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
시쳇말로 그것은 배추를 셀때나 쓰는 말이라 했다.
그것은 비단 무언가를 이룰수 없을때 포기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간구하는 무언가를 가질수 없을때 포기하는 것
슬럼프 혹은 위기가 닥쳤을때 일어서지 못하고 주저않아 버리는 것
자신이 가질수 없는 혹은 이룰수 없는 어떤것을 마음속에서
놓아주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광범위한 '포기' 라는 단어의 정의.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포기'는
일상에서 상대방의 단점(본인이 굉장히 싫어하는)이
고쳐지기를 바라는 욕심.혹은 관심.혹은 애정.이 사그라들지 않는..
그것에 대한 '포기'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집에 있다.
엄마는 습관적으로 스타킹 양말 등을 방바닥이고 화장실이고
벗어놓은 그 자리에 그대로 두신다.
(세탁기에 넣어야 함을 알면서도.)
그럼 우린 그냥 먼저 보는 사람이 집어 세탁기에 집어넣는다.
그.러.나.
문제는 아빠다.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인 아빠는 수더분하고 털털한 엄마를
못 견뎌 하신다는 거다.
올해로 27년째를 맞은 엄마아빠의 긴 결혼생활에도
아빠는 여전히 엄마의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스타킹*양말 을
견딜수 없다고 하신다.
엄마가 양말을 주로 벗어두는곳은 안방으로
당연히 방을 같이 쓰는(?) 아빠가
엄마의 양말들을 제일 많이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아빠는 목격하는 그 즉시
미간에 내천(川)자가 그려지면서 입에서는 아주 고약한
기분 나쁜 목소리(뭐냐이건,나 감정 심하게 상했다.는 듯한)가
흘러나오면서,
"이것 좀 봐라.여자가 이게 뭐냐,벗었으면 세탁기에 넣어야지.
내가 아주 미치겠다,또 이래놨다."
라는 말들을(최근에는 하소연에 가까워진) 하시며
짜증을 내신다.
그러면 엄마는 그것들을 세탁기 안으로 집어넣으며
아빠가 짜증과 잔소리를 남발하는 광경을 아무말없이
지켜보고 계시는 것이다.
(속으론 스트레스를 받으시겠지,
그것 좀 기분좋게 좀 치워주면 안돼? 라는 생각을 하시겠지.)
또 하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엄마는 온 동네에 소문난 '큰손'이다.
장을 봐와도 이~만큼.김장을 해도 이~만큼.
고기를 구워도 이~만큼.밥상에 반찬을 놔도 이~만큼.
먹는 입이 많은 탓도 있지만 그 먹는 입들이 유학을 가고
집을 비울때도 여전히 엄마는 습관적으로 음식을 많이
해내시고 그것을 즐기시는 듯 하다.
그러나 또 아빠는.
엄마가 그렇게 상에 불필요하게 많은 반찬을 올려놓으면
또 다시 미간에 내천川자를 그려내시며,
"다 먹지도 못할걸 왜 이리 많이 놓냐며 음식물 쓰레기를
생각해보라,이게 다 낭비다,돈으로 환산하면 이게 얼마냐,"
며 엄마에게 짜증과 잔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엄마는 또 아무말없이 잔소리를 하면서 반찬을
덜어내는 아빠를 물끄러미 주시하다가
다음 식사때 역시.많이 많이 반찬을 상에 올리신다.(혹시 반항?)
아빠의 잔소리를 듣고 엄마가 바로 시정에 들어갔을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그랬다면 내가 이걸 쓰고 있지도 않았다.)
예상했겠지만 결과는 역시 또 다툼의 연속이 되겠다.
옆에서 지켜보는 우리 남매들은 아주 속이 터진다.
처음엔 아빠가 왜 저렇게 너그럽지 못하나 고 생각했다.
지켜볼수록 바뀌어 드는 생각은
엄마는 왜 본인의 문제를 고치지 못하나 이다.
스타킹*양말 등을 방바닥에 굴러다니게 하고 불필요한
음식쓰레기를 남기는 일은 분명 옳은 일은 아니기 때문에
엄마가 본인의 문제를 고치지 않는 것을 회사일과 가사를
전담하다보니 힘드셔서..라며 옹호를 할수만은 없다.
(자꾸만 다툼의 원인제공이 되니까.)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서 우리들은 어느 누구의 편이 아닌,
왜 두분 중 한분이 포기를 하고 살수는 없는가.
벌써 이렇게 살아온지도 27년이나 되었는데 ..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아빠가 엄마의 양말등을 애정어린 마음으로 너그러이 이해해
말없이 기분좋게 세탁기에 넣어준다던지
엄마가 알아서 아빠가 보기전에 미리미리 본인의 빨랫감은
세탁기에 넣는다던지.
또, 엄마가 남기는 음식쓰레기나 부엌일에 대해선
아빠가 관심을 끄고 엄마에게 맡긴다던지
엄마는 아빠가 뭐라 잔소리를 하기 전에 반찬을 적게 놓고
음식쓰레기를 남기지 않는다던지.
가 되겠다.
결론은 둘 중 하나가 포기를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혹자는 애정이나 관심이 없으면 상대방이 무엇을 하던지
신경도 안 쓰인다 했다.
그러나 결혼해 큰 딸이 26이 되도록 키우고 살아오시면서
아직도 서로에 대해 포기를 못하고 아웅다웅 하시는걸 보니
우리 부모님은 아주 많이 사랑하시나 보다.
(좀 심하게 사랑하신다.적당히 하시지.)
포기는 꼭 나쁜것만은 아니다.
상대방에 대해 미련을 버릴것은 버린다면,
그래서 둘의 사이가 더 나아진다면
그런 '포기'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사실 그것은 포기라고 표현하기도 부적절한 다른 그 무엇으로,
정확이 말하자면 상대방에 대한
내 욕심과 집착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조금만 더 참고 애쓴다면
본인도 가족들도 편해지고 모두들 환하게 웃을수 있을 것이다.
화목한 가정은 별게 아니다.
그것이 '화목한 가정'이다.
그나저나 우리 부모님은 언제 포기하시려나 서로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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