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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지침서가 주는 시한부 위안

김신식 |2006.04.26 00:35
조회 2,790 |추천 9

얼마전 신문을 읽다가 각 대학교마다 '연애와 성'에 대한 강좌가

인기라는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현대인들에게

이제 사랑 또한 하나의 메커니즘이 되었다는 점은 씁쓸하면서도

연민까지 느끼게 만드는 기제가 내 마음속에서 작동합니다.

 

저의 지인들은 제가 타인에게 너무 '친절하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래서 저에겐 이성적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매력이

없다고 말하더군요. 저는 한 때 이러한 점 때문에 내 자아의 다른

면을 꺼내어 내 무의식 속 어딘가에 숨겨져있는 '냉정'의 이미지

로 나를 화장해볼까 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전 최근 확고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내 자아가 지금까지

스무 다섯 해동안 나를 이끌어오면서 나의 정체성을 유지해주었

던 '친절의 열정'을 포기한다는 것은 나에 대한 변절이라는 것을.

 

난 내 자신에게 변절자가 되지 않기 위해 내 '자상함'이 타인에게

내 이성적 매력을 상쇄시킨다 하더라도 굴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언젠가 대한민국이 연애공화국이 되어버렸다는 영화평론가의

말이 기억납니다. 연애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연애를 하지 않으면 안될것만 같은 '동의의 기제'를 작용시키는

사회의 단상에 대해선 저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러한 '동의의 기제'가 자신의 외로움을 당장 '사랑'이라고

포장해 한 타인에게 쉽게 고백하고 쉽게 상처주는 관계를

만들어 버립니다.

 

좀 더 신중하게 그리고 침착하게 더 따뜻하게 '타인'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흐려버립니다.

 

저는 그래서 되도록 인터넷이나 책으로 발간되는 연애지침서를

멀리합니다. 아..맞아..저것은 내 상황이야. 내 아픔을 위로

해주는 지침을 발견했다며 좋아하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오늘날 발간되는 연애지침서들이 노리는 자본주의적 위선은

당신의 '내면'을 향한 추상적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는

허상의 안식일 뿐입니다.

 

제가 너무 냉정하다구요?

 

결국 당신이 원하는 연애지침서의 가장 확실한 키워드는

바로 당신 자신일 수 밖에 없습니다. 지침서의 구절은

당신이 받은 상처를 잠시 위로해 주는 그 이상의 것도

그 이하의 것도 아닙니다.

 


 

추천수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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