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민 선생 국어교실 홈페이지(http://cafe.daum.net/chulmin016)에 있는 오창훈 선생님의 수필입니다.
저 또한 을지로입구역과 종각역을 종종 이용하면서 목격하는 광경인데 볼때마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밤 11시 을지로 지하도에서는
-노숙자를 위한 변명 -
꽁초를 주우며 주변을 일일이 청소하고
어디선가 가져 온 박스를 나눠서 집을 짓는다.
포장용 끈으로 출입문을 만들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사인펜으로 창문을 그리도 하였다.
내일 아침이면 없어질 하루만의 공간이지만
얼마나 정성을 들였을까?
곳곳에 가지런히 지어진 상자 집이
문득 통나무로 만들어진 팬션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낮에는 용산역에서, 저녁에는 청량리 밥퍼에서
3시간의 기다림 끝에 무료 급식을 챙겨 먹고
문래동에 있는 ‘자유의 집’ 대신
더 자유로운 여기를 택했단다.
오늘따라 유난히 안 팔려 귀가 시간이 늦어진
호떡, 도너츠 아저씨의 근심을 덜어주고자
떨이 물건을 일일이 제 값 주고 사 가지고는
노숙자들에게 전하는 청년도 있었고,
또 노숙자가 잠들기를 기다려서
스티로폼 밑바닥에 슬쩍 천 원 지폐 몇 장을
몇 날인가 반복하여 넣어주는 중년도 있었다.
아마도 뜨끈한 국물로 아침 요기하라는 배려이겠지.
호떡과 도너츠를 안주 삼아
둘러 앉아 소주 잔을 기울이는 노숙자들을 향해
지나가는 행인들은 냄새 난다고 얼굴 찡그리고
보태 주는 것도 없으면서 손가락질을 해댔다.
오직 못 나면 저렇게 살까. 게을러서 그렇지,
나 같으면 하다 못해 식당에서 일이라도 하겠다 라지만
이미 신용 불랑자가 된 이들을 누가 믿을까
신원 보장이 안 되는 이들에게 당신이라면 일을 맡길건가
그들 중에는 열심히 일을 했는데
2년 치 일당을 못 받은 건설 노무자도 있고
밀린 부하 직원 임금을 주려고 사채를 썼던
영세 업체 사장도 있었다.
몰라서 그렇지 우리 친구들이나 친척이 일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내일의 우리 모습일수도 있겠지.
능력이라면 사기라도 치지를 못했다는 것이고
잘난 부모, 가족의 도움도 못 받았다는 것이겠지.
소득에 비해 비싼 옷과 액세서리로 치장한 너희는
외제 승용차를 굴리며 허세 부리는 너희 아빠는
놀면 놀았지 구질구질하게는 안 산다고 해서
럭셔리(Luxury)해질 수 있는 것일까?
우리 집 아파트 값이 오른다고만 좋아할 것인가
어제 판 주식이 떨어졌다고 쾌재만 부를 것인가
그렇다고 발생하지도 않은 이윤을 계산하여
현찰로 내놓으라는 정부의 정책은 옳은 것이기만 할까
도시 빈민 문제는 개인의 문제만이 아닐진대
급변하는 사회에서 파생된 구조적인 모순이겠지.
사회에서 소외된 세력이 불특정한 다수를 향해
벌이는 양상이 나타나는 걸 우리는 우려해야 하지 않겠나.
이웃 집 어린이를 아파트 난간에서 밀어 떨어뜨리고
불쑥 흉기를 들이대는 일들이 더욱 많아지겠지.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하고 교실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밤거리를 나서지 못한다는 게 남의 나라 애기가 아니겠지.
나만 잘 먹고 잘 쓰면 되는 건가
재산을 왕창 물려준다고 내 자식만 호강할 수 있을까
진정으로 잘 산다는 게 무엇인가
같이 잘 사는 게 진정 잘 사는 길 일진데
문득 우려하는 일이란 게
한낱 부질없는 일이었으면 좋겠는데 하면서
늘상 다니는 전철역 부근의 정경을 보며 느낀
이런 저런 생각들을 정리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