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병원에서 자기네는 입원실이 없으니 어느 병원을 추천해주면서
신경외과 전문병원이라며 그쪽으로 옮기길 권유했다.
그 병원이 집에서 왕복 4시간이 걸리는 거리라 가까운 곳으로 찾았
지만, 주위엔 신경외과 전문병원이 없어 할 수 없이 그 곳으로 아버
지를 옮겼다.
저녁 7시가 넘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병원차 안에서 아버지는 눈
을 껌뻑거리며 엄마 손만 잡고 계셨고 엄마는 눈가에 계속 이슬이
맺혀 아버지 얼굴만 쳐다보고 계셨다.
8시가 넘어 병원에 도착해서 응급실에 들어갔는데, 간호사가 보
호자들은 나가 있으라고 했다. 응급실 문턱에서 기웃거리며 아버지
상태를 보고 있으려는데, 3월 말이라 아직 차가운 밤공기였는데도
환자복을 입히고 담요 한장 덮어주지도 않았다.
담요를 덮으러 잠시 들어간 엄마에게 아직 들어오지 말라는 말을 해
서 추울까봐 그런다고 하니, 간호사는 무덤덤하게 담요를 덮어드리
며 알아서 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삐죽이 나온 아버지의 한 쪽
발을 보니 얼마나 신경이 쓰이던지...
거의 한 시간을 응급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중환자실로 옮겼는데
중환자실로 향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소변호스를 달고 발이 시려워
도 시렵다고 말도 못하고,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계속
잠만 자는 가여운 늙은 노인네였다.
다음 날, 시어머니께 애들을 또 부탁드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중환
자실 앞에는 각자 사연 많은 사람들이 면회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
다. 면회시간이 식사시간이었는데 아버지는 잠이 계속 오던지 졸면
서 앉아 계셨다. 아버지는 계속 아무것도 안 드리다가 면회시간에
첫 식사를 드리는 거라는데, 허연 죽과 동치미 뿐이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 3일째부터 밥이 나왔지만, 아버지의 증세는 점
점 나빠졌다. 졸면서 앉아 드시던 아버지가 이제는 잠에 취해서
계속 깨우며 식사를 도와야했다. 아마도 두 명의 간호사들이 많은
환자들을 챙기지 못해서 식사를 다 드시게 한 적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아버지 옆에서만 있을 여건도 간병인을 둘 형편도 안됐다.
잠을 깨우며 식사를 돕다보니 나 혼자만 면회시간을 초과해, 양치를
못해드리고 나온 나는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지고 가슴이 답답해 절
로 한숨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