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은 이 준범이 지었음을 밝힙니다.
한국 만화는 참으로 암울한 과거를 밟아왔다.
한국 만화의 미래 또한 그다지 밝지 않다.
오프라인 만화의 시대, 소위 '만화책'의 시대에도
한국의 작가들은 밥 벌어 먹고 살기가 쉽지 않았다.
만화가라는 직업을 '환쟁이'라고 보는 사회의 시선,
만화라는 매체 자체를 아동용으로만 바라보는 일반적 인식 등은
만화가 잘 팔리지 않는 이유로 작용했다.
게다가 너무 뿌리깊게 박혀서 이제는 도저히 제거 불가능한
한국 특유의 '대여점' 문화는
만화 그리기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고 온라인 만화의 시대가 열렸지만
한국 만화의 사정은 그다지 나아진 것이 없다.
만화책 시대에 활동하던 한국 만화 작가들은
지금 대부분 종적을 감추었다.
그나마 유명세에 힘입어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 게임화시킨
작가들은 그나마 조금 나은 편이다.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주목받지 못한 대부분의 작가들,
그리고 간간히 그 명맥을 유지해오던
'만화 잡지'들도 서서히 그 명맥을 잇지 못하고 사라지기 시작했다.
('오후'는 수많은 호평에도 불구하고 왜 폐간되어야만 했는가?)
한국만화의 밝은 미래를 플래시 애니메이션이나
인터넷 웹툰에서 찾으려는 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관점도 너무 희망적이다.
'위대한 캣츠비'라는 만화를 인터넷에 연재하며
온라인 상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강도하 씨는,
자신이 온라인 인기 만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만화작가들이 오로지 디지털에 희망을 거는 것은
무모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터넷을 "스스로의 이야기를 열악한 시장 속에서 뚝심있게
고집할 수 있는 공력이 채 갖추어지지 않은 미성숙 작가들을
대거 생산해내는 공장"이라고 표현했다.
오프라인 만화 시대의 작가들이 가지고 있던 철학이나
스토리 텔링 능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작가 행세를 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일본 만화의 커다란 존재 또한
한국 만화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소 중 하나이다.
일본은 대대로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강국으로 군림해왔으며,
전 세계에 만화는 물론이고 그와 관련된
문화 콘텐츠 상품을 수출해 왔다.
우리나라도 일본과 비교적 가까운 지리적 위치 때문에
손쉽게 일본의 만화 상품을 접할 수 있었으며,
그 맛에 길들여진 만화 수용층은 아직 발전 단계에 있는
한국 만화에 일본 만화 이상의 수준을 요구하며
한국 만화를 '유치한 것' 쯤으로 치부해버렸다.
독자들이 자국의 만화에 큰 괌심을 가지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 만화계에 상업적인 투자가 이루어질 리 없었고,
이는 한국 만화의 발전 속도에
악영향을 미치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이하 SICAF)는
한국 만화의 이러한 고민을 함께 하고
한국 만화를 전 시계에 널리 알리며
세계의 다양한 만화 문화를 자국의 만화 독자들에게 소개하려는
취지로 개설된 국내 최대의 만화 관련 행사이다.
그러나 그 동안 이러한 애초의 목적과는
조금 다르게 운영되어 온 SICAF의 정체성에 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일본 만화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점,
지나치게 어린이 취향으로 진행, 홍보되는 점도
해마다 지적되어 온 문제점들이다.
그러나 SICAF가 가장 비난을 받았던 점은
바로 애니메이션으로의 지나친 집중이었다.
물론 현재 애니메이션이 '만화'라는 범주 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분야라는 점과
행사의 특성 상 보여지는 게 많은 애니메이션이
관람객들에게 흥미를 유발한다는 점 때문에
SICAF가 애니메이션 전시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십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쯤 되면
「Seoul International Catoon&Animation Festival」에서
'Catoon'은 빼야 하지 않느냐는 비아냥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물론 올해도 이와 같은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화-열린공감'이라는 기치 아래
코믹스와 다양한 문화 콘텐츠 간의 결합 사례를 보여준 것,
그리고 '고인돌'과 SBS 메인 캐릭터 '고미'로 유명하신
박수동 화백의 특별전 등을 통해
한국 만화가 아직 '죽지 않았다'라는 점을 보여주려 애쓴
주최측의 노력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 뿐이었다'.
서울무역전시장에서 열린 전시 일정의 경우,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부각되어야 할 행사들이
공간적 제약과 관람객들의 관심 부재로 인해
상당히 초라한 규모로 이루어졌다.
또한 단순히 만화책 몇 권만 가져다 놓고
행사장을 찾는 수많은 관람객들에게
특정 작가의 매력 등을 설명하려는 행사 운영 방식은
차라리 욕심에 가까웠다.
또한, '유비쿼터스 만화세상'이라는 전시 부스는
그야말로 생색내기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
꺼림칙하기까지 했다.
유비쿼터스와 마화의 결합이라는 테마로 열린 이 전시는,
개인적으로 오히려 유비쿼터스 기술을 이용해 만화를 보는 데
지장이 많다는 점을 인식시켜 준 자리였다.
조그마한 화면에 어지럽게 가득 놓여있는 펜선과 네모칸,
그리고 활자들.
뚜렷한 윤곽 처리도 없이 무작위로 스캔한 화면을
단순히 PMP, 핸드폰 등에 옮겨 놓으니
만화에 집중은 안되고 눈만 아플 뿐이었다.
행사 운영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다.
수백만원대의 체험 기기들은 무지막지한 어린이 관람객들에 의해
망가져 있거나 못 쓰게 된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어린이 관객을 지나칠 정도로 배려한 전시 구성,
과도한 상업화 등은
SICAF의 전시 일정을 실망스럽게 한 또 하나의 원인이었다.
테마 전시와 동등하게 구성된 체험 활동 부스와 기업 전시관은
각각 성인 관람객의 흥미를 떨어뜨리고
행사 자체를 만화 관련 상품의 마켓 정도로 전락시켰다.
(그나마 상품이라고 나온 것이 모두 일본 만화 관련 상품이었다!)
긍정적인 면도 분명 존재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실망적인 전시 일정이었다.
물론 너무 비관적인 시선으로 행사를 평가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많은 성인 관객들이 이번 전시 행사를 보고
나와 비슷한 생각들을 했을 것이다.
'이건 아이들과 오타쿠들만의 잔치인 것인가' 하고 말이다.
한국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부흥시키려는 의도로 계획된 행사 스스로가
'한국만화보다 반응 좋은 일본만화',
'만화는 아이들 용'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혐의가
여기저기서 짙게, 너무나 짙게 드러났다.
그래서 안타까웠다.
그나마 이번 SICAF에 대한 나의 안타까움을 풀어준 것은
CGV 용산에서 열린 상영회 일정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참석했던 상영회는 경쟁작 중에서 본상을 수상한
7편 가량의 애니메이션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수상작 상영회'였다.
이해 안 가는 작품도 있었지만,,,
그래도 건져 가는 게 있었다.
'아, 유럽권 애니메이션은 이런 분위기이구나.'
'이런 식의 표현을 하는 애니메이션도 있구나.'
애니메이션의 다양한 면모를 찾아볼 수 있어 좋았다.
애니메이션은 무조건 지브리이거나 디즈니이거나
둘중에 하나만을 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에,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애니메이션이 있다는 것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이렇게 SICAF라는 행사를 통해서 생길 수 있다는 게 기뻤다.
그러나.
SICAF가 새롭게 페스티벌 기간 동안
애니메이션 작품을 상영하고, 그에 따라 시상을 하는,
말하자면 '상영회 일정'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것이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SICAF의 포커스가 애니메이션으로 너무 편중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알리고,
상영회를 따로 분리해서 사람들에게 그것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여기까진 좋다.
그럼 소외되는 코믹스, 카툰은 어떻게 부각시킬건가?
정말로 이제는 SICAF에서 'C'는 빼야하는 것일까?
이제 SICAF도 10년차를 넘어서려는
중요한 시점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문제 의식들을 충분히 새겨두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펴지 않는다면
SICAF는 언제까지고 그들만의 잔치에 머무르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