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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에타이의 역사

손대일 |2006.05.13 17:24
조회 168 |추천 0
The History Of Muay Thai

한국에서 비행기로 남서쪽을 향하여 5시간 쯤 날면 태양과 꽃이 아름다운 나라 태국이라는 나라에 이른다. 이 나라는 오랜 역사의문명과 현대의 문명이 한데 어울어져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무에타이는 타이의 전통 국기이며, 약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무에타이에 관해서 제대로 알려진 사실은 거의 없지만,타이의 오래된 군사무술 지도서인 유타사트(yuttasart) 라는 책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전해오고 있다.

이 책에는 창과 칼, 전쟁용도끼등을 이용한 전투 방법이 나와 있는데 여기서 창은 사람의 팔, 도끼는 주먹, 칼은 팔꿈치가 되는등 신체의 모든 부분을 무기로하는 새로운 기술이 전해졌다. 즉, 맨손으로 싸움을 하는 새로운 형태, 무에타이가 출현한 것이다. 전쟁을 위한 군인들의 무술이새로운 스포츠로 자리잡은 것이다.

때문에 다른 많은 스포츠와는 달리 무에타이는 처음부터 어떠한 형태를 갖고 시작하지 않았으며새로운 공격법이나 펀치가 최근까지 무에타이의 규칙에 정기적으로 추가되었고, 다른 비슷한 격투기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한 예로 킥복싱은 무에타이에 가라테를 접목시킨 일본식 격투기로 경기 방식이나 규칙이 무에타이와 거의 유사하다.
그리고 미국의 공수도 역시 그 뿌리는 무에타이다.

무에타이 경기는 3분간 5회전 으로 이루어지며, 각 경기사이에 2분간 휴식 시간이 있다. 영구식 권투와 비교해 보면, 경기 시간이짧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무에타이에서는 다양한 공격법이 허용되기 때문에 경기 강도가 아주 높다. 무에타이는 일반 영국식 권투와 아주 다르다. 일반 권투가 위로향한 토르소를 주 타격 부위로 상대를 속이거나 유인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무에타이에서는 전신을 타격부위로 하며 체급을 달리하여 싸우기가 쉽게 되어있다.

작은 경량급의 선수가 큰 중량급인 선수를이기는것이 흔한 일이다. 왜냐하면 손과 발 뿐만이 아니라 무릎, 팔굽등 인체의 모든 부분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과발은 상대적으로 중량급 선수가 유리하지만, 일반적으로 팔굽을 주먹의 3배, 무릎은 발의 3배 위력이 있어 경량급도 기본적인 파워에서는 밀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파괴적인 파워에 비해 선수를 보호해 주는 것이라고는 단순한 경기복과 낭심 보호대, 치아보호장구, 밖에 없다. 절대로 때려서는 안되는 부분은 오로지 머리뿐. 타이에서는 머리를 건드리면 영혼이 빠져나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바닥에 쓰러진 선수를 때린다거나 침을 뱉어선 안된다는것 정도가 선수들을 제지하는 몇가지 규칙이다.
이것을 제외하면 이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싸울 수 있다.
무에타이에 관한 전설은 많다. 국내에는 '나이 카놈 톰'으로 이름이 잘못알려진 태국의 최대영웅의 전설이있다. '나이 카놈 톰'이 아닌'카놈똠'이 그의 이름이며 별명이다. '나이'가 뜻하는 것은 영어에서의 '미스터'이며 '카놈 똠'은 태국음식의 이름이다.

'카놈 똠'(달작지근한 국물에 쌀이 들어있는 일종의 간식)을 그가 좋아해서 붙여진 별명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그에 대한 얘기이다.

'나이 카놈 똠' 18세기 사람인 카놈 똠(khanom ttom)은 태국의 최대영웅이다. 해마다 3월 17일 이면 모든 무에타이 경기장에서 그를 기리는 행사가 벌어진다. 1767년, 버마(현재의 미얀마)가 태국을 침략, 당시 수도였던 아유타야(ayuttaya)를 불태우고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붙잡아 자기 나라로 돌아갔는데 이 포로 중에 '카놈 똠'이 있었다. 1774년 버마의 왕이었던 망그라(mangra)는 부처님 사리가 모셔저 있는 파고다를 위해 랑군 에서 일주일간 공양을 바치기로 결정하고, 이 행사의 일환으로 포로로 잡혀있던 무에타이 선수들과 버마 선수의 시합을 마련했다.

그는 또 '리카이'라고 불리는 코메디 소극 형식의 검투경기 등도 지시했다. 시합 링은 왕궁 앞에 세워졌다. 축제의 첫날에 버마의 한 귀족이 버마의 선수들을 이끌고 왕에게 경의를 표하며 나왔다. 물론 왕은 버마의 선수들을 격려해주며 그들을 응원했다. 게임이 시작되어 레프리가 한 선수를 카놈 똠 이라고 소개를 했다.

포로로 잡혀온 많은 타이인들은 그를 열렬히 응원했다. 게임을 시작하자 마자 카놈 똠 이 상대의 주변을 빙빙 돌며 춤을 추어 버마관중들을 어리둥절 하게 했다. 바로 스승과 부모 국왕에게 받치는 의식인 '와이쿠르
'[wai kruu] 였던것이다. 그리고 경기를 알리는 시작신호가 울렸을때, 카놈 똠은 상대가 쓰러질때까지 팔꿈치 공격으로 상대의 턱에 연타를 쳐서 K.O 시켰다.

하지만 레프리는 와이크루로 버마선수가 얼떨떨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는 졌다고 할 수 없다고 판정 했고 그 결과 카놈 똠은 9명의 거인들로 이루어진 9명의 버마선수들과 싸워야 했다. 카놈 똠은 무에타이의 명예를 위해 9명의 버마선수들과 싸우기로 했고 그 거인들은 모두 그의 발 아래 쓰러졌다.

그의 마지막 상대는 아카이에서 그저 축제를 즐기러 왔던 코우치 였다. 그는 싸우기를 자원했고, 카놈 똠의 무릎 공격을 받고 곧 쓰러졌다. 이에 감탄한 망그라는 그에 매료되어 돈과 예쁜 아내 몇명 중 어느쪽이 좋을지 물어 보았고, 그는 예쁜 아내쪽을 택하여 왕은 자신의 부족출신 버마소녀 2명을 그에게 주었다. 그리고 자유를 주어 그는 이 아름다운 아내들과 함께 무사히 태국으로 돌아와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는 무에타이의 기예를 태국 국경을 넘어 선양한 최초의 인물로 간주 된다.

역사를 통해볼때 카놈 똠은 망그라 앞에서 9명 이상의 버마 선수들을 무릎꿇게 만들어 무에타이에 감동한 왕이 태국인들은 타고난 기질이 있다고 말하게 하였다. 단 한사람이 다른 무기도 없이 맨 손으로 너끈히 여러상대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천부적인 자질은 거의 마술적인 것이었으며, 이렇게 무에타이의 첫번째 신화가 탄생했다.





유럽인들은 60년 전부터 무에타이에 관심을 두어왔다. 1차 세계대전 동안 태국은 연합국들을 도와 파병을 했었고, 무에타이가 동양의 스포츠로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마인츠 신문은 "무에타이는 경이로운 스포츠이기는 하나 보기는 어렵다"

선수는 민첩하고 강인하며 터프하다. 이 스포츠는 스릴이 있을뿐 아니라 기묘하고 특이한 오락의 형태이다."라고 서술 했었다.

예전에는 총이 요즘과 같이 모두에게 공급되지 않고 대부분의 태국군인들이 자신들의 칼에 의지해야 했으므로 무에타이는 태국군인들에게 널리 보급되었다. 대부분의 태국군인들은 근접 전투에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발차기를 배웠다.

무에타이는 다음의 2가지 이유에서 학습 되었다.

첫째, 근접 전투에서의 공격 목적

둘째, 자기 방어의 목적

따라서 이 기간동안 무에타이는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나이 카놈 톰의 전설 때문인지 타이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의 무에타이가 세계 최고라고 믿고 있으며,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가라테나 쿵후등 다른 무술이나 격투기 챔피언을 초청해 무에타이 선수들과 시합을 하게 한다.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무에타이 선수들은 외국 챔피언들을 어김없이 때려 눞혔다. 몇년전에는 5명의 가장 강한 홍콩 쿵후 선수들이 무에타이 선수들과시합을 벌인적이 있었는데, 그들 역시 1회전에 K.O 당하고 말았다.

1977년 3월 12일, 미국에서 가라데와 경기를 가질때 무에타이 선수들은 무릎과 팔꿈치등을 쓰지 못하게 되어 불리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쉽게 이겼다.

1977년 6월 9일 화요일, 방콕의 룸피니 복싱경기장에서 2명의 무에타이 선수가 가라데 선수들을 상대로 싸웠는데, 가라데 선수들이 완전히 전멸했었다.

극진 가라데의 총수인 최영의 님(최배달-바람의 파이터) 도 전세계를 돌며 많은 무술가들과 싸워서 모두 이겼지만(심지어 스페인에서는 투우전용 황소와도 맨손으로 싸워서 한방에 넘긴적이 있다), 그가 가장 힘들었던 상대가 태국의 무에타이 선수 "블랙 코브라"와의 대전이었다고 회고한적이 있다.

다른 나라 선수들을 차례로 물리칠때마다 무에타이의 인기는 날로 높아갔다. 일생동안 단 한번도 이것을 해보지 않은 태국의 남자가거의 없을 정도이다. 요즈음도 해질녘이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방콕에서 규모가 가장 큰 룸피니나 라차담논 경기장 등으로 몰려가고 일요일 오후에는 5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텔레비전으로 무에타이 경기를 시청한다. 몇년전부터는 세계적으로 STAR - TV에서 매주 두번씩(1회는 재방송) 태국의 시합을 중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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