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주택가에 우뚝서 있는 이 웅장한 건축물은, AC 밀란의 홈구장 산시로, 또는 주세페 메이자 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유서깊은 구장이다. 직접 보기 전에는, 이 건물이 가지고 있는 힘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가 알기론, 이태리는 북부와 남부의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한다. 사람들 성격이나, 경제 방식 모두. 내가 비록 이태리 남부의 구장(로마등)에 가본건 아니지만, 왜 밀라노의 사람들이 산시로를 "자신들의 긍지" 또는 축구의 메카로 인정하는지, 낮임에도 불구하고, 난 충분히 느낄수 있었다.
너무나 조용한 낮의 산시로는 나에게 약간의 실망감을 안겨주었는데, 웅장함을 뽐내는 건물과는 달리, 판을 치고 있는 암표상들은 나의 환대를 받기는 어려웠다. 암표상들을 뒤로한채, 산시로를 감상해 보니, 최신식으로 지었다던 세련된 현대풍의 상암구장을 머리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었을 만큼, 이 건물은 하나의 거대한 성을 보는듯 했고, 날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오래된 역사와 비례하여, 곳곳마다 이 구장의 기능이 엿보였는데, 연고지의 개념과, 팬들의 갈등이 그리? 심하지 않은 한국과는 달리, 매 경기가 전쟁에 가까운 세리에A의 환경때문일까? 원정 서포터들이 들어가는 자리는 완벽하게 격리되어 있었는데, 전날 저녁 야유를 받던 아약스 서포터들 생각이 드니, 절로 웃음이 났다.
저녁이 되자, 산시로는 천천히 사람들의 숨소리로 매워져 갔다. 사실 밀라노의 교통편은 조금 불편했는데, 편하다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지하철역에서 산시로까지의 거리는 도보로 30분. 여행의 피로로 지쳐있다면 택시도 권하고 싶다. 역에서 나오면, 낮에는 공허하던 모든 공간이 축구로 인하여 채워져 있다. 이탈리아 특유의 샌드위치를 파는 자동차 노점부터. 눈앞에 손을 꼭 잡고 가는 소녀와 그녀의 아버지까지. 월드컵때만, 집에 있는 붉은 티셔츠 주섬주섬 입고 광화문으로 향하는 FC한국 서포터들과는 달리, 이들에게 축구란 말 그대로 만인의 스포츠라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경기장에 들어갈때, 낮에 내 목을 뜨겁게 했던 햇빛대신, 경기장 위에 설치된 라이트에서 은은하게 뿜어내리는 약광은 티비에서 보던것 과는 달리, 그라운드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였다. 2층으로 올라가기전, 계단 옆으로 틈틈히 보이던 나와 같은 각도에 늬워져 있는 경기장 잔디는, 실로 아름다운 광경이였다. 이제 곧 있으면, 저 곳에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선수들이 한바탕 전투를 치룬다고 생각하니, 어렸을때 마라도나를 직접 봤었을때의 떨림이 다시금 느껴졌다.
경기 내용을 말하기 전에, 사실 무척 피곤한 상태여서, 경기 내용이 잘 생각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곳에 있던 유명 현역 선수들(카카, 호나우딩요, 쉐브첸코)보다, 축구계의 살아있는 레전드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더 뜻깊게 느껴졌다. 내가 말로만 듣던, 밀란 골든 제네레이션 삼인방(반바스텐, 굴리트, 라이카르트), 그라운드의 지배자 보반, 아프리카의 흑표범 조지웨아등 그들이 한 자리에 모여 경기를 한다는 사실에 밀란팬들은 벌써 많이 들뜬 모습이였고, 나도 그 속에 동화되어, 머나먼 이국땅에서 건너온 낯선 동양인이 아닌, 같은 밀란팬으로서 경기를 즐길수 있었다.
이 경기는 알베르티니 라는 밀란 선수의 은퇴 기념 경기 였는데, 그가 말년에 잠시 임대로 갔었던, 바르셀로나 측이 흔쾌히 응함에 따라, 이벤트 경기가 개최된 것이다. 전반에는 알베르티니를 축으로 밀란의 레전드가 한팀을 이뤘고, 후반에는 역시 알베르티니를 중심으로 현역 밀란 선수들이 함께 호흡을 맞췄다. 그는 멋진 프리킥 골을 성공 시켰으며, 밀란에 관련된 많은 선수들이 있었지만, 그날의 주인공 답게 가장 많은 갈채를 받았다. 제대로된 은퇴경기도 못 해본 성남의 신태용 선수가 사묻 생각이나, 팬들이 경기가 끝난후에도 모두 남아 알베르티니에게 작별을 고하는 모습은, 한국 축구팬으로서도 많이 부러운 장면이였다.
비록 저녁 늦게 끝나, 어둠이 깊게 깔린 한적한 주택가를 걷다보니. 치안이 한편으로는 걱정 되기도 했지만, 내 뒤에 보이는 산시로 구장과 내 주위에서 같이 걷는 밀란팬들의 크고 작은 목소리가, 날 안심 시켜주었다. 산시로에서의 하루는, 나한테는 값진 추억이요, 내가 가지고 있던 꿈을 충족 시켜준 최고의 하루였다. 아마 몇년간, 아니 오랫동안, 내가 산시로 구장에서 보았던 축구, 그 이상의 모든것들이 내 기억속에 무척이나 맴돌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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