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잘하기 위해 알아야 할 한 가지 :
F(사랑)=영어, 영어는 사랑의 함수다.
오랜만에 싸이월드 일촌인 후배에게서 쪽지가 와서 열어봤더니 ‘역시나’였다. 한동안 뜸하던 일촌에게서 단체 쪽지가 왔다면, 혹시 그 속에 어딘가 멀리 떠난다는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담겨있다면 그건 ‘어학연수’를 간다는 인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예전에는 군대 간다고 인사하던 녀석들의 쪽지가 대부분이었는데, 하는 일 없이 자랑스러운(?) 예비군이 되고부터는 어학연수 간다는 쪽지가 부쩍 많아졌다. 군대-어학연수 코스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대학생의 정규교육과정이다.
얼마 전에 한 친구도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영어가 싫다며 노래를 하더니, 결국 그 싫어하는 영어를 사랑하기 위해서 태평양을 건넜다. 좋고 싫음이 명확해서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눈길한 번 주지 않는 녀석. 주위에는 적들이 가득하고, 친구도 몇 명 되지도 않는 바로 그 녀석이 자기가 그렇게 싫어하던 영어를 배우기 위해 떠났다. 그것은 글로벌 시대를 사는 우리 어깨에 영어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려주는 안타까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 환송회에 모인 4학년들의 술자리에서 우리는 마치 익숙한 인사를 하듯 “영어를 제대로 배우고 오려면 무조건 외국여자를 사귀어야 한다. 못생겼다고 튕기지 말고 일단 사귀고 보는 거야.”라며 주문을 외운다. “그럴까? 그게 좋겠지?”라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는 걸 보니 평소에 하늘 높은 줄 몰랐던 녀석의 눈높이가 무색하다. “내 친구도 캐나다에 어학연수가서 일본 여자친구 사귀더니 일본말을 더 잘 하더라”며 한 친구가 양념을 치자, 비록 영어는 제대로 못 배우고 왔지만 어쨌든 외국여자를 만나서 외국어를 잘하게 된 것은 사실아니냐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학연수를 가서 한국 친구들하고만 어울리다가 돌아온 친구 녀석은 처음에는 ‘중요한 건 언어가 아니라 문화체험’이라며 핏대를 올리더니, 외국여자친구를 안 사귄 것이 어학연수의 결정적인 실패 원인이라며 소주잔을 기울인다. 우리의 청춘을 뻔뻔하게 잡아먹고 있는 영어. 도대체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
아프리카 여행 때 3박 4일간 남아프리카공화국 크루거 국립공원의 트럭킹을(사파리처럼 개조된 트럭을 타고 국립공원을 여행하는 것) 함께 했던 리오넬과 딜리아 커플은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한가지가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잇츠 베터 댄 비포어” “홀리데이” 등 영국식 영어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이 커플의 대화를 들으면서 나는 당연히 둘 다 영국 출신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에 리오넬은 프랑스 출신이고 딜리아는 영국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술술 나오는 리오넬의 유창한 영어실력을 보면서 어학연수를 떠나는 친구의 송별회 자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속으로 다시 되뇌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영어를 잘하려면 영어권 네이티브 여자친구를 사귀어야 해’
하지만 여행기간 동안 이 커플을 지켜보면서 영어를 잘하는 비결은 단지 영어를 쓰는 사람이 옆에 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리오넬과 딜리아는 국적도 피부색도 다르지만 서로 정말 사랑하는 커플이었다. 영국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는 딜리아의 휴가에 맞추어 이들은 몇 개월째 세계여행 중이었다. 무더운 아프리카의 열기에도 이들은 좀처럼 서로의 손을 놓지 못했고,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이들은 서로를 꼭 안고 잠들었다. 럼주를 좋아하는 딜리아는 저녁 식사가 끝나면 버릇처럼 럼주를 만들어서 나에게 권했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흥건히 취해서 노래도 불렀다. 물론 때로는 거친 술버릇을 보여주기도 했고, 취기에 리오넬에게 화도 냈지만 리오넬은 늘 그녀를 지켜보면서 때로는 말동무를 해주고, 때로는 기타를 쳐주며 그녀의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단지 애인이 영어를 쓰는 사람이라서, 영어를 자주 접하게 되어서 영어를 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로스타를 타면 단지 몇 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다는 영국과 프랑스와의 거리가 이들의 언어 장벽까지 자연스럽게 허물어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리오넬이 영어를 잘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딜리아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면 자신의 그 절실한 마음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영어로 대화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리오넬이 가끔 사전을 찾는 이유도 좀 더 정확하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렇게 마음이 담긴 말을 하고 나면 구지 외우기 위해 고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기억된다. 그래서 적어도 나에게 영어는 사랑의 함수다. 가슴 속에만 담아두기에는 너무도 벅찬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에게 커뮤니케이션하도록 노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토익 점수가 높은 소위 ‘토익 도사들’이나 들어갈 수 있다는 한 공기업의 영어인터뷰 면접관을 하고 오신 외국인 교수님께서 표정이 좋지 않다. “세상에 토익 만점짜리 벙어리가 있다”며 마치 신기한 외계인이라도 보고 오신 듯 한탄하신다. 영어로 말하는 것에는 그렇게 서툴면서 어떻게 토익 만점을 받을 수 있었는지 감탄사가 절로 나오신단다. 외국인 교수님의 한탄을 들으며 도무지 몸 둘 바를 모를 우리의 토익점수와 말하기 실력의 ‘의도하지 않은 불균형’은 어떻게 해야 할지 부끄럽기만 했다. 그것은 타인에게 자신의 영어실력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주는 일종의 범죄행위다. 회사나 동아리 지원서에 토익점수를 기재하면서 당당했던 우리는 영어 말하기 능력을 체크하라는 질문에서는 왠지 망설여지고 부끄러워진다. 사실 점수에 쫓기다 보면 ‘의도된 불균형’을 만들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언어는 따뜻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경쟁하게 만드는 점수는 차갑다. 점수지향적인 우리의 영어 실력은 정작 외국인과 커뮤니케이션하기에는 이미 너무 차가워져 버린 것은 아닐까? 언어에는 사랑의 마음이 담겨있어서 말을 할수록 서로에게 촉촉이 젖어들어야 하는데, 점수 지향적인 우리의 영어는 건조하기만 하다. 그래서 영어를 위해서는 영어를 배워야 하는 사랑의 동기가 있어야 한다.
고등학교 때 중간고사를 볼 때였다. 영어 시험의 초반 몇 문제는 듣기평가였는데, 우리 반에서 그 문제를 맞은 친구는 딱 한명 뿐이었다. 외국에서 살다온 친구도 헷갈렸다는 그 듣기문제를 맞은 친구는 어릴 때부터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을 사랑해서 늘 AFKN을 통해 미국 NBA를 즐겨봤다. 운동으로 대학에 간 녀석은 자신이 속한 체대 최초로 토익 600점이 넘어야 지원할 수 있다는 카투사에 당당히 합격해 체대 건물 앞에 플래카드를 걸었다고 한다. 중학교 때부터 야한 일본 만화를 사랑했던(?) 친구는, 항상 일본어사전을 들고 다녔고, 친구들에게 지금 이 결정적인(?) 장면에서 주인공이 뭐라고 하는지를 설명하며 유창한 일본어 실력을 뽐냈다. 영어 때문에 아직도 머리가 아픈 우리들. 잠시 조용히 책을 덮고 내가 왜 영어를 배우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언어라는 것은 대상을 향한 진실한 마음이 빠져있을 때는 단지 건조한 도구에 불과하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사랑보다 우리의 능력을 멋지게 만드는 것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말을 할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장애자가 되었다면 당신은 누구보다 빨리 수화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언어는 능력의 문제이기 보다는 마음가짐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면 알게 된다는 말, 그 말을 우린 좀 더 일찍 알았어야 했다. 특히 영어가 힘든 우리에게는 더욱 그렇다. 왜? 영어는 사랑의 함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