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그 여자. <리플레이> 10th

안정호2005.10.28
조회177

P {MARGIN-TOP:2px; MARGIN-BOTTOM:2px}

<그 남자>

 

 신이라는 것이, 꼭 늙은 할아버지가 꼬부랑 지팡이를 들고 등장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 나는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만 했다.

 

 그저, 평소에 하고 싶던 대로, 나는 정말 평범하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했다.

 

 술을 많이 먹고 지하철 역에서 선로로 뛰어 버린 아저씨를 다시 플랫폼으로 끌어 올리는 일.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말고도 여러명의 사람이 있으니까, 내가 시작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우루루 와서 도울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나는 그렇게 쉽게 밑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그것은 한 가지 최악의 경험과 한 가지 최고의 경험을 주는 여행으로의 길이였다.

 

<그 여자>

 

 이 남자 바보 같다.

정말 바보 같다. 이런 남자들때문에. 내가 업무량이 많아진다.

아직 수습천사인 나는 주로,현세를 떠나  이곳으로 오는 영혼들을 처음으로 맞이하고 관리하는 일을 한다.

 

 예를 들어서 죽은지 49일 이내에, 하늘나라로 올라와, 인생을 평가받고 그에 따른 평점으로 사후의 세계에 어느 동네에 사느냐가 결정된다.

 

 현세에서 서울의 강남이 집값이 높고 인기가 많은 것 처럼, 이쪽 세계도 주위 환경이 좋고, 기반 시설이 잘 되어있어, 환생하는데 까지 느긋하게 살 수 있는 곳은 아무나 들어가지 못한다.

 

 흔히 현세의 사람들은 그곳을 천국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아무튼 원래 죽은 영혼을 데리고 다니는 것도 벅찬데, 이 남자. 원래는 죽으면 안 될 운명이였다. 원래는 그 뚱뎅이 아저씨였다.

 

<그 남자>

 

 신은 나보다도 한참은 어려보이는 금발의 푸른 눈, 미소년이였다.

그는 노트북을 한참 쳐다보다가 그제서야 나의 존재를 눈치채고 인사를 건냈다.

 

 정중하게,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나에게 물었다. 자신들이 보상책을 마련했는데, 어떤 것을 택하겠냐고

 

나를 데리고 온 날개 달린 여자는 그 곳을 빠져나가려고 하다가, 신의 제지를 받고 그 자리에 섰다. 어지간히 바쁜가보다. 오면서 계속 투덜거리는 것 같았다. 무슨 소리인지는 잘 모르지만, 입이 움직이지는 안했지만, 나는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가슴에서 나는 소리를...

 

<그 여자>

 흔하지 않은 경우지만, 이제까지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흔히 실수로 잘못 데리고 온 영혼에게 신은 3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내가 그곳을 빠져 나가려고 했던 것은 보통 영혼들이 선택하는 방법을 알기에, 그것을 담당해줄 상관에게 보고하려고 급한 마음에 문을 나선 것이였다.

 

 그런데, 이 남자, 정말 바보다. 왜 그런 선택을...

덕분에 나는 다시 현세에 내려가야 했다.

 

<그 남자>

 

신은 말했다. 당신의 기억을 그대로 갖은채, 이곳에서 최고의 대우로 지낼 수 있게 원하는 곳 어디이든지 내가 말하면 그곳에 나의 거처를 제공하고, 특채로 천상의 업무를 맡기겠다고. 하지만 사실 이 옵션은 선택된 적이 많지 않다는 말을 덧붙였다. 가끔 신앙인들이나 선택을 한다면서

 

그리고는 실질적으로 해결책이라면서 두번째 방법을 꺼냈다.

당신이 실수로 죽었다는 사실만을 지워버린채, 다시 현세로 돌려보내준다는 것. 대신 천상의 실수에 대한 보상으로. 인생에 있어서 부귀와 영화. 건강등의 배경은 정말 퍼펙트하게 행복하게 보상해주고 죽어서도 처음 옵션보다는 조금 덜하지만, 그래도 천상에서 제법 좋은 곳에 자리를 잡게 해 준다고.

 

노트북을 덮으면서 준비 되었으면 행사 담당 천사를 부르겠다고 했다.

 

나는 물었다.

3번째 방법은 무엇이냐고...

신은 놀라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리고서는 말을 이었다.

 

내가 살아온 인생의 어느 시점이던지 나를 데려가준다고, 하지만

딱 한나절, 12시간만 보낼 수 있고 모든 기억이 지워진채 환생해야 한다고...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하루면 충분하다고.

 

<그 여자>

 

 그 남자의 손을 잡고 나는 천상의 시계 터널을 지나 신께서 일러주신 어떤해 어떤 날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주의사항을 말했다.

내가 항상 곁에서 함께 다니겠지만, 절대로 천상에서 돌아왔다는 사실을 말해서는 안된다고. 여기서의 그의 행동이 미래를 바꿀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만약 다른 미래는 상관없지만, 생명에 관련된 미래를 바꾸려고 한다면 그 순간에 그의 영혼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는 내심 궁금했다. 뭐때문에 다시 현세에, 그것도 12시간만을 위해서 돌아왔는지. 그는 돌아오자 마자 바쁘게 움직였다. 지금의 외모(죽었을때)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어려보이고 여유가 있어보이는 그는 정신없이 거리의 가게들을 들렀다.

 

 그렇게 시간이 5시간이 지나갔다.

그는 어느 놀이터 앞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 남자>

나는 이 맛이 그리웠다.

여기 포장마차에서만 파는 어묵은 최고였다.

꽃게와 청량고추로 울궈낸 국물은 추위와 피곤에 지친 나와 그녀에게 최고의 피로회복제 였다.

 

다행이다. 저 아저씨가 뺑소니 차에 치어서 다리를 다치신 후로는 못 먹던 맛이였는데,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묵값으로 수표 한장을 내고 도망치듯 달렸다. 겨우 백만원이지만, 후에 아저씨가 치료받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였다. 뭐 어차피 나는 몇 시간 뒤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날테니, 돈은 필요 없었다.

 

나는 어묵 국물이 담긴 컵을 천사에게 건냈다.

 

<그 여자>

어라. 이 남자. 나보고 어묵 국물을 마시라고 한다. 웃으면서...

천사라는 이미지를 망칠 수 없기에 나는 겨우겨우 입을 대면서

마시는 척 하려고 했다. 그런데, 실수로 목에 몇 방울 국물이 튀었다.

 

근데, 맛있었다. 나는 물었다.

왜 지금 돌아왔냐고. 너무 궁금하다고

오히려 그가 나에게 묻는다.

무엇이 행복이냐고

나는 대답을 해주었다.

 

신의 가르침을 제대로 읽고서

자신의 운명에 후회를 남기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면서 잠시 현세를 떠나게 되면

천상에서 푹 쉬다가 또 다른 멋진 인생을 준비하는 것

그것이 행복이라고...

 

그는 답했다.

그러면 나는 지금 행복해지기 위해서

여기 이순간에 왔다고.

 

그렇게 시간은 지나가고

겨울의 짧은 해는 지었다.

 

<그 남자>

정확한 시각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30분 정도 남았을 것이다.

나는 그 때부터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너무 할말이 많아서

편지지가 모자를 것 같았는데,

 

내가 20분 동안 펜을 잡고 남긴 것은

'고맙다. 여지까지 있어주어서. 그리고 사랑한다.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이 말뿐이였다.

 

<그 여자>

천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까지는 이제 1시간 남았다.

그와 내가 앉아 있는 벤치 위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나야 성의를 입고 있으니까 별로 안 추운데,

이 남자. 굳이 얇은 옷을 입고 있다. 이해가 안된다.

 

그 때였다.

놀이터 앞으로 멋진 외제차가 미끄러지듯 다가오고

한 남자, 한 여자가 차에서 내렸다.

 

<그 남자>

이 순간이였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만, 평생토록 잊지 못할 만큼 가슴 아팠던 일

그리고 후회되던 일.

 

나는 그녀의 그 남자에게 말했다.

잠시만 자리를 비켜주라고,

그는 놀란 눈빛으로 나를 보고 또 그녀를 바라보더니,

차를 몰고 어디론가로 떠났다.

 

그녀는 부르르 떨고 있었다.

아마도 그랬겠지.

 

그녀에게 너무나 헌신적이였고,

그녀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었기에,

나에게 미안해지는 것이겠지.

 

아니면, 내가 모든 것을 알고

화가 나 분풀이를 하려고 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면서 떨고 있는 것인지도.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사랑해....

 

그녀는 놀랐다.

하지만 말을 이었다.

미안하지만, 보다시피 그녀는 변했다고.

 

나는 내심 놀라는 척을 하려다가

 

다시 말했다.

 

안다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너에게 화가 나거나

너를 미련스럽게 붙잡으려고 여기에 온 것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미치도록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고

네가 누구와 있던지...

앞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고

 

나는 그저 네가 사랑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낮에 준비했던 여러가지를 그녀에게 건내주었다.

그리고 아까 썼던 편지를 건냈다.

 

그리고 부탁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아봐도 되겠냐고...

 

<그 여자>

저 남자 위험하다.

생명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고 있다.

내가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나는 그가 정확히 뭘하는지 몰랐었다.

 

그냥 서류를 끄적이는 것 같더니,

 

그는 그녀에게 그녀의 이름으로 된

종신보험을 건내고 있었다.

 

그녀는 이 시점에서

 3년 뒤, 병으로 죽을 운명이였다.

그런데 그가,

그가 그것을 바꾸려고 하고 있었다.

 

원칙대로라면 바로 막아야 하다.

내가 강제 정지 주문을 걸려고 할때,

그가 무엇인가를 말했다.

 

<그 남자>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네가 나를 정말로 좋은 사람으로

너를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지금 건내는 이것 이 벤치에 두고 갈테니,

내가 사라진 뒤 챙겨가라고,

 

만약 내가 지금 하는 짓이

미련을 떠는 것이나, 너를 붙잡으려고 하는 짓이라고

여긴다면 그냥 가라고

 

그건 네 선택이라고,

하지만 나는 가슴에서 부터 말하고 있다고

꼭 네가 이 종이백을 가지고 갔으면 좋겠고,

꼭 네가 필요한 순간에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그 여자>

이 남자, 거의 신정도로 잔머리가 좋다.

조심스럽게 직접 운명에 개입하는 것을 피해갔다.

하지만, 그래. 이렇게 그가 직접 운명을 바꾸는 것을 피한다면

영혼 강제 소멸을 피해 갈 수 있다.

 

그러나 이 남자의 눈. 너무나 아름답다.

눈물이 가득 고인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은 하지만.

눈동자는 오직 한 사람만을 보고 있다.

 

시간이 다 되어간다.

 

<그 남자>

 

그랬다.

나는 나를 버린 그녀가

불행해지면

기분이 좋아질지 알았다.

 

아니였다.

 

작년인가, 친구에게서 우연히 들은

그녀의 소식은

그녀가 당원병(조금씩 신경이 마비되거나 하면서 죽는 병, 골수세포 이식정도가 치료, 엄청나게 치료비가 많이 든다)에 걸려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을 받고, 그냥 집에서

매일 아침 조금씩 침대에서 자신이 굳어가는 것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고

 

찾아가려고 했었다.

그러나 찾아갈 용기가 없었다.

너무나 아름답던

나를 언제나 두근거리게 했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나는 그렇게 그 자리에서 맴돌아야만 했다.

 

그날,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라는 소식을 두달이나 지나서야 들었다.

병때문이 아니라, 자살이였다고,

자존심 강한 그녀가, 자신때문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나는 비겁했다.

 

그러나 이제

어쩌면 그 비겁함을 용서받고

또 내 사랑을 영원히 기억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였다.

그녀가 없는 삶은...

 

내 옆에 없거나

이 세상에 없거나.

모두 지옥이였다.

 

<그 여자>

천사를 1000년 하면 100년간은 주어지는 휴식년제도,

결정했다. 어떻게 쓸 것인지. 나는 이 남자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천사의 전지 전능한 능력은 못 쓰지만,

이 따듯한 남자가 어떻게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 가는지

꼭 지켜보고 싶다.

 

이제야 알았다.

그가 왜 얇은 옷을 입고 있었는지...

누구나 그가 그 여자를 꺼얀는 것을 보았다면

알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 구석구석 그녀의 체취를 남기려는 듯

거칠지 않게 힘껏 그녀를 안았다.

그의 몸은 그녀를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튼 천사도 오래하고 볼 일이다.

 

 

*10번째 이야기가 쓰여져서 올려봅니다. 한달에 한 두편을 올릴 생각인데,

여전히 많이 부족한 글,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