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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의 남편

최병주 |2006.04.23 19:05
조회 110 |추천 0


 

작년 말 한국에 부임한 제임 쿰즈 뉴질랜드 대사는 외교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열 살 연상의 남편 팀 스트롱 덕분이다.

팀은 뉴욕 무대에 섰던 재즈 가수였지만

1997년 결혼 후 뉴욕을 포기했다.

호주로, 러시아로 아내의 근무지를 따라다녔다.

이달 초엔 서울 청담동 재즈클럽에서 한 시간을 열창했다.

뉴질랜드 와인을 홍보하는 자리였다.

쿰즈 대사는

"남편이 집에서는 가사(家事)로,

밖에서는 노래로 너무 많은 도움을 준다"고 했다.

 

팀 같은 사람을 미국에선

'트로피 남편(trophy husband)'이라 부른다.

성공한 아내 대신

책장의 장식용 트로피처럼 집에 들어앉아

가사와 육아를 맡는 남편이다.

포천 지(誌)가

미국에서 성공한 여성 CEO 50명의 남편을 조사했더니

3분의 1이 트로피 남편을 두고 있었다.

칼리 피오리나가 휴렛패커드 회장으로 명성을 날린 데엔

AT&T 부사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主夫)가 된 남편이 한몫했다.

 

지금 지구촌의 선출직 여성 수반(首班)은 12명이다.

옛날엔

"남자는 세상을 지배하고

여자는 남자를 지배한다"고 했다.

이젠 그게 거꾸로 된 것이다.

'영부군(令夫君)'의 스타일도

영부인만큼이나 다양하다.

메르켈 독일 총리의 남편은

'오페라의 유령'으로 불린다.

아내의 취임식도 TV로 볼 만큼

자기를 드러내지 않아 붙은 별명이다.

메르켈은 그러나

"중요한 연설 때면

남편에게 원고를 보이고 의견을 구한다"고 했다.

 

매컬리스 아일랜드 대통령의 남편은

아내의 해외 순방을 꼬박꼬박 따라다닌다.

반면 클라크 뉴질랜드 총리의 남편은

외국에 함께 다니기를 꺼린다.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의 남편은

2004년 대선 때

아내의 유세장 맨 앞에 나설 만큼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복권업자에게 뇌물을 챙겼다가 작년에 탄로나자

미국으로 피신했다.

외조(外助)가 망조(亡兆)된 경우다.

 

한명숙 총리가 취임 기자회견에서

"가정 내 양성 평등을 만드느라

다투기도 많이 했다"면서도

"오늘 아침은 남편이 챙겨줬다"고 자랑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아내를 따라 총리공관에 들어온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는

"내가 조용히 있는 것이 돕는 일"이라고 했다.

"어떤 여자가 좋은 남편을 갖고 있는가.

그 여자의 얼굴을 보면 잘 알 수 있다"(괴테).

자신의 반은 죽이고 반은 살리는,

희생과 사랑이 결혼생활이다.

이런 진리는

총리의 남편이라고 다를 게 없겠다.

 

 

 

 

- 조선일보 2006년 4월 22일자 만물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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