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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에 거품무는 기독교인.

박성수 |2006.06.27 20:16
조회 364 |추천 12

 민감한 종교의 역사와 그 속에 감춰졌음직한 비밀들을 소설로 꾸며 전세계적으로 화재를 불러왔던 베스트 셀러를 영화화한 '다빈치코드'...

 

그 영화가 국내로 수입될 것에 대한 우려로 기독교연합회 등의 조직들은 '결사항전'의 자세를 천명하면서 '젊은피 수혈론'(감옥갈 각오를 가진 젊은이들이 나서야 한다)까지 들먹이게 된다.

 

다른 나라의 기독교 보수종파에서도 이 영화의 개봉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 보이기는 했지만, 한국만큼 심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담 왜???

한국의 보수 기독교 종단에서는 유독 다빈치 코드에 대해서 민감한 거부반응을 보였는가?

 

그 가장 큰 이유는

(세계 기독교연합회 등으로 부터)'양적으로는 팽창했으니까 이제는 질적으로 팽창해야한다'는 소리를 듣는 [한국형 기독교]의 고질적인 문제를 드러내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영생'과 '십일조' '타종교 비방' 등의 극단적으로 편협히 치우쳐진 '성장' '경쟁' 논리와 상징만을 강조해온 이유로,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다빈치 코드라는 영화에서 도전하는 내용에 대한 '면역'을 전혀 갖출 수 없는... 정신적으로 빈약한 상태이다.

 

다른 나라의 기독교인들과는 달리 교회에 쳐 박혀서 하루 내내 '믿습니다' '영생을 얻습니다' '십일조를 내야합나디' '타종교는 악입니다' '성경은 과학적으로 사실입니다' 는 등의 이야기만 주입당하는 것을 '믿음'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다빈치 코드에서 다루는 그러한 기독교 생성과정상의 문제들에 충격을 받고 휘청거리는 것을 기독교 지도자들은 당연히 걱정했던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신도들이 이러한 '시험'을 당하고 정신적으로 무사하지 않을 것임을 예상했기 때문에 아예 그들을 '시험'에 처하게 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 통해서도 기독교인들의 '유약함'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교회 내에서는 열정적이지만, '부정과 부조리 불의'를 보고 별로 나설 의지도 못 느끼는 한국형 기독교인들...

 

1200만의 기독교인이 있어봤자, 아시아 중진국중 최고의 부패국가, 아시아 청소년 준법정신 최하위, 고아수출1위, 말레이시아 등의 나라보다 장애인 등에 대한 편익 시설이 덜 갖춰져 있는 등의 기본적인 '사회정의'도 갖춰져 있지 않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을 '문제로 볼 수 있는' 질 높은 기독교인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이유로, 평소에 세상의 문제에 대해서 시험을 당하기를 거부하고 늘 화초처럼 교회 안에서만 '기도만 해대는' 믿음으로는 '그 수준의 나라' 이상을 만들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수구보수세력이 득세하면서 미국의 종속국이기를 자처하면서 적대적인 남북관계를 조장하고 전쟁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보수기독교 세력활동이 활발하다.

불교와 천주교와는 달리 [독재자 전두환 만찬기도회]나 해주던 [기독교세력]이 현재의 기독교조직 내의 막강한 발언권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니 그리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기독교'가 진정 해야할 책무와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에는 게을러서 시간이 '펑펑' 남다 보니 그렇게 쓸데 없는 영화 논쟁에 매달리게 된 것이다.

 

다빈치 코드에서 다뤄지는 내용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이 진지하게 고민을 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우선 무엇이 '허구'이고 어떤 것이 '사실'인지의 내용은 구분 분리해서 고민해야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모든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거나, 모든 것을 '거짓'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정신은 '균형'을 잃을 것이다.

 

기독교 연합회 등에서는 다빈치 코드의 '유해성'을 지적하기 위해서 - 영화적으로 설정된 '허구적 사실' 몇 개를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들먹이면서 마치 영화의 내용 모두가 '허구적인 것'이니 이는 '유해'하고 '보면 안된다'는 식으로 참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반화의 오류의 행태를 보인다.

 

이는 다빈치 코드에서 등장하는 기호학자 로버트랭던교수가 '지하에서 웃을 일'이다.

 

이는 마치 중국인들이 드라마 '주몽'에서 등장하는 (설화속의 인물)해모수의 일대기가 역사상 기록된 자료가 전혀 없음에도 그리 묘사된 것이니 고구려의 역사도 거짓이고 결국 이는 '중국의 역사다'라고 판단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허접한' 해석 방법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따져보자.

 

* 허구

 

우선 예수의 핏줄을 지키기 위해서 랭던 교수가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모습은 사실이 아니라 '허구'이다.???

 

그리고 자크 소니에르 박물관장이 죽은 것도 '허구'이다. 루브르 박물관에는 그런 이름 가진 사람없다.???

 

또한 자크의 손녀가 예수의 핏줄인 것도 '허구'이다.???

 

(자... 한국형 기독교인들에게는 이렇게 일일히 설명을 해줘야 하겠지만 지면상의 관계로 나머지 '허구적인 사실'에 대한 지적은 생략하고 진실인 것을 정리하도록 하자)

 

* 진실

 

하지만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타나시우스파]가 [아리우스파]에게 승리해서 '3위일체설'이 공인된 것 등의 사안은 역사적 사실이다.

 

현재 기독교인의 상당수가 3위일체설을 '진실'로 인정하는 것은 바로 그때 콘스탄티우스황제의 입회하에 [아타나시우스파]가 승리했기 때문이고, 바로 그렇게 제도권(콘스탄티누스황제와 교황)에서 인정하는 권위를 '당신'이 받아들인 결과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런 꺼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3위일체설이 오히려 기독교의 역사를 전복하고 예수의 실제적 권능을 더럽히는 작용을 하지 않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는 다빈치 코드에서 다뤄졌던 예수가 '인간'인지 '신'인지에 대한 논의와도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이다.

 

예수가 죽은 직후 부터 1세기가 넘어가기 전까지의 초기기독교인들은 예수와 신과의 관계로서 [양자론]적 입장을 취했다.

[양자론]이라는 것은 예수는 원래 인간이었지만, 하나님을 '제대로 접하고' 세상의 악에 맞서서 진리를 전하려는 중에 죽임을 당하여 하니님 품에 '양자'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인간'-> '신'으로서의 격상이 양자론의 본질이다.

 

이때의 기독교인들은 그야 말로 '순수함'의 정수를 이룬다. 이들은 경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가진 것을 아낌없이 서로 나누고 헌신하면서 핏박받는 노예 유대인들의 세상을 예수가 약속했던 '평등'의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 헌신했었다.

 

사실 '인간'에서 '신'으로의 격상은 상당히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발상이 담겨져 있는데... 경건한 초기 기독교인들이 주로 유대인들의 해방을 위해서 싸워왔다는 것은 '양자론'교리의 잠재한 힘이었다. 

 

'인간'이 '신'으로 격상될 수 있다는 사실은 결국 '노예' 생활을 운명으로 여기는 유대인들에게 '시민'으로서 살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고 지배계급에 대한 저항을 유발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급속히 퍼지는 기독교로 인해서 로마제국이 위기감을 느끼면서 이 종교는 점차 '지도자의 종교'로 탈바꿈 하기 시작했다. 이로 부터 기독교는 서서히 '서민을 위한 혁명'의 종교로서가 아니라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유지하기 위한 종교가 되었던 것이다. 그때가 2세기 후반이다.

 

결국 로마황제와 교황이 나서서 기독교를 자신들의 지배목적에 맞게 재편하기 시작했고, 바로 그 '전환기'에 '니케아 공의회'가 있었던 것이다.

 

니케아 공의회는 [양자론]적인 입장에서 '인간 -> '신' 이 될 수 있음의... 다시 말해서 '혁명'이 가능하고 '노예'-> '시민'이 될 수 있음의 가능성을 전제로 자신들의 교리를 일구워가던 '아리우스파가,

'예수는 원래부터 신'이라는 3위일체설을 가진 [아나타시우스파]에게 참패하고 이단으로 낙인찍히는 계기가 되었다.

 

현대의 기독교인들이 당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아나타시우스파]의 3위일체설은 그야말로 로마제국과 이해를 같이한 종교지도자들이 본격적으로 기독교를 '지배자의 종교'로 흡수시킨 계기를 주었다.

 

즉 '인간' -> '신'이 될 수 있음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초기기독교인들(아리우스파 역시)의 [양자론]은 로마 제국 내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뇌관으로 작용해 왔고 지속적인 사회 혼란을 가해왔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일말의 조치가 필요했던 로마제국과 그때의 지배적인 종교세력들은 [삼위일체설]을 공식입장으로 받아들여서 자신들의 지배 논리를 정당화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결국 '만연된 기독교'로 인해서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지위를 위협당할 뿌리를 뽑게 된 것이다. 결국 지배계급은 그렇게 기독교를 왜곡했던 것이다.  

 

[3위 일체설]이 옳건 [양자론]이 옳건을 떠나서 하여간 이러한 역사적인 질곡이 있었다.

 

그 후로도 수 많은 일들이 있었다. 걸출한 기독교 이론가인 '아우구스투'(교부철학)와 '토마스 아퀴나스'(스콜라철학)는 기독교의 이론에 섬세한 자극을 기했고, 종교개혁과 세계사적인 사건들은 기독교에 끝없는 변화를 기했다.

 

 

...

하지만 역사의식도 부족하고 시야가 좁은 기독교인들(한국형 기독교인들)은 50년 전과 100년 전에 자신이 교회를 다녔다면 현재와는 전혀 다른 '신에 대한 개념'을 가졌을 것임을 예상하지 못한다.

 

또한 100년 500년 1000년 2000년 전에...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하나님'과 '믿음'에 대한 개념이 무엇을 말할 것인지에 대한 '일말의 의구심'도 갖지 못한다.

 

(제대로 믿는 방법을 그 자신도 모르기 때문에 신도들에게 그리 말할 수 밖에 없었던 무식한 목사들의 영향으로) '무조건 믿기만 하면 된다'는 참으로 '답답한 믿음'에 자신의 영혼이 잠식당한 채이다.

 

하지만 '믿음의 개념' '하나님의 개념'은 계속 변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십자군 전쟁에 나섰던 이들도 사람들 목을 칼로 베던 '그때'의 믿음이 '진정한 것'으로 여겼다. 중세에는 '마녀'로 지목되는 이들을 불로 태우는 행위를 믿음의 행위로 여겼었다.

 

'현재'를 사는 '한국형 기독교인들'도 세상의 부정과 부조리와 불의의 문제에 눈을 감거나 아예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식조차 없이... 영생을 갈구하며, 십일조만 잘 하면 된다고 믿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서 어떻게 판단될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이 한 순간에 만들어서 제본까지 하여 전도자들에게 내려 보내서 그것이 사람들에게 전파된 것이 아니라, 종교지도자들이 서로 머리를 맡대고 고민의 고민을 한 결과 '그 시대 종교세력의 성격'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상의 작품으로 제작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는 예수 사후에서 부터 10세기때 까지 쓰여진 작품(요한계시록)이 꾸준히 '정경'에 포함되는 역사를 앎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성경은 '한다발'로 완성되어 떨어진 것이 아니라, (신의 은총에 더불어)역사속에서 만들어져왔던 것이다.

 

이러다 보니 4복음서의 내용에도 서로간에 모순된 내용이 버젓히 존재하는 것이다.

 

 

자... 다시 영화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정작 해야할 일은 넘쳐나지만 전혀 손도 되지 않는 이 나라 기독교인들... 그 몇몇 보수적인 종파 중심으로  다빈치 코드 거부운동이 빚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해와 해를 가르키는 손가락을 구분 못하고,

본질이 아닌 현상적인 것에만 매달리고 집중함으로 인해서 빚어진 결과이다.

해야할 생각과 해야할 일들은 하지 못하고 늘 주변적인 것에만 논쟁을 일삼으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쥐기 위한 추악한 의식의 발로라는 것이다.

 

가뜩이나 한국형 기독교인들은 '종교'와 '과학'을 구분 못하는 헤괴한 특성을 지닌다. 성경은 신성한 것이라면서 그 내용 자체가 '과학적 사실'이라고 외친다. 성경에서 주장한 모든 내용 자체가 '표현된 문자 자체'로 '진실'이란다.

 

이러다 보니 그들에게 '진화론'은 거짓의 향연이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지구'는 기원전 10000년 전에 만들어졌어야 하고, 그들의 생각으로는 노아의 방주는 진정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억종류의 모든 생물을 (꼴랑 배하나 위에)싣고 바다위에 떠 있다가 희망의 땅을 발견하여 다시 문명을 꽃피운 것이 된다.  

모든 물리적이고 과학적이며 역사적인 사실들 자체가 기독교 작가들의 필력 앞에서는 '사기'가 된다.

 

이는 해와 해를 가르키는 손가락을 구분 못하는 특성에서 기인한다. 왜? 성경의 내용에 '반'하는 '생물학 이론'이나 '물리학적인 사실'이나  '유대의 역사'를 '성경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 '거짓'인 것으로 몰아가는 것인가?

 

이는 '눈으로 보이고 귀로 들리워지는 것만 믿는 편협한 인간성의 특징을 버리지 못한 미숙한 인간성'이 성경을 접하고 나서도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왜곡되게 인식한 결과인 것이다.    

 

'실증'과 '계측'이 주도하는 [기계론적인 세계관]으로 '성경'을 보고 해석하려 하니, 그러한 무리가 당연히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왜? 과학적인 진실과 역사적인 사실과 괴리되는 것에는 관계 없이 성경은 그것 자체로 '진리'일 수 있음의 '종교적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가!!!

 

과연 이렇게 '종교를 가질 기본적인 자질도 안된 이들이' '목소리만 크니' 답답하지 않은가!!!  

 

이러다 보니 앞서 말한대로 세계 최대의 기독교 성장국가국이기만 할 뿐이지, '아시아 중진국 중에서 가장 타락한 나라'라는 통계가 나오고, 세계 최대의 고아수출국'이며, 아시아 20여개국 청소년 중에 준법정신이 최하위이며, 봉사활동 비율이 형편없을 수 밖에 없고,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해서 그렇게 추악한 일들이 많이 빚어지며, '사기꾼 많은 나라'로 정평이 나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소리가 '그들'에게 들리겠는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로만 떠벌리고,

감정을 끌어 내서 예배보며 '눈물 흘리고' 소리지르고, 천국보내달라고 돈 태놓는 능력만 고도화 되어 있을 뿐이지...

 

권력과 자본을 쫓으면서 철저히 그것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기독교인들이... 비움과 나눔의 미덕의 실천을 배워본적이 없는 '한국형 기독교인들'이... 이런 얘기를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일상적으로 소비생활 하고 문화생활을 하게끔 이끄는 '가치'와 '욕망'과 '의지'가 나라와 인류와 자연의 미래를 좀 먹고 있다는 사실 조차를 확인해 볼 필요를 못 느끼는...

 

이기주의의 철저한 아집과 독선을 종교로 투사해서 그 편협한 테두리에 스스로를 가둔 '그들'이 과연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는가 말이다.  

 

진실을 스스로 찾아 나서기는 커녕 눈 앞에 들이 대도 그것이 보일수 있는가 말이다.

 

하나라도 더 갖고 높이 오르려는 의지가 아닌, 하나라도 더 나누고 비우려는 의지가 그들의 눈을 틔울 것이지만... 현대의 '문화'와 '기호'속에 '욕망'과 '의지'와 '의식'을 잠식당한 '그들'이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는 어려우리라...

 

 -> 둥글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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