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엄마가 우는 소리에 깼다.
너무 흐느껴서 목이 잠긴 소리였다.
할말은 많은데 말이 잘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 이해한다. 나라도 엄마였다면... 그랬을 것이다.
난 이모가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헛똑똑이라고도 생각했던 것도 같다.
이모가 작년에 엄마랑 담구었던 신김치가 찌개로 오른 식탁을 보며 이걸 끓였을 엄마가 얼마나 또 울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에 먹먹한 통증이 왔다. 이모는 암이었다.
그러게...
자식만 보고 사시지 말랬잖아요?
좋은 거 있으면 먹고 좋은 구경있으면 다니고 예쁜 옷 있으면 입고 남자친구라도 만드시지 그러셨어요??
난 정말 그렇게 말하고 싶었었다.
이모가 사는 모습이 너무 싫었다.
왜 여자는 자식만 보고 살아야하는가? 왜 자식이 엄마의 등짐이 되어야하는가 싶어서 너무 싫었다.
김장을 와선 담그란 배추는 안 보고 털날린다고 묶인 내 강아지를 안쓰러워하던 이모. 다른 여자에게서 낳아온 남편의 자식을 품안에 들여 이쁜 옷을 입혀 학교에 보냈었던 이모. 주근깨와 검버섯이 얽은 얼굴로 애들 등록금을 마련하고 싶어 고민했던 이모. 찜질방이 그렇게 좋은 거냐며 이미 서너번은 다녀오고도남은 엄마에게 이번엔 꼭 가자고 약조를 다짐하던 이모. 그런 멍청하고 고지식하고 맹해서 조카들로부터도 이해를 못 얻었었던 이모가 지금 병실에 덩그러니 누워있는 것이다. 당신이 그렇게 학비를 대느라고 맘고생을 시키던 딸자식과 함께...
형제는... 이럴때 할일이 없는 거라고 엄마는 탄식을 했다.
각자의 삶에 바빠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는데 어느결 커버린 자식들의 경조사에서나 보게 되는 그런 관계라고 했다. 엄마가 이모의 병실에 오늘 안 가는 것은 안 가는 것이 아니고 못 가는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수술에서 깨어나 경황이 없을 이모를 보는 일이 엄마나 이모나 너무 고통일 것이다.
솔직히 아직 실감이 안 난다.
난 이모의 김장담그던 사진을 디카로 찍을 당시만해도 그녀의 얼굴에 핀 검버섯은 중년여성의 훈장이고 손톱이 잘 부러진단 말을 들었을 적엔 나도 가끔 그런다며 낄낄 웃었었다. 그게 건강의 적신호였을지 모른단 생각에 미치면 내가 아직 철이 덜 든 게 분명하단 확신을 하게 된다. 그런 이모가 퉁퉁 부운 얼굴로 날 병실에서 맞이할 생각을 하면 난 그때 어떻게 이모를 볼까?
약 3년전 이모의 꿈에 하얀 산신령같은 사람이 나타나 우리 3년뒤에 보잔 말을 하고 사라졌단 말을 이모가 수술전 엄마에게 했다고 한다. 엄마는 그 소리를 우리에게 전하며 아직도 심장이 뛴다고 했다. 그땐 무심결 참 재수없는 꿈이란 생각을 했었는데 잠자리에서 가만 곱씹어보니 그 할아버지, 아니 그 노친네, 우리 이모를 데려가면 정말 더없이 나쁜 노친네란 생각에 미친다.
세상엔 나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난 한번도 이모가 나와 나이가 같고 같은 반에 배치된, 남편의 다른 자식을 홀대하거나 구박하는 모습을 붉은 심장에 손을 대고 진실로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같은 반에 배정되어 늘 성적경쟁을 해야했고 덕분에 난 어린 나이에 이틀간격으로 한번씩 불면증에 시달리는 몇달이 이어졌었다. 그래서 결론을 내린 건 이게 다 맹순이 이모때문이라고 여겼던 원망이 이제것 남아있었던 것 같다. 이제 그 이모가 아프고 수술을 받고 침상에 누워 미음도 겨우 넘기며 살아가야할지도 모른다.
이모...
전 아직 실감이 잘 안나요...
이모가 이렇게 아프시단 것도, 그래서 병수발을 받아야하는 것도, 중환자실로 모셔야하나 일반병실로 모셔야하나 하는 그런 환자에 속한 것도 실감이 안 납니다.
하지만 정말 열심히 사신 건 인정할게요.
앞으로 건강해지시면 엄마랑 찜질방도 다니시고 맛난 김치도 더 많이 담구어주시고 좋은 구경 좋은 음식 많이많이 챙겨서 꼭꼭 씹어서 넘기세요. 그리고 다시는... 자식만 보며 사시는 여자는 되지 마세요. 차라리 바람이라도 나신다면 제가 돈이라도 대드릴게요....
조만간 병실에 들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