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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라는 허상

박혜정 |2006.04.18 18:30
조회 28 |추천 0

“그대,
모든 소망을 버리고
어떤 목표도 욕망도 모르는 채,
행복 따위는 입에도 담지 않게 될 때,

그 때,
비로소 이 세상의 모든 흐름이
그대 마음을 괴롭히지 않게 되고,
그대 영혼은 평화로우리라.“

               ― 헤르만 헷세 ―

 

................................



참으로 그러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찾으려고 하고 구하려고 하는 모든 노력을 그만 둘 때에
비로소 지금 있는 이 모습 이대로가 바로 진리임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너무나 오랜 교육과 습으로 인하여서
지금의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늘,
지금의 자신이 아닌, 진정하고 멋진, 내가 어디에 존재하지 않을 까?
하는 바램을 가지고, 그곳으로 향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 내가 아닌 적이 있었습니까?
슬플 때에 나는 슬픈 나였었고,
고통스러울 때에 나는 또한 고통스러워한 나였으며,
기쁠 때에 기쁨을 누렸으며,
배가 고플 때에 밥을 먹었으며,
잠이 올 때에 잠을 잤으며,
일이 필요할 때에 일을 했습니다.

이런 내가, 내가 아니면,
진정한 내가 또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지금의 나를 부정하고, 그래도 변하지 않는 무엇의
진정한 나......
그럴듯해 보이고, 완전해 보이고, 행복해 보이고, 자유로워 보이고,
원망과 짜증과 분노와 미움과 고통과 속 좁음과 같은 못난 모습은 없애버리고
사랑과 인내와 거룩함과 멋지고 넉넉해 보이는 그러한 나,
그리고 그러한 모습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어떤 힘...
이러한 것을 향해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추구해 왔습니다.
하지만,
알든 모르든 그렇게 노력하고 추구하며 살아온 나날들에서
과연 우리는 그렇게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을 얻었던가요?  
아니, 한두 번에 그칠지라도 아무런 걸림이 없고 불안하지 않은,
자신이 바라고 원하든 그러한 자유와 평화가 한번이라도 있은 적이 있었던가요?
과연 그랬었습니까?

왜 그럴까요?
그렇게 목이 타는 듯이 바라고 노력해도 내게 그러한 것들이 오지 않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렇게 그렇게 바라는 내 모습은
진실로 진실로 존재하지 않는 나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한 번도 가보지도 못했고,
또 느껴보지도 못했으며,
다만, 그러한 것이 있다는 글과 들음과 교육을 통해서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은,
이미 지나간 과거에 만들어 놓은 하나의 죽은 잣대 속에 존재하는 나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러한 것은 지금의, 현실에서 못나든 잘 나든 살아 숨 쉬는 생생한 내 모습이 아니라
있지도 않는 내 머릿속의 관념적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잠시도 머물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상으로 그려진 머물러 있는, 찾아야 하는 어떤 나라는 것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입니다.

정말로 진정한 내가 있다면,
지금 잠시도 머물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이 모습,
그토록 버리고 싶어서 안달하는 모자라고 부족한 이 모습,
순간 순간 변함 속에 잠시도 머물지 않는 이 모습,
그러면서도 지금 현실 속에 존재하는 이 모습,
이것만이 진실로 매 순간 존재하는 진짜 나입니다.

헤세가 하는 말처럼

"그대,
모든 소망을 버리고
어떤 목표도 욕망도 모르는 채,
행복 따위는 입에도 담지 않게 될 때,"
의 내가 되십시오.

모든 소망이라는 것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기억 속에 바람직한 모습일 뿐입니다.
그리고 들어서 배워서, 아름답다고 하여 기억 속에 새겨놓은 그림일 뿐입니다.

목표라는 것, 역시 그러합니다.
삶을 살면서 목표를 정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자신이 바라는 목표와 꼭 같이 이루어 본 사람이 있습니까?
단언하건데,
비슷할진 몰라도, 자신이 그린 그림과 꼭 같은 목표를 이룬 사람을 아무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삶은 한 순간도 머물지 않고, 다시는 똑같은 삶을 되풀이하지 않는대도 불구하고,
마음은 기억의 창고
(이 곳에는 지난 경험도 있을 것이고, 교육받은 것도 있을 것이고,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그럴 듯한 책들에서 말하는 이른바 성현이라고 하는 분 - 사실은 성현입니다. 듣는 자가 잘못 들어서 그렇지..- 들의 말들도 있을 것입니다.)
에서 괜찮은 것을 끄집어내어서 목표로 삼기 때문입니다.
그림이 현실이 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환경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만들어내는 것들이,
어찌 하나의 멋진 모습으로 똑같이 그려지겠습니까?

그러니,
잠시도 머물지 않는 삶을,
이미 지나가 버려 없는 머무는 마음에 끼워 맞추려하니,
맞아 들어갈 턱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랜 습과, 교육과, 들음으로 인하여,
과거의 기억에 뿌리를 둔 존재하지도 않는 가치를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지금 생생히 살아있는 삶, 오직 그것만이 사실인대도 불구하고,
사실이 아닌 바램(사라져 버린 기억의 시체들)에 들어맞지 않다고 하여
지금의 삶을 늘 탓하고 나무라기만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은 늘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자신을 잠시도 가만두지 않고 괴롭힙니다.
그래서 더욱 더 괴롭고 힘이 듭니다.

한번만이라도, 지금의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여보십시오.
기억의 잣대에 비추어 볼 때에
비록 모자라고, 부족하고, 때론 선하지 못해 보이고,
인정머리 없고, 질투하고, 원망하고, 밴댕이 속같이 좁아 터졌고,
늘 푼수라고는 자라콧구멍보다 더 작아 보이는
지금의 자신을 받아들여보십시오.

그리고, 헤세의 말처럼,

"행복 따위는 입에도 담지" 말아 보십시오.

아.........
진정으로 한번만이라도.........

그리하여
너무나 싫어서 버리려고 안달하던
그 못난 자신을 받아들일 때에

그대....
그대의 살아온 모든 삶 속에,
배출되지 않는 지방처럼 자리 잡아 쓸데없는 살(아상)이나 키워내면서
세포 곳곳이 스며들어 주인처럼 자리 잡고 있는 그 마음의 잣대로 비추어 볼 때에
그토록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대가!!
그토록 고대하며 찾고 싶었던 바로 그대!
나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자라고 부족하고, 인정머리라곤 손톱만큼도 없고,
소갈머리라곤 밴댕이 같은 자신이
얼마나 넉넉하고 모자람 없는 존재인지를 아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헤세의 말처럼

"그 때,
비로소 이 세상의 모든 흐름이
그대 마음을 괴롭히지 않게 되고,
그대 영혼은 평화로우리라."

라는 삶을 살 게 될 것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바라노니,
한번만이라도..!!!
그 못나서 버리고 싶고,
그래서 더 잘난 나를 찾아가는 그 여행을 멈추기만 한다면,
그리고 그 못난 자신을 끌어안고 사랑할 수만 있다면,
평화가 이미 그대가 살아온 날 만큼 존재했음을 알 것입니다.
그대가 이미 자유와 평화 속에 있음을 알 것입니다.


진정으로 말하건데.....

지금 고통 받아 끙끙거리고 있고,
또 슬픔에 잠겨서 울고 있고,
거리에 앉아 도란 도란 이야기 하고 있고,
이 모자라는 나를 벗어 던지고 싶어서 안달하고 있고,
잠이 쏟아져서 끄덕 끄덕 졸면서 침을 줄줄 흘리고 있는....
중요한 일로 차를 타야하는데 자신의 조그만 실수로 시간에 맞는 차를 놓쳐버리고 동동거리는,
자그마한 오해를 풀기 위해 설명을 하다가 말이 잘못 나와서 오히려 일을 망쳐버리는 일이 있었다면
그러한 것들이 실제로 그대에게 일어난 일일진대
이 모습 이 상황이 그대의 모습이 아니라면
그대는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여여(如如)함이란,
컵 속의 물이 잔잔한 것처럼 고요함만이 여여가 아닙니다.
비바람이 치고 태풍이 훑고 지나가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는
지금의 현실 역시 여여입니다.

그것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지금의 머물지 않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맞닥뜨려서 살아가는 그 것......
이것만이 진실한 나요. 여여한 삶인 것입니다.
실망하는 것도 나요.
원망하는 것도 나요.
묵묵히 치우고, 받아들이는 것도 나요,
멀리서, 어려운 일을 도와주러 가는 것도 나요,
가지는 못하지만, 성금이라도 보내주는 것도 나요,
이것도 저것도 안 되면 안 되는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하는 것도 나인
즉... 그 모든 것이 여여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현실에 존재하는 유일한 나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기억 속에서 나오십시오.
멋지고 거룩한 그림에서 나오십시오.
그리고,
지금, 현실 속에서 힘들든 고통스럽든 못나든 잘나든 분명하게 존재하며 살아가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기억 속에 머물러 지금의 나를 끊임없이 탓하고 있는 그 자체가 이미 고통이요 번뇌입니다.
비교하고 분별하는 기억 속의 낡은 잣대를 넘어뜨릴 때에
비로소, 그대는 살아있는 진정한 내가 될 것입니다.

그대들이 세운 진리의 모습에 대해서 한번만이라도 돌이켜 의심해보십시오.

진리는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지금 끊임없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이 순간의 삶,
이것만이 오직 진리일 뿐입니다.
이것만이 오직 지금 존재하는 진정한 삶이요, 나입니다.

그대....
진정으로 자신이 못나서 그것을 버리고 싶어서 못내 안달을 하고
뭔가 괜찮은 듯한, 그 여여한 진아를 찾아가려는
그 못난 그대가, 그대가 아니라면 과연 누구입니까?
진실로 진실로 진리에 목말라 하는,
그 부족하고 못난 그대가
못난 모습으로 잘난 나를 바라는 그 순간의 모습조차 진정으로 허상이라고 말할 겁니까?
그 못난 모습이.....?

마조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못나고 부족한 그대로의 너가 바로 부처이다."

라구요.

아..... !! 언제 그대가 그대 아닌 적이 있었습니까?

 

- 참조 : http://www.beinno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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