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23

allcross2005.12.05
조회389

 

23.

 

“.........응?  뭐라고 했어?  프리즘이라니? ”


나직하게 지영이 내뱉은 단어의 의미를 몰라 물었다.

지영은 고개를 젓는다.


“아니야, 아무것도.........그냥 나 혼잣말이야............”


“.........................”


의미가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물어보지 못했다.

지영은 말없이 스푼으로 커피를 휘젓는다.

입가에 허탈한 웃음을 띠운다.


“후훗, 남자한테 차이긴 난생 처음이네..........”


평소와 다르게 맥없는 지영의 모습이 안타깝다. 화를 내고

자리를 박찼으면 마음이 훨씬 편했을텐데...........


“.......미안해, 나 같은 녀석한테 이런 일 당하게 해서.........”


지영은 되려 눈을 찡긋한다.


“영광으로 알라구. 난 다신 이런 수모 안 당할거니까.

 그러니 지현 씨는 나를 찬 처음이자 마지막 인간인 거야.”


지영은 말을 마치자 옆자리의 백을 들고 일어선다.


“난, 이제 그만 가 볼께. 패배자로 오래 자리에 앉아 있고 싶지 않으니까.”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따라 일어난다.


“나도 일어날께. 같이 나가자.”


지영은 굳이 날 막지는 않는다.

나는 카운터에 계산을 치르고 지영을 따라 밖으로 나온다.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천천히 거리를 걷는다.

 

늦가을 정오의 햇살은 우리 기분은 아랑곳없다는 듯이

평소보다 강하게 머리 위를 내리쬔다.


이 카페는 지영과 과거에 두어 번 와 봤던 곳이다.

50여 미터 앞에 우리가 헤어져야 할 정류장이 있다.


왠지 지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 마지막 걸음걸음이

아쉽게 느껴진다.


지영은 그저 앞만 보고 걷는다.

금새 우리 눈 앞에 정류장 표지가 나타난다.

지영은 발걸음을 멈추고 마주선다.


뭐라고 인사를 할까 망설이는 데 지영이 말없이 내게 손을 내민다.

나는 가만히 손을 잡는다.


악수를 하듯 손을 흔들려고 하다가 파르르 떨리는 지영의

눈가를 보자 나도 모르게 동작을 멈춘다.


지영은 울음을 보이지 않으려고 한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렸다.

황급히 내게 잡힌 손을 빼고 등을 홱 돌린다.

지영의 등 뒤에서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야, 잘 가............. 지현 씨.”


한 줄 밖에 안 되는 말 속에 몇 번이나 울먹임이 섞여 있었다.


또각또각 하는 그녀의 하이힐 소리가 아주 크게 내 귀에 울린다.


고개를 숙이고 종종걸음으로 정류장을 향하는 지영의 뒷모습을

나는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바라만 봤다.


만일 지금 따라가서 저 어깨에 손이라도 올린다면

나는 지영을 다시는 놓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시야 속에 아직 지영의 뒷모습이 남아있지만 나는 몸을 돌렸다.

내가 돌아가야 할 사람들에게로.....


문득 마지막이란 생각을 참지 못하고 다시 몸을 돌려 정류장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지영의 모습은 이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