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힘들고 가슴아파서 글을 올립니다.. 다른 남성분들은 과연 제 심정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저는 직업군인으로 전라도에서 군복무 중이었고 아내는 인천에서 법무사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어요. 참고로 제 연고지는 인천입니다. 본집이 인천에 있고요 우리는 인터넷 체팅으로 처음 알게되었고 휴대폰으로 밤을세워가며 통화하고 함께하고 싶어서 전화기를 귀에대고 잠들곤했어요. 우리는 너무나 보고싶은 마음에 만나기로 했죠. 인천터미널에서 첫 만남을 갖고, 그날 강원도로 여행을 갔습니다 초여름 밤바닷가를 거닐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늦은시간 피곤함에 지쳐 민박집을 찾아 아무일도 없이 밤을 함께보내고 다음날 인천으로 와서 저는 정읍으로 내려왔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지요 대충 짧게 적었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날이었고 지금도 잊지못하는 날 입니다. 결국 99년 12월에 우리는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돈없이 사는것이 싫다며 인천에서 직장생활을 계속 하겠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설득하고 애원해도 소용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수없이 주말부부를 하게 되었는데...... 결혼해서 지금까지 주말부부를 계속하고 있는데요... 결론은 이혼 이었습니다. 지금은 6살과 2살 먹은 딸아이가 있는 부인없는 가장입니다. 군인은 일반인처럼 많은 시간을 낼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매주 만나기도 힘들고, 그녀또한 전라도로 내려오지않고.... 아기들은 장모님이 보셨는데, 집사람은 일 핑계로 밤세워가며 술먹고 같은일을 하는 남자직원들이랑 영화보고, 여행다니고.... 이루 말할수없을 정도로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더군요.... 어느날은 아내의 휴대폰을 보다가 이상한 문자가 왔습니다. 많이 듣던 이름이었어요... 사랑한다는 내용의 문자.............. 저는 할말이 없었어요... 너무나 비참해서 작년 7월 이었어요, 시아버지 생신인데 제주도로 여행을 가더군요 물론 저는 훈련때문에 전라도에 있어야 했지요... 아버지께 전화해서 애기엄마 여행갔다고는 못하고 일때문에 못가게됬고 저도 훈련이라 못가니 다음주에 꼭 찾아뵙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다음주가 되어 인천으로 올라가 아내에게 애기들과함께 인사드리러 시댁가자고 했더니 직장동료들과 레프팅하러 여행간다고 하더니 그냥 가버렸습니다. 2박3일간............... 저는 어이가없어 혼자 아버님께 인사하고 그냥 전라도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그후로도 계속 아내는 직장일로 그런다면서 남자들과 전화하고, 영화보고, 밥먹고, 술먹고 자정 넘어서 들어오는건 기본이고 새벽 2, 3시는 되야 들어왔습니다 제 전화도 받지않고 전화기도 꺼놓기도하고 전 이해 했습니다. 신랑이 옆에서 위로하고 사랑해주고, 힘이되주고 , 도움이 되야하지만 주말부부로 또한 군인이기에 그렇게 하지 못했기에 오히려 내 죄가 컸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연봉이 3500만원인데 매달 봉급타서 용돈 30만원 받아서생활했습니다 이혼할때 돈한푼없이 애기들만 데리고 왔습니다 너무나 할말이 많고 가슴이 터질것같은데 더이상은 말하기 힘드네요 6년이라는 시간이 ,, 주말부부로 지낸것이 이리도 힘들줄은 몰랐습니다. 그냥 제 아내가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 입니다. 참고로 장모님과 처가 식구들은 애기엄마가 어떻게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한테 바람났다고 소리치면서 인터넷으로 국방부에 민원까지 제기했더군요 정말 파렴치한으로 모함하면서 말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들을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다시금 생각한다는 것이 무섭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읽어주신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법무사 다니는 여성분들 정말 이제는 무섭습니다.... 아니 성이 " 백 " 씨를 가진분들이 무섭습니다
결국 이렇게 끝나는가...............
너무나 힘들고 가슴아파서 글을 올립니다..
다른 남성분들은 과연 제 심정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저는 직업군인으로 전라도에서 군복무 중이었고
아내는 인천에서 법무사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어요.
참고로 제 연고지는 인천입니다. 본집이 인천에 있고요
우리는 인터넷 체팅으로 처음 알게되었고
휴대폰으로 밤을세워가며 통화하고 함께하고 싶어서
전화기를 귀에대고 잠들곤했어요.
우리는 너무나 보고싶은 마음에 만나기로 했죠.
인천터미널에서 첫 만남을 갖고, 그날 강원도로 여행을 갔습니다
초여름 밤바닷가를 거닐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늦은시간
피곤함에 지쳐 민박집을 찾아 아무일도 없이 밤을 함께보내고
다음날 인천으로 와서 저는 정읍으로 내려왔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지요
대충 짧게 적었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날이었고 지금도 잊지못하는 날 입니다.
결국 99년 12월에 우리는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돈없이 사는것이 싫다며 인천에서 직장생활을
계속 하겠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설득하고 애원해도 소용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수없이 주말부부를 하게 되었는데......
결혼해서 지금까지 주말부부를 계속하고 있는데요... 결론은 이혼 이었습니다.
지금은 6살과 2살 먹은 딸아이가 있는 부인없는 가장입니다.
군인은 일반인처럼 많은 시간을 낼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매주 만나기도 힘들고, 그녀또한 전라도로 내려오지않고....
아기들은 장모님이 보셨는데, 집사람은 일 핑계로 밤세워가며 술먹고
같은일을 하는 남자직원들이랑 영화보고, 여행다니고.... 이루 말할수없을 정도로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더군요....
어느날은 아내의 휴대폰을 보다가 이상한 문자가 왔습니다.
많이 듣던 이름이었어요... 사랑한다는 내용의 문자..............
저는 할말이 없었어요... 너무나 비참해서
작년 7월 이었어요, 시아버지 생신인데 제주도로 여행을 가더군요
물론 저는 훈련때문에 전라도에 있어야 했지요...
아버지께 전화해서 애기엄마 여행갔다고는 못하고 일때문에 못가게됬고
저도 훈련이라 못가니 다음주에 꼭 찾아뵙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다음주가 되어 인천으로 올라가 아내에게 애기들과함께
인사드리러 시댁가자고 했더니 직장동료들과 레프팅하러 여행간다고 하더니
그냥 가버렸습니다. 2박3일간...............
저는 어이가없어 혼자 아버님께 인사하고 그냥 전라도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그후로도 계속 아내는 직장일로 그런다면서 남자들과 전화하고, 영화보고, 밥먹고, 술먹고
자정 넘어서 들어오는건 기본이고 새벽 2, 3시는 되야 들어왔습니다
제 전화도 받지않고 전화기도 꺼놓기도하고
전 이해 했습니다.
신랑이 옆에서 위로하고 사랑해주고, 힘이되주고 , 도움이 되야하지만
주말부부로 또한 군인이기에 그렇게 하지 못했기에 오히려 내 죄가 컸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연봉이 3500만원인데 매달 봉급타서 용돈 30만원 받아서생활했습니다
이혼할때 돈한푼없이 애기들만 데리고 왔습니다
너무나 할말이 많고 가슴이 터질것같은데 더이상은 말하기 힘드네요
6년이라는 시간이 ,, 주말부부로 지낸것이 이리도 힘들줄은 몰랐습니다.
그냥 제 아내가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 입니다.
참고로 장모님과 처가 식구들은 애기엄마가 어떻게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한테 바람났다고 소리치면서 인터넷으로 국방부에 민원까지 제기했더군요
정말 파렴치한으로 모함하면서 말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들을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다시금 생각한다는 것이 무섭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읽어주신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법무사 다니는 여성분들 정말 이제는 무섭습니다.... 아니 성이 " 백 " 씨를 가진분들이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