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그녀의 아프리카 목걸이

구경록 |2006.05.01 02:15
조회 59 |추천 0

8개월 만이었어. 그녀가 내 핸드폰 번호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지만.

 

 망각으로 아픈 기억을 지워버리는 그녀의 습관들이 모두 무시된 채로 난 그녀를 만나야 했어.

 

 계속해서 숙취에 시달리던 나는 듬성듬성한 내 턱을 말끔히 하고 집을 나섰지.

 그리고선 언제나 그녀를 만나던 그 곳으로 갔어.

 

 "오랜만이네."

 "8개월 만인가? 아니면 더 오래 되었던가.. "

 "이젠 기억도 나질 않아. "

 

 그녀는 자기 몫으로 놓여진 깔루아 밀크를 언제나 그렇듯이 빨대로 두번 반을 젓고 나서

 한모금 마셨어.  나는 바카디151을 주문했지만 얼음물을 먼저 마셨지.

 

 "케냐에 다녀왔어.. 그리고 이디오피아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돌아서 프랑스에서 갈아타고 왔지."

 

 "온지 얼마나 된거야?"

 

 "일주일 째야."

 

 그녀의 머리칼은 윤기를 잃은 채로 어깨위에 놓여있고. 얼굴은 무척이나 까칠해 보였어.

 지금 내 앞에 있는 그녀는 왠지 그녀가 아닌것 처럼 보였지.

 

 나는 술잔위에 올려진 그녀의 터져있는 손가락과 슬리퍼 사이로 빼꼼히 내밀어진

 검게 그을리고  거칠어진 발가락을 쳐다보면서

 

 그녀가 케냐에서 본 코끼리의 교미하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녀는 한국의 아스팔트 보다. 흙과 돌로 이루어진 아프리카의 대지를 더욱 그리워하는것 같았어.

 

 옛날 그녀의 손가락은 무척이나 귀엽고 통통했어.

 지금 그녀의 손가락은 무척이나 마르고 길어졌어.

 

 옛날 그녀의 맨발을 봤을때. 난 신생아 실에서 강둥강둥대는 아기의 발가락을 생각했어.

 하지만 그녀는 지금 거칠어지고 그을린 발가락을 가졌어.

 예전에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을 까딱까딱하다 가위처럼 비비꼬는 버릇도 없어지고.

 

 난 그녀가 강물에서 잡아올린 물고기로 식사를 때운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그녀의 여윈 젖가슴에 놓여있는 이국적인 팬던트를 주시했어.

 

 "이거? 나 귀국하기 전에  도둑을 맞았거든... 그때 지갑은 남아있었지만. 내 가방이랑. 내 사진들.

  카메라들 모두 잃어버렷어. 그때 공항가는 길에서 산 목걸이야. "

 

 그러면서 그녀는 팬던트를 만지작 거렸어. 이것이 먼곳으로 자신을 대려다 줄 기차표인양.

 

 "지금 하는일은 잘 되가?"

 

 나는 바카디를 한모금 머금고는 얼음물로 목을 축였어.  그리고 내가 사진을 그만두고 지금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일.  아파서 누워계신 우리 아버지 이야기를 했어.

 

 난 도무지 그녀처럼 아프리카로 떠날 자신이 없었어. 난 아스팔트가 좋았거든..

 

 "이젠... 널 봐도  두근거리는 느낌이 없어."

 그녀의 왼쪽 입술이 시근거리는걸 난 놓치지 않았어.

 

 "널 많이 사랑했었어."

 그녀의 왼쪽 입술은 여전히 시근거렸지.

 "많이 아팠었고. "

 그녀의 왼쪽 입술은 시근거리질 않았어.

 

 난 아무말도 할 수 없었지. 그리고 그녀는 술잔 바닥에 깔린 이미 연해져 버린 깔루아 밀크로 목을 축였어.

 

 난  아무말 없이 그녀에게 담배 한 개피를 건내주고는 내 잔을 비웠어.

 

 "너네 집에.. 아직 그 커피 있어?"

 

 예전에 그녀가 사다준 컬럼비아 커피는 찬장속에 먼지 낀 채 들어있어.

 

 난 그녀가 담배 한 대를 다 피우길 기다렸다가. 조용히 같이 밖으로 나왔어.

 

 그녀가 오랬동안 사용하지 않아 더러워진 커피 포트를 설겆이하는동안

 난 그 커피를 찾기 위해 온 찬장을 뒤져야 했어.

 

 "여전하네.. 이 방은."

 

 그날 그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 나는 술 한잔을 마셨을 뿐인데 이상하게 커피향에 몹시 취하고 말았어.

 

 비록 예전보다 여위어진 그녀의 몸이었지만 난 따스함과 조붓함을 느꼇어.

 그녀의 입속은 무척이나 달았지.  여전히 그녀는 커피에 설탕을 세 스푼이나 넣어 마셧어.

 

 다음날  아침 늦게 난 일어났어. 텅빈 방안에 햇빛이 들어오고 어제 그녀와 마신 커피가 남아있는

 포트에서는 너무나 좋은 커피 냄세가 방안을 채우고 있었지.

 

 하지만 .,.. 내 방을 채운것은 햇빛과 커피향 뿐이었어.

 

 내 옆에서 느껴지던 그녀의 색색 하고 코고는 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지.

 

 다만.. 그녀의 팬던트가 내 침대 앞 책상위에 놓여있었을 뿐이야.

 

 난 난폭하게 그 팬던트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햇빛이 비치는 밖으로 나갔어.

 

 그녀의 이름을 소리내어 외치고 싶었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었어.

 

 그녀는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져 갔을 테니까.

 

 난 그 팬던트를 손에 쥐고서 .

 

 공기를 들이마시기만 하면 되.

 

 캐냐에서 불어오는 그녀의 숨결을 느끼면서.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