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러디썬데이 [한겨레] 1972년 1월 북아일랜드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못하고 남은 북 아일랜드의 저항이 심해지자, 영국은 70년대 초 북 아일랜드의 자치권을 몰수했다. 여기에 항의해 북 아일랜드인들이 평화행진을 감행했던 72년 1월30일. 영국 공수부대는 시위대 한 구석에서 투석시위를 하는 이들을 진압하면서 총을 쏘기 시작했다. 시위대 13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부상한 이 ‘피의 일요일’ 사건은 이후 영국과 북아일랜드 분쟁의 항을 바꿔버렸다. 80년 광주사태를 연상케 하는 이 사건을 재현하면서 (영국, 폴 그린그래스 감독)는 독특한 시도를 한다. 마치 다큐처럼 하루를 ‘중계’ 이 영화는 딱히 주인공이 없다. 인물들에게 이렇다할 사연이나 성격을 만들어 넣지 않고서, 마치 다큐멘타리처럼 사건 발생 당일의 아침부터 밤까지를 중계한다. 시위 장면, 총격 장면에선 대규모 인원을 동시에 연기시키면서 카메라가 그 안을 옮겨다니며 찍는다. 총 맞고 쓰러지는 시위대원을 놓치듯 지나갔다가 다시 돌아가 비추는 화면은 뉴스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핸드 핼드 카메라가 등 뒤에서 들리는 총소리에 크게 흔들릴 때는 카메라를 든 이의 공포감까지 전달된다. 이런 식의 연출은 생생한 사실감을 전달하는 동시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 즉 연출자의 존재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자꾸만 궁금증이 생긴다. 저 사람은 과연 객관적이고 공정할까. 촬영도 촬영이지만 정작 이 영화가 탁월해 보이는 건 이 궁금증을 활용하는 방식이자 태도이다. 이미 30년도 더 지난 ‘피의 일요일’ 사건에 대해 역사적 평가와 재해석이 수도 없이 나왔을 것이 분명하다. 영화는 그런 걸 의식하지 않는다.(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욕심이 적다고도 할 수 있다. 북아일랜드 사태를 잘 아는 이들의 기대엔 못 미칠지도 모른다.) 북아일랜드 사태의 전사를 지문으로라도 미리 들려줄 수 있을 텐데, 아무런 사전 설명없이 시위를 강행한다는 시민단체쪽 기자회견과 봉쇄하겠다는 군부의 기자회면 장면을 교대로 보여주며 시작한다. 이어 유혈사태를 피하려는 시민단체와 군·경찰 내부 온건파의 모습과 사위현장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의 과격한 발언을 중계하는 영화의 태도는, 총격이 어떻게 시작됐고 그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를 규명하는 것으로 자기 소임은 끝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태도는 총격이 시작된 뒤에도 그대로 흘러가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총격 시작과 함께 확연히 달라진다. 냉정히 찍었는데 눈물이 솟는다 무차별적으로 총에 맞고 쓰러져가는 시위대원들을 보다보면 최초 총격의 이유와 정당성 여부를 떠나 사태가 이렇게 되도록 방치한 영국군 지도부의 태도가 어디에 기인하는지를 따져묻고 싶어진다. 그건 미필적 고의를 넘어서는, 고의에 가까운 살인이자 학살이다. 사태의 본질은 문제가 터진 뒤에 더 선명해지기 마련이다. 영국 대법원은 총을 쏜 공수부대원들에게 면죄부를 줬고, 상황을 지휘한 군 간부들에게 여왕은 훈장을 줬다. 뒷 마무리가 이렇게 됐음을 지문으로 보여주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미시적으로 시작한 영화는 관객 스스로 자기 궁금증에 답하도록 한다. 그러면서 북아일랜드 사태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한다. 사태의 전개과정을 보면서 관객 스스로 유추해낸 그 그림은 설득력이 클 수밖에 없다. 영화는 시종 냉정한데 관객은 분노가 일고, 정의감이 솟고, 눈물이 솟으려 한다. 2002년 베를린영화제 대상을 받았다. 18일 개봉. 임범 기자 isman@hani.co.kr, 사진 백두대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