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님(桓雄)의 구슬 - 52

내글[影舞]2005.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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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님(桓雄)의 구슬 - 52   - 내글[影舞]

 

 

그 뒤부터는 일사철리였다. 이필구는 우선 이른 시간이라 거의 텅텅 비다시피 한 탁자에 앉아 술을 마시는 곳을 지나 안에 마련된 방으로 정민을 안내한 후 기녀 향이를 불러내어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이놈 봐라, 이 전대를 공짜로 꿀떡하시겠다고! 그건 절대로 안 되지.’

정민의 귀는 계속해서 이필구의 뒤를 쫓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있었다.

‘뭐라, 내 볼기까지 친다고! 이것들이 정말….’

대충 정리하면 술을 진탕 먹인 다음 전대를 슬쩍하고 내일 아침 무전취식한 죄를 물어 관아에 있는 장 포두에게 뇌물과 함께 넘기고 곤장을 쳐서 성 밖으로 내쫓는 다는 말도 안 되지만 어느 시대에나 종종 있는 아주 흔한 이야기였다.

‘어느 시대나 부패한 경찰은 있군. 에이, 술맛 딱 떨어지네! 이것들을 그냥 아작 내 버려…. 아니다, 다 먹고사는 불쌍한 인생들 아닌가! 그냥 점잖게 주물러주고 충고나 한마디하고 떠나야겠군!’

기분이 상한 정민은 즉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이필구하고 귓속말을 나누던 향이라는 기녀가 급히 다가와 정민의 한쪽 팔에 매달리듯 잡고 늘어졌다.

“어머나, 공자님! 성질도 급하시기도 하셔라. 그새를 못 참고 나오심 어떻게 해요. 제가 곧 들어갈 텐데…!”

‘에고, 향도 독하다. 화장한거 옷에 묻는다, 좀 떨어져라!’

“놓아라!” 

“에구머니, 이놈이 사람 잡네!”

정민이 살짝 팔을 저어 옆에 따라 붙는 기녀를 뿌리쳤다. 기녀는 과장된 몸동작으로 옆으로 쓰러지며 소리를 질렀다. 기녀는 정민의 얼굴표정을 보고 술을 먹여 어떻게 해보려는 계획이 틀어졌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고, 그 순간 다른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기녀 향이가 쓰러지며 이필구에게 눈짓을 하는 것을 정민이 놓치지 않고 있었다.

‘햐, 이것들 봐라! 노골적으로 덤비네. 그럼 어디 해보자!’

정민은 술맛을 잡쳐버린 것을 어떻게 하든 풀고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천년 후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을 해보기로 했다. 그것은 맘에 안 드는 술집 하나 왕창 때려 부수기. 그래야만 기분이 나아질 거 같았다.

“이 시골 촌놈이 어디서 행패를 부려하느냐!”

- 우당탕!

“어구구!” 

이필구는 다짜고짜 정민의 멱살을 움켜쥐고 흔들었다가 아니고 그냥 허공에 대고 헛손질만 하며 그 기세에 제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앞으로 거꾸러졌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의 눈에는 정민은 그대로 자리에 서있고 이필구가 정민의 몸을 그대로 통과한 것처럼 보였다. 이필구는 즉시 일어나며 정민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제법이네. 어디 이것도 받아봐라, 이야!”

이필구는 비록 기녀에게 빌붙어 뒤치다꺼리나 하는 기생오라비 일을 하는 몸이지만 권각술을 익힌 자였고, 나름의 내공 수련도 꽤 했기 때문에 이 기루 근처 뒷골목에서는 무시 못 할 실력자였다. 게다가 관내 포청의 포두들과의 친분도 있고 해서 웬만하면 기루의 주인도 시비를 걸지 않는 자였다. 그러나 오늘 이필구에게는 과한 욕심을 부린 덕택에 무식 - 이 시대에 있는 통상적인 관행을 전혀 모르는 무식 - 한 임자를 잘못만난 운이 없는 날이었다.

이필구는 처음에 보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순식간에 거의 백여 번이 넘게 주먹과 발길질을 했지만 정민의 털끝은 물론 옷깃조차도 건드리지 못했다. 분명 이필구의 주먹과 발길질은 정확히 정민의 몸을 지나는 것으로 보였지만 바람소리만 요란했지 그 밖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필구는 쉼 없이 손과 발을 놀리면서도 한편으로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분명 상대는 그 자리에서 한 치의 움직임도 없었는데 자신의 손과 발은 계속 허공만 가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 이필구의 동작을 멈추고 지친 듯 헉헉거리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다했느냐?” 

“헉헉, 너, 너의 정체가 뭐냐?”

“나? 네가 말했지 않았느냐, 세상 물정모르는 쓸 때 없이 돈만 많은 유생!”

정민은 이필구가 기생 향이와 귓속말로 나눈 이야기를 그대로 했다. 이필구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에 입이 말라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정민을 쳐다보았다.

“헉헉! 내, 내가 언제…?”

“그럼, 저기 있는 향이에게 물어 볼까?”

“어머, 어떻게 내 이름까지…?”

“…, 헉헉!”

부채 정민은 품에서 오랜만에 얼음접부채를 꺼내 들었다.

“다했군. 그럼 지금부터 내 차례구나!”

이필구는 정민의 낮은 목소리를 듣고 진저리를 쳤다. 서늘한 기운이 얼굴을 스치자 이젠 죽었다는 생각이 들자 다리에 힘이 빠졌다. 곧 부채가 자신의 머리를 부셔버리는 상상을 하고 눈을 질끈 감고 기다렸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 어떻게…. 호, 혹시 독…?’

이필구는 눈을 떠 정민이 부채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방금 전 코끝을 스쳤던 찬 기운이 독일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 살려 주시오!”

“저리 비켜, 너랑은 끝났다. 여기 주인이 누구냐! 어라,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이필구는 끝났다는 말을 듣자 입에 거품을 물고 자빠져 버렸다. 이필구는 자신이 이미 독에 중독되어 목숨을 건지기 힘들다는 말로 알아들었던 것이다. 이필구가 이렇게 엉뚱한 상상을 하며 제풀에 쓰러졌지만 그는 이미 정민의 관심 밖의 인물이 되었다. 이필구와 시비가 붙으면서 안쪽에서 기루의 주인으로 보이는 자가 떠드는 소리를 듣고 정민은 지금 머리끝까지 화가 난 때문이었다.

- 웬 시골뜨기가 말썽을 부린다고 했냐! 아주 작살을 내서 길 한운데 내다버려라, 다신 그따위 시골뜨기가 이런데 발길을 들여놓지 못하게 말이다!

졸지에 시골뜨기란 소릴 듣고 난 정민은 완전히 꼭지가 돌아버렸다. 그냥 기녀와 기생오라비 같은 놈만 충고수준의 혼을 내고 조용히 사라져 주려고 했다. 하지만 이젠 그 충고를 하려던 범위가 달라졌다.

‘흥, 시골뜨기가 벌이는 말썽을 어디 한 번 받아 내봐라!’

정민은 술집에서 주인이나 종업원들에게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한 번도 속 시원한 분풀이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엔 아예 작정을 하고 나섰다. 정민의 호통소리를 듣고 몇몇 사람이 안쪽에서 고개를 내밀었지만 기루의 주인으로 보이는 자는 보이지 않았다. 정민은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기루의 주인을 찾았다.

“여기 기루의 주인이 누구냐? 당장 나오라고 해라. 아니면 나올 때 까지 이 기루의 기둥을 하나씩 뽑아 주겠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민은 들고 있던 부채를 펴서 휘둘렀다. 좀 전에 이필구의 주먹과 발길질을 피하는 실력과 더불어 거창한 말과 부채를 휘두르는 폼을 봐서 어느 쪽이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지지는 않아도 최소한 문이나 탁자 한두 개 쯤은 박살 날줄 알았는데 조용했다. 몇몇의 심각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하하!” 

“호호호!” 

“저 친구 보기보단 허풍이 심하군, 하하하!”

“자, 몸을 다치기 싫으면 빨리 이곳을 나가기 바라오!”

정민은 정중한 경고를(?) 했으나 특별히 그의 말을 허풍이라 생각하고 들어주는 사람들은 없었다. 오히려 놀리는 사람의 숫자만 늘어갔고, 그에 비례하여 정민의 분노는 저점 커져만 갈뿐이었다.

“하하하, 미친놈 아닌가? 여기가 어디라고 헛소리를 하는 거냐?”

“더 이상 소란 피우지 말고 순순히 찌그러지지!”

정민은 시비에는 대꾸를 않고 두 번째로 부채를 휘둘렀다.

“주인은 아직 않나오는 거냐? 그럼 어쩔 수 없군. 내 다시 경고하오, 모두들 이곳에서 나가시오!”

“헤헤헤, 헛소리 말아라!”

“보자보자니 죽고 싶은 모양이군!”

정민의 눈에서 싸늘하게 빛을 발하며 입술은 장난스럽게 비틀어졌다.

“난 세 번 이상 경고 하지 않는다. 앞으로 십초 뒤에 이 기루는 무너지게 될 거다.”

“십초? 뭐야 열 번의 손을 더 쓰겠다는 거냐? 애송아!”

‘에고, 말을 잘못했군!’

“와 하하하!”

정민의 말을 듣고 있던 기루에서 힘쓰는 일을 맡아하는 자로 보이는 등치들 중 하나가 놀리듯 말을 받았고, 그의 은밀한 수신호를 받은 일행이 정민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쳇, 그냥 술 한 잔 하려고 왔는데, 엉뚱하게 되어가는군!’

이유 없이 순식간에 일이 커지는 게 이상했지만 일단 정민의 꼭지가 돌아간 상태였다. 남은 건 그 꼭지에서 화가 쏟아져 나오는 일만 남은 것이다.

- 우당탕, 쿵쾅!

- 투탁, 툭탁!

“어이쿠!” 

“아이고!” 

“나 살려!”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와 장정 여섯 명이 내는 비명소리가 기루 안을 울렸다.

“저, 저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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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이 국경일이 되는 그 날까지… 아자 !

한글을 사랑 합시다.

내글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