이다. 오죽이나 못났으면 혼자서만 그렇게 솟아올라 시달림을 자초했을까, 그녀와 나는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이 만난 것이 아니라, 만날 사람끼리 만났지만 너무 타고난 팔자가 우뚝해서 울부짖고 몸서리칠 뿐이다.

나는 그녀의 몸을 앞으로 돌리며 끌어안았다. 시선을 살짝 비끼는 눈동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귀신도 사람이 용감하면 길을 비켜 준다는데,”

순간 그녀의 눈빛이 반짝했다. 허공을 한참 동안 응시하다가 다시 스르르 눈꺼풀을 내렸다.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녀는 거대한 힘에 저항하여 빠져나올 수 없다고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측은함이 뜨거운 기운으로 꿈틀대며 배창자로 흘러내렸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잠자. 내일은 내일 생각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는 나만 생각해.”



11.


새신랑을 마지못해서 받아들이기 전에 사랑했던 애인과 마지막 정사를 나누는 밤처럼 그녀는 울다가, 또 웃다가 밤을 홀딱 새웠다. 마치 살려달라고 나를 붙들고 애원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시종일관 흔들리지 않고 그녀를 다독거리느냐 농담을 툭툭 던졌지만 깊은 그녀 내면의 정체를 알려고 노력했다.

“무당이건 공산당이건 뭔 상관이야? 그래도 귀신하고 사느니 살아있는 내가 더 낳지.”

새벽녘에 칼로 무를 자르듯 한마디로 내쳤다. 혼란에 빠졌던 그녀의 표정이 확 살아나면서 동그란 눈을 크게 뜨더니 감격한 표정으로 또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는 그녀를 뒤로 한 채 사무실로 일찍 돌아왔다. 삼일 째 그녀에게 전화가 없었다. 그녀의 핸드폰은 전원이 끊겨 있었다. 수원에 있는 그녀의 집으로 전화를 하자 언니가 전화를 받더니 아주 조심스런 목소리로 그녀는 산으로 기도하러 들어갔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가 정말 무당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가끔 그녀에게 일어나는 기괴한 현상에 놀라기는 했지만 살다보면 별스런 일도 다 있는 법이라고 지나쳤다. 얼굴을 찡그리며 전화를 끊었지만 꼭 그녀는 나에게 연락할 것이라 믿었다. 우리의 사랑은 잡귀신들에 의하여 휘둘릴 성질이 아니었다.


나는 핸드폰과 집전화의 벨소리를 최대한으로 크게 해놓고 머리맡에 두고 잤다. 어느 날 새벽이라도 문득 날아올 그녀의 전화가 꼭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그녀와 헤어진 지 보름정도 지난 새벽에 애타게 기다리던 전화기의 벨소리가 따르릉 하며 방안을 온통 흔들어 댔다.

“자기야, 나 정말 자기 없어서 죽겠어. 보고 싶어...... 정말 보고 싶어 죽겠단 말이야. 흑흑”

술에 취하여 꺼져가는 목소리였다. 흡사 전화선을 타고 부글부글 끓는 용광로가 머리로 확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거기 어디야? 지금 갈 테니 어딘가만 말해.”

“응? 응? 여기...... 잘 몰라. 어딘지 잘 모르겠어.”

피가 끓어올랐다. 또 술에 취하여 어디를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 멍청한 새끼야, 지금 네가 어디 있는지도 몰라? 옆에 물어 볼 사람도 없어?”

“응? 사방이 온통 컴컴해. 자기야...... 나 무서워 죽겠어. 보고 싶어 미치겠단 말이야. 흑흑.”

사방이 온통 컴컴하다면 분명히 산 속으로 기도하러 들어갔다가 그 아랫동네로 내려와서 공중전화를 하는 것이 분명했다.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딸깍딸깍 들렸는데, 급하게 동전을 먹어 들어가는 소리로 봐서는 멀리 있는 것 같았다.

“빨리 옆에 누가 있으면 물어 봐. 아니면 나를 직접 바꾸어주던지.”

“응? 아무도 없어. 자기야 동전이 다 떨어져...... 나 어떻게 해......”

뚜뚜뚜 하는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전화가 뚝 끊겼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탁상 위에 있는 사진 속에서 활짝 웃는 그녀의 모습이 점점 크게 내 앞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전화기를 옆에 끼고 밤을 새웠지만 벨소리는 다시 울리지 않았다. 사무실에 출근하여 멍하니 하루 종일 지낸 후에 퇴근하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방을 세준 주인아줌마의 목소리가 화급하게 들려왔다.

“아저씨, 지금 아가씨가 방문 앞에 쓰려져 있어요. 빨리 와 보세요.”

건물계단을 마구 뛰어 내려와서 집으로 뛰어갔다. 골목에 들어서서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에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채 방문 앞에서 웅크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눈물이 왈칵 솟구치며 핏대가 확 솟았다. 손과 발이 온통 가시나무에 쓸려 찢어진 상처투성이였고 한쪽만 하얀 고무신이 걸쳐 있는 두 다리에도 찢겨진 하얀 바지 사이로 넘어져 깨진 상처가 군데군데 피멍으로 드러나 있었다.

“야, 짜식아 어떻게 된 거야? 정신 차려, 눈을 떠 보란 말이야.”

내 목소리에 그녀의 의식이 조금 돌아오는 듯했다. 퉁퉁 부어오른 눈을 거슴츠레 뜨더니 한참 내 얼굴을 올려보다가 비로소 나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자기야, 당신...... 나 보고 싶었지?”

더듬더듬 말하는 그녀는 확실히 웃었다. 잔뜩 부어오른 얼굴 전체가 약간 찌그러지는 듯 보였지만 분명히 그녀는 나를 보고 웃었다.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옷을 다 벗겼다. 통통했던 몸이 삐쩍 말라서 뼈만 앙상했다. 뜨거운 물수건으로 온 몸을 다 닦아준 다음에 약을 꺼내어 찢기고 쓸린 상처에 발라주었다. 어젯밤에 산속을 더듬어 나를 찾아 내려오던 그녀의 황망한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녀는 가끔 몸을 비틀며 신음소리를 내다가 겨우 실눈을 뜨고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무엇인가 거부하는 것이었다. 집요하게 자기를 수렁으로 끌어내리는 그 무엇과 싸움을 벌이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가늘게 뜬 눈꺼풀 사이로 번쩍하며 빛이 감돌 때면 나를 알아보고 두 팔을 벌려 허우적거려 나를 끌어안았다.

“자기...... 당신 품이 너무 따듯해. 어디 가지마.”

마치 꿈을 꾸듯 웅얼거렸다.


수원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는 전화가 없었다. 집안에서도 그녀에게 지쳤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나는 부모도 어쩔 수 없는, 또한 형제도 어쩔 수 없는 피붙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녀는 마치 허허벌판에 버려진 것 같았다. 다음날 정신이 든 그녀에게 미음을 쑤어 먹였다. 그녀는 투정을 부리는 듯, 너무도 고마워 죽겠다는 듯 퉁퉁 붓고 갈라터진 입술을 벌려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받아먹었다. 하얀 이 사이로 보이는 혀를 보고 있노라니 꼭 노란병아리가 물을 한 모금 쪼아 입에 넣은 다음에 하늘을 보고 쫑쫑거리는 것 같았다. 그녀를 꼭 끌어안고 잤다. 마치 내 품이 보금자리인양 잠결에도 그녀를 팔 안에 가두어 칭칭 감았고, 가끔 깜짝깜짝 놀라서 펄떡 뛰는 그녀의 몸을 다독거렸다. 그녀는 무시무시한 내적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잠결에 안 되요, 안 되요, 하는 헛소리를 하다가 악 하고 비명을 질렀고 벌떡 일어나 앉아서 멍한 표정으로 한참 있다가 내 품으로 푹 쓰러지곤 했다. 나는 그녀의 정신을 달래주려고 소주를 몇 병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두고 또 큰 컵에 따라서 그녀의 머리맡에 두었다.


그녀는 삼일 째 되는 날부터 얼굴의 붓기가 내려앉고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음식을 먹기보다는 술만 계속 찾았다. 나는 입술을 악물고 소주를 한 박스 들여놓았다. 죽어도 내 손에서 죽으라는 뜻이었다. 이것이 그녀와 나에게 주어진 사랑의 운명이라면 달갑게 받아들일 것이다. 징그럽게 지긋지긋한 행복으로 받아들이며 그녀를 내 손으로 파묻을 각오는 되어있다. 이렇게 피눈물로 얼룩진 사랑도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다. 대대로 팔자 사나운 집안에서 태어난 천형을 받은 여자와, 그 여자가 내뿜는 마지막 숨결을 기어이 시퍼렇게 뜬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려는 오기를 가진 남자만이 누릴 수 있는 사랑이다. 내 정성이 통했는지 아니면 그녀가 내적인 싸움에서 이겼는지 모르지만 잠시의 평화가 찾아왔다. 그것도 반짝 하룻밤의 평화였다. 그녀는 내가 끓여 내온 국을 한 그릇 다 해치우더니 살아나는 눈빛으로 말했다.

“자기 너무 힘들지? 자기 얼굴이 많이 말랐어.”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같이 비비 말라비틀어져 죽어도 돼. 까짓것 한번 목숨인데 겁날 것 없지.”

 

 

글 / 은하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