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축구가 졌지만 그래도 잘했다. 새벽잠 설치고 뜬 눈 밤새가면서 응원하던 우리의 모습도 보기 좋았다. 그러면서도 왠지 가슴 한켠에 아쉬움이 밀려오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의(축구를 하는) 열정과 패기는 우리의 본이 된다. 다시 태어나도 축구를 하겠다던 대답은 우리 마음의 깊이 숨겨진 열정을 일깨워주었다. 월드컵이란 이름 아래 세계가 하나되고 평화되어간다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 하나되는 것과 평화를 또 다른 고통과 압박으로 부터 얻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척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피파가 지정한 공식 축구공은 바느질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다. 탄력성과 휨이 더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자동화기계가 아닌 사람이 손수 일일이 바느질을 해야 하는데 어른의 손으로는 그 정밀함을 따를 수 없기에 제3국의 아이들의 손을 빌려 만든 축구공이 지금의 피파용 공식 축구공입니다. 제3국은 동남아나 아프리카이다.
전세계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해피포터>란 영화는 주로 아역배우들을 많이 캐스팅을 한 작품이다. 유럽의 법에는 아이들에게 8시간 이상 노동을 시킬 수 없고 또 아동들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아동들을 지키는 일종의 가이더가 함께 한다. 그들은 주로 촬영장에서 아동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지는 않은지를 감시하고 아동들의 인격과 권리를 지켜주고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는 세계평화와 하나됨이란 이름 아래 지금도 제3국의 아동들은 적은 돈을 벌기 위해 우리가 모르는 남 모르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고통이라기 보다는 먹고 살기 위한 과정이라고 덮어버린다. 정말 월드컵이 하나를 만들어 주고 평화를 주는 것일까? 부유한 나라의 아동들은 아니 부유한 나라의 권리는 정부와 세계가 나서서 지켜주지만 그렇지 않는 제 3국에 대해서는 오히려 당사자와 해당국가를 비난한다. 사실 월드컵의 이익은 피파측이 가져가는 것이지 결코 개최국에 돌려주지 않는데도 우리는 월드컵을 열광한다. 우리도 2002년 경험을 했었다.
월드컵때문에 한국은 비인기종목은 더 힘들어니고 있다. 사실 대표축구팀에 투자하는 금액은 비인기 종목에서 보면 그것은 일종의 사치이다. 이 모든 운영비는 국민의 세금인데도 국민의 세금이 정당하게 공평하게 재분배되기 보다는 편중되고 손익계산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건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축구를 하는 선수들은 어찌되었건 소속팀을 통해서 먹고 살지만 비인기 종목의 선수들은 열악하고 힘든 상황에서 오직 내일의 태양을 바라보며 모욕과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일본과 유럽에서는 전국민이 좋아하는 핸드볼을 보더라도 그렇다.-2004년 올림픽때- 이미 정년이 지나 현역에서 물러나있는 주부들을 대거 투입을 했다. 선수를 키우고 발굴하고 지원하기 보다는 급조된 팀을 만들어서 금메달을 따오라고 등을 떠밀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급조된 핸드볼팀은 안타깝게 은메달에 그쳤다. 그 은메달은 금메달 전 종목을 합친 것보다 더 귀한 것이었다.
월드컵으로 인해 전 국민이 열광하지 않는다. 대다수 사람들이 열광을 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소수의 비인기종목의 선수들과 가족들이 남몰래 아파하고 있습니다. 괜히 말을 꺼내칠라면 속이 좁다느니 이해심이 없다고 단죄를 받기 쉽상이다. 한국의 언론은 정확한 보도와 객관적인 논리에 흐르는 것이 아니라 편중되고 인기적인 언론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월드컵을 통해 거리응원은 한국의 자랑일정도로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킨 대한민국의 자긍심이다. 시청과 광화문 그리고 각경기장의 영상을 보면서 '정말 이런 나라가 있을까?' 할정도로 자부심에 휩싸이게 된다. 하지만 531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서 본 우리의 응원문화는 한국이 하나되는 길이 아니라 자신의 논리와 생각에 맞지 않으면 결코 하나되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방선거때 많은 청년들과 학생들은 투표를 하지않고 저마다 휴가만을 즐기고 있다. 세상을 변혁시키겠다는 종교계 사람들도 권리와 의무에 성실하기 보다는 오히려 쉬는 날을 통해 자신들의 모임만을 생각한다. 이건 잘못되었다. 아무리 정부에 실망했다해도 아무리 정치가 싫다 하더라도 투표는 우리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져서 살펴보면 당을 위한 투표가 아니라 정말 인물을 위한 투표를 할 수 있는데도 오히려 월드컵과 축구를 통해 대한민국이 하나가 되었다고 자부하지만 사실은 월드컵이 끝나면 그 하나된 모습은 단지 추억과 또 4년을 기다리는 기다림이 되어버린다.
2002년 미군전차에 희생된 효순이 미선이 사건때도 광화문 거리에 모여 하나가 되었다. 우리가 하는 것은 거기뿐이다. 우리는 힘과 군중의 힘으로만 정부와 미군을 대항하려 한다. 하지만 한국의 역사에서 살펴보듯이 한국은 유럽과는 달리 시민운동을 원천적으로 막아 왔다. 이승만때는 중간세력에서 대통령을 귀머거리로 만들었고, 박정희와 전두환때는 독재를 통해 언론과 군중을 상대했다. 그리고 김영삼 이후 정부는 무관심과 어쩔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해왔다. 그런데도 우리는 군중의 힘만 믿는다. 그 군중의 힘을 깨뜨리는 것은 구심력을 지루하게 만들고 관심을 다른곳으로 돌려버리면 게임은 끝난다. 그리고 미순이 효순이 사건이후 더 상처받은 것은 가족들이다.
일본에서도 이와같은 사고가 있었다. 그들은 부시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일본의 지방자치는 권력의 핵심이 아니라 지방에 사는 시민들이 권력의 핵심이었다. 그들의 요구와 탄원서는 결국 지방관리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지방관리들은 상위층에 그리고 수상에게 전해졌다. 수상은 공식사과를 했지만 일본 시민들은 수상의 사과가 아니라 부시대통령의 사과였다. 일본의 시민들은 미국음식 불매운동을 전개했다. 이미 전세계가 패스트푸드에 맛에 길들여졌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중지시켰다. 불매운동으로 미국 굴지의 패스트푸드 회사는 적자에 시달렸고 이내 사장은 화이트하우스에 찾아가 대통령에게 일본에 가서 사과하라 했다. 엄연히 미국정부에 세금을 내고 있는 기업의 대표로서 기업의 잘못이 아닌 정부의 잘못으로 손해를 보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부시는 처음엔 공개사과문을 보냈지만 거절 당했다. 두번째는 대변인을 보냈지만 마찬가지였다. 부시는 결국 패스트푸드의 사장의 권유로 인해 직접 일본의 마을로 찾아가 공식사과를 했다.
우리의 행동은 모이는 것일까? 감히 말하건데 행동은 모이는것 그 이상이다. 나도 몇달간 미국음식과 상품을 사지도 쓰지도 않았고 사람들에게 권유를 했지만 그것은 주변에서 보기에 정신나간 행동으로 보여졌다. 하나되기위해 모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모이기만 한다. 모이면서 해결되기를 바라지만 정부와 정치인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진정한 하나됨은 모여서 울분하는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모여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함께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결국 거리응원은 불쾌한 시민의식으로 막을 내렸다.
세계가 일본을 높이 평가하고 한국을 저급하게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민의식 질서의식에 있어서도 한국은 선진화된 사회와는 달리 창피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세계가 한국을 알아주는 것은 스포츠(올림픽과 월드컵)와 단시간내에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이지 동등한 입장에서는 낮게 평가한다.
이기기위한 축구는 더이상 한계를 넘을 수 없다는. 이번 월드컵을 보면서 '역시 강팀은 강팀이구나' 하는 수긍이 들었다. 비록 강팀들이 힘들어 하는 경기였지만 그래도 기본기의 탄탄함은 경기의 흐름을 읽게 해주는 것이 강팀의 면모였다. 반면에 한국과 일본은 여전히 골대앞에서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기기 위한 축구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물론 정신력과 조직력으로 이길 수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큰 경기와 이슈가 될때 가능한 것이지 평소에는 가능하지 않다. 유럽과 아메리카에서는 아이들이 걷기 시작할때부터 기본기축구 정확한축구를 가르친다.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얼마나 발동작이 정확하고 판단력을 가지는가를 가르친다. 그리고 경기에서 무의식적인 정확성을 위해 매일 반복과 훈련을 한다. 그 훈련방법은 우리처럼 무조건적인 훈련이 아니라 체계와 합리적인 훈련이다. 한국의 유소년축구단은 기본기를 가르치되 결국 이기기위한 게임을 가르친다. 실례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가기위해 시합에서 이겨야 하는데 이기기위해서는 결국 반칙을 해야 한다. 감독은 기술적으로 반칙하는 것을 가르친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를 가기위해서는 더욱 치열한 반칙을 한다. 이겨야 상위클래스에 올라가게 되고 아무리 경기의 내용이 좋아도 지게되면 패자일뿐이기 때문이다. 내용과 상관없이 지고있을때 라커룸에서 코치와 감독의 폭언과 폭력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또한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운동부에 대한 지원이 약하다. 감독과 코치들은 월7~80만원을 받고 일을 하기에 결국은 그 나머지 부분을 운동부 학부모들이 채워주는 현실이 되고 있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박지성, 이영표, 조재진, 설기현, 안정환 그리고 이천수 선수를 보면서 크게 느낀것이 있다. 어떻해든 해외로 나가야 한다. 그래도 해외파 선수들은 무언가 다르긴 달랐다. 위기의식 극복과 상황판단력, 경기의 흐름을 읽고 있는 것은 축구가 앞선 나라에서 배우는 것이다. 국내축구는 아직까지는 한계가 있다. 축구는 기업이고 기업은 이익의 논리에 따라야 하기때문에 이익이 없으면 축구는 당연히 저급하게 된다. 그래서 박주영같은 스타가 없는한 구단을 운영하는 것은 적자이고 그것은 곧 이기기 위한 축구를 하게 만드는 결과와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안정환 선수와 이천수 선수의 글을 읽으면서 "고통과 좌절은 인간을 더욱 성숙하게 한다"는 것을 보았다. 일본의 <극진가라데>는 일본<가라데>와는 달리 공격을 하는 무술이다. 가라데는 방어를 원칙으로 하는데 극진가라데는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대련을 통해 맞는 고통을 느끼고 실전을 통해 패배자의 굴욕을 느낌으로써 자신을 성찰시키는 동시에 더 성장 하게 된다."
차두리의 굴욕시리즈가 인기가 되었다. 차두리선수뿐만 아니라 굴욕적인 마음을 아는 선수라면 자신을 더 개발시킬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세계적인 감독들은 대부분이 선수시절 벤치에서 보내거나 후보로 보냈다. 그리고 주전으로 뛰어도 주목받지 못한 선수출신들이다. 그들은 선수생활 주전들이 누리는 영광을 뒤에서 바라보고 좌절을 경험했다. 그리고 경기를 읽는 힘 그리고 자신을 발전시키는 법을 배웠고 자신의 굴욕을 다독거리는 것을 통해 선수들을 다독거리고 이끄는 지도력을 배운다.
한국축구가 더 발전하기를 바란다. 한국축구가 유럽과 브라질처럼 유명한 선수들이 나오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의 승리가 아니라 먼 미래의 영광을 보며 조금씩 정석을 밟아 나가는 축구가 되었으면 한다. 석공이 원하는 돌을 얻기 위해 몇천번의 망치질을 두드리고, 대장장이가 더 견고한 철을 얻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두드리는 것처럼 진정한 가치는 한순간에, 짧은 시간에 만들어 지지 않는다. 비인기종목의 운동경기도 우리모두가 관심을 갖아야 한다. 그들도 대한민국의 국민들이고 시민들이다. 축구만, 야구만, 양궁만, 이런 인기종목만 관심갖는 것은 편협되고 외고집적인 것으로 발전과 성숙을 방해하고 저하시킨다. 우리 모두 함께 할 때 비로서 스포츠로 하나되는 대한민국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006.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