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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지 -구효서-

정미란 |2006.06.29 17:55
조회 26 |추천 0

 

*

 

실제의 우연은 필연으로 발전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아무런 결과를 가져오지 않아도 되는

끝이 활짝 열려 있는 우연이라야 우연다운 우연이 아닐까

 

 

 

 

*

내가 스물서넉에 보았던 그녀의 몸은 18년 전 이후로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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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뭣 때문에 예전의 말투를 되찾으려고 애썼던

것일까. 무슨 의미가 있길래. 쑥스러움과 서먹함 따위를

무찔러보겠다는 단순한 의도였겠지만 글쎄, 쑥스러움과 서먹함

따위를 무찔러 뭘 어쩌자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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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이니까 서로 알아보자는 것,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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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처를 주고받는 일은 하지 않았다.

우연히 만나 몇 마디 나누고 우린 다시 헤어진 것이다.

우연다운 우연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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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아무말도 못했다.

비록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와 함께 인생을

책임져 나갈 자신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내 감정이며 내 각오에 지나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녀 쪽에서 아니라면 아닌 거였다.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만일 그녀가

아니라고 한다면 도무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라고 말하는 그녀를 보채기에는

내 자존심(피해의식일지 몰라도)이 너무 컸던 것 같다.

 

어쩌면 그녀도 나와 똑같은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자존심과 피해의식의 모호한 경계가 너무도 깊고 넓어서

건너지 못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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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와 나 사이에 존재했던 단절의 흐름은

완전히 메울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것은

다만 메우면 메워질 수도 있는 공백만은 아니었다.

분명한 흐름을 갖고 존재하는 강물과도 같은 것이어서

웬만큼의 모래와 돌과 흙의 의지는 곧장 흐름 속에 휘말려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물줄기가 아닌 듯했다.

태초부터 존재와 존제 사이에 가로놓인 심연과도 같았다.

과연 그것이 메워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

우리는 알지 못했다.

우리는 그것을 무엇이라 이름하여야 좋을지 몰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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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마저 느끼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으리라.

다만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소통시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

이걸 서로 맞지않는다고 하는거다.

우리는 이걸 숱하게 반복한다.

다 겪어보고 상처받고서야 알게되는 그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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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인 것이었든 심리적인 것이었든

상호간의 어떤 [트임]을 기대하고 정선을 찾았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그때 우리 둘 모두 정선을 찾은

까닭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면 길가 나무 그늘에 앉아

하릴없이 자주개밑의 풀대궁을 뜯거나

담배를 빽빽 빨면서 민둥산 검둥개 따위에 대해

종작없이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그래 나도 아우라지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다.

소통이 되지않는 그 무엇.

나도 트임을 발했었는데

종작없이 말하는것도 없었다.

얼마나 황량한 아우라지이던지

이제 그런 쓸데없는짓은 하지말아야지...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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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나이가, 사고가, 혹은 삶의 양식 등등이,

이미 바람과 나무와 물과 하늘 따위로써 심리적인 어떤것들이

해소되기엔 어울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차라리 술을 먹고 교정의 잔디 위에 토하는 것이

담배냄새 가득한 자취방에 골아떨어지는 것이,

도심의 분수대에 뛰어들어 고함을 지르거나

음악다방에 들러 맥없이 '학국문학신강'을 읽는것이

무언가를 털어내고 흐트러뜨리는 데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었을까.

 

응어라가 몸 속에 들어앉는 방식이 다르면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도 달라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산천경개를 찾아 풀어질 성질의 응어리는 따로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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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은 했으되 소통된 것은 없는 것 같았다.

열심히 떠든 무성한 말들과 열에 들떠 나누었던

푸른 살갗의 기억들은 이미 가지 끝에서

고엽으로 부서져내려 흔적도 없이 흩어지고,

앙상한 가지 사이론 연원도 연유도 모를, 다만

눈멀어 흐르는 바람만 소슬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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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앞에선 누구나 혼자일 수 밖에 없었다.

존재하는 것도 그렇고, 그 존재가 소멸하는 것도

다 외로운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콩나물해장국이 얹힌 명치께를 내지르며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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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도 살아도 막막하기만 한 삶,

산과 들을 헤매며 허위허위 목숨을 이어도 끝내는

이 땅에서의 한스런 삶과 새끼 몇 낱만 고스란히 남기고

훌쩍 저승의 깊은 수렁에 빠져버리고 말 인생,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할 무작정한 탄생과 소멸의 순환 속에

우연처럼 던져졌다가 우연처럼 거두어지고 말 목숨,

산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의 거추장스럽고 버거운 오의가

가슴속 깊은 곳을 검은 강물처럼 흐르며 쓰리고 아린

생채기를 낼때마다 그들은 한숨처럼 체념처럼

노래르 불렀을것이다. 애가 타게 임을 그리며

망망한 강물과 더딘 사공을 원망하던 큰애기처럼,

그들은 속절없이 이어지는 삶을 견디며

아우라지 뱃사공아 날 어서어서 여기서 좀 건너주게

고개 좀 넘겨주게 노래불렀을 것이다.

결국은 그 어느 것도 건너지 못하고,

그 어느 것도 넘지 못하고, 태어나 살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마른 삭정이가 되는 보리똥나무처럼

죽어갈 목숨이라는 것 잘 알면서도 그들은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고개가 문제로다,

노래를 부렀을 것이다.

탄생과 소멸이 거듭되는 동안 강물은 저 혼자 말없이

깊어지며 마을과 마을, 집과 집,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르고 흩어 외로움만 더욱 깊어지게 할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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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강을 건널 계획같은 건 없었다.

강을 보면서도 강을 건너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만 움직이지 않는 빈 배를 보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답답증과 막막함이 엄습했던 것이다.

건너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었다.

문제는 건널 수 없다는 데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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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우리는 서로를 지극히 원했던 걸까.

사랑했던 것일까.

결과론이긴 하지만 그날의 격정적인 몸부림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꿈꾸는 완전합일과는

성격이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원수진 듯 서로를 물어뜯으면서 우리가 원했던 건

사랑이라기보단 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개체가 숙명적으로 안고 가야 할 외로움을

떨쳐버리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같은 말 같지만 이것은 엄연히 다른 말이다.

사랑함으로써 하나가 되고 싶었다면 그 대상은

그녀가 아니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둘이 아니기를 바랐을뿐이라면

그녀가 아니어도 상관없는 일이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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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한 존재가

 

그 온전함이 오히려 버겹고 외로워서

 

스스로를 해체하고 망가뜨려

 

또다른 존재와 유착하려는

 

갈망이었을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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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나는 지난밤의 낯설고 무모할

만큼 격렬했던 정사가 우리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 것인가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의 연애가 많은 커플들이 그러하듯 유행에

뒤지지 않으려는 이유에서 시작됐고 이내

타성에 젖어 지리함을 견디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면 어떤 형식으로든 그걸 정리해야만

할 것 같았다.

정리라면 두 가지였다.

유행과 타성에 젖은 행위라고 인정한다면

서로 헤어짐으로써 그 비본질의 유행과 타성을

떨쳐버리는 일이었다.

다른 하나는 우리들의 관계가 결코 유행과 타성에 의해

형성되고 지속되는 건 아니라고 주장해보는 일이었다.

무언가 본질적인 어떤 것에 포함된 행위라면

주의 깊게 결혼과 반려의 미래를

생각해볼 때라고 생각했다.

비본질과 본질, 이별과 결합은 그러나 당장

어떻게 결정지을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너무나도 혹독했던 지난밤의 정사가

서울로 돌아오는 나를 끝없이 채근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가학적인 섹스의 정체가 도대체 뭐였으며

그것을 어떤 식으로 이해해서 미래에다

적용시킬수 있을 것인지, 그걸 생가해보라고 몰아붙였다.

 

당장은 서울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각자의

차창을 말없이 바라보고는 있었지만 대략 스무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둘은 오로지 서로의 소통 통로를

격렬하게 혹은 간절하게 두들겨 때리는 일에

몰두했었다. 그것은 학대나 파괴라기보단 서로를

접촉하고 나눌 수 있는 체면적을 최대화하기 위한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결국 어떤

갈망에 시달렸던 것인데 비록 그 갈망의 까닭과

정체는 알 수 없었을지라도 적어도 두 존재가 급격히

하나가 되려 했다는 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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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결혼을 했건 안했건, 나와 했건

다른 남자랑 했건, 이 물은 예나 지금이나 미래에나

무심하게 흐르기는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결혼하면 뭣 하나,

두 물줄기가 어우려져 합쳐 봤자

더욱 넓고 깊어만 질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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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나 사이를 가르고 지나던

무수한 흐름들이 18년이란 시간 뒤에는

말할 것도 없이 더욱 깊고 넓고 어두워져

건널 엄두도 건널 필요도 건너지지도 않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깨달음이었지만

나는 그날 인사동의 돌장승 아래서 오랫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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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본질적으로 외롭고 고독한

나머지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관을 뻗어 타존재와 연결되고 싶어하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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