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가슴에 짝 궁둥이, 말라비틀어진 양쪽다리, 꼬리뼈 위에 나있는 욕창 자국. 역시 인간의 몸이기에 아름답다. 그런데 누드라고는 하나 다른(비장애인) 여성의 그것을 감상할 때처럼 입안에 침이 고이기는커녕 오히려 숙연해지기까지 하는 사진이다.
몇 년 전 제주도에 사는 어떤 서른살의 장애인 처녀가 자기도 남성을 사랑하고 싶은 한 여성이라는 것을 표현하고자 자신의 누드를 찍어 인터넷장애인신문에 올려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고 이 일이 장애인계(?)에서는 큰 논란이 되었었다.
나는 자신의 그러한 심정을 알리는 방법이 꼭 누드여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하기도 하지만 같은 장애인의 입장에서 이선희 씨의 그 절박했던 심정은 충분히 공감하고 결코 쉽지 않은 일을 해낸 그녀의 용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장애인. 그들은 비장애인들에게, 혹은 같은 장애인들에게 까지도 無性(무성)으로 또는 제 3의 성으로 치부되곤 한다. 그 일예가 바로 화장실이다. 요즘 대형 건물 안에 들어가 보면 화장실이 거의 3개다. 남자꺼 하나, 여자꺼 하나, 장애인꺼 하나.
여기서 재밌는 상상을 한 번 해볼까? 대형 마트에서 쇼핑을 하다가 볼일이 급해서 장애인 화장실을 찾았는데 이미 어떤 여성장애인이 일을 보고 있다. 이럴 때 어떻게 할까? 문을 열고 들어가 “같은 장애인끼리 좀 보면 어때요?”하면서 바지를 내릴까? 허걱!!!
그 여성이 일을 다 보고 나오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서로 바통터치를 할 때 약간 얼굴이 붉어지기는 하겠지만 뭐 그 정도쯤이야...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비장애인의 화장실도 뭐 1개뿐이면 어떤가? 안 그런가? ^^
이 화장실 이야기는 선희씨가 벗은 의도에서 약간 빗겨가는 이야기 일수도 있겠지만 내가 화장실을 예로 든 것은 이렇게 원초적인 화장실 문제도 해결이 나지 않는 판에 장애인의 성 향유를 논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철없게 보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선희씨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고 나 또한 말하고 싶다. “나도 남자다.”라고, “나도 예쁜 여자를 사랑하고 싶고 사랑하는 여자와 키스도 하고 싶은 남자다.”라고...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비장애인들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하지 않을까? “그래서? 어쩌라고?”
만약 어떤 여자가 내가 남자로 보여서 싫다면, 나를 남자로 생각하면서는 만나고 싶지 않다면 어쩔 건데? 그나마 친하게 지내오던 여자마저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 아닌가? 그럴 바에는 국으로 가만히 있는 게 낫지...