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 -알약(3) -

임마누엘200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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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 산  -

1

  집으로 가는 버스 안 승우는 두 눈을 감고 오늘 있었던 일을 회상하는 시간을 조용히 가졌다. 아직은 이름도 모르지만 이제 얼굴은 또렷치 기억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오늘 가까이서 그 여자의 얼굴을 아주 자세히 보았는데 눈썹은 조금 진한 편이었고 눈은 상당히 큰 편이었다. 얇게 쌍 꺼플도 있었고 콧날은 그리 오똑하지는 않았지만 둥글둥글 부드럽게 이마에서 이어진 콧날이었다. 입술은 살짝 도톰하고 섹시하거나 도발적이지 않은 있는 그대로가 앙증맞아서 키스하고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보통 여자라면 대학생 때 한창 꾸미고 다니고 화장도 하고 다닐 텐데 화장 끼 없는 얼굴이었다. 그 여잔..

 

 

사실 그 여자가 너무 흥분하고서는 자신의 손목을 잡아끌었을 때 당황했지만 자신이 아닌 여자 쪽에서 먼저 손목을 잡아끄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고 그래서 순순히 따라가 주었다. 그 다음부터는 그 여자의 말을 경청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생겼는지가 더 궁금했고 이상하게도 그 생김새를 오래 기억해두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오른쪽 외투 주머니에서 만 연필을 꺼내서 뚜껑도 열어 보고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종이에도 써보려고 했으나 잉크가 없는지 써지지는 않았다.

 

‘ 하하하 잉크도 없어서 나오지 않는 만 연필....얼마나 중요한 거 길래 날 그토록 찾은 걸까 ? 선물 받은 건가? 내일이라..내일 또 볼 수 있겠군. ’



-  3월 19일 금요일  -

오늘은 몸이 너무 피곤한 하루다. 드디어...드디어... 찾았다. 그 만 연필~

내가 얼마나 찾았는데 경미랑 일주일간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렇게 쉽게 찾다니.

오늘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말해서 손님들의 시선이 나한테 집중되는데 창피해서 혼났다. 어찌나 창피하던지..

그 동안 만 연필의 학과 학년 이름을 몰라서 고생했는데.

학과는 경영학과

학년은 3학년

이름은 한 승 우...

알려달라는 말도 안했는데 연락처도 적어줬다.

아빠의 만 연필을 버리지 않고 맡아줘서 어찌나 고맙던지..

오늘 수업이 끝나고 경미랑 헤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만 연필이 미웠는데...

아니..이젠 이름 아니까...이름 불러줘야지~ 한 승 우...음..한승우 씨?

뭐..이름 부를 일도 거의 없을 테니 상관없지 뭐~

오늘은 정말 피곤한 하루니까 오늘은 이만..

엄마. 아빠. 저 오늘도 잘 지냈어요. 두 분도  편안한 밤 되세요. -



2

  미처 녹지 않은 눈들이 바람에 쓸려 다니는 길거리는 아직도 사늘한 날씨였다. 종종 걸음으로 뛰어가 학교에 가는 버스 올랐다. 수현은 버스를 타고 가는 그 시간이 좋다. 좌석에 앉아 빠른 속도로 지나쳐 가는 길거리, 사람들, 가로등, 길마다 각자 자신이 자리를 지키듯  서있는 울창한 나무들과 바쁘게 인사하는 기분으로 매일 아침마다 힘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주머니 속에 넣어둔 핸드폰이 문자가 왔다는 소리를 내자 폰을 꺼내 연이어 온 두개의 문자 메세지를 확인한다.

 

[ 수현아 나 오늘 할머니 댁에 가봐야 할 것 같아 많이 아프신가봐]

[ 오늘 학교 못갈 것 같아.교수님께는 전화 드렸어. 내일 보자~ ]

 

할머니가 아프시다는 말을 듣고 내심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바로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여 답문을 보낸다.

 

[ 그래 할머니 간호 잘해드리고. 내가 열심히 필기할게~^^]

 

항상 같이 다니다가 경미가 없어 조금은 쓸쓸한 마음으로 학교정문을 지나치고 반갑게 경비아저씨와 아침 인사를 나누고는 도서관으로 향한다. 수현의 하루가 매일 그렇듯 바쁘게 움직이고 시간이 없는 만큼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

 

오늘 첫 수업은 아동연구방법.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은 이른 시간에 강의실에 도착해서 간간히 쉼을 청한다. 이내 수업시간이 다 되어 가면 학생들이 하나 둘씩 모여 들고 자리가 채워질 때 즈음 교수가 들어온다.

 

“ 얘들아 오늘 너희 시간표가 조금 변동 될 거야.  저번에 잠깐 설명했었는데 오늘 특별 교구 전시회랑 간단한 세미나가 있어서 너희가 전원 참석하게 됐거든. 오후 2시부터 4까지 2시간동안 너희가 행사 도우미 역할 및 진행요원 활동을 해야 할 거야. 그걸 염두에 두고 자기 시간표 보고 점심시간 조절을 했으면 하네. ”

‘ 오후 2시부터 4시? 그 시간은 공 강 시간인데. 도서관 일도 해야 하고. 만 연필도 찾아 와야 하는데...’




3

 항상 이 시간이 되면 북적거리는 학생 식당. 민섭과 승우가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 어제. 그 여자 말이야. ”

“ 무슨? ”

“ 왜~ 커피숍에서 너한테 무안 준 여자 말야. ”

“ 무안은 무슨~ 자기물건 돌려달라는 건데. ”

“ 만 연필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

“ 그런 게 있어.”

“ 뭐야..나한테까지 말 안 해주기냐? 난 어제 영문도 모르고 엄청 당황했다고. 우리 테이블로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너도 알지? ”

“ 하..하.. 그 여자 목소리가 좀 컸지. 풋...”

 

그 여자 생각만으로도 마냥 즐거운 승우.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민섭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오늘 다시 만난다. 그 여자가 만 연필을 찾으러 자신을 찾아 올 것이다. 강의실로 찾아올까. 아니면 전화를 하려나?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쨌든 다시 볼 수 있는 거니까.

 

수업시간 내내 승우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오늘 하루 동안 민섭이 보는 승우는 7살짜리 어린 아이가 소풍가는 것 때문에  그 전날 하루 종일 들떠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승우는 들떠 보였다. 게다가 하루 종일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평소에는 시간을 보거나 특별한 용건이 있어 전화를 걸 때만 사용하는 핸드폰을 열었다 닫았다 하기를 벌써 스무 번도 더 된다.

 

수업이 끝났는데도 아무런 연락이 없고 찾아오지도 않자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수업이 끝났는데도 강의실을 떠나지 않고 그 여자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수업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오기 힘들 거라는 생각에.. 오늘 그 여자를 만나면 어제 차마 물어보지 못한 이름도, 나이도, 학과도, 연락처도, 그래.. 할 수만 있다면 많은 것을 물어보고 싶었는데. 오지 않는다. 그 여자가.

‘ 이상하게 생각해도 그냥 어제 물어봤어야 했던 걸까. ’

 

한참을 고민 끝에 승우 자신이 먼저 찾아가기로 했다. 그 여자의 이름도 나이도 학과도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적어도 승우는 그 여자가 어디서 아르바이트를 하는지는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도서관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고 학교 앞 커피숍에서도 오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니 자신이 찾아가면 만날 수 있으리라.

 

 

커피숍 문을 열자 맑고 작은 종소리가 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카운터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켰지만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 그 여자는 그 곳에 없었고 혹시나 주문을 받고 있나 해서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역시 없었다. 오늘 하루 종일 그 여자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는 서운함, 그래도 이 커피숍에 오면 당연히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약간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있어야 할 그 자리에 그 여자가 없을 때 느껴지는 상실감이란 승우에겐 생각 보다 크게 다가왔다. 체념하고 다시 나가려고 하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였다. 하..하...하..

 

 

“ 어? 만 연필~ 아...맞다. 한...한....”

“ 한승우 입니다. ”

“ 아~ 맞아요. 한승우..씨...”

 승우는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어색했는지 끝을 흘리며 당황하는 모습이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 여긴 웬일이세요? 저희 커피숍에 오신 거예요? ”

“ 오늘 담보로 맡기신 물건 찾으러 오신다면서 안 오셨길래 제가 왔습니다. ”

“ 아~ 정말요? 제가 오늘 가려고 했는데요. 정신없이 바빴거든요. 이렇게 직접 와주시고 감사합니다. ”

“ 아닙니다. 너무 소중한 물건이라고 하셨으니 하루 속히 돌려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

 

오른쪽 주머니에서 만 연필을 꺼내 수현에게 내밀었다. 두 손으로 받고는 뚜껑도 열어보고 이리저리 살펴보는 모습을 보고는

“ 아주 잘 간수했으니까 걱정 마세요. 하하하하 ”

만 연필을 받자마자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상대방 앞에서 이리저리 살펴보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순간 만 연필이 너무 반가워 까맣게 잊고 있었던 수현은 민망했는지 얼굴이 달아올랐다.

 

 

“ 간수 못하셨을까봐 살펴보는 게 아니고요. 일주일 만에 보는 거라서 반가워서 그만 헤헤”

“ 정말 소중한 물건인가 봐요. 일주일 됐는데 그렇게 반가울 정도면. ”

“ 아~~ 네..그렇죠. 이리로 좀 앉으세요. 제가 오늘은 공짜로 차 한 잔 서비스 할게요. ”

“ 아~ 전 주시는 건 거절 안합니다. 하하하. ”

승우는 창가에 있는 테이블에 앉고 수현은 앞치마를 걸치고 일은 한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 유자차가 담긴 머그잔을 쟁반에 받쳐서 승우의 테이블로 오는 수현.

“ 맛있게 드세요.”

“ 네 감사합니다. 아참. 혹시 우산 가져오셨어요? ”

“ 우산이요? 아니요. 왜요? ”

“ 비가 올 것 같아서요. 하 하 ”

“ 날씨가 많이 흐리긴 하네요. 맛있게 드세요. ”

 

한 시간 정도 수현이 서비스 해준 유자차를 조금씩 마시면서 수현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승우. 맨 처음 도서관에서 수현을 봤을 때도 저렇게 예쁘게 웃고 있었다. 손님들에게 예쁘게 웃으면서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 일하는 모습을 보는데 자신도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7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고 이제는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짐을 챙겨 들었다.

 

“ 스 승우..씨.. 가시게요? ”

“ 네.. 이제 가봐야죠. 수고하세요. ”

“ 네 안녕히 가세요. ”

 

수현을 만나기 전까지는 서운함, 상실감마저 들었던 기분이었는데 돌아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고 기분이 좋아졌다. 버스를 타기 위해서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그 시간도 마냥 즐겁기만 했다.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버스가 도착했고 승우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집에 거의 다 도착해 갈 즈음.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져 버스 창문에 맺혔다.

‘ 어? 진짜 비오네? ’

시간이 갈수록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승우는 가방을 뒤져 우산을 꺼냈고 우산 챙겨오기를 잘했다 라는 생각을 하는데 머릿속으로 한 여자가 스쳐 지나갔다.

우산이요? 아니요. 왜요?’

 

그럼 우산을 챙겨오지 않았다는 소린데.. 커피숍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나서는 시간이 늦어서 우산을 구입할 곳도 마땅치 않을 텐데. 승우는 벨을 누르고 버스에서 반사적으로 내렸다. 다시 반대편에서 자신이 타고 왔던 버스에 몸을 실었다.



4

 오늘따라 손님들이 많아 정신없던 수현은 경미에게 전화 오는 줄도 모르고 주문 받기에 바빴다. 창가에 앉아 있던 손님들이 비가 온다 라는 말을 해서 창가를 보니 정말 비가 온다.

 

‘ 정말 비가 오네? 아까 그 사람.. 승우씨가 비 올 것 같다더니.. 하하.. 근데 우산도 없고 오늘도 천 상 비 맞고 가야하는 신세네. ’

 

그렇게 비오기를 30분. 손님들도 많이 돌아가고 조금은 한가해 졌다. 카운터에 앉아 읽던 책을 읽고 있는데 들어오는 종소리가 나서 고개를 들어 보고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수현.

눈을 감고 다시 떠서 봐도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은 1시간 전에 돌아갔던 그 남자. 한 때 만 연필이라고 자신의 임의대로 불렀고 지금은 한승우씨라고 부르는 이 남자.

그 남자가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이다.

 

 

“ 어? 승우..승우씨? 여긴 어쩐 일이세요? 뭐 놓고 가셨어요? ”

다시 봐도 반가운 얼굴을 보면서. 손에 든 우산을 이 여자에게 보여주면서.

“ 하..하..하..비오잖아요. ”

“ 네? ”

“ 비오니까요. 수현씨가 우산 없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요. 하하하  비 맞으면 감기 걸려요    추운 겨울이데..”

“ 설마 저한테 우산 빌려주시려고 다시 오신 거예요? ”

“ 네...”

“ 아~ 집이 이 근처이신가 봐요? ”

“ 네? 아..네.. 가까워요. ”

“ 정말 고맙습니다. 안 그래도 비 맞고 가나 했는데. ”

“ 그럼 전 가 볼게요. ”

“ 네 ..안녕히 가세요. ”

 

승우에게 우산은 하나밖에 없었다. 물론 집이 학교 근처라는 말도 거짓말이었다. 수현에게 주고 왔으니 승우에게 우산이 없는 건 당연하다. 비 맞고 집까지 가야 하지만 수현이 자신 때문에 비 맞고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과 다시 수현을 볼 수 있었다는 것과 고맙다는 인사까지 받은 승우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마냥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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