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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들은 모두 FIFA 직원?

이종화 |2006.06.18 08:45
조회 133 |추천 1

이건 밝히고 시작하자.

난 월드컵 경기 시청.. 참 좋아한다.

 

그런데도.. 아무래도 안되겠다.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는데..

 

내가 2006년 월드컵을 보면서,

적어도 이런 생각을 가졌다는 흔적만은 남겨야 할 것 같았다.

 

솔직히, 실망스럽다.

 

축구선수들의 경기 내용이 아니라

축구 열병에 걸린 환자들처럼..

아니 몽유병 환자 내지는 유령처럼 방황하는

일부 한국민들이.. 그리고 그 분위기에 흔들리는 우리들이..

더 나아가 대세에 눌려.. '이건 아니다.'는 

바른 소리를 못하게 만드는 획일화된 사회 분위기가..

 

토고전이 승리로 끝난 날 저녁,

서울 각지에서는 젊은이들이 펼치는 광란의 밤이 이어졌다.

확인된 것이 서울 각지일 뿐, 전국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그건 모른다.

 

승리를 자축하는 과정에서

얼굴도 모르는 여성 한 명을 잡아 헹가레를 치며

하늘로 솟구친 여체가 내려올 때마다

몸을 더듬던 수많은 남성들의 손.

 

그 곁에서 울고 있던 몇 명의 놀란 여성들..

 

미친듯이 차 위로 올라가 바지를 내리고 드러누운 백인 남성과

그와 어우러져 다채로운 성행위 자세를 보여준 대담한 한국 여성.

(실제 성행위를 한 것은 아니었다는 후문이다.)

 

이긴 것이 왜 그리도 기쁜지

남의 차 위에 올라타서 흔들고 낙서하고 파손하고

술을 마시고 흥청망청 취한 붉은 옷의 한국인들, 아니 젊은이들.

 

이들이 찾은 것은 '놀이감'이었던 것 같다.

무료하기 짝이 없는 생활 속에서

오랜만에 '월드컵'이란 좋은 이벤트를 만난 것 같다.

게다가 4년 전에 한 번 해봤던 경험도 있고..

거리응원에 대한 각계의 지원이 이어지는 마당에서..

공식적으로 신나게 놀아보는 기회가 마련된 것에 불과하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런 광란의 밤이 오기 전에는

거리 응원을 위해 과다한 노출을 마다치 않는 여성들과

그것 때문에 육욕이 동한다는 남성들의 푸념이 맞섰다는 사실이다.

 

그런 남성들 중에는..

축구의 '축'자도 모르던 사람들이

갑자기 왜 그리 호들갑이냐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런 노출을 보면서 

어린 딸애가 배울까봐 두렵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축구를 모른다고 거리 응원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길거리 응원은 자율이고, 노출도 자율이다.

외국 여성들 아슬아슬한 옷.. 못 봤냐. 

오히려 그런 것으로 심지가 흔들리는

일부 남성들의 시각이 문제라는 사람들.

 

둘 다 문제가 있다.

 

우선, 축구의 '축'자를 모르면 거리 응원 나올 자격이 없나.

오히려 뭘 모르니까.. 평소에는 안보던 축구니까 더 신이 나서..

그렇게 요란하게 응원하는 것 아니겠나. 

 

그리고 그런 노출이 우려되는데,

어린 딸애를 왜 거리 응원에 끌고 나오나.

집에서 조용히 TV 시청하면 될 일이지. 만일 그게 자율이면,

상대의 노출도 자율성이 있는 것 맞다.

게다가 원래 스포츠 경기장이나 응원 장소는..

어린 자녀 교육장으론 별로 추천할만한 곳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노출은 자율이지만, 노출을 자신감, 솔직함, 열정, 당당함..

그 어떤 단어로 대변한다 해도.. 

노출은 노출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하는 문제는.. 

결코 노출한 사람의 몫이 아니다. 보는 이들의 몫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노출은 연출한 사람의 몫이지만, 그것이 꼭 

그 사람의 의도대로 받아들여진다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옷을 입으면..

본인은 자신감을 느낄지 몰라도..

보는 이들에게 부러움이나 감탄의 대상이 되면 다행이지만..

보통은 눈요깃감이 되기 쉽다.

 

그게 억울하다고? 비뚤어진 시각이라고?

내가 보기엔 그렇게 말하는 시각도 비뚤어진 것 같다.

 

이유는 자명하다.

정말 위에서 말했던 자신감 등등을 드러내고 싶다면

가장 효과적인 방식을 택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직 논란이 분분한 방식인 '노출'을 택하는 건..

별로 현명하지 못하다.

설마.. 보수적이면서 이중적인

한국 사회의 잣대를 모른다 말하진 않겠지.

(이중적 잣대란, 여성의 과다한 노출을 비판하면서도

그걸 은근히 즐기는 사람들이 많음을 뜻한다.)

 

내가 내 몸매에 별로 자신이 없어 그러는지는 몰라도

개인적으로 자신감, 솔직함, 열정, 당당함..을 표현하는데

그동안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으며..

다른 방식으로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오히려.. 난 벗으면.. 개그맨이 된다.

 

그렇게 말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냥 그 날 신나게 즐기고 싶은 거다.

잘 가꾼 몸매를 자랑하고 싶은 거다.

뭐 그렇게 이야기하면 될 걸 가지고..

고상한 단어 갖다 붙일 필요 없다.

 

암튼.. 토고전 승리의 밤을 자축하는 모습은

들떠서 주체하지 못하는 시민의식의 '수준'을 보여줬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외국인들이

왜 빨간 옷을 입고 설쳐대는가.

한국을 응원해서? 진정으로 한국 축구팀의 팬이어서?

아다시피.. 결단코 아니다.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온 외국인들이 분위기에 휩싸여

술에 취한 한국 여성들과 어쩌다 눈이 맞으면

하룻밤이라도 은근슬쩍 즐겨보려는 엉뚱한 생각 아니겠는가.

 

한국 대표팀의 이영표 선수가 출국 전에 이런 말을 했다.

"열심히 흘린 땀방울만큼의 결과를 얻고 싶다.

그것이 '순수'라고 생각한다."

 

참 프로다운 자세다.

그 순수로 무장한 선수들의 경기를 빙자하여

거리응원이라는 2002년에 개발된 '놀이'를 하면서

응원도 하고, 술도 마시고, 그러다가 분위기 타면

거리에서 이성을 잃어버리는 모습.

 

그것이 현재 우리 젊은이들의 수준이 아닐까.

그런 생각에 답답했다.

 

한국의 젊은이로서, 난 알고 있다.

요즘의 젊은 세대의 세계관은 결코 국가로 확장되지 않는다.

개인에 머무르기가 일쑤이고,

잘하면 자기가 속한 집단으로 확장되지만

그 집단도 가족이나 또래 집단인 경우가 많고,

직장으로 확장되면 참 다행이다.

 

결코 지역사회 내지는 국가로 넓혀지지는 않는다.

개인주의화 되고 잘게 쪼개져가는 한국 사회에서

 

스포츠에서의 국가 대항전은..  

애국을 빙자한 시민들의 놀이감이요,

애국을 이용한 연예계, 방송계의 시선 끌기요.

(월드컵 특집으로 도배한 프로그램 편성표를 한 번 보라.

한국 방송은 월드컵 방송이다.)  

그런 심리를 부추기는 마케팅의 장이라 생각된다.

 

한 번 물어보자.

 

대~한민국을 외친 이들 가운데

진정으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고,

나라의 발전 방향에 대해 고민한 리더가 있을까.

꼭 리더의 자리에 있어야 리더의 일을 하게 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

 

그 자리에서 광란의 밤을 보낸 젊은이들 가운데

장차 한국을 짊어질 이들도 여럿 있을 것이다.

 

그 현장에서 교훈을 얻은 자도 있겠지만,

그 현장에서 추태를 보인 주범도 있을 것이다.

 

평소에 국가에 대해 고민한 적도 없는 이들이

국가라는 핑계로 놀기 위해 뭉쳤다.

 

그나마 2002년에는 모든 게 신선했다. 처음이라서..

태극기 패션도 신기했고, 거리 응원도 열정과 단합력이 넘쳤고,

무엇보다 질서있는 시민의식이 자율성과 어우러졌다.

 

그러나 이번엔 확실히 다르다.

 

한국민들은 너무 감정적이다.

사실.. '냄비 근성'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이게 설명이 잘 안된다.

 

이 주장을 받쳐줄 두 가지 예를 들겠다.

 

첫째, 호주와 일본의 경기 시청률이

일본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높았음은 무엇을 말하는가.

도대체 남의 나라 경기에 왜 그리도 관심들이 많은겐지.

 

히딩크가 있다고 해서 호주에 애정을 느낀다고 강변하는 건

너무 감정적이다.

그렇게 감정적인 한국의 소비자들 때문에..

관심을 끄는데 혈안이 된 일부 기업들은..

히딩크에게 수없이 많은 CF 기회를 준다.

 

어떤 방송사는 '명예 해설위원'이란 이상한 별칭을

히딩크에게 선사했다.

 

그가 CEO라고..

경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는 자들의 책이 난무했다.

 

진리의 탐구에 충실해야 할 대학에서

체육학 박사도 아닌 경영학 박사 학위를 그에게 수여했다.

 

축구팀의 리더로서 그리고 관리자로서..

그의 뛰어남은 인정하지만..

그 대목을 노려 자기들도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보려는 자세들이 못마땅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그는 한국을 참 영리하게 활용한다.

그의 말마따나 히딩크는 한국을 잊으면 안된다.

암. 안되고 말고. 절대 잊으면 안된다.

그렇게 많은 돈과 학위와 별칭을 준 한국을..

 

둘째, 토고전 이후에 갑자기 토고 동정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경기 전이나 후나 토고는 그냥 토고다.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이고,

그 나라 국민들에게 축구는 큰 힘이 된다.

그 성원을 등에 업은 토고 선수들은..

축구를 통해 많은 경제적 이득을 보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 나라 축구협회가 여건이 안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선수들에게 약조한 상금을 몇 달째 지급 못해서 그들이 화났단다.

 

그게 다 아닌가.

 

그들의 태도를 점잖게 비판하던 한국 언론과

그 기사를 네티즌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이

각종 사설과 사진을 통해.. 토고 동정론을 다시 주도하는 느낌이다.

 

그 중에서 이을용의 발을 마사지해주는

토고 창가이 선수의 모습이 사진이 가장 인상적이다.

 

이런 일을 기회로 균형적인 시각을 갖는 것은 좋지만,

너무 감정적이다.

욕할 때는 빗발치듯 비난하고.. 동정할 때는 또 난리가 난다.

비난할 때도 약간의 여지를 두고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고

칭찬받는 이유와 비난받은 이유는

좀 구분해서 바라볼 필요도 있는 것 같다.

 

어쨌든.. 감정의 폭이 너무 크다는 건 지울 수 없다.

널뛰기를 하는 느낌이다.

 

끝으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청소년들 역시 월드컵에 지나치게 빠지는 건

별로 좋을 건 없지 않느냐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물론 즐기는 것은 좋다.

자국에 대한 마음을 확인해보고, 

국민들과 일체감을 느끼는 건 소중한 경험이다. 

그러나 현실과 스포츠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

 

94년에 있던 미국 월드컵 때문에

당시 중 3이던 내가 그런 점에서 

정신적 혼란을 겼었기에 충심으로 하는 말이다.

 

수업이 휴강된 교실에서 TV 앞에 모여앉아

급우들과 그 경기에 푹 빠진 내가

한동안 멍하게 앉아 몽상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글이 너무 길었다. 자, 이제 갈무리하자.

 

방향을 잃은 이들. 방향을 잃은 그들의 나라. 

지향점이 없기에.. 목표가 없기에..

한국은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스포츠도 국민의 감정에 좌우된다.

 

정치학 전공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건 민주주의와 거리가 꽤 멀다는 건 안다.

 

한국에서는 널뛰기 같은 민중의 심리가

어디로 튈지 주밀하게 살펴야 성공한다고 말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한국팀의 승리를 위해 응원하는 마음은 나 역시 다를 바 없지만,

생각하는 갈대인 우린,

적어도 이 상황만이라도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는 훌리건이 없지만, 감정적인 국민이 있다.

월드컵 기간 동안.. 이들은 FIFA의 계약직 직원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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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Club/ http://snuceo.cyworld.com/ 이종화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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