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주 벽서사건
나주벽서사건은 후에 영조의 경종 독살설로도이어지면서 영조를 왕에 즉위한후부터 죽는날까지.. 그리고 아들 선을 뒤주에 가둬죽이게 되는 결정적인 정신적 콤플렉스로 작용한다..
(경종 독살설의 재미는 영조가 선왕인 경종에게 게장과 꿀을 같이 바친것에서 연유한다. 게장과 꿀은 같이복용하면 독이된다는 한의학의 말이있다..주의하시기를....)
사도세자의 아버지 영조는 경종 독살설의 한가운데 있던 인물이다
영조는 비록 탕평책을 표방했지만 태생적 한계상 노론일수밖에 없었다..영조는 분명히 노론이 선택했기에 왕이될수있었다
영조는 즉위한후 경종때의 임인옥안에 자신이 역적으로 기록된것에 부담을 갖고 이를 뒤집기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영조는 경종을 몰아내려했던 노론과함께 과거의 음울한 기억을 공유하고있었다..만약 경종이 소론과함께 양자를 들여 왕위를 계승하려 했다면 그는 왕은커녕 폐서인으로 살아야했을것이다
하지만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선}는 부왕과는 처지가 달랐다
사도세자는 노론과 소론 어느쪽에도 부채가 없었다..사도세자가 보기에 부왕이 세자시절 노론과 손잡고 경종을 몰아내려했던 것은 분명 역모로 볼소지가 있었다. 영조와 노론 처럼 경종때의 행위는 숙종과 영조에 대한 충성이었다고 강변해서 될일이 아니었다
그들의행위는 경종의 위치에서 볼때 분명히 역모에 가깝거나 역모였다.
사도세자는 노론에 불만을 느꼈다.조선은 사실상 노론의 나라란 생각이 들었다.부왕 영조가 힘겹게 이끌어 오는 탕평책은 한계가 보였다 부왕인 영조 자신이 노론에 부채를 느끼고있었으며 실제로도 그러했고 자신을 공격했던 소론에게도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니....
결정적으로 사도세자의 선 의
죽음은 부인인 혜경궁 홍씨에게도 버림받았다는 것에있다 선왕인 아버지 영조가 노론을 등에 업고 왕위에 올라 겉으로는 탕평을 외치면서도 자신을 핍박한 소론을 제거하기에 급급한것과 부인 혜빈 홍씨의 조상인 홍주원은 선조와 인목대비 사이에서 태어난 정명공주의 부마였으니 당연히 서인이었다
혜빈홍씨의 아버지 홍봉한은 자신의 딸을 세자빈으로 책봉키위해 무던히 애쓰고 결국에는 혜경궁홍씨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그후 출세의 가도를 달리는 그는 김상로 등과 노론의 실세로 부상하게된다
사도세자 선이 노론과 손을 잡고 함께했다면 그는 뒤주에서 운명을 달리하지는 않았을것이다 허나 어쩌랴..
귀인은 시기하는자 와 이間하는자가 많음을..
각설하고 사도세자 선의 고립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무인적 기질이뛰어난( 그의아들 정조는 아침에 일어나는대로
활쏘기를 즐긴것으로 유명하다.그것도 50여회를활시위를 당겼다고 한다..요즘사람들 활시위를 당기는 일이 쉬울꺼라생각하지만 절대로.. 천만의 말씀 활시위를 휘지도 못할껄.. 근데 그걸 50번이나 당겼다니.. 그런 정조역시 나이 50을 못넘기고 죽는다 그의 독살설도 많이 알려진사실..)
선 은 소론 의 처신을 보인다 .. 그런 그를 노론이 곱게 보지않을것은 불보듯 뻔한것..
사도세자는 안밖으로 고립된다 그는 부인에게서도 버림받고
(버림받았다기보다는 정치적견해가 달랐다는표현이 맞을듯..)
부왕인 영조에게도 그의 소론적 기질은 눈엣가시였다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 김씨의아버지 김한로와 노론의 영수인 김상로 등이 그의 제거에 마음을 합친다..
세자궁에서는 혜경궁 홍씨가 間자의역활을하고 아버지인 영조에게는 정순왕후와 후궁인 문씨가 그를 헐뜻기에 이른다.
영조의 딸인화완옹주역시 자신의 입지를 위해 정후겸이라는 양자를 들여 노론과 합한다
그녀는 사도세자가 오빠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죽음으로 내모는데 팔을걷고나선여인..
( 혜경궁홍씨는 남편을죽일의도는없었다 폐서인 정도라면 남편도살리고 친정도살릴수있다고생각했을것이다...)
결혼을하면 궁을나가야함에도 불구하고 계속궁에남아 아버지인 영조에게 오빠인 사도세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고발하며 사도세자가 정신이상자라는소문도 그녀의 입에서 나온것..
나중에는 사도세자 선이 뒤주에갇혀 죽은후에도 그의아들인 정조를 세손에 책봉하는일을 정후겸을시켜 극렬히반대하지만 정조가 세손에책봉되자 양자인 정후겸을시켜 세손의 유언비어를 퍼트리며 극렬히방해한다..결국에는 이사실을안 아버지 영조에게조차 훝날버림을받고 궁에서 쫒겨난다..
이에 위협을 느낀 사도세자 선은 몸의 안정을 위해 관서 지방으로 요양을 가기로한다..허나 어쩌랴 이미 선 을 제거하기로 한 間자들은 그의 요양길에 대동한 행렬을 그의 사적인 군사 훈련으로 모함하고 그는 군사를 동원해 부왕을 몰아내고 쿠테타를 일으키려했다는 역적으로 뒤주에 같히게된다..
많은사람들이 선 을 기억하길 정신이상자라로 알고있거나 배웠지만 절대로.
만일 그랬다면 한나라의 왕자를 유명한 의 를 써서 병을고치지 뒤주에 가둬 죽이지는 않는다,,물론 그가 궁녀를 죽였다는 일이 사서에 전해지기는 하지만 요즘의 잣대로 해석해서는 않된 다 그시절 궁녀는 그즈음의 잣대로는 하찮은 존재이거나 그이하였다.. 더군다나 그 궁녀가 세자의 일을 전하는 間인이였다면 죽어마땅하지않은가...
역대 왕조의 선왕중에 궁녀나 내시를 사사로운 감정으로 죽이는일은 비일비재했다..
조선.고려.삼국시대.그이전 삼한시대에는 산채로 순장을 당한것이 궁녀였다..
우리는 알지못한 역사가 너무 많다..
모르면서 소리높여 말하는 이가 너무 많다..
올빼미야 올빼미야
내자식을 잡아먹었거든
내 둥지는 허물지마라..
어둠에서 눈먼내가
너희에게 자식을 내었거들..
어찌 둥지마저 허무려하느냐...
자식을 삼복더위에 뒤주에 가둬죽인 영조가
훗날 아들 선을 기리며 지은시한귀절...
보이는게 다가 아니다..
임오일기를 쓴 이광현의 일기를 읽고 상당부분 인용한부분있지만
그래도 아까운사람이다, 특히 그는 시와 그림에 능했다고 전해진다 . 그는 효종에 버금가는 북벌론자였다 그당시 조선은 사대에물든 평안도 이남의 작은 국가였다... 그런 그가 보위에올라 정치를 했다면 조선의 역사는 지금과 다를것이다... 아마도 일본을 능히 넘는 아시아의 맹주가 되었을것을...
사도세자가 뒤주에 같힌 그날의 상황을 사간별로 전한 귀절은
읽으면서는 분하고 안타까움이 함께했다..
많은사람들이 혜경궁홍씨의 한중록을 알지만 그글은 홍씨가
나이70이 다된 노회한 정객으로써 자신의 입지와 친정의
안위를 위해서 쓴 정치적 방탄의 성격이 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