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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친구들과 함께 본 2002 월드컵 이야기

류지선 |2006.05.30 21:05
조회 86 |추천 0
2002년 여름의 모든 것은 바로 전 해의 아주 작은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12월 초, 여느 때처럼 다같이 모여서 저녁식사를 하는데 줄리안이 말하는 것이었다.

“오늘 아침에 월드컵 추첨, 봤어?  나도 못 봤지만, 나중에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한국하고 미국이 같은 조이더라.”



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 중에서는, 독일인인 줄리안만 제외하면 두 명이 한국인, 한 명이 미국인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에게는 굉장히 직접적인 뉴스라고 할 수 있었다.

“야, 그래?  그러면 그 게임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에서 하겠네?  여름방학이기도 하고, 이왕이면 내년 여름 휴가는 한국에서 보낼까?”

라고 말하면서 로린은 나를 쳐다보았고, 그런 갑작스러운 제안에 나는 서정이에게로 로린의 시선을 패스했다.



그 다음에는 일이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우리는 당장 머리를 맞대고 반 년 후의 휴가 계획을 이야기했고, 컴퓨터로 비행기표를 예약하기 위해 멀리 있는 스테파니에게까지 전화를 했다.  



“자아, 우리 다섯 명에게 모두 좋은 날짜를 최대한으로 뽑아 보면, 6월 8일부터 6월 23일까지의 두 주일 동안이야.  이 정도라면 중요한 게임들을 웬만큼은 다 보고 올 수 있지 않겠어?”

서정이가 큰 종이에 씌어진 모두의 스케줄에 빨간색으로 네모를 치면서 말했다.  일단은 줄리안이 여름에 2주일밖에 휴가를 낼 수가 없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서머스쿨 2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학교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준결승전 이후는 못 보게 되는 거네?”

이렇게 말했었던 사람이 줄리안이 아니었더라면, 다른 친구들이 [그 정도는 돌아와서 스페인어로(미국에서 축구를 보려면 히스패닉계 케이블 방송으로 봐야 한다) 보면 되쟎아!]라고 핀잔을 주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사실 줄리안을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물론 나도 포함해서), 자기 나라가 16강 정도를 성취해 주어도 대만족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월드컵 사상 첫 1승이라도 좋다는 생각은 한국인으로서 나 혼자만 하고 있었던 생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월드컵을 즈음하여, 우리나라의 인터넷에서는 [히딩크 감독이 1승이라도 거두면 상당히 칭찬받겠고, 16강에 오르면 히딩크 귀화설, 8강에 오르면 강제로 귀화, 4강이면 축구당이 생겨 그 당수가 되고, 만약 우승이라도 하면 히딩크의 제정 일치 사회가 된다]라는 우스갯소리도 나돌았으니, [16강도 감지덕지]라는 것이 사실 모든 국민들의 생각이었으리라.

(참조: http://bbs.freechal.com/ComService/Activity/BBS/CsBBSContent.asp?GrpId=2406686&ObjSeq=1&PageNo=1&DocId=2387741

정확한 소스를 몰라서 이렇게만 인용합니다.  저자분께서는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너희들, 그렇게 미리 단정짓지 마!  게임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도대체 어떤 팀이 결승까지 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야.  실제로 미국같은 경우는, 비록 옛날이지만 준결승까지 갔었던 적도 있어.  그리고 너희들도 물론 알겠지만, 북한이 처녀 출전으로 8강까지 갔었던 적도 있쟎아?”

“미국이 준결승까지?  그게 대체 언제야?”

줄리안의 [데이터스러운] 데이터 제시에, 로린이 눈을 반짝이면서 물었다.  

“1930년, 우루과이 대회.”



이 대답은 차라리 안 듣느니만 못했다.  대답하는 줄리안은 진지했지만, 우리는 어이없음에 그만 배를 잡고 웃고 말았다.

“그래, 모든 것이 경제 공황의 탓이야.  경제 공황이 없었더라면 그 실력을 계속 키워서, 미국에서도 축구가 야구만큼 인기가 많았을지도 몰라.”



“우리, 경기장 표도 미리 사 둘까?  

나의 농담에도 아랑곳없이, 줄리안은 여전히 진지 모드였다.  그 제안에 대해서는 모두가 난색을 표명했다.

“글쎄?  네 말대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확실히 사 둘 수 있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조별 경기 티켓들인데, 축구는 그냥 TV로 봐도 좋지 않아?  그리고 조별 리그는 한국과 일본 전역에서 동시에 하기 때문에, 거기까지 가서 보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란 말야.”

이것은 [가서 보는 스포츠]에 대해 별 열정이 없는 나의 말이었고, 서정이는 우리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언급을 했다.

“비행기 예약까지 하고 여비를 장만하는 것만으로도 학생으로서는 상당히 무리한 거야.”



어쨌든, 모든 계획과 예약은 순조롭게 잘 이루어졌다.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는 것이, 우리가 한참 한국행을 분주하게 계획하고 있었던 그 때에는 우리들 중 아무도, 당장 그 달에 있을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한 상태도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르고, 다사다난했던 1학년 봄 학기를 보내면서, 우리는 한동안 그 때의 계획을 까맣게 잊고 살고 있었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학기가 드디어 끝나고 월드컵의 개막일이 다가오자, 그 때서야 우리들이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책상 서랍 속에 넣어 놓고 있다는 것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반 년 전에 한국으로 가겠다고 생각한 거, 참 잘 한 결정인 것 같아.”

미국에서 사는 사람으로서는, 경기를 보기 위해 철야 아니면 꼭두새벽에 일어나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 우리는 입을 모아서 우리들의 선견지명을 자화자찬했다.  

실제로 5월 31일의 개막식과 개막전 경기를 보기 위해서, 고향으로 돌아온 스테파니까지 우리 다섯 명은 줄리안의 집에서 완전 철야를 해야 했었다.  



“왜 우리가 월드컵을 보기 위해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는지 알아?  미국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서 월드컵에 가장 관심이 없는 국민들이기 때문이야.  전세계인들을 최대한으로 만족시킬 스케줄을 잡다 보니, 이렇게 현지의 밤 시간으로 게임이 집중된 거라구.”

서정이가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생각해 보니 그거 일리있네!  그렇게 따진다면 멕시코 국민들이 가장 피해를 많이 보겠다.  경기를 보기에는 가장 애매한 시간이 바로 거기야.  Central time(미국 중부 시간)을 같이 쓰니까.”

줄리안까지 그렇게 말하니, 스테파니가 웃으면서

“정말 남아메리카 사람들에게 미국이 사과해야 하겠네.  하지만, 우리가 이제 며칠만 지나면 현지에서 편안하게 경기를 볼 수 있다는 게 참 좋지 않아?”

라고 했다.



어쨌든, 그렇게 기다려서 개막식을 보게 되니 정말 보람이 있었다.  친구들 모두가 멋진 개막식을 칭찬했다.  그 개막식을 보니 더욱 더 빨리 우리나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바로 이어진 세네갈과 프랑스의 경기는 그야말로 입을 딱 벌릴 정도의 이변이었다.  전 회의 우승팀이 개막식에 진다는 징크스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 있어도, [세계최강]이라는 찬사를 듣는 프랑스가 골대만 여러 번 맞추고 정말로 골을 한 골도 못 넣으리라는 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결국 프랑스가 세네갈에게 1:0으로 졌다.  이 정도로 센세이셔널한 월드컵 개막전은 몇 십 년에 처음인 것 같았다.

다음 날의 인터넷에서는, 프랑스의 골 운이 그렇게도 없었던 이유는 세네갈의 주술사가 경기 전, 프랑스의 골포스트에 바른 약 때문이라는 루머까지 번졌다.  아마 전날의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그 말을 그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었을 것이었다.  더우기 그 특이한 세네갈의 골 세러모니를 기억한다면.





우리들이 관심을 두고 있던 3개국 중, 조별 리그전을 가장 먼저 가진 나라는 독일이었다.  각자의 조국이 하는 게임은 각자가 알아서 챙겨 보도록 방침을 정해 놓았기 때문에, 이 게임을 본 사람은 우리들 중 줄리안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월드컵 사상 가장 약체라는 평을 듣고 있었던 독일이었지만, 무려 8:0이라는 큰 스코어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이기면서 미로슬라프 클로제라는 스타도 아울러 탄생시켰다.  골을 넣을 때에 공중제비로 골 세레모니를 펼치는, 매우 재미있는 선수였다.



6월 4일.  너무도 역사적인 날.  이 날 드디어 우리나라와 폴란드간의 조별리그전이 있었다.  1승에 목말라하던 우리나라가, 유럽에서 적어도 중위권에는 속하는 폴란드를 2:0으로 때려눕히면서 사상 첫 월드컵 1승을 챙기던 날이었다.  

너무 마음이 조마조마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경기를 볼 수는 없었지만, 기숙사 로비에서 함께 경기를 보던 서정이가 [골~]이라고 외칠 때마다 나는 TV 앞으로 달려갔다.  유상철 선수의 골도 좋았지만, 황선홍 선수의 첫 골에는 그만 눈물이 글썽해질 정도였다.



다음 날 만난 친구들도, 한국이 이겨서 얼마나 좋으냐면서 모두 한 마디씩을 했다.  알고 보니, 줄리안은 물리학동에서 여러 학생들과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경기를 보고 있었고, 그 멋진 경기에 너무 감동했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아.”

라고 하면서, 줄리안은 6월 4일 아침에 물리학동의 로비에서 벌어졌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 과에는 한국 학생들도 많지만, 폴란드 출신 박사과정이 세 명 있거든.  게임 있기 며칠 전부터, 한국 학생들한테 [3일 전이네?] [바로 내일이네?] 하면서, 뭐랄까, 완전히 자기네가 이길 거라는 자신감을 내비추었고, 그 날 아침에도 하얀색하고 빨간색으로 완전 무장을 하고 TV앞에 모여들었었어.  그런데 말야, 자기들도 뭔가 안 좋은 느낌을 처음부터 느끼기 시작했었던 것 같아.”

“아니, 왜?”

“그게, 일단은 경기장 관중석에 온통 빨간색밖에 보이지를 않았던 거야.  상대 국가로서 그게 얼마나 위압적인데!  네덜란드 경기 때의 오렌지색 투성이하고 좀 비슷하지.  그런데 무엇보다도, 폴란드 국가를 부른 가수가 문제였어.  나도 폴란드 국가를 들어 본 적이 있지만, 저게 팝송인지 폴란드 국가인지가 구분이 안 될 정도였으니 말야.  도대체 그 가수를 어디에서 섭외했는지는 몰라도, 폴란드인들로서는 정말 김이 새도록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이더라.”



줄리안은 조금 웃더니, 이어서 말했다.

“그러고 났는데, 한국 국가가 나오니까 갑자기 관중석에서 거대한 한국 국기가 펼쳐지기 시작하는 것이었어.  그걸 보고 누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있겠어.  정말 상대 국가로서는 기가 죽는 장면이었지.”

하긴, 전날 그 장면을 보았을 때에, 나 자신도 그 거대한 태극기를 보고 눈물이 날 뻔했었다.  전날을 잠시 회상하면서 다시 한 번 감상에 젖고 있는데, 줄리안이 무척 황당한 질문을 했다.

“그런데 칼린, 그 이벤트는 나라에서 기획한 거니, 아니면 응원단이 자기들끼리 계획을 짜서 하는 거니?”

“나라에서 기획하다니!  그런 걸 나라에서 시킬 수도 있니?  응원단이 자발적으로 하는 거야.”

줄리안이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이 좀 어이가 없었지만, 이런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혹시 같은 민족인 북한이 매스게임으로 이름을 떨치는 나라라서 그런가 싶었다.  줄리안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이었다.



“역시 그렇지?  그 발상과 노력이 정말 대단하더라.  일단, 그렇게 폴란드 학생들이 여러가지로 기가 죽고 있었는데, 게임을 시작해 보니 한국 팀이 처음부터 별로 밀리는 일 없이 너무 게임을 잘 하는 거야.  드디어 1:0이 되었을 때에는, 폴란드 학생들이 더 이상 응원하기를 그만두더라고.  2:0이 되고 나니, 그 때부터는 아예 체념을 했는지 한국 선수들이나 응원단의 분위기를 칭찬하기 시작하더라.”

“정말?  칭찬을 했다고?  폴란드 사람들 정말 착하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놀랐다.  아무리 실력에 압도당했다고 해도, 당연히 이기리라고 생각했던 상대 팀을 칭찬하기는 어려운 일이었을 터인데, 그렇게 선뜻 칭찬을 할 수 있는 폴란드 사람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될 정도였다.  줄리안도 동의했다.

“응, 내가 생각해도, 대체적으로 폴란드인들이 선량한 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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