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의 개량
“씨암퇘지는 소시지 기계처럼 돼지 새끼를 줄줄이 뽑아낼 수 있는, 귀한 기계장치쯤으로 생각하고, 또 그렇게 다루어야만 한다.”
, 1978년 3월21
헛간식 우리에서 씨암퇘지 한 마리가 낳는 새끼는 1년에 6마리 정도다. 그러나 현대식 양돈업은 이제 그것을 1년에 20마리 이상으로 끌어올렸고, 연구자들은 앞으로 얼마 안 가서 그 수가 45마리에 이를 거라고 예고한다. 말하자면 업자들은 암퇘지더러 자연이 본디 설계해 준 것보다 7배가 넘는 새끼를 낳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자연의 그 생명창조 과정을 일종의 과학으로 대신해왔다. 우선, 그들은 새끼들을 자연상태에서보다 훨씬 일찌감치 어미에게서 떼어놓는다.
가슴에서 젖을 빨아대는 새끼들을 잃은 암퇘지는 금세 젖의 분비를 멈추고, 이어서 호르몬 주사의 도움을 받아 훨씬 빨리 새끼를 밸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다시 말해 한 해에 더 많은 수의 새끼를 뽑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불행히도, 암퇘지는 새끼 한 배를 낳자마자 눈 깜짝할 새 그 새끼들을 떼이고, 다시 한 배 한 배 새끼들을 연거푸 낳으며 전생애를 보낼 수 있는 이 경이로운 시스템을 이해할 만큼 신식으로 계몽되지 않았다.
현대식 공장생활의 요령을 터득하지 못한 채, 오직 잃어버린 새끼들을 찾아 돌보고자 하는 한 맺힌 본능으로만 가득 찬 암퇘지들은, 새끼들을 찾아 침통한 울부짖음을 토해낸다. 물론 그래봤자 아무 주의도 끌지 못한 채 허공만을 맴돌다가 끝나긴 하지만 말이다.
대다수 양돈업자들은 새끼들을 어미한테서 떼어놓기 전에 최소한 2주 동안은 어미젖을 빨려야지, 그러지 않으면 새끼들이 모두 죽어버려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나 어느 한 대형 양돈장비 제조사는 이 과정에 낭비 요소가 있다고 보고, 현재 자신들이 “피그 마마”라고 이름 붙인 장비를 맹렬하게 선전하고 있다.
이것은 어미돼지의 젖꼭지를 완전히 대신하는 기계 젖꼭지로, 새끼들을 어미로부터 곧장 떼어놓음으로써, 어미돼지를 출산 후 단 2시간만에 다시 새끼 배는 일로 되돌아갈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이 기구의 개발에 주목한 지는 이 기구의 발명이 “양돈 과정에서 젖을 먹이는 단계의 종말”을 예고한다고 평가했다. 그들은 기쁨에 겨워 그 결과를 이렇게 예측했다.
“…… 암퇘지 한 마리가 한 해에 낳을 수 있는 새끼 수에 굉장한 비약이 일어날 것이다.”
또 당연한 일이지만 돼지 육종가들은 오랫동안 좀더 살찐 돼지를 만들어내는 일에 힘썼는데, 그 성과는 만족스럽다 못해 지나칠 지경이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식용 돼지들은 지나치게 많이 나가는 몸무게로 뼈와 관절이 살 속에서 그야말로 바스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공장 전문가들에게는 무게가 더 늘어나 가외의 이윤이 생겼다는 사실 말고는 이것이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유전공학자들은 돼지를 “개량”하여 이 착하고 늠름한 동물을 좀더 공장 설비에 효율적인 부속물로 변환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육종 전문가들은 엉덩이가 평평하고 등은 수평이며 발굽이 판판하고, 그 밖의 특징들도 공장 상태에 더 잘 들어맞는 돼지들을 만들어내고자 애쓰고 있다.”
호르몬 왕국
오늘날의 양돈업자들은 유전적으로 달성할 수 없는 것들은 호르몬을 투여하여 해결한다. 여러분도 알겠지만, 호르몬은 돼지와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동물의 생체샘에서 자연스럽게 분비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효능 좋은 물질이다. 호르몬은 아주 작은 양만으로 우리 몸의 모든 내분비계와 생식계를 조절할 수 있다.
만일 우리의 표적 세포가 호르몬에 민감한 만큼 우리의 미뢰가 맛에 민감하다면, 우리는 수영장 물에다 설탕 가루 한 알을 풀어놓은 것까지도 탐지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호르몬은 매우 정교한 기술로나 겨우 잴 수 있는 극미량을 가지고서도 동물들의 생식계에 엄청나게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 우리의 과학수준이 이 물질이 가진 여러 가지 잠재적 위험을 완전히 파악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가축 사육에 호르몬을 사용하는 데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공장 전문가들이 상황을 보는 눈은 전혀 다르다.
이 새로운 약품이 그들에게 암퇘지의 발정기를 조절하고, 그럼으로써 수태를 촉진, 또는 지연시킬 수 있는 능력을 준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그들은 너무나 기뻤다.
업계를 흥분시킨 또 하나의 새로운 혁신은 배아 이식술이라 불리는 것이다. 이것은 우선 특별히 고른 암퇘지에다 호르몬을 투여하여, 보통 하나나 둘로 배란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난자를 만들게 한다.
그리고는 이 난자들을 인공으로 수정시킨 다음, 다시 이 수정란을 그 암퇘지에게 외과술로 떼어내 다른 암퇘지들에게 이식한다.
오늘날의 돼지 공장에서 씨암퇘지가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죽고 말 때까지, 이 암퇘지에게 이런 비자연적인 모독을 반복해서 가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또 미주리 대학에서는 특별히 고른 씨돼지들에서 추출해낸 정자와 난자를 시험관에서 결합시키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 수정된 난자들은 이후 보통 암퇘지들에게 외과적으로 이식된다.
고통 가득한 삶
우리가 오늘날의 돼지들이 겪는 고통의 깊이를 측정하기는 어렵다. 돼지들은 한평생 움직이기조차 힘든 철창 우리에 갇혀, 그들의 천성과는 완전히 어긋나는 상황, 자기네 배설물 한가운데 서서 지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들의 민감한 코는 몇천 마리나 되는 다른 돼지들의 배설물에서 나오는 악취에 쉴새없이 공격당한다.
또 사육 과정에서 비대해진 비자연적인 몸무게는 그들의 골격을 기형으로 만들고, 다리를 휘게 만들며, 게다가 콘크리트와 금속판으로 된 바닥에 서 있어야 하는 그들의 발은 온통 상처투성이다.
언젠가 그들의 눈을 들여다본 적이 있다. 그것은 소름이 쫙 끼칠 만큼 섬뜩한 느낌이었다. 예민한 감수성에다 고문까지 받은 이 동물들은 말 그대로 미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돼지 공장에서 가장 흔한 문제 중 하나가 업계에 “꼬리 물어뜯기”로 알려진 “악행”이다.
업계 전문지들에는 “꼬리 물어뜯기”와 그것의 대처방안에 관한 논의로 가득하다. “꼬리 물어뜯기”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순진하게도 그들이 자그맣고 둘둘 말린 분홍빛 꼬리를 장난스럽게 물어대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 뒤 나는 내 상상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꼬리 물어뜯기”는 자연스런 욕구를 철저히 억압당한 나머지 완전히 미쳐버린 짐승들의 절망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업계의 용어였던 것이다.
“격렬한 꼬리 물어뜯기는…… 자주 절름발이와 불구와 죽음을 불러온다…… 대부분 처음에는 꼬리만 물어뜯기지만, 나중에는 공격하는 돼지나 다른 돼지들의 물어뜯기가 계속되면서 등짝까지 파먹히고 만다.
그대로 둘 경우, 그 돼지는 결국 죽은 상태에서까지 계속 뜯어먹히게 된다.”
꼬리 물어뜯기가 돼지 공장주들을 심란케 할 주제인 건 당연하다. 다른 돼지에게 파먹힌 돼지를 팔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별 희한한 방법을 고안해 냈다. 업계에서 “꼬리 자르기”로 알려진 이 방안은 이제 미국 양돈업의 표준적인 처리 방법이 되었다.
그것이 돼지들에게 심한 고통을 주고 돼지들을 더욱더 미치게 만든다는 사실에는 아랑곳없이, 오늘날 이 방법은 거의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내가 돼지 기르는 한 농부에게 꼬리 자르기에 관해 묻자, 그는 화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돼지들은 그걸 싫어해요! 싫어할 밖에요! 그리고 내 생각엔 우리가 돼지들에게 좀더 넓은 공간만 제공해주면 ‘꼬리 자르기’는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겁니다.
공간이 널찍하면 돼지들이 미치지도, 천박해지지도 않거든요. 공간만 충분하면 돼지들은 사실 아주 멋진 동물입니다. 하지만 우린 그럴 여유가 없어요. 건물 유지비가 비싸거든요.”
구획식 건물과 자동화된 먹이 공급 장치에 막대한 돈을 투자한 오늘날의 양돈업자들은 책에 나오는 온갖 술수를 다 동원해서라도, 암퇘지 한 마리당 최대한 많은 수의 새끼를 얻고, 건물 안에다 될 수 있는 한 많은 돼지를 집어넣어야 한다고 느낀다.
업계 전문지 이 주차장식의 구획보다 한결 나은 아이디어를 낸 배경도 여기에 있다.
그 잡지는 돼지들을 철망 우리 속에 넣어 선적용 상자처럼 층층이 쌓아두는 건 어떤가 라는 제안을 했다. 과연 그런 식이라면 한 건물 안에 넣을 수 있는 돼지 수가 몇 배나 더 많아질 것이다.
잡지는 돼지들을 단지 벽에서 벽까지만 가득 채우는 게 아니라, 바닥에서 천장까지도 가득 채우는 방법을 현란하게 설명한다.
오늘날의 거대 돼지공장들 중 다수가 이 아이디어에 깊은 감명을 받아 지체 없이 이 방안을 채택했다.
어쩌면 이미 거의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빽빽이 철창 우리 속에 처넣어진 돼지에게, 같은 공간 안의 자기 머리 위에 다른 돼지들이 좀 있다 한들 무슨 큰 차이가 있겠느냐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 위층 돼지의 배설물이 아래층 돼지들 위로 쉼없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의문
오늘날에는 육식 문제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훨씬 더 긴급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오늘날의 짐승들이 식용으로 사육되는 방식에서는 끔찍하달 만큼 고통스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동물들이 잔인하게, 때로는 가학적으로 다루어져온 것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육 과정이 요즘만큼 아찔한 규모로 체계화된 적은 없었으며, 현대식 기술과 약리학의 차가운 전문지식이 이런 목적으로 사용된 적도 없었다.
동물들을 불필요하게 죽여서 그 고기를 먹는 건 우리 자신의 평화는 물론이고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존재한다.
나는 오늘날의 식육 산업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점점 더 그분들의 메시지가 지금 이 시기에 특히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자신이 곧 살해당한 짐승들의 살아 있는 무덤이거늘, 우리가 어찌 이 지구상에서 어떤 이상적인 상태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조지 버나드 쇼)
“야만족들이 문명화된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면서 서로를 잡아먹는 관습을 버렸듯이, 문명이 발달해갈수록 짐승들을 잡아먹지 않게 되는 것이 인류의 운명이란 걸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소로)
“내가 그랬듯이, 다른 사람들도 동물 살해를 지금의 살인과 똑같이 여길 날이 올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