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열기를 왜 못 살려낼까?
월드컵 시청 때문에 밤잠을 설치면서도 다시 TV앞에 서 있는 자신을 보고 쓴 웃음을 짓는다. 내가 3S정책의 노예가 된 건가? 하긴 어느 방송채널을 틀어도, 신문잡지를 봐도 온통 월드컵 얘기뿐이니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그래서 동네의 순대국집 아줌마의 해박한(?)이야기나 지하철의 30~40대 아줌마들의 얘기에 놀라기만 할 게 아니라 이번 월드컵을 보면서 느낀 바를 몇 가지 적는 게 나을 성 싶다.
첫째는 한국의 지도층은 2002년 월드컵 열기를 국민통합과 민족적 단결의 계기로 만들지 못한 채 망국적인 지역정서와 집단간 이해갈등만 키우고 말아 참으로 아쉽기 짝이 없었다. 이번도 지금까지의 움직임으로 볼 때 선거참패의 국면전환용, 또는 되는 일이 없는 짜증나는 현실에서 스트레스를 푸는 수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
둘째는 월드컵을 통해 표출되고 있는 한국의 민족적 에너지는 엄청나다는 것이다. 세계화론자나 영어공용화론자까지 등장하여 한국적인 것, 민족적인 것을 촌스럽고 시대에 뒤떨어진 깃발로 치부하도록 강요받아왔고 젊은 세대들은 무색무취하거나 무감각세대라는 진단을 내려왔지만, 그들이 들고 있는 태극기는 도대체 누구의 태극기인가. 태극기는 앞으로도 계속 우리의 상징이 될 것이다.
셋째는 중국의 2백만, 일본의 60만 동포, 미주의 3백만 교포, 세계 곳곳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한국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심는 절호의 기회이다. 대부분의 1.5세대나 2세대들의 경우 한국인의 정체성이 모호한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그들 탓이 아니라 조국 대한민국이 그동안 이들을 방치해왔기 때문이다. 이참에 조국애에 눈뜬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 특히 한글에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물론 월드컵은 월드컵 정치와 월드컵 마텟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업화돼있고 세계적 대기업들이 전세계인을 구경꾼으로 만들어 자신들의 제품을 소비하게 하는 이득을 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프로축수선수들의 천문학적인 몸값이 사실은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것인데 축구열기에 취해 그 점을 잊고 있다는 지적도 타당하다. 또 올 월드컵 히트상품으로 꼽히는 야광뿔 머리띠, 뿔나팔, 삼지창 등 인기 응원도구도 모두 ‘중국산’이다. 국내 10여개 업체가 만들어내는 태극기의 인기는 지난 월드컵 때만 못하다. 중국이 한국월드컵 응원에 힘입어 재미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인이 분열과 갈등을 하나로, 좌절과 침체된 사회분위기를 일신할 수 있다면 월드컵은 누구도 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중요한 현안을 풀어주는 해결사라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나라의 지도층이 월드컵을 계기로 분출하고 있는 한국인의 에너지를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결집시켜 나가지 못하는 무능이며 2002년 이후 몇몇 선수의 활약과 대진표 등 경기의 마술에 의존하는 곁돌고 있는 체육정책이다. 월드컵 기간 동안 정치권을 비롯한 한국의 지도층은 국민을 하나로 묶는 감동적인 메시지조차 없었고 농구, 탁구, 배구, 야구, 수영, 베드민턴 등 국민건강을 증진시켜갈 수 있는 생활체육시설을 어떻게 확보해갈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도 나오지 않았다. 질병 치료비로 연간 30조가 넘는 엄청난 돈을 쓰고 있으면서도 사전에 국민들이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확대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정확하지 않은 건강정보에 좌우되고 각자 알아서 챙기도록 길들여져 있다. 월드컵 때문에 밤잠을 설치면서도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동네와 학교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스포츠 시설이 너무 없다는 사실에 분개하지 않는 것이다.
월드컵은 2010년에 또 찾아온다. 일과성 행사로 요란법석을 떨고 끝낼 것이 아니라 국민단결의 한마당으로, 국민건강을 증진시키는 생활체육 인프라를 점검하는 기회로, 7백만 해외동포들의 한글교육과 한글책 보내기운동 같은 정체성 캠페인을 전개하는 축제로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