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말라야 8000m 이상 16개의 봉우리를 세계 최초로 등정한 산악인’. 강연을 하기에 앞서 주최 측이 으레 소개하는 나의 경력이다. 사람들은 나의 성공 이야기에 주목하고, 열광한다. 어떻게 다른 사람은 엄두도 못내는 높은 산을 16개나 올랐느냐고. 초인적인 능력이 내겐 있는 건 아닌가 하고 궁금해 한다.
마치 슈퍼맨이 나타난 것처럼 경력을 소개할 때마다 난 한편으론 부끄럽다. 성공 못지않게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 못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실패한 정도가 아니라 큰 죄를 지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8000m 이상 산에 38번 도전해 20번 등정했다. 37전 38기로 결국엔 16개 봉우리에 모두 올랐지만, 실패율이 무려 절반 가까이나 된다.
그리고 등정 과정에서 소중한 것들을 많이 잃었다. 함께 산에 오르던 동료 등반대원 6명과 셰르파 4명을 잃었다. 나 자신도 발가락을 절단해야 했으니 나는 철저하게 실패한 셈이다. 소중한 사람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16좌 등정의 기록을 세운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들의 희생과 하늘의 도움으로 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이젠 더 이상 높은 산에 오를 일도 없다. 얼마나 높은 산을, 얼마나 많이 올랐느냐는 횟수보다 더 중요한 일이 내게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은 내가 깨달았다기보다 산이 나에게 내린 준엄한 명령이었다. 살려 보내니 더 큰 일을 하라고.
정상에 우뚝 서는 순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기뻤다. 그러나 정상에 있는 시간은 잠깐이었다. 산 정상은 너무나도 춥고 외로웠다. 정상 아래에 ‘온기’가 있다는 걸, 16개 봉우리의 정상에 서고 난 뒤에야 난 깨달았다. 산 아래에, 산 속에 따뜻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는 것을. 숱하게 죽을 고비를 넘기며 히말라야의 산들과 38번이나 씨름한 후에야 깨달았다. 산 속에 ‘사람’이 있고, 사람 속에 ‘희망’이 있음을. 내가 산을 오르는 게 아니라 산이 나를 받아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산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사람의 산을 오르내리며 온기를 전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 히말라야라는 거대한 산 속에서 본 ‘사람’과 ‘희망’.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람의 산’을 오른다. 나를 받아주고 돌려보내준 산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안타깝게도 히말라야는 요즘 예전 같지 않다. ‘신들의 거처’라고 불리던 거대한 설산이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히말라야의 눈과 빙하가 녹아내려 바위가 군데군데 드러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가 에베레스트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꾸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까지 앗아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모두가 인간의 이기심이 낳은 결과다.
산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실패, 좌절, 슬픔, 외로움, 서러움, 고통, 상처…. 이 모든 것을 포용하며 베푸는 산의 넉넉함, 사람 사이를 따뜻하게 이어주는 산의 신비한 매력에 모두가 빠져들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산이 더 망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에베레스트도 신들이 살던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법정 스님의 가르침처럼 산을 소유하려 들지 말자. 산은 나의 소유가 아니라 후손들로부터 잠시 빌려 온전하게 그대로 물려줘야 함을 잊지 말자. 마치 내 것인 양, 산을 훼손하는 행동을 삼가자. 조금 불편해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