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영화에 담습니다. 하지만 그 의도가 지나쳐서 영화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거나 반대하는 무리들의 화를 자초하기도 하는데요, 그만큼 영화라는 예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내용의 부정적측면이 너무 강해서, 혹은 저주를 받은 듯한 불운으로 인해 실제 죽음을 불렀던 영화들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고전영화 중에 그런 영화가 많은데요, 영화가 만들어진 후, 실화라고 하기엔 믿기 어려운 미스테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 당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그 영화들의 끔찍한 충격의 실화와 떠도는 속설 속으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미신을 심하게 믿거나 충격에 약하신 분들은 조심하세요!

무솔리니 치하의 현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사드 후작의 소설을 개작한 영화.
파시즘 정권 하에서 특권을 누리는 네 명의 정치, 종교지도자들은 미소년, 소녀들을 외딴 성으로 납치해 상상하기조차 하기 힘든 가장 추악한 방식으로 쾌락의 실험을 벌인다.
파졸리니 감독은 착취와 피착취자간의 관계를 성적인 은유로 표현하면서 사디즘과 권력 정치학의 유사성을 이끌어내고, 그것을 이 영화의 이데올로기의 기초로 세우고 있다.
그는 결코 희생자를 인간화해서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세계에는 어떤 동정과 연민의 여지가 없다. 희생자는 단지 희생자일 뿐이다.
이 극단적인 영화는 하지만 사랑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파졸리니가 여기서 권력자들이 저지르는 잔인한 행동에 난자당한 인간의 정신을 고결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또한 파졸리니의 비극적인 최후를 연상케 한다.
영화를 만든 얼마 후 파졸리니는 17세 소년 피노 펠로시에게 살해당했고, 그의 사후에 개봉된 영화는 엽기적인 죽음만큼이나 대단한 논란을 자아냈다.
보수주의자들은 동성애 공포증세를 보였고, 파졸리니가 스스로 죽음을 자초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파졸리니의 죽음은 순교와도 같은, 삶을 작품으로 승화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에 가깝다.
이 영화는 20세기 이탈리아 지식인이 만들어낸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한 편이다.
-출처 : 전주 국제 영화제 2002 자료집, 김성욱
소년, 소녀들을 벌거벗겨 묶어놓고 온갖 고문을 가하는 이 영화가 상영되는 곳 마다 기절하는 관객들이 속출했고, 종교단체의 무수한 테러와 동성애로 인한 거리감은 끝내 거의 '악마'시되던 파졸리니 감독이 살해되면서 끝을 맺게 됩니다.
1975년 로마의 한 해변 쓰레기매립터에서, 얼굴이 부풀어 오르고 장이 파열되도록 맞아 죽은 파졸리니 감독의 죽음은 영화에 출연한 감독의 동성애연인 소년의 단독살해라는 판결로 매듭지었지만, 아직까지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나돌고 있고, 그에 따라, 파졸리니의 죽음을 소재로 한 영화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조르다나 감독의 1995년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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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씨는 개봉 후 일어난 끔찍한 사건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세기적인 살인마인 찰스맨슨을 교주처럼 따르던 광신 추종자들에 의해, 당시 만삭이었던 폴란스키 감독의 아내 '샤론 테이트'가 살해당하게 됩니다.
1969년 8월 9일 이들의 엽기적인 살인행각 아래,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였는데, 샤론 테이트가 16번 칼에 찔려 살해당한 것을 비롯, 그녀의 전애인 제이 세브링은 7번 칼에 찔리고 총을 맞고 죽었으며, 헤어디자이너 아비게일 폴거는 28개의 자상을, 또한 폴거의 애인 워지시에치 프라이코스키는 51차례 칼에 찔려 살해당했습니다.
이들의 엽기적인 살인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고, 리노와 로즈메리 라비앵카라는 수퍼마켓의 주인인 부부를 살해했는데, 로즈메리의 경우 41차례의 칼에 찔려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러한 전대미문의 살인행각을 벌인 이후, 로즈메리의 집에서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3마리의 개에게 먹이를 준 후 떠났다고 합니다.

'폴터가이스트'는 집안에서 원인 불명으로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을 일으키는 유령을 뜻한다.
는 모두 3편이 만들어졌는데 이 영화는 각 시리즈를 만들 때마다 사람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1, 2편에선 촬영기사와 제작에 관여된 두 사람 등 3명이 죽었고, 3편에선 꼬마 헤더 오루크가 갑자기 사망했다. 이들의 죽음은 아직도 그 원인을 밝히지 못해 헐리우드에서는 이 영화를 저주 받은 영화라고 한다. -홍성진 영화해설
이 영화는 '배우들이 출연을 꺼려했던' 영화로 악명이 높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매편마다 죽는 배우들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폴터가이스트 1편이 완성되던 해에, 도미니크 던이 1982년 11월 4일 22살의 꽃다운 나이에 식도가 막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고, 폴터가이스트 2편에서는 영화촬영도중 자신의 신장에 이상이 있는 걸을 알게 된 윌 샘슨이 폴터가이스트 2 완성 다음해인 1987년 6월 3일 수술 도중 사망하게 됩니다.
또한 폴터가이스트 2편에서는 줄리안 벡이 영화의 완성을 보지 못한채, 1985년 9월 14일 대장암으로 사망을 하였지만, 지병이었고 나이가 많아서 저주라기엔 좀 그렇고,
무엇보다, 폴터가이스트 전 시리즈에 모두 출연했던 헤더 오루크가 폴터가이스트3편 직후, 13살의 어린나이로 1983년 2월 1일 장협착으로 갑작스럽게 요절하게 되어,
지독한 '저주받은 영화'로 악명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1972년 영화 엑소시스트를 촬영하던 윌리암 프라이드킨 감독은 여자 주인공의 침대가 요동치는 장면을 촬영한날 밤 아주 이상한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악마가 몸에 들어간 여자아이가 몸을 거꾸로 하고 계단을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 꿈을 꾼 프라이드킨 감독은 당시 자신의 꿈에 나타난 장면을 몇일후 촬영하였다고 합니다.
그날밤 꿈에 다시한번 나타난 여자아이의 모습은 자신의 영화에 출연한 주인공 여자가 아닌, 한번도 보지못한 일그러진 얼굴의 젊은사람이었다고 하며,그 여인은 "만약 나의 형상이 영화 장면에 나가면당신은 물론 수십여명의 사람들이 나로인해 사망을할것이다"라는 경고를 하였다고 합니다.
대수롭지 않은 꿈이였다고 생각한 프라이드킨 감독은똑같은 꿈이 4일째 계속된 다음날부터 영화가 끝날때까지 영화제작에 참여한 임원들중 9명이 모두 사고로 죽자, 문제의 장면을 공개하지 못하였다고합니다.
존 웨인과 수잔 헤이워드라는 당대 최고의 배우들을 캐스팅 한 이 영화는 영화개봉후 기이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이 영화에 참여하였던 영화인들 300명 이상이 영화가 제작된 20년이내에 비슷한 증세를 보이며 암으로 사망하게 이릅니다. 이 영화에 관해서는 아직도 그 의견이 분분한데, 그 당시 핵 방사능에 관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던 때라, 방사능이 노출된 곳에서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하여 미국 정부가 일부러 강행하게 했던 영화라는 설이 있습니다.
아직도 존 웨인의 무덤은 의문의 장소로 알려져 있고, 일설에 의하면 냉동보관되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공포영화 인큐버스는1887년 폴란드의 의사 L.L. 자멘호프씨가 창안해 발표한 국제어 '에스페란토'로 제작되어 전세계에 개봉되었습니다.
영화관에서 자멘호프씨가 만든 세계인의 공용어 에스페란토를 처음으로 접한 사람들중 상당수는 기괴하게도 영화를 보다 구토를 하였다고 하며, 이 괴현상을 조사한 심령학자들은 아마도 에스페란토에서 쓰는 몇몇 단어들이 고대문명의 저주적 주술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든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1965년부터 살인과 유괴, 그리고 사고등을 유발한 영화 인큐버스의 저주는 1968년 스쿠버스역을 맡은 여배우 하드트의 딸이 유괴된뒤 살해되면서부터 물의를 빚기 시작합니다.
1965년 영화촬영장소에서 만나 결혼한 스티븐스 감독과 여동생 스쿠버스 역할의 여배우 아메스씨는 하드트의 딸이 유괴 살인당한것이 영원한 미궁속에 빠지자 "혹시 이게 심령학자들이 알려준 저주가 아닐까"하는 불안속에 말다툼을 벌이다 끝내 이혼을 하게됩니다.
1965년 인큐버스의 시사회가 있던날, 유명인들이 모인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 극장에서는 분명 음악이 있어야 하는 장면에 음악이 나오지 않자 영화감독이 상영이 끝난뒤 급하게 필름실을 찾아가 필름을 체크하는 해프닝을 벌였다고 하며, 필름속에는 이상하게도 분명 자신이 얼마전 편집실에서 추가했던 영화음악부분이 완벽히 삭제가 되어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때문에 시사회 당일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은 모두 음악없이 에스페란토어만을 들어야했었다고하며, 당시 시사회에는 몇년뒤 자신의 부인이 찰스맨슨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된 로만스키 감독도 있었다고 합니다.
인큐버스의 음악담당 작곡가 도미닉 프론티에씨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영화감독과 말다툼을 벌이다 그를 주먹으로 때려 영창신세를 지게 되었다고 하며, 프론티에씨는 끝내 직업없이 전전하다 1970년 미국 에서 풋볼게임의 암표티켓을 팔다 걸려 감옥신세를 지게 됩니다.
1998년 암투병을 하던 인큐버스의 감독 스티븐스씨는 "1965년이후 나의 인생은 지옥과 같았다"며 "후세의 영화 제작자들은 절대로 영화를 만들때 에스페란토어로 만드는 멍청한 실수는 하지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을 하였다고 합니다.
1999년, 미국의 한 TV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인큐버스의 감독 스티븐스씨에 대한 여러가지의 이야기를 나눈 영화 인큐버스의 주인공 윌리암 샛트너씨는 인터뷰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뒤 자신의 집 풀장에 변사체로 떠있던 부인의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고 합니다.
OJ 심슨과 같이 부인 살인스캔들의 주인공이 될뻔한 샛트너씨는 변사체로 발견된 자신의 3번째 부인이 사고로 죽었다는 결론이 나오자 모든 수사혐의에서 벗어날수 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