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MBC) 의 PD수첩 방영 이후 국익론,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윤리논쟁 등이 어지럽게 교차하며 온통 대한민국이 들썩이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일부 언론은 문화방송에 대한 다수 국민들과 네티즌들의 분노에 대해 '광기어린 극우주의' 내지는 '맹목적 애국주의'로 폄하하며 마치 자신들이 도덕과 윤리의 최정점인양 자제를 촉구하는 모양새다. 사실 진흙 싸움에 엉기기 싫어 그냥 사람들의 의견을 두루 읽어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하였으나, 이번 만큼은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윤리 도덕을 부르짖는 일부 언론이 스스로 피하고 있는 논점이 너무도 뻔히 눈에 보이기에 논란이 있을 것을 무릅쓰고 글을 올려 보고자 한다.
먼저, 두 가지의 사례를 들고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1998년에 한국에서도 크게 흥행에 성공 했던 영화가 있었다. 'Deep Impact'라는 제목의 그 영화에서 나는 매우 인상적인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방송 기자인 여주인공이 지구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진입해 들어오고 있는 거대 운석에 대한 정보를 우연찮게 입수하게 되고 이것을 뉴스에 보도하기 위해 취재를 감행한다. 이것이 미국의 정보기관에 포착되고, 그것이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되며, 결국 여주인공은 대통령과 면담을 하게 된다. 진실을 알려 달라는 여주인공에게 대통령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금 우리는 최선을 다해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물론 당연히 국민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언론이 먼저 보도를 하게되면 세계적인 대 혼란만 야기할 뿐, 우리의 대책 수립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실행계획과 대피계획 실행을 준비할 수 있도록 48시간만 기다려 주세요. 그러면 내가 직접 진실을 밝히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만 해 준다면 기자회견장에서는 당신의 어떠한 질문에도 모두 답변하겠습니다." 결국 기자는 보도를 미루고 48시간을 기다린다. 48시간 후 대통령이 직접 운석 충돌의 위험성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하고, 그 자리에서 여주인공에게만 무려 다섯차례의 질문 기회를 부여하면서 보도를 유예한데 대한 최대한의 배려를 한다. 그런데, 이곳 미국에서 직접 경험한 바로는 그 여주인공의 기자 의식 - 즉, 해당 보도가 단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에서 끝나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것으로 인한 국가적, 사회적 이익을 충분히 고려하고 나아갈 방향을 함께 제시하는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그러한 고민이 묻어나는 보도가 제대로 된 보도로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언론이 만약 그 여기자의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국민의 알권리 충족'이라는 명분으로 당장에 특종 보도를 해 댔을테고, 그에 따른 각종 혼란과 중대 사실을 숨긴 정부에 대한 비등하는 비난여론으로 아마 혼란과 자멸의 길을 걷게 되지 않았을까?
1597년, 조선의 남해에서는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한 해전이 치루어 진다. 13척의 전함으로 133척의 왜적의 전함을 격침 내지 완파 시키고 500여척의 대 함대를 동남해안으로 몰아내 왜의 수륙병진작전을 완전 무력화 시킴으로써 풍전등화의 조선왕조를 기사회생시킨 이른바 "울돌목싸움 - 명량대첩"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명량대첩의 영웅이자 조선 바다의 수호신이었던 충무공 이순신 제독에게 조선의 중앙정부는 그 빛나는 전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왕명을 거역한 '무군지죄'의 죄인에서 사해주고, 죽음만은 면해 준다는 '면사첩'과 고기 몇 근을 상으로 내리는 어처구니 없는 상찬을 행한다. 시간을 조금만 더 거슬러 가면 '삼도수군통제사'로 조선의 바다를 감히 넘볼 수 없는 철옹성으로 지켜 내며 승기를 잡아 가던 충무공에 대해 일본과 내통한 첩자의 악의적 제보에 의존하여 수군의 최고 지휘관을 하루아침에 '왕명을 거역'한 대역부도한 죄인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 조선의 중앙정부였다. 그리고, 그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그에게 명량대첩 이후 '면사첩'을 내리는 것은 그 자체로도 매우 큰 상이라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충무공의 본의와는 상관 없이 조선 왕실의 권위라는 절대적 가치에 대한 도전 행위로 꾸며진 왜의 충무공에 대한 악의적 정보로 인해 영웅이 죄인이 되고, 조선 왕조는 결국 이에 놀아나 나라를 망쳐, 민족사 앞에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르게 된다.
이제 2005년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견제 받지 않는 절대 권력기관은 어디일까? 나는 단연코 언론이라고 믿는다. 그만큼 언론의 역할은 이제 국가의 지표를 제시해야하고, 올바른 정보로 국민의 건전한 여론을 선도하여야 할 막중한 국가적,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언론이 주요한 의제로 설정하여야 할 것은 당연히 우리나라의 현행 법 체계와 연구에 대한 윤리적 검증 시스템이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가도록 하기 위해 사례로 삼아야 할 것과 발전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황우석 박사의 난자 채취 과정이 다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중앙 정부가 옳지 못한 정보에 근거하여 충무공을 죄인으로 만들듯, 황우석 박사의 연구 결과가 사기극이라는 악의적 정보에 근거하여 그 연구의 문제점만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문화방송이 보도를 기획하고 취재, 편집하였기에 방향이 틀렸고 비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문화방송이 출발의 논제를 "황우석 박사의 연구가 틀렸다." 가 아니라 "줄기세포 연구의 윤리적 검증 시스템 개선 방향"으로 잡았더라면, 설사 황우석 박사 연구의 문제성이 지적 되더라도, 방송의 내용이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고, 아마 다수 국민으로부터도 동의와 사회적 합의의 틀을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 국민이 다 보았듯, 문화방송의 편집 기본 방향은 "황우석 박사가 틀렸다." 는 것이었고, 거기에 대해 다수 국민들과 네티즌들은 충무공을 압송한 조선의 조정에 대해 돌팔매를 가했던 조선의 백성들과 동일한 심정으로 문화방송에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분명히 지적되어야 할 부분은, 언론이 평가하고 받아 들이는 '황우석 박사'라는 과학자 한 명과 국민이 평가하고 받아 들이는 '황우석' 이라는 사람의 가치는 극과 극이라는 것이다.
윤리 논쟁을 제기하는 다수 지식인과 언론인들의 눈에는 황우석 박사는 그저 한 번 팔아 먹으면 뜨기 좋은 이슈꺼리 정도이다. 매번 황우석 박사의 연구에 딴지를 걸어대는 '생명윤리학회'를 비롯, 민노당이나 문화방송이나 한겨레신문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생명윤리학회'는 그 설립 취지에서 "생명윤리에 대한 학제간 논의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학회"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1998년 설립된 이후 그 회장인 황상익 교수와 주요 멤버인 구영모 교수가 해 온 일들은 주로 '황우석 박사 비판'에 중점을 두어 왔다. 더 크고 직접적 생명파괴 현상인 '낙태'나 '뇌사자 생명 연장의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해 왔다. 결국 이슈를 일으키기 위한 논쟁에 치중해 왔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이고, 황우석 박사 딴지 걸기에 치중한다는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이다.
더 나아가, 황상익 교수는 황우석 박사의 연구에 대한 반대론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여성의 난자는 매달 하나씩 배출되며 평생을 통해 배출하는 숫자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연구용 난자의 채취를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20 ~ 30개의 난자를 약물 투여를 통해 강제 배출시켜야 하고, 마취를 해서 인위적으로 채취하여야 하므로 그 안전성에 대해 누구도 장담할 수 없고 여성의 건강상 위해성이 매우 크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 대해 금전적 보상을 하는 것은 여성의 상품화라는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여성의 인권을 침해할 우려까지 있다.... (중략).. 배아는 자궁에 착상될 경우 바로 생명체로 탄생될 수 있으므로, 이를 연구 재료로 하여야 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생명체 파괴 또는 인간 복제의 윤리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윤리 논쟁이 윤리적으로 가치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보편적 사회 상식에서 비추어 보았을 때, 매우 비약적인 논리라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예를 들어, 난자 채취의 과정상의 어려움을 근거로 여성 인권 침해라는 주장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장기기증을 하고, 골수기증을 하고 있다. 장기기증은 장기의 일부를 떼 내는 것이므로 당연히 위험성도 크고, 외과적 수술을 행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기증자의 신체에 어떠한 위해성이 있을지 명백히 검증된 바 없다. 그러면, 그러한 위험성을 근거로 장기기증운동이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만약, 황우석 박사의 연구팀이 강제로 여성들을 납치하거나 협박 내지 감금하여 난자를 채취하였다면 말이 되는 논리일 수 있으나, 제발로 찾아와 기증하겠다고 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난자를 채취한 것을 두고 인권 운운 하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
뿐만 아니라 황상익 교수 스스로도 밝혔듯, 배아가 생명체로 될 수 있는 것은 "자궁에 착상될" 경우에 한해서이다. 그러나, 황우석 박사의 연구는 난자와 정자가 결합한 수정란도 아니요, 자궁 착상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연구도 아니다. 차라리 그가 주장하는 반생명윤리적 연구라고 본다면, 살아있는 실험용 쥐와 개, 원숭이 등을 상대로 이루어지는 각종 가혹한 연구들 - 암세포 이식, 바이러스 이식, 실험용 약물 주입 등이 훨씬 더 큰 윤리 논쟁꺼리가 될 수 있다. 명백히 외국의 실정법에서도 "동물 학대죄" 라는 것이 있고, 중근 선수가 독수리에게 돌을 던졌다고 미국 여론의 몰매를 맞았듯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된 부분이 "동물 학대" 이지만, 이상하게도 실험용 동물에 대한 생명윤리 논쟁은 없다. 그것은 우리 나라의 생명윤리학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유독 인간은 그 생명체로 볼 것인가 말것인가 자체가 문제가 될 배아세포, 보다 정확히 난자세포 연구 자체에 생명윤리 논쟁을 한다. 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기독교적 생명관 때문인가? 아니면 그것이 신의 영역을 침범할 인간복제의 가능성 때문에? 그렇다면 생명윤리 논쟁이 아니라 연구의 방향에 대한 논쟁을 하여야 하고, 인간 복제의 가능성을 없애기 위한 방향을 논해야 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수 많은 실험 동물의 희생이 인간의 질병 치료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면 배아줄기세포 또한 난치병의 치료를 위한 불가피한 연구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가?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동일한 주장, 즉, "나를 구하기 위해 다른 생명체를 파괴하는 행위로써의 연구"는 이미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 수많은 실험용 동물실험을 통해 먼저 행해 왔고, 지금 그들의 윤리 논쟁은 어떤 측면에서는 한국의 독주에 제동을 걸기 위한 한 전략일 수 있는데, 비판 없이 마치 그것이 최고의 윤리적 가치를 지닌 사람의 절대적 도그마인양 황우석 박사의 연구 자체를 폄훼하는 논조를 펼치는 모양새가 너무도 어색해 보인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서울대의대와 유수 외국 대학의 학위자들로 구성된 윤리론자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겨우 수의사 출신인 국내 농학 박사가 뭘 알아서..' 라는 지적 우월주의까지 엿보인다. 결국, 그런 일부의 황우석 박사 연구의 적정성 논란은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입지를 확인하려는 사람들의 자기 만족적 논쟁이라는 비판적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황우석 박사를 하나의 장사꺼리로 만들어 보려는 상업주의적 의도라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론과 일부 학자들의 시각과는 달리, 다수 국민들과 네티즌들에게 있어서 황우석 박사는 그 인물 자체로써가 아니라 그의 각종 행적과 그가 만들어간 신화, 그리고 그가 국민들에게 준 메시지로 인해 단지 일개 연구자가 아닌 '대한민국 미래의 상징' 이요 '한민족 우수성의 결집체'로 인식되어 있다. 지금껏 우리는 일제에 의해 패망한 이후 스스로 열등감과 분열주의에 사로잡혀 수많은 질곡을 겪어 온 20세기를 통해 빛나던 오천년의 역사를 잃고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상실한 채 우울한 나날을 지내 왔다. 그러나, 21세기의 벽두에 의례 유명 학자들이 그러했듯 외국 유수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단한 지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대중들을 무시하는 태도도 지니지 않은 황우석 박사가 세계 과학계의 최고봉들이 어렵사리 투고하는 'Science'지에 표지 논문과 특별 기자회견으로 예우 해 줄 수준의 연구 성과를 일구어 낸 사실에 감격하고 우리 스스로에 대해 되돌아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거기에 황우석 박사 스스로 "나의 연구 성과는 전세계 유일의 쇠젓가락을 사용하는 우리 민족 특유의 우수성에 기인한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 는 특유의 긍정적, 애국적 가치관을 국민들에게 드러 냄으로써 우리 스스로의 우수성을 자랑스러워 할 꺼리를 가지게 되었다는, 그럼으로써 국가적, 민족적으로 큰 자산을 지니게 되었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 될 수 있었다. 즉, 조선의 충무공이 군사적으로 외적의 침입을 물리쳐 민족을 구한 영웅이라면, 황우석 박사는 침체한 우리 민족 스스로의 자긍심을 새로이 불러 일으키고 21세기 우리가 세계의 주인공으로 우뚝 설 정신적 힘을 지켜 낸 "현대의 정신적 충무공" 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황우석 박사에 대한 인식의 차이, 즉, 하나의 상업적 수단으로써의 논쟁꺼리이냐 절대 불가침의 민족적 자긍심의 상징이냐에 대한 상반된 시각의 대립이 오늘 문화방송이 비난을 받는 근간인 것이다.
물론, 황우석 박사가 결과적으로는 거짓말을 한 것이 되고, 그 연구 성과가 윤리적으로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다. 이것을 약으로 삼아 더 이상 이런 문제가 없도록 우리의 연구에 대한 윤리적 검증 시스템을 보완하고, 그런 과정들을 원칙대로 운영해 가는 풍토를 조성해 가는 동시에 연구자들의 윤리 의식을 제고함으로써 지금껏 쌓아 온 생명과학기술 선진국으로써의 지위를 확고히 지켜가도록 해야만 한다. 또한, 문화방송 PD 가족들에 대한 협박까지하는 정도의 위험한 여론몰이는 자제 되어야 하는 것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분명히 지적되어야 할 것은 다수 국민들과 네티즌들의 분노에 대해 이들 언론이 단지 '광기어린 애국주의'로 이를 왜곡하고 자기 방어의 논리로 삼으려는 파렴치한 태도가 있는 한, 국민들과 네티즌의 분노는 도를 더해 갈 것이요, 언론 스스로 제 입에 제갈을 물리는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네티즌과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문화방송의 기획과 편집 방향의 근간이 된 건전한 사회적 논쟁의 틀에서 벗어나 상업주의적으로 황우석 박사를 흠집냄으로써 자사의 이익을 추구하고 특종주의를 추구하려는 그릇된 보도 관행에 대한 사과요 건전한 기자 윤리의식의 제고이며, 이를 통해 언론 스스로 거듭나라는 경고인 것이다. 거기에 더해 미국이 하면 선이요 한국이 하면 악이라는 식이라거나 외국의 기준이 한국에 비해 보편 타당하고 우수하다는 사대주의적 관점에 근거한 사회 현상의 독단적 독선적 재단, 지적 우월감에 사로잡힌 무차별적 여론 무시에 대한 혐오감이 들어 있음도 알아야 한다.
사실 서구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윤리 논쟁은 매우 자의적이고 국가 전략적인 측면이 있고, 이는 한국적 세계관과 생명관의 정립을 통해 비판적으로 수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삼칠일 즉,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된지 21일이 지난 시점에서 영혼이 들어 온다고 보고 이를 생명체로 인정하는 전통적 윤리관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현대의 과학기술적 관점에서 그것이 보다 이전, 즉, 수정란이 착상하는 시점을 생명체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수정 이전의 단순 난자 세포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크다. 그리고, 황우석 박사의 연구는 수정란이 아닌 단순 난자세포를 조작하는 기술이므로 그 세부적 기술을 이해하지 못한 채, 생명 윤리 논쟁을 가하고자 하는 것은 거름지고 장에가는 격이다. 뿐만 아니라, 일부 윤리론자들이 주장하듯 미국이 금지하므로 한국이 허용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논리도 어처구니 없는 소리다. 미국에서 그러한 배아줄기세포의 연구 금지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연방정부 기금을 배아줄기세포에 지원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을 뿐, 민간 차원의 연구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즉, 서방 선진국들로써는 차후 정보통신분야, 우주항공분야와 더불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생명과학기술분야, 그 중에서도 난치병 치료에 직접 적용 가능한 줄기세포 연구 기술에 대해 그것이 성체줄기세포이건 배아줄기세포이건 주도권을 놓고 싶어하지 않는 속내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으며, 배아줄기세포 분야에서 한국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 윤리 논쟁인 것이다. 거기에 빠져 뛰어야 할 사람을 뒤에서 잡아채는 행위야 말로 차세대 기술 주도권 장악을 위한 국제 경쟁에서 스스로 뒤쳐지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보다 정확히 언론과 정치권과 윤리론자들이 해야 할 일은, 앞으로 뛰어야 할 황우석 박사에게 앞에 자갈이 많으니 뛰지 말라고 발목을 잡을 것이 아니라, 뛸 수 있도록 자갈을 치워 주고 먼지를 털어내 길을 닦아 주는 것이어야 하고, 그것이 국제 수준에 맞는 윤리적 검증 시스템의 도입과 기준의 마련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건전한 논쟁을 언론이 이끌어야하고, 이제부터 언론의 윤리관이 시험대에 오를 시점이다. 다수 국민과 네티즌의 문화방송에 대한 비난이 바로 그러한 경종인 것이며 언론 스스로 자각하여야 할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여기에 문화방송이 용기있게 잘 터뜨렸다는 단순한 옹호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당위성이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또 작금의 사태를 지난번 우리가 보았던 소위 '개똥녀 사건'이나 실연끝에 억울하게 자살했다는 사연에서 네티즌들이 보여준 "마녀 사냥"식의 여론 몰이와 동일한 선상에서 취급하고자 한다. 앞의 두 사건은 당사자와 직간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개인이 자신들의 감정을 섞어 유포함으로써 객관성이 결여된 감성적 대응을 유발하고, 이것이 도리어 그 반대편에 놓인 또다른 개인들에게 도가 지나친 인권 침해를 유발시켰다는 측면에서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의 건은 명백히 다른 경우다. 적어도 언론은 개인의 감성적 글쓰기와는 다른, 객관적 사실에 대한 명확한 검증과 거기에 따른 윤리적, 사회적, 국가적 파장을 충분히 고려한 건전한 결과를 유발하도록 하여야 할 책무가 있다. 따라서 "황우석 박사가 사기꾼이요 틀렸다."는 상업주의적 발상에서 출발한 기본 취재의 방향이 그 정당성을 인정 받을 수 없는 이유이고, 생산적인 논의의 방향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꺼리가 될 스타급 과학자의 뒤를 캐는식의 내용과 구성이 분노를 자아내는 이유인 것이다. 도리어 지금의 다수 네티즌들은 문화방송을 비롯한 일부 언론과 학자들이 황우석 박사에 대해 과도하게 "마녀사냥"을 하고 있는데 분노하고 그가 올바로 설 수 있도록 지켜주고자 하는 것이다. 53세의 충무공을 노량의 바다에서 잃었듯 53세의 황우석을 질시와 악의적 비난의 바다에서 잃지 않기 위해서...
황우석 박사 윤리 논란 - MBC옹호론에 반론..
문화방송(MBC) 의 PD수첩 방영 이후 국익론,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윤리논쟁 등이 어지럽게 교차하며 온통 대한민국이 들썩이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일부 언론은 문화방송에 대한 다수 국민들과 네티즌들의 분노에 대해 '광기어린 극우주의' 내지는 '맹목적 애국주의'로 폄하하며 마치 자신들이 도덕과 윤리의 최정점인양 자제를 촉구하는 모양새다. 사실 진흙 싸움에 엉기기 싫어 그냥 사람들의 의견을 두루 읽어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하였으나, 이번 만큼은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윤리 도덕을 부르짖는 일부 언론이 스스로 피하고 있는 논점이 너무도 뻔히 눈에 보이기에 논란이 있을 것을 무릅쓰고 글을 올려 보고자 한다.
먼저, 두 가지의 사례를 들고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1998년에 한국에서도 크게 흥행에 성공 했던 영화가 있었다. 'Deep Impact'라는 제목의 그 영화에서 나는 매우 인상적인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방송 기자인 여주인공이 지구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진입해 들어오고 있는 거대 운석에 대한 정보를 우연찮게 입수하게 되고 이것을 뉴스에 보도하기 위해 취재를 감행한다. 이것이 미국의 정보기관에 포착되고, 그것이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되며, 결국 여주인공은 대통령과 면담을 하게 된다. 진실을 알려 달라는 여주인공에게 대통령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금 우리는 최선을 다해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물론 당연히 국민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언론이 먼저 보도를 하게되면 세계적인 대 혼란만 야기할 뿐, 우리의 대책 수립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실행계획과 대피계획 실행을 준비할 수 있도록 48시간만 기다려 주세요. 그러면 내가 직접 진실을 밝히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만 해 준다면 기자회견장에서는 당신의 어떠한 질문에도 모두 답변하겠습니다." 결국 기자는 보도를 미루고 48시간을 기다린다. 48시간 후 대통령이 직접 운석 충돌의 위험성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하고, 그 자리에서 여주인공에게만 무려 다섯차례의 질문 기회를 부여하면서 보도를 유예한데 대한 최대한의 배려를 한다. 그런데, 이곳 미국에서 직접 경험한 바로는 그 여주인공의 기자 의식 - 즉, 해당 보도가 단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에서 끝나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것으로 인한 국가적, 사회적 이익을 충분히 고려하고 나아갈 방향을 함께 제시하는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그러한 고민이 묻어나는 보도가 제대로 된 보도로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언론이 만약 그 여기자의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국민의 알권리 충족'이라는 명분으로 당장에 특종 보도를 해 댔을테고, 그에 따른 각종 혼란과 중대 사실을 숨긴 정부에 대한 비등하는 비난여론으로 아마 혼란과 자멸의 길을 걷게 되지 않았을까?
1597년, 조선의 남해에서는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한 해전이 치루어 진다. 13척의 전함으로 133척의 왜적의 전함을 격침 내지 완파 시키고 500여척의 대 함대를 동남해안으로 몰아내 왜의 수륙병진작전을 완전 무력화 시킴으로써 풍전등화의 조선왕조를 기사회생시킨 이른바 "울돌목싸움 - 명량대첩"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명량대첩의 영웅이자 조선 바다의 수호신이었던 충무공 이순신 제독에게 조선의 중앙정부는 그 빛나는 전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왕명을 거역한 '무군지죄'의 죄인에서 사해주고, 죽음만은 면해 준다는 '면사첩'과 고기 몇 근을 상으로 내리는 어처구니 없는 상찬을 행한다. 시간을 조금만 더 거슬러 가면 '삼도수군통제사'로 조선의 바다를 감히 넘볼 수 없는 철옹성으로 지켜 내며 승기를 잡아 가던 충무공에 대해 일본과 내통한 첩자의 악의적 제보에 의존하여 수군의 최고 지휘관을 하루아침에 '왕명을 거역'한 대역부도한 죄인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 조선의 중앙정부였다. 그리고, 그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그에게 명량대첩 이후 '면사첩'을 내리는 것은 그 자체로도 매우 큰 상이라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충무공의 본의와는 상관 없이 조선 왕실의 권위라는 절대적 가치에 대한 도전 행위로 꾸며진 왜의 충무공에 대한 악의적 정보로 인해 영웅이 죄인이 되고, 조선 왕조는 결국 이에 놀아나 나라를 망쳐, 민족사 앞에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르게 된다.
이제 2005년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견제 받지 않는 절대 권력기관은 어디일까? 나는 단연코 언론이라고 믿는다. 그만큼 언론의 역할은 이제 국가의 지표를 제시해야하고, 올바른 정보로 국민의 건전한 여론을 선도하여야 할 막중한 국가적,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언론이 주요한 의제로 설정하여야 할 것은 당연히 우리나라의 현행 법 체계와 연구에 대한 윤리적 검증 시스템이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가도록 하기 위해 사례로 삼아야 할 것과 발전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황우석 박사의 난자 채취 과정이 다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중앙 정부가 옳지 못한 정보에 근거하여 충무공을 죄인으로 만들듯, 황우석 박사의 연구 결과가 사기극이라는 악의적 정보에 근거하여 그 연구의 문제점만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문화방송이 보도를 기획하고 취재, 편집하였기에 방향이 틀렸고 비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문화방송이 출발의 논제를 "황우석 박사의 연구가 틀렸다." 가 아니라 "줄기세포 연구의 윤리적 검증 시스템 개선 방향"으로 잡았더라면, 설사 황우석 박사 연구의 문제성이 지적 되더라도, 방송의 내용이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고, 아마 다수 국민으로부터도 동의와 사회적 합의의 틀을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 국민이 다 보았듯, 문화방송의 편집 기본 방향은 "황우석 박사가 틀렸다." 는 것이었고, 거기에 대해 다수 국민들과 네티즌들은 충무공을 압송한 조선의 조정에 대해 돌팔매를 가했던 조선의 백성들과 동일한 심정으로 문화방송에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분명히 지적되어야 할 부분은, 언론이 평가하고 받아 들이는 '황우석 박사'라는 과학자 한 명과 국민이 평가하고 받아 들이는 '황우석' 이라는 사람의 가치는 극과 극이라는 것이다.
윤리 논쟁을 제기하는 다수 지식인과 언론인들의 눈에는 황우석 박사는 그저 한 번 팔아 먹으면 뜨기 좋은 이슈꺼리 정도이다. 매번 황우석 박사의 연구에 딴지를 걸어대는 '생명윤리학회'를 비롯, 민노당이나 문화방송이나 한겨레신문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생명윤리학회'는 그 설립 취지에서 "생명윤리에 대한 학제간 논의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학회"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1998년 설립된 이후 그 회장인 황상익 교수와 주요 멤버인 구영모 교수가 해 온 일들은 주로 '황우석 박사 비판'에 중점을 두어 왔다. 더 크고 직접적 생명파괴 현상인 '낙태'나 '뇌사자 생명 연장의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해 왔다. 결국 이슈를 일으키기 위한 논쟁에 치중해 왔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이고, 황우석 박사 딴지 걸기에 치중한다는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이다.
더 나아가, 황상익 교수는 황우석 박사의 연구에 대한 반대론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여성의 난자는 매달 하나씩 배출되며 평생을 통해 배출하는 숫자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연구용 난자의 채취를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20 ~ 30개의 난자를 약물 투여를 통해 강제 배출시켜야 하고, 마취를 해서 인위적으로 채취하여야 하므로 그 안전성에 대해 누구도 장담할 수 없고 여성의 건강상 위해성이 매우 크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 대해 금전적 보상을 하는 것은 여성의 상품화라는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여성의 인권을 침해할 우려까지 있다.... (중략).. 배아는 자궁에 착상될 경우 바로 생명체로 탄생될 수 있으므로, 이를 연구 재료로 하여야 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생명체 파괴 또는 인간 복제의 윤리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윤리 논쟁이 윤리적으로 가치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보편적 사회 상식에서 비추어 보았을 때, 매우 비약적인 논리라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예를 들어, 난자 채취의 과정상의 어려움을 근거로 여성 인권 침해라는 주장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장기기증을 하고, 골수기증을 하고 있다. 장기기증은 장기의 일부를 떼 내는 것이므로 당연히 위험성도 크고, 외과적 수술을 행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기증자의 신체에 어떠한 위해성이 있을지 명백히 검증된 바 없다. 그러면, 그러한 위험성을 근거로 장기기증운동이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만약, 황우석 박사의 연구팀이 강제로 여성들을 납치하거나 협박 내지 감금하여 난자를 채취하였다면 말이 되는 논리일 수 있으나, 제발로 찾아와 기증하겠다고 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난자를 채취한 것을 두고 인권 운운 하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
뿐만 아니라 황상익 교수 스스로도 밝혔듯, 배아가 생명체로 될 수 있는 것은 "자궁에 착상될" 경우에 한해서이다. 그러나, 황우석 박사의 연구는 난자와 정자가 결합한 수정란도 아니요, 자궁 착상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연구도 아니다. 차라리 그가 주장하는 반생명윤리적 연구라고 본다면, 살아있는 실험용 쥐와 개, 원숭이 등을 상대로 이루어지는 각종 가혹한 연구들 - 암세포 이식, 바이러스 이식, 실험용 약물 주입 등이 훨씬 더 큰 윤리 논쟁꺼리가 될 수 있다. 명백히 외국의 실정법에서도 "동물 학대죄" 라는 것이 있고, 중근 선수가 독수리에게 돌을 던졌다고 미국 여론의 몰매를 맞았듯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된 부분이 "동물 학대" 이지만, 이상하게도 실험용 동물에 대한 생명윤리 논쟁은 없다. 그것은 우리 나라의 생명윤리학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유독 인간은 그 생명체로 볼 것인가 말것인가 자체가 문제가 될 배아세포, 보다 정확히 난자세포 연구 자체에 생명윤리 논쟁을 한다. 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기독교적 생명관 때문인가? 아니면 그것이 신의 영역을 침범할 인간복제의 가능성 때문에? 그렇다면 생명윤리 논쟁이 아니라 연구의 방향에 대한 논쟁을 하여야 하고, 인간 복제의 가능성을 없애기 위한 방향을 논해야 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수 많은 실험 동물의 희생이 인간의 질병 치료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면 배아줄기세포 또한 난치병의 치료를 위한 불가피한 연구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가?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동일한 주장, 즉, "나를 구하기 위해 다른 생명체를 파괴하는 행위로써의 연구"는 이미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 수많은 실험용 동물실험을 통해 먼저 행해 왔고, 지금 그들의 윤리 논쟁은 어떤 측면에서는 한국의 독주에 제동을 걸기 위한 한 전략일 수 있는데, 비판 없이 마치 그것이 최고의 윤리적 가치를 지닌 사람의 절대적 도그마인양 황우석 박사의 연구 자체를 폄훼하는 논조를 펼치는 모양새가 너무도 어색해 보인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서울대의대와 유수 외국 대학의 학위자들로 구성된 윤리론자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겨우 수의사 출신인 국내 농학 박사가 뭘 알아서..' 라는 지적 우월주의까지 엿보인다. 결국, 그런 일부의 황우석 박사 연구의 적정성 논란은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입지를 확인하려는 사람들의 자기 만족적 논쟁이라는 비판적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황우석 박사를 하나의 장사꺼리로 만들어 보려는 상업주의적 의도라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론과 일부 학자들의 시각과는 달리, 다수 국민들과 네티즌들에게 있어서 황우석 박사는 그 인물 자체로써가 아니라 그의 각종 행적과 그가 만들어간 신화, 그리고 그가 국민들에게 준 메시지로 인해 단지 일개 연구자가 아닌 '대한민국 미래의 상징' 이요 '한민족 우수성의 결집체'로 인식되어 있다. 지금껏 우리는 일제에 의해 패망한 이후 스스로 열등감과 분열주의에 사로잡혀 수많은 질곡을 겪어 온 20세기를 통해 빛나던 오천년의 역사를 잃고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상실한 채 우울한 나날을 지내 왔다. 그러나, 21세기의 벽두에 의례 유명 학자들이 그러했듯 외국 유수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단한 지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대중들을 무시하는 태도도 지니지 않은 황우석 박사가 세계 과학계의 최고봉들이 어렵사리 투고하는 'Science'지에 표지 논문과 특별 기자회견으로 예우 해 줄 수준의 연구 성과를 일구어 낸 사실에 감격하고 우리 스스로에 대해 되돌아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거기에 황우석 박사 스스로 "나의 연구 성과는 전세계 유일의 쇠젓가락을 사용하는 우리 민족 특유의 우수성에 기인한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 는 특유의 긍정적, 애국적 가치관을 국민들에게 드러 냄으로써 우리 스스로의 우수성을 자랑스러워 할 꺼리를 가지게 되었다는, 그럼으로써 국가적, 민족적으로 큰 자산을 지니게 되었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 될 수 있었다. 즉, 조선의 충무공이 군사적으로 외적의 침입을 물리쳐 민족을 구한 영웅이라면, 황우석 박사는 침체한 우리 민족 스스로의 자긍심을 새로이 불러 일으키고 21세기 우리가 세계의 주인공으로 우뚝 설 정신적 힘을 지켜 낸 "현대의 정신적 충무공" 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황우석 박사에 대한 인식의 차이, 즉, 하나의 상업적 수단으로써의 논쟁꺼리이냐 절대 불가침의 민족적 자긍심의 상징이냐에 대한 상반된 시각의 대립이 오늘 문화방송이 비난을 받는 근간인 것이다.
물론, 황우석 박사가 결과적으로는 거짓말을 한 것이 되고, 그 연구 성과가 윤리적으로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다. 이것을 약으로 삼아 더 이상 이런 문제가 없도록 우리의 연구에 대한 윤리적 검증 시스템을 보완하고, 그런 과정들을 원칙대로 운영해 가는 풍토를 조성해 가는 동시에 연구자들의 윤리 의식을 제고함으로써 지금껏 쌓아 온 생명과학기술 선진국으로써의 지위를 확고히 지켜가도록 해야만 한다. 또한, 문화방송 PD 가족들에 대한 협박까지하는 정도의 위험한 여론몰이는 자제 되어야 하는 것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분명히 지적되어야 할 것은 다수 국민들과 네티즌들의 분노에 대해 이들 언론이 단지 '광기어린 애국주의'로 이를 왜곡하고 자기 방어의 논리로 삼으려는 파렴치한 태도가 있는 한, 국민들과 네티즌의 분노는 도를 더해 갈 것이요, 언론 스스로 제 입에 제갈을 물리는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네티즌과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문화방송의 기획과 편집 방향의 근간이 된 건전한 사회적 논쟁의 틀에서 벗어나 상업주의적으로 황우석 박사를 흠집냄으로써 자사의 이익을 추구하고 특종주의를 추구하려는 그릇된 보도 관행에 대한 사과요 건전한 기자 윤리의식의 제고이며, 이를 통해 언론 스스로 거듭나라는 경고인 것이다. 거기에 더해 미국이 하면 선이요 한국이 하면 악이라는 식이라거나 외국의 기준이 한국에 비해 보편 타당하고 우수하다는 사대주의적 관점에 근거한 사회 현상의 독단적 독선적 재단, 지적 우월감에 사로잡힌 무차별적 여론 무시에 대한 혐오감이 들어 있음도 알아야 한다.
사실 서구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윤리 논쟁은 매우 자의적이고 국가 전략적인 측면이 있고, 이는 한국적 세계관과 생명관의 정립을 통해 비판적으로 수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삼칠일 즉,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된지 21일이 지난 시점에서 영혼이 들어 온다고 보고 이를 생명체로 인정하는 전통적 윤리관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현대의 과학기술적 관점에서 그것이 보다 이전, 즉, 수정란이 착상하는 시점을 생명체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수정 이전의 단순 난자 세포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크다. 그리고, 황우석 박사의 연구는 수정란이 아닌 단순 난자세포를 조작하는 기술이므로 그 세부적 기술을 이해하지 못한 채, 생명 윤리 논쟁을 가하고자 하는 것은 거름지고 장에가는 격이다. 뿐만 아니라, 일부 윤리론자들이 주장하듯 미국이 금지하므로 한국이 허용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논리도 어처구니 없는 소리다. 미국에서 그러한 배아줄기세포의 연구 금지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연방정부 기금을 배아줄기세포에 지원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을 뿐, 민간 차원의 연구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즉, 서방 선진국들로써는 차후 정보통신분야, 우주항공분야와 더불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생명과학기술분야, 그 중에서도 난치병 치료에 직접 적용 가능한 줄기세포 연구 기술에 대해 그것이 성체줄기세포이건 배아줄기세포이건 주도권을 놓고 싶어하지 않는 속내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으며, 배아줄기세포 분야에서 한국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 윤리 논쟁인 것이다. 거기에 빠져 뛰어야 할 사람을 뒤에서 잡아채는 행위야 말로 차세대 기술 주도권 장악을 위한 국제 경쟁에서 스스로 뒤쳐지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보다 정확히 언론과 정치권과 윤리론자들이 해야 할 일은, 앞으로 뛰어야 할 황우석 박사에게 앞에 자갈이 많으니 뛰지 말라고 발목을 잡을 것이 아니라, 뛸 수 있도록 자갈을 치워 주고 먼지를 털어내 길을 닦아 주는 것이어야 하고, 그것이 국제 수준에 맞는 윤리적 검증 시스템의 도입과 기준의 마련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건전한 논쟁을 언론이 이끌어야하고, 이제부터 언론의 윤리관이 시험대에 오를 시점이다. 다수 국민과 네티즌의 문화방송에 대한 비난이 바로 그러한 경종인 것이며 언론 스스로 자각하여야 할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여기에 문화방송이 용기있게 잘 터뜨렸다는 단순한 옹호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당위성이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또 작금의 사태를 지난번 우리가 보았던 소위 '개똥녀 사건'이나 실연끝에 억울하게 자살했다는 사연에서 네티즌들이 보여준 "마녀 사냥"식의 여론 몰이와 동일한 선상에서 취급하고자 한다. 앞의 두 사건은 당사자와 직간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개인이 자신들의 감정을 섞어 유포함으로써 객관성이 결여된 감성적 대응을 유발하고, 이것이 도리어 그 반대편에 놓인 또다른 개인들에게 도가 지나친 인권 침해를 유발시켰다는 측면에서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의 건은 명백히 다른 경우다. 적어도 언론은 개인의 감성적 글쓰기와는 다른, 객관적 사실에 대한 명확한 검증과 거기에 따른 윤리적, 사회적, 국가적 파장을 충분히 고려한 건전한 결과를 유발하도록 하여야 할 책무가 있다. 따라서 "황우석 박사가 사기꾼이요 틀렸다."는 상업주의적 발상에서 출발한 기본 취재의 방향이 그 정당성을 인정 받을 수 없는 이유이고, 생산적인 논의의 방향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꺼리가 될 스타급 과학자의 뒤를 캐는식의 내용과 구성이 분노를 자아내는 이유인 것이다. 도리어 지금의 다수 네티즌들은 문화방송을 비롯한 일부 언론과 학자들이 황우석 박사에 대해 과도하게 "마녀사냥"을 하고 있는데 분노하고 그가 올바로 설 수 있도록 지켜주고자 하는 것이다. 53세의 충무공을 노량의 바다에서 잃었듯 53세의 황우석을 질시와 악의적 비난의 바다에서 잃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